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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이름의 선택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 22:1)
이름이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자기 이름은 어떻게 들어도 그 자신에게 가장 달콤하고 중요하게 다가온다.”고 데일 카네기는 말했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아주 흡족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맘에 들지 않아 바꾸려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자녀, 사업체 심지어 교회의 이름도 신중하게 지어야 한다.
초창기 안식일을 준수한 재림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생 교단에 이름 붙이기를 꺼렸다. 1860년까지도 그들은 스스로를 “적은 무리”(눅 12:32), 마지막 때의 “남은 자손”(계 12:17), ‘안식일과 닫힌 문의 신봉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특별한 무리’(계 14:12), ‘하나님의 언약 준수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인 안식일을 지키는 하나님의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계 3:7~13)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한 가지 특정 명칭에 합의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출판소를 설립하기로 결의하면서 미시간주법에 따라 공식 명칭을 채택해야만 했다. 1860년 10월 1일, 미시간주 배틀크리크 대총회 총회에서 ‘하나님의 교회’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두 명칭을 놓고 논의가 오갔다. 그리고 전자는 너무 일반적이고 주제넘은 이름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여 최종적으로 “우리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고 부르기로 결의했다.”
1861년 엘렌 화잇은 이렇게 선언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명칭은 우리 신앙의 참다운 특성을 표방하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주님의 전통에서 꺼낸 화살처럼 그 이름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이들에게 타격을 가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이끌 것이다”(1증언, 224).
세계 여러 곳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은 정직하고 믿을 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유명하다. 이 교단에 속한 우리 역시 그 이름에 책임이 있다. 이웃과 동료, 학우와 친구에게 교회가 좋은 평판을 얻도록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수많은 사람이 우리 모습을 보고 교회 전체를 평가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세계 선교가 특별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의 관심과 기도 제목이 되도록
10월 2일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마하트마 간디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1869~1948)는 1869년 10월 2일, 인도 서부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났다. 비폭력 시민 불복종을 택한 간디는 대영 제국에서 인도를 독립시켰고 시민 평등권과 자유를 향한 세계 각지의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간디는 힌두교 신앙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세계 주요 종교들의 근본적인 진리”를 믿는다고 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을 특별히 존중했다.
하지만 간디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은 그리스도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위대한 힌두교 지도자였던 그는 “내가 알기로 산상 수훈에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순전하게 담겨 있다. …따라서 내가 산상 수훈을 읽고 나름대로 그 내용을 해석할 때면 나는 그리스도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현실에서 기독교인들은 산상 수훈을 무시하고 있다.”라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 선교사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기를 시작해야 한다. …당신들의 종교를 훼손하거나 허물지 말고 그대로 실천하라.”고 덧붙였다.
안타깝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떠벌리면서 그리스도처럼 살지 않는 사람이 참 많다. 심지어 자신들의 맹점을 의식해 “우리가 실천은 못해도 말하는 건 다 맞아.”라는 이도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생활 방식을 뻔뻔스럽게 옹호하면서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라고 큰소리친다. 타인의 성장과 성숙에 기여하기는커녕 “그게 진정한 너의 모습이야. 그렇게만 살아도 충분해.”라면서 낮은 표준을 두둔하기도 한다.
우리는 피부색, 외모, 억양 등 외적 요소로 남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따뜻한 마음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이를 핑계 삼아 자신의 표준을 낮추면 안 된다. 우리의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해도 사람들은 우리의 옷차림, 식생활, 가정과 사회에서 표출하는 행동을 보고 우리에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호소하신 것이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태영/전주은 선교사 부부(서인도네시아)
선교지에 파송되어 봉사하는 모든 선교사의 사역과 건강을 위해
10월 3일
교리적 논쟁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암 3:3)
참하나님은 한 분뿐이며 그분의 모든 말씀은 통일성이 있다(엡 4:4~6).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분의 말씀을 동일하게 풀이하지는 않는다. 선량한 그리스도인끼리도 교리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논쟁이 분열로 이어지기도 한다.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스위스의 종교 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는 성만찬과 관련해 “내 몸이라”(눅 22:19)라는 표현과 ‘내 살을 먹는 자’(요 6:56)라는 표현의 의미에 대해 의견이 갈렸다. 그래서 1529년에 이 문제를 정리하고자 이른바 마르부르크 회담을 열었다. 1529년 10월 3일, 루터, 츠빙글리와 또 다른 목회자 8명이 마르부르크 조항에 서명했다. 그들은 14개 기본 조항에 모두 합의했지만 성만찬의 떡과 포도즙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정말 육체적으로 임하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하지 않았다.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츠빙글리는 이렇게 말했다. “루터 박사, 참담한 저의 심정에 대해 용서를 구하오. 늘 당신과 친해지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소. 이탈리아에도, 프랑스에도 당신보다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요.”
그러자 루터는 “그대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이요.”라고 답했다.
마르틴 부처 또한 루터에게 물었다. “저를 믿음의 형제로 여기시나요? 아니면 오류에 빠졌다고 생각하시나요?”
돌아온 루터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동일한 정신을 지니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쪽으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전하게 믿으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온갖 터무니없는 신성 모독으로 똑같은 믿음을 질타하고 억누르고 비방하고 범하고 있으니까요.” 두 종교 개혁 집단은 끝내 화해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교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루터교 신학자 루페르투스 멜데니우스(1582~1651)는 이렇게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필수적인 것에는 통일을, 필수적이지 않은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 관용을.” 매우 유익한 조언이다. 문제는 ‘필수적인 것’과 ‘필수적이지 않은 것’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이다. 우리는 은사와 사역의 다양성(고전 12장)을 존중하면서도 교리에는 통일성을 추구해야 한다(고전 1:10).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다.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해성/백관희 선교사 부부(네팔)
취업을 위해 한국어 시험에 응시한 청년들이 좋은 결과를 얻도록
10월 4일
미지에 대한 두려움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마 14:26)
참혹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세상은 냉전에 돌입했다. 철의 장막은 소련 중심의 동구권과 미국 중심의 서방을 서로 갈라놓았다. 전쟁의 상처는 채 아물지 않았고 앞날에 대한 염려가 가득했고 미래가 불확실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동구권과 서방이 부딪히며 경쟁하는 상황에서 스푸트니크는 미국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인들은 지구상에서 자신들의 나라가 최고의 선진국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인공위성의 본질적인 의미와 목적에 대해 고도의 철학적 견지에서 의구심을 품었다.
‘인공위성이 우리 머리 위로 돌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까?’, ‘만약 그것이 우리에게 떨어진다면?’, ‘혹시 사생활을 감시하는 장치는 아닐까?’라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전 세계가 보인 부정적 반응은 미지의 영역에 대해 인간이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끼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우리의 복리와 생존에 위협으로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든 커다란 공포와 불안을 야기한다. 그 공포감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면 심리 장애가 생기고 급기야는 자신의 그림자까지도 두려워하게 된다.
오늘의 성경절인 마태복음 14장 26절은 폭풍 속의 갈릴리를 항해하던 제자들에게 덮친 집단 공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물 위를 걷는 예수를 보고 그들은 “유령”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짓고 공포에 휩싸여 울부짖는다. 그러나 예수께서 배에 오르는 순간 바람은 사라졌고 제자들은 그분을 찬양했다고 영감의 기록은 전한다(막 6:52; 마 14:33). 예수께서 등장하시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근심, 걱정, 두려움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경계심만 일으킨다는 점을 잊지 말라.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온다면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강지희 선교사 부부(대만)
대만 대학생선교센터 및 베이툰 교회 건축을 위해
10월 5일
변상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나쁜 변명보다는 차라리 변명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만약 워싱턴이 2010년까지 생존했다면 그 역시 자신의 조언을 따라야 할 상황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1789년 10월 5일, 조지 워싱턴은 뉴욕 소사이어티 도서관에서 에메르 드 바텔의 『국제법』 사본을 대출했다. 그리고 책을 반납하지 않은 채 10년 뒤 세상을 떠났다. 2010년 4월 16일, 도서관 기록 보관 담당자는 그 책이 여전히 반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환되지 않은 책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조지 워싱턴 마운트 버넌 저택의 부동산 관리인은 온라인에서 1만 2,000달러에 판매 중인 같은 판형의 책을 찾았다. 즉시 책을 구입했고 2010년 5월 18일, 뉴욕 소사이어티 도서관에 이를 반환하는 기념식을 거행했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할 때 221년 동안의 연체료는 30만 달러에 달했지만 찰스 베리 소사이어티 도서관장은 “이로써 조지 워싱턴과 친척들의 연체료는 모두 탕감되었음을 밝힌다.”고 선언했다.
타락한 인간인 우리 모두는 커다란 죄의 빚을 지고 있다. 그 값은 바로 죽음이다(롬 6:23).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기 때문이다(히 9:22). “허물과 죄로 죽”(엡 2:1)은 우리가 그 값을 다 치르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 우리가 죄 사함을 받게 하셨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 우리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며 이는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8절).
조지 워싱턴처럼 다른 이가 우리의 빚을 대신 갚아 준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죽어 책을 반납하는 데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워싱턴과 달리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일지 말지 직접 결정해야 한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호소하신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지금 당장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대속을 받아들이고 확증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운성/조선희 선교사 부부(대만)
섬기는 교회가 도움을 받는 교회에서 도움을 주는 교회로 성장하도록
10월 6일
늦게 도착한 편지
“형제가 함께 한마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선하고 얼마나 보기 좋은가!”(시 133:1, 우리말)
이해득실에 따라 한 가족의 성공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기준은 우리가 속한 가족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가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만, 이기심, 경쟁심, 오해로 갈라서고 헤어지는 가족이 적지 않다. 안타깝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최악의 원수가 되기도 한다.
1880년 의사 존 하비 켈로그(1852~1943)는 배틀크리크 요양원에서 동생 윌 케이스 켈로그(1860~1951)를 조수로 채용했다. 이들 형제는 종종 의견 차이를 보였는데 요양원의 판매 제품 생산에 대해 특히 그랬다. 의사인 존은 요양원에서 퇴원하는 이들에게 그래놀라, 시리얼 플레이크, 식물성 대체육 등 건강식을 제공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지만 사업가였던 윌은 다양한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는 맛 위주의 제품을 원했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커졌고 결국 수차례의 법정 공방 끝에 그들은 각자의 사업체를 꾸렸다.
형제는 1907년 재림교회에서 제명됐다. 27년간 교회에 나오지 않던 윌이 먼저였고 몇 달 뒤 교회의 신념과 절차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던 존이 그 뒤를 이었다. 1943년 12월 14일, 존 하비는 동생과 화해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그로부터 4년이 더 지난 1948년 6월 22일에 윌은 놀라운 편지를 받았다. 바로 존이 작성한 화해 편지였다. 존은 죽기 한참 전에 그 편지를 썼지만 그의 위신이 손상될 것을 염려한 비서가 그 편지를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윌이 제때 존의 편지를 받았다면 형제는 화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둘 사이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1951년 10월 6일, ‘콘플레이크의 제왕’이자 켈로그사의 창립자인 윌 케이스 켈로그도 숨을 거두었다. 화해는 빠를수록 좋다는 원칙을 켈로그 형제의 이야기에서 되새길 수 있다. 화해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상대방이 여러분을 용서하려고 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자기 할 일을 하라. 그리고 하나님과 양심 앞에서 평안을 누리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성/김종숙 선교사 부부(북아프리카)
새롭게 부름을 받은 북아프리카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발견하도록
10월 7일
연대 추정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딛 3:9)
지구 역사가 6,000년을 넘어 안식의 제7천년기로 접어드는 시점을 계산한 사람이 많다. 고대 유대인의 책인 제2에녹서 33장 1~2절에서는 창조 주간의 하루가 1천 년을 나타낸다고 암시한다. “천 년이…어제 같으며”라는 시편 90편 4절,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베드로후서 3장 8절 등이 상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엘렌 화잇은 “거의 6,000년 동안” 대쟁투가 “이 땅에서 이어졌다.”고 선언했다(쟁투, 552). 그런데 이와 같은 진술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들이 있다. 다니엘 9장 24~27절의 70주간과 다니엘 8장 14절의 2,300주야처럼 6,000년의 기간도 정확히 계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세 가지 흥미로운 사항만 언급하고자 한다. 서기 3세기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한 날짜가 기원전 3761년 10월 7일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6,000년이 지나는 시점은 서기 2239년쯤이 될 것이다. 아일랜드 대주교 제임스 어셔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 『세계 연대기(The Annals of the World)』(1658)에서 창조 주간은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 일요일에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수많은 사람이 1996~1997년에 종말이 이를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윌리엄 밀러는 1843년에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이렇게만 살펴봐도 세상의 종말은 1843년, 1996~1997년, 2239년 세 가지나 된다.
계보와 연대기는 분명 중요한 정보 자료다. 그렇지 않고서는 성경 기록자들이 그것을 성경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추측을 끼워 맞추려고 이들 자료를 지나치게 왜곡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 문제점을 알고 있던 바울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인 족보 논쟁을 피하라고 조언했다(딤전 1:4; 딛 3:9).
6,000년이라는 기간이 인류 역사의 발전을 파악하게 하는 일반적인 지표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예언과는 무관하므로 재림 기별을 지지하는 데 이것을 활용할 수는 없다. 재림 기별은 훨씬 더 확실한 예언적, 역사적 근거에 기초하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1000명선교사 운동
세계 선교에 참여하는 1000명선교사 운동의 지경을 넓혀 주시기를
10월 8일
시간 도둑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 3:7~8)
도난당한 물건은 되찾거나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놓쳐 버린 기회는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결정과 행동을 미루며 꾸물대는 버릇은 시간의 가장 큰 적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에드워드 영(1683~1765)은 “꾸물대는 습관은 시간을 훔치는 도둑”이라고 말했다. “지금 미루면 나중에 미쳐 버린다.”는 말도 있다.
유명한 전도자 드와이트 L. 무디(1837~99)가 시카고에서 전도회를 이끌 때였다. 1871년 10월 8일 일요일에 무디는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라는 마태복음 27장 22절을 주제로 힘차게 말씀을 전했다. 설교를 마치면서 그는 청중에게 한 주일 동안 이 구절을 곰곰이 생각하며 나사렛 예수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한 뒤 다음 주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런데 설교를 마치고 얼마 안 되어 시카고 대화재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도시가 엄청나게 파괴됐다. 무디는 그리스도에 대해 결정할 기한을 일주일이나 준 것에 대해 후회했다. 이후부터 그는 회중에게 언제나 그리스도에 대해 그 자리에서 결심하라고 요청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꾸물거릴 때가 있다. “할 일을 안 하려고 쓸데없는 일로 바쁜 척한다.”는 속담도 있다. 안타깝게도 ‘잠시’ 미룬 일이 영원히 유보될 때가 많다.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행 24:25)고 바울에게 말한 벨릭스의 경우가 그랬다. 그 틈은 다시 오지 않았다.
여러분에게 미루는 습관이 있다면 오늘, 아니 지금 당장 결단하는 기술을 키우라. 자신은 물론 여러분을 의지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지 못했다면 구원의 시간은 바로 “오늘”이라는 성경 말씀을 기억하라. 우리는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자신의 헌신을 재확인할 또 다른 기회는 바로 오늘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민섭/김순임 선교사 부부(대만)
자녀들의 신앙 성장과 학업을 위해
10월 9일
위너캐그 캠포리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23:42~43)
패스파인더 캠포리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참가해 본 사람이라면 몇 달에 걸친 계획과 훈련, 캠프장 도착, 텐트 설치, 요리, 프로그램, 캠프파이어, 새로 만난 친구, 예상치 못한 소나기 등이 추억으로 떠오를 것이다.
1953년 10월 9~11일, 최초의 패스파인더 캠포리가 남부 뉴잉글랜드합회의 후원으로 매사추세츠 애슈번햄 인근의 캠프 위너캐그에서 개최됐다. 패스파인더 대원 55명이 텐트 하나당 6~8명씩 함께 지내며 야영했다. 주말에는 갖가지 활동을 벌였다. 금요일 저녁 예배 후에는 멋들어진 위너캐그 호숫가 곳곳에서 작은 캠프파이어가 타올랐다. H. F. 맥슨 목사가 캠프파이어에 둘러앉은 참가자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안식일 오후에는 E. W. 던바 대총회 청년의용선교부 서기가 찾아와 패스파인더 대원들에게 영감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행사를 마칠 무렵 대원들은 1954년 6월에도 캠포리를 열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이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했으며 이후 캠포리는 수십 년간 세계 각지에서 개최되고 있다.
패스파인더라는 개념은 엘렌 화잇의 진술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올바르게 훈련된 우리 청소년 일꾼의 군대가 준비된다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여 머지않아 다시 오실 구세주의 기별이 온 세상에 얼마나 신속히 전파되겠는가!”(교육, 271) 패스파인더 캠포리는 이스라엘에서 초막절에 진행한 사회적·영적 모임과 비슷하다(레 22:33~43). 초막절 기간에 그들은 광야의 선조들처럼 텐트에서 지냈다.
화잇에 따르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초막절을 개최하여 유익을 얻을 수 있다”(부조, 540~541). 초기 재림교인들은 장막 부흥회를 초막절이라 불렀고 오늘날의 패스파인더 캠포리도 초막절과 유사하다. 지역 교회의 패스파인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정태/김성진 선교사 부부(베트남)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지역에 더 많은 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10월 10일
선택의 자유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3~4)
만약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여러분을 멸망당하게 창조하셨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이 개념이 바로 프랑스의 종교 개혁가 장 칼뱅(1509~64)과 그 추종자들의 신념이었다. 심지어 칼뱅은 이런 진술도 했다. “예정이란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을 뜻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일어나기 바라는 바를 예정하셨다. 모두가 동등한 조건으로 창조된 것은 아니다. 미리 영생이 운명 지어진 이도 있고 지옥이 예정된 이도 있다. 따라서 각 사람이 둘 중 하나의 종말을 맞이하게 창조되었으므로 우리는 생명 또는 죽음이 예정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신학자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1560~1609)는 이 개념에 반기를 들었다. 1560년 10월 10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태어난 그는 레이던 대학의 신학 교수이자 수많은 저술과 논문을 남긴 인물이다. 칼뱅주의에 대한 그의 반론은 『5가지 항변(Five Articles of Remonstrance)』(1610)에 요약되어 있다. 두 번째 항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 각 사람을 위해 죽으셨고 그의 은혜는 모두에게 이른다. 그가 치른 속죄의 희생은 그 자체가 자연히 온 세상을 구속하기에 충분하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두를 위해 의도하신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충분하다고 해서 실제적으로 반드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절당할 수 있고 오직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실제로 구원받는다. 망하는 자는 자기 죄로 망하는 것이다”(요 3:16; 요일 2:2).
A. W. 토저는 자신의 저서 『하나님을 바로 알자』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이 임의로 정해 놓으신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선택과 결과의 자유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은 모두 영생을 얻고 자기 자녀가 되도록 정해 놓으셨다. 또 어둠을 좋아하고 하늘의 높은 권위에 계속 반역하는 자는 모두 영적 격리 상태로 남아 결국 영원한 죽음을 겪도록 정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사람, 멸망받을 사람을 독단적으로 정한다고 선언하신 적이 없다. “영혼의 운명은 당사자가 추구하고 결정하는 대로 이루어진다”(1증언, 471).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해섭 선교사(네팔)
기술학교 설립을 통해 네팔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도록
10월 11일
레이캬비크 정상 회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2016년 8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역사적 건물인 회프디에 방문한 적이 있다. 방문객들은 그 건물 앞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힌 화강암을 볼 수 있다. “1986년 10월 11~12일, 이 집에서 역사적인 레이캬비크 정상 회담이 열렸다. 두 강대국인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이 만난 이 자리는 냉전 종식의 예고편이었다.”
회담 내용의 대부분은 양 진영의 탄도 미사일 제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막판에 몇 가지 세부 사항에 합의를 못해 회담이 결렬됐다. 레이건은 연구소 실험에 관한 “말 한마디 때문에 역사적인 기회를 놓쳐 버릴” 셈이냐고 고르바초프를 다그쳤다. 협상은 실패로 끝났지만 레이캬비크 정상 회담은 1987년 12월 8일 워싱턴 정상 회담에서 성사된 중거리 핵전력 조약의 발판 역할을 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라틴 격언을 고수하는 나라와 민족과 종족이 많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오랜 냉전이 모두 그런 발상에서 비롯됐다. 냉전 종식을 앞두고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레이캬비크에서 대화를 나누었듯 우리도 국가, 민족, 가족, 친구 사이의 분쟁을 끝내는 진정한 평화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중재자가 되려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평화로운 생각, 평화로운 언어, 평화로운 행동 등 평화를 삶의 습관으로 삼아야 한다.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실패할 수 있고 최고의 선의가 오해를 사면서 깊은 좌절을 맛볼 수도 있다. 하지만 레이캬비크 정상 회담처럼 헛되이 뿌려진 듯싶던 평화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예상치 못한 결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설령 그런 결실이 없더라도 여러분은 최소한 자신과 양심에 대해서는 떳떳할 것이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듯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 5:9). 그리고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이다(빌 4:7, 새번역).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세담/박유진 선교사 부부(대만)
선교지에 나와 있는 동안 한국에 있는 가족 모두가 건강하도록
10월 12일
성경을 드높이라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구세주 그리스도상’의 제막식은 1931년 10월 12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거행됐다. 그로부터 정확히 55년이 흐른 1986년 10월 12일, 대총회는 리우에서 연례 회의를 개최해 <성경 연구 전략>이라는 문서를 승인했다. 이 공식 문서는 성경을 신뢰할 만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게 하는 기본 지침을 제공하며 또 성경을 하나님이 지은 권위 있는 책으로 여기지 않는 해석학을 모두 거부한다.
본 문서에서는 “고등 비평과 연결된 논리적 전제 및 그 결과에 따른 추론을 피하라.”고 촉구한다. “인간의 이성은 성경에 종속되어 있으며 성경과 동등하거나 성경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전제하에서 본 문건은 “성경을 인간의 이성 아래에 두는 비평 원칙이 담긴” 고등 비평은 “수정하여 활용하는 일조차 재림교인들에게는 불가하다.”고 진술한다. 이 문서는 교회가 견실한 해석을 유지하게 해 준다.
인간의 편견과 그릇된 성경 해석 때문에 기독교 내에서 수많은 신학적 갈등과 논쟁이 벌어졌다. 심지어 루터교 신학자 게르하르트 에벨링은 교회사를 가리켜 “성경 주석의 역사”라 표현할 정도다. 그러나 교회사 이전의 에덴에서부터 하와와 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창 2:15~17; 3:1~7). 교회에서 논쟁의 대부분은 성경 말씀과 그 성취에 대한 해석 때문에 생긴다(마 4:1~11; 15:1~20; 22:23~33; 눅 4:16~30; 10:25~37).
인간 역사의 마지막 때는 갖가지 해석이 폭풍처럼 밀려들고 거짓 교리가 난무할 것이다(엡 4:14; 딤후 4:3~4).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수호하며 성경만을 모든 교리의 표준이자 개혁의 기초로 삼는 무리를 세상에 남겨 두실 것이다”(쟁투, 595). 우리 또한 언제나 이 충성스런 무리의 일부가 되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마 4:4)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경원/조효정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파키스탄에서 사역 중인 한국인 선교사들의 가족들을 위해
10월 13일
둥근 지구에서 지키는 안식일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눅 23:54~56)
세상에는 다양한 표준 시간대가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인 안식일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지구를 둘러보면 같은 시각에 누군가는 안식일의 기쁨을 누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
구형으로 이루어진 지구에 사는 인류는 두 가지 큰 숙제를 떠안았다. 그 하나는 시간의 기준을 정하는 문제다. 1884년 10월 13일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국제자오선협의회는 숙고 끝에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도록 북극점부터 남극점까지 세로선을 그어 본초 자오선을 정했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경도 0도에 위치했고 적도가 남북을 가르듯 동서를 가른다. 그렇게 그리니치 천문대 평균시(GMT)를 기준으로 세상에 24가지 표준 시간대가 생겨났다.
또 한 가지 숙제는 날짜가 바뀌는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날짜 변경선(IDL)을 만들어 해결했다. 날짜 변경선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본초 자오선을 기준으로 경도 180도의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세로선이다. 작은 영토와 몇몇 섬을 피하고자 약간 지그재그 형태로 되어 있다. 날짜 변경선 동쪽으로 이동하면 하루가 빠지고 서쪽으로 이동하면 하루가 더해진다. 이 가상의 선 덕분에 각각의 표준 시간대가 해당 지역의 제시간을 의미하게 되었다.
날짜 변경선이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하는 비평가도 있다. 하지만 날짜 변경선은 일요일을 포함해 일주일 내내 적용된다. 표준 시간대가 필요한 구형 지구는 하나님이 만드셨고 우리 마음대로 그것을 평면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계명을 지역에 관계없이 동시에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어느 시간대에 있든 안식일이 될 때마다 지키면 된다. 둥근 지구의 어느 곳에서든 우리는 안식일을 충실히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 제자들이 그랬듯이 말이다(눅 23:54~56).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하지홍/황고은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선교지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선교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도록
10월 14일
전도의 우선순위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교회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대리자로 임명됐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교회는 봉사를 위해 조직됐고 그 임무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행적, 9).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는 두 가지 큰 시험에 직면했다. 하나는 기관화의 늪으로 교회가 선교 열정을 잃고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속화의 늪으로 교회가 세상에 너무 열린 자세를 취한 나머지 세상과 닮아 가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고자 1976년 10월 14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대총회 연례 회의에서는 <복음 전도와 하나님 사업의 완수>라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해당 문서에서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목표가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의 기별이라는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며 이 기별은 기존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더하여 성소 진리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독특한 진리를 포함한다.”고 천명했다. 같은 문서에서는 또 이렇게 경고한다.
“복음 전도에 앞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뛰어난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들이 있는데 식생활, 흡연, 건강 복지, 기타 사회적 유익에 관련된 것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치가 있다 한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하나님의 남은 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활동은 교회의 시간, 집중력, 재정을 소진하고 인류의 영원한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교회의 인력만 소모하는 셈이다.
…따라서 행정적인 조치를 거쳐 교회의 프로그램은 교회의 기본 사명 완수에 도움이 될 때만 관심과 재정 지원을 받는다는 점을 규칙과 예시로 명확히 해야만 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목표는 선교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라고 오래전 예수께서 기도하셨듯이 말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수단 전쟁 난민들을 돌보기 위한 감화력센터 설립 자금 모금을 위해
10월 15일
달력의 변천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
여러 고대 문명에서는 1년의 계절 변화를 바탕으로 제각각의 달력을 개발했다. 서로 다른 수많은 달력과 그 변천 과정을 보면서 그동안 일주일이라는 주기가 한 번도 문제없이 반복되어 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이 과연 창조 주간과 동일한 일곱째 날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창 2:2~3) 일요일을 준수하는 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일요일이 태초의 일요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선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주일 중 단 하루라도 빠졌다는 증거는 없다는 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안식일 덕분에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일주일 체계가 유지된 것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도 안식일에 대해서는 틀림이 없었다. 만약 구약 시대에 안식일 계산이 잘못됐다면 예수께서 바로잡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도 유대인과 똑같은 날을 안식일로 지키셨다(눅 4:16; 23:54~56). 안식일은 너무나 의미 깊고 거룩한 날이므로 하나님은 절대로 그날의 계산에 문제가 생기도록 그냥 두실 리가 없다.
신약 시대에도 일주일 주기는 변함없이 이어졌다. 16세기 후반, 그레고리력이 처음 등장했을 때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1,300여 년간 잘못되었던 날짜를 수정하기 위해 열흘을 삭제했다. 그래서 율리우스력 1582년 10월 4일 목요일 이튿날은 그레고리력 1582년 10월 15일 금요일이 되었다. 일부 유럽 국가는 늦게까지도 그레고리력을 도입하지 않았지만 어떤 경우든 요일은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로마 가톨릭조차 자신들이 지키는 일요일이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한 그 주의 첫날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맞이하는 매 안식일은 변함없이 하나님의 시간 속 지성소이다. 창조 주간의 끝에 다가온 그 똑같은 날에 하나님은 안식하셨고, 복 주셨고, 거룩하게 하셨다(창 2:2~3). 예수님과 사도들도 그날을 지켰다(눅 23:54~56; 행 16:13). 성경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얻는 구원의 상징으로 이날을 지키라고 독려한다(히 4:4, 9~11). 안식일을 지키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신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며 그분의 복을 누린다(사 58:13~14).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석희/전은경 선교사 부부(몽골)
한국 봉사대원들의 선교 활동으로 침례 받은 100여 명의 영적 성장을 위해
10월 16일
마지막 메시지
“모세는 이 모든 말을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들려주고 나서 그들에게 일렀다. ‘너희는 내가 오늘 다짐해 두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간직해 두어라. 이 법에 있는 한 조목 한 조목을 성심껏 지키라고 너희 후손에게 일러 주어라’”(신 32:45~46, 공동)
지도자는 언젠가 자신의 직책을 다른 이에게 넘기게 된다. 그리고 고별사에는 임기 동안 이룬 일과 미래에 대한 염려가 담기곤 한다. 신명기의 모세가 말년에 꼭 그러했다. 그와 비슷하게 1978년 10월 16일, 대총회장 로버트 H. 피어슨(1911~89)도 건강 문제로 조기 사임을 발표하면서 1978년 연례 회의에서 대총회장으로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피어슨 목사는 분파가 교회로 발전하는 전형적인 순환 주기에 대해 언급했다. 제1세대는 대체로 가난하며 “교회 내의 세속주의와 형식주의에 저항하면서 등장한다.” 제2세대는 번영이 시작되며 교세가 커지고 “조직과 건물이 필요해진다.” 제3세대에 이르면 “조직과 기관이 생겨나고” 제4세대는 “인기 있는 사업들에 가담하면서 동시대 사회와 ‘결부’되려고 한다. 봉사는 형식적으로 바뀐다. 세상에서 완전히 인정받는 집단이 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주기를 고찰한 뒤 피어슨 목사는 호소했다.
“형제자매들이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는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단순히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맞이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 해답은 십자가 밑에 있습니다. 갈보리의 그분을 바라보는 교회는 결코 배도의 길을 걷지 않을 것입니다.”
재림교회의 운동은 승리를 거둘 것이며 마지막 때 헌신하지 않은 형식적인 교인들은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예언적 확증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마 13:24~30, 36~43, 47~50).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 운동이 승리하느냐가 아니라 그대와 내가 그 승리하는 무리에 해당하느냐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영광스런 그날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끝까지 주님께 충성해야만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신영천/김혜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트목골 교회 및 학교 건축을 위한 계획에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하기를
10월 17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 61:1)
20세기 인물 중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만큼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도 드물다. 그는 아녜즈 곤제 보야지우(1910~97)라는 이름으로 오토만 제국 위스퀴프(현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태어났다. 1950년, 테레사는 로마 가톨릭 소속인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설립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배고픈 이, 헐벗은 이, 집 없는 이, 장애인, 맹인, 나환자, 아무도 찾지 않는 이, 사랑받지 못한 이, 보살핌 받지 못한 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 사회의 짐이 된 이, 부끄러움 당하는 이들의 이름으로 기쁘게 이 상을 받겠습니다.”
이 수녀회는 인도 캘커타(현 콜카타)에서 12명의 작은 모임으로 시작되었고 전 세계에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1979년 10월 17일, 테레사 수녀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2월 11일, 오슬로에서 수상 소감을 전하면서 테레사는 침례 요한을 언급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요한은 “평화의 왕자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것을 요한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것만으로는 부족한 듯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더 큰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저와 나환자, 굶주려 죽어 가는 자, 캘커타뿐 아니라 아프리카, 뉴욕, 런던, 이 오슬로에서 헐벗은 채 거리에 누운 자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사랑받지 못하고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을 섬기며 살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사역을 하라고 부르신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봉사가 습관이 되는 삶을 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윤권/나영주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연합회와 각 기관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되기를
10월 18일
명장의 손길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막 1:41~42)
1921년 초, 마이라 브룩스 웰츠(1877~1959)는 평범한 것도 장인의 손을 거치면 특별한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집에 돌아온 그는 곧 짧은 시를 썼다. 그렇게 탄생한 시 <명장의 손길>은 1921년 2월 26일, 형제 교회의 공식 기관지 『가스펠 메신저』에 익명으로 실렸다. 그 시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고 수많은 다른 출판물에도 ‘작자 미상’으로 소개됐다.
1936년, 하와이 YMCA 대회에서 어느 목사가 그 ‘작자 미상’의 시를 읽었다. 그러자 드와이트 O. 웰츠가 벌떡 일어서더니 그 시는 자기 어머니가 쓴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내 작가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다. H. A. 브란트는 1941년 10월 18일 자 『가스펠 메신저』에 ‘노래뿐 아니라 가수도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이 시에 관한 헤드라인 기사를 올렸다. 이 유명한 시에는 보잘것없는 가격으로 경매에 입찰된 낡은 바이올린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어느 명인이 그 바이올린을 켠 뒤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뛰었다는 내용이다. 시는 아름다운 영적 교훈을 주며 마무리된다.
명장이 오시네. 어리석은 군중은 알 리가 없지.
명장의 손길이 닿은 영혼과 그 변화의 가치를.
마가복음 1장 40~45절의 나환자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부정한 환자인 그는 사람들과 떨어져 지냈고 누구도 그를 건드리면 안 되었다(레 13:46). 그러나 예수님은 규율을 무시하고 그를 만져 낫게 하셨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치유를 거리낌 없이 선포했다.
여러분의 문제가 무엇이든 명장의 손길만 닿으면 깨끗이 해결될 수 있다. 그분의 손길이 거쳐 간 삶은 다시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변화에 대해 침묵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예수께서 해내신 일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조기형/곽현주 선교사 부부(필리핀)
61기 선교사들의 성령 충만한 사역을 위해
10월 19일
복음 방송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삶은 무의미해진다.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고전 15:19)일 것이라고 말했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희망의 설교자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재림교회 목사이자 라디오 진행자, 작가였던 H. M. S. 리처드 시니어(1894~1985)이다. 1929년 10월 19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KNK(AM) 채널로 전도회를 위한 방송을 실험한 뒤 리처드는 미국 동서를 가로지르는 최초의 정규 라디오 종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라디오 교회>라고 부르던 그의 프로그램은 나중에 <예언의 소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방송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공황(1929~33)이 미국과 전 세계를 강타했다. 유명 목사 여럿은 아직 예언이 성취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리처드는 이미 성취된 예언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성경의 수많은 예언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성경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면 예수께서 주신 가르침 역시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삼중으로 보증받는다. 첫째 이 소망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과거’ 역사의 과정에 기반한다. 둘째로 그 소망은 우리를 위해 하늘 성소 휘장 안에서 그리스도가 끈기 있게 중보 하고 계시는 ‘현재’에도 유지된다(히 6:19~20). 마지막으로 이 소망은 ‘미래’를 향해 강한 기대감을 품게 한다. 그 미래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히 12:2)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어 우리를 하늘 집으로 데려가실 때이다. “소망을 품은”(슥 9:12) 우리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병섭/이세주 선교사 부부(대만)
전도회로 확보한 구도자들의 지속적인 영적 성장을 위해
10월 20일
선교용 범선
“바울은 이 말을 마친 뒤에 무릎을 꿇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다 바울을 껴안고 작별의 입맞춤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다시는 자기를 보지 못하리라는 바울의 말을 듣고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배 타는 곳까지 바울을 배웅했습니다”(행 20:36~38, 쉬운)
남태평양의 오지 핏케언섬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재림 메시지를 받아들였는지 알고 있는가? 1876년, 제임스 화잇과 존 H. 러프버러는 핏케언 제도에 재림교회 서적을 한 상자 보냈다. 10년이 지난 1886년, 존 I. 테이는 사비로 핏케언 제도에 가서 재림 기별을 전했다. 주민 110명 모두가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였다. 테이는 목회자가 와서 교회를 조직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1889년 대총회 총회에서는 남태평양 제도의 사역에 필요한 선교선을 건조하기로 결의했다. 이를 위해 미국 전역의 안식일학교에서 남녀노소가 헌금했다. 그렇게 1890년 9월 25일, 범선 핏케언호가 탄생했다. 1890년 10월 20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재림교인 선교사 한 무리가 타고 있는 선교선이 출항했다. 36일간의 항해 끝에 이들은 핏케언 제도에 이르러 섬 주민 82명에게 침례를 주었고 교회와 안식일학교를 조직했다. 몇 주를 그곳에서 보낸 뒤 그들은 다른 섬으로 떠났다.
핏케언 선교 프로젝트는 해외 선교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뜨거웠던 시절에 시작되었다. 1889년, 엘렌 화잇은 이렇게 조언했다. “마케도니아에서, 미국의 도시와 마을의 사방에서, 대서양과 광활한 태평양 너머에서, 여러 제도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사방에서 내 영혼을 휘젓고 있습니다. 그들은 ‘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외칩니다. 형제자매여, ‘우리가 최선을 다해 선교사와 자금을 보내겠습니다.’라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하시지 않겠습니까?”(5증언, 732)
재림 기별이 필요한 선교지를 떠올릴 때마다 우리의 가슴이 뛰어야 한다. 선교야말로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이다. 기도와 재정으로 우리는 지역 교회뿐 아니라 세계 선교를 지원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전재송/장혜순 선교사 부부(필리핀)
보내는 선교사들의 부흥이 있도록
10월 21일
부고는 간략하게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J. N. 앤드루스(1829~83)만큼 논리와 추론에 밝은 사람도 드물다. 7개 국어를 구사했던 그는 세상 지식과 종교사에도 해박했다. 언젠가 성경을 얼마나 암기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앤드루스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구약은 다 외우지 못하겠지만 신약 성경이 사라진다면 제가 다시 그대로 옮겨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앤드루스를 재림교회의 첫 공식 해외 선교사로 유럽에 파송했을 때 엘렌 화잇이 “스위스의 형제들이여…이곳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를 보냅니다.”라고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유럽에서 8년 이상 사역한 앤드루스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폐결핵에 감염된 그는 1883년 4월 23일, 스위스 바젤에서 절친한 친구이자 『애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 편집장인 유라이어 스미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금 나는 크게 탈진하여 죽음을 앞두고 있네. 내가 부담을 느끼고 있는 한 가지를 부탁하려 하네. 자네는 곧 『리뷰』지에 나의 부고를 싣게 될 텐데 부고는 그 어떤 찬사도 없이 아주 간단하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부탁하네. 3분의 1 칼럼 정도면 충분할 걸세.
이렇게 요청하는 이유는 자네가 호의적인 마음으로 내게 과분한 기사를 작성하는 수고를 할까 염려되기 때문이네. 내가 최선을 다한 일에도 조금은 나의 사심이 섞여 있었고 하나님과 인류를 향한 사랑에도 부족함이 있었네. 그러니 내 부탁을 들어줄 것을 이렇게 진심과 애정을 담아 간청하네.”
1883년 10월 21일, 앤드루스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부탁도 반영됐다. 10월 30일 자 『리뷰 앤드 헤럴드』에는 고인에 대한 찬사가 최대한 생략된 ‘앤드루스 목사의 부고’가 실렸다. 뛰어난 재능으로 성공과 찬사에 둘러싸일 때도 겸손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선교부
의명선교센터가 탈북민들을 위한 복음의 등대가 되도록
10월 22일
부푼 기대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단 8:14)
1844년은 부푼 기대감 속에 찾아왔다. 윌리엄 밀러는 한 번도 구체적인 날짜를 정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성경 연구를 통해 다니엘 8장 14절의 상징적인 2,300일(2,300년)은 1843년 무렵에 끝날 것이며 그때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나중에 그는 1844년 봄에 그 기한의 끝이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한편 새뮤얼 S. 스노는 2,300년 기간이 기원전 457년 가을에 시작해 서기 1844년 가을, 좀 더 정확하게는 1844년 10월 22일에 끝난다고 확신했다. 그는 같은 해 8월 뉴햄프셔주 엑서터에서 개최된 밀러주의자 장막 집회에서 자신의 흥미진진한 견해를 밝혔다. 그때부터 밀러주의 운동은 다시 불이 붙었고 긴박감이 고조됐다.
밀러주의자들의 소망은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는 재림을 주제로 한 설교가 1,500~2,000번 전해진 것으로 집계됐다. 또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5~10만 명으로 추산된다. W. R. 크로스는 소극적인 참여자도 ‘100만 명 이상’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당시 미국 인구가 2천만 명이 안 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숫자다. 엄숙함이 감도는 시간이었고 사람들은 구름 사이로 오실 주님을 만나고자 준비했다.
마침내 10월 22일이 되었고 밀러주의자들은 말할 수 없이 숙연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기대에 차 있었다. 과격한 흥분이나 공개적인 시위는 없었다. 그들은 각자의 집에서 주님이 오시시기만을 조용하고 끈기 있게 기다렸다. 조슈아 V. 하임스는 가까운 친구였던 윌리엄 밀러의 집에 찾아갔다. 거기에는 몇 가정이 모여 ‘승천 바위’에 주님이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하여 동쪽 지평선을 응시하며 재림의 징조가 눈에 띄자마자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마침내 해가 졌고 세상은 평소처럼 다시 밤의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실망할 이유는 없었다. 열 처녀의 비유에 따르면 신랑은 ‘한밤중’에 오실 것이기 때문이었다(마 25:6). 영생은 그들의 것이 될 참이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지훈/신은주 선교사 부부(미얀마)
미얀마 재림교회 최초의 약사 과정으로 많은 의료 선교사가 양성되도록
10월 23일
복된 실망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 10:10)
밀러주의자들은 1844년 10월 22일의 재림을 열렬하게 고대했다. 그러나 달콤한 꿈은 쓰디쓴 실망으로 돌아왔다. 하이럼 에드슨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는 시계의 종이 자정을 알릴 때까지 오실 주님을 기다렸다. 그날이 지나 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의 실망은 확연해졌다. 끓어오르던 소망과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주체할 수 없는 애곡이 우리를 엄습했다. 세상의 모든 친구를 다 잃었다 해도 이렇게 슬플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새벽까지 울고 또 울었다”(성소, 6).
1844년 10월 23일 아침, 에드슨은 친구를 초대했다. J. N. 러프버러에 따르면 그 친구는 O. R. L 크로저였고 함께 다니며 밀러주의자 이웃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불렀다. 에드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출발했다. 넓은 밭을 지나면서 그 중간쯤 되는 곳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내 눈앞에 하늘이 열리는 듯했다. 2,300주야의 끝인 7월 1일에 우리의 대제사장은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서 나와 이 땅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소의 둘째 칸에 처음으로 들어가신 것임을 나는 분명하게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기 전에 지성소에서 하실 일이 있었다”(앞의 책, 7).
비판적인 역사학자들은 1844년의 대실망을 매우 부정적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최근 재림교회 학자들은 그 사건의 긍정적인 부분에 주목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실망을 겪으면 전통을 무너뜨리고 과거에서 탈피해 새 출발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대실망 이후 성경을 다시 공부한 덕에 안식일 준수 재림주의자 선조들은 대실망에 대한 대답뿐 아니라 그때까지 생각지 못했던 질문에 대한 답까지 얻을 수 있었다.
1844년 대실망으로 하나님은 현재 전 세계로 퍼져 있는 재림 운동을 일으키셨고 마지막 때 성경 진리를 회복하셨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 또한 개인적인 실망을 극복하고 승리로 가득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신다. 오늘 그리고 언제나 그분의 섭리를 믿어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현규/최선아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선교지의 영적 부흥을 위해
10월 24일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공항은 다양한 감정이 일어나는 곳이다. 공항에서는 사랑하는 이에게 작별을 고하며 슬픔에 잠긴 사람, 기다리던 사람을 신나게 맞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집을 떠났다 다시 올 때까지 사람들은 여러 기기를 활용해 연락하고 사진을 보면서 특별한 추억에 잠기곤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승천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애달픈 심정으로 바라보았다(행 1:6~11). 예수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화가들은 다양한 상상력을 활용해 그분을 그려 냈다. 여러분이 보았던 그림 중에서 그분이 오시는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은 무엇인가? 영국의 미술가 존 사테인(1808~97)은 1808년 10월 24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스물두 살 때 그는 미국으로 이민 갔고 거기서 메조틴트 기법을 개척했다. 엘렌 화잇은 그의 유명 작품 <우리 구주(Our Saviour)>(1865)를 두고 자신이 환상에서 본 예수님의 모습과 가장 닮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 그분을 직접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라고 요한일서 3장 2~3절은 말한다. 예수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자 복된 약속인가?
그분을 가장 잘 묘사한 그림조차 그날이 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뵐 것이라고 예수께서 약속하셨다(마 5:8). 엘렌 화잇은 선언한다. “하나님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 하늘의 행복이겠는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분이 우리 아버지임을 깨닫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무엇이겠는가?”(8증언, 267)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직접 대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영광스러운 일을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영식/조효정 선교사 부부(몽골)
늘 무릎 꿇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선교사가 되도록
10월 25일
잊을 수 없는 순간들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삼상 2:19)
엘렌 화잇은 가정과 자녀 교육에 대해 폭넓은 내용을 다루었다. 그러나 예언 사역을 맡은 그는 자신과 가족보다 하나님의 사업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큰 부담을 안고 살아야 했다. 1848년에 첫째 아들 헨리가 태어났다. 그러나 헨리가 만 1세 되던 해에 화잇은 아이를 하울랜드의 가정에 맡겨야 했다. 이에 대해 화잇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이번에도 자아를 부정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어린 헨리와 함께할 기회를 희생하며 우리는 사업에 투신해야 했다. …헨리가 심하게 아팠을 때 주께서 그를 살려 주셨다고 나는 믿었다. 또 만약 아이가 우리의 의무에 방해가 되도록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내게서 떼어 놓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홀로 주님 앞에서 슬픈 마음으로 눈물을 쏟으며 희생을 감수하기로 했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남의 손에 맡겨야 했다.
…이별은 힘든 일이었다. 헤어질 때면 아이의 애처로운 작은 얼굴이 밤낮으로 내 앞에 어른거렸지만, 주님의 힘을 의지하여 자식 생각을 내려놓고 타인의 유익을 위해 힘써 일했다”(자서, 120).
원래는 헨리를 하울랜드 가족에게 잠시 동안 맡길 계획이었지만 몇 번을 제외하고는 5년이나 계속 그렇게 해야 했다. 한번은 헨리가 부모, 조부모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1850년 10월 25일 금요일에 하울랜드 가족이 아이를 메인주 고램에 데려왔다. 그때 화잇은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슬픔에 잠겨 일요일에 아이와 헤어져야 했다.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믿음 안에 있으며 충실하게 살면 곧 다시 만나 결코 헤어지지 않을 날이 온다는 사실에 기뻤다”(발행 원고 15, 210). 1859년 초, 또 다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화잇은 기쁨에 젖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가족을 만났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가정에서의 자리를 찾았다. 집처럼 소중한 곳이 없다”(원고 5, 1859.).
재림교인인 우리는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과 영원히 함께할 영광의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원상/김수경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미래 지도자 양성과 장학 사업 확대를 위해
10월 26일
보상 중독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7)
자신과 업적에 대해 칭송받고 보상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칭찬에 심각하게 중독된 나머지 아무도 칭찬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 마치 이력서를 목에 걸고 다니는 모양새다. 나는 혹시 칭찬과 보상에 중독되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본 적이 있는가?
이런 중독은 죄에 물든 본성과 부모·교사의 교육 방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1993년 10월 26일, 알피 콘의 책 『보상이라는 벌』이 출간되었다. 부제는 ‘금상, 인센티브, A학점, 칭찬과 뇌물’이었다. 필자는 보상 제도가 학생과 근로자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협업(팀워크), 내용물(의미), 선택(자율)를 통한 동기 유발이 보상을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위대하고 경이롭다는 칭송을 받아서는 안 된다. 높임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이다.”(의료, 168)라고 엘렌 화잇은 조언했다. 또 “칭송하지도 칭송받으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칭송받으면 겸손 대신 자부심에 들뜨고 마음이 깨끗해지기보다 부패하기 때문이다.”(교권, 474)라고 진술했다. 남에게 냉담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라는 말인가? 절대 아니다.
성장의 열쇠는 감사이다. 감사의 중요성에 대해 화잇은 이렇게 말했다. “삶 자체가 고통인 사람이 많다. 그들은 늘 부족을 느낀다. 또 비참하고 회의적이다. 자신들에게는 감사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홀로 생활고와 싸우는 수많은 이를 향한 친절한 말, 동정 어린 태도, 존중의 표시는 마치 목마른 이에게 냉수 한 그릇과 같을 것이다”(보훈, 23).
우리는 타인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람들을 북돋고 격려하는 최적의 마음가짐과 올바른 언어를 주시기 바란다. 포용적인 협업과 감사는 차별적인 경쟁과 보상보다 힘이 세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갑숙 선교사(말라위)
하나님께서 청년들을 위한 자동차 정비 학교 설립의 꿈을 이루어 주시도록
10월 27일
자연의 아름다움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6:28~30)
우리 집 거실에는 가끔씩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난초가 있다. 꽃이 피지 않을 때는 아내가 진짜 같은 조화를 얹어 두곤 한다. 사람들은 그 가짜 난초를 보고도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하지만 아무리 예뻐도 조화는 모조품일 뿐이다. 생명이 없고 당연히 신비로운 성장 과정도 없다. 무엇보다 조화에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없다.
1885년 10월 27일 자 『애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지에서 엘렌 화잇은 이렇게 진술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눈길을 인공적인 것에서 자연으로 돌리고자 애쓰셨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왜 땅을 갈색이나 회색으로 뒤덮지 않으셨을까? 그분은 가장 편안하고 부담 없는 색을 택하신 것이다. 생생한 초록을 입고 있는 대지를 바라보면 힘이 생기고 지친 마음이 상쾌해진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기는 흙먼지가 가득하고 이 땅은 사막 같았을 것이다. 돋아나는 풀, 피어나는 꽃봉오리, 활짝 핀 꽃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며 믿음의 교훈과 그분에 대한 신뢰감을 선사한다. 그리스도는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눈길을 이끄시며 세상의 권력을 휘두르는 가장 위대한 왕의 의복조차 가장 미천한 꽃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다. 돈으로 사는 화려함, 값비싼 그림, 가구, 의복을 갈망하는 그대는 거룩하신 교사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분은 들판의 꽃을 가리키신다. 그 단순한 디자인을 인간의 재주로는 구현할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을 감상하는 특별한 날로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다(창 2:1~3; 출 20:8~11). 자연의 메시지가 우리를 그분께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BMW KOREA
아프리카 교회들의 선교적 자립을 위해
10월 28일
글로벌 공동체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행 20:37~38)
1870년대에 나의 증조부는 북부 독일에서 남부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면서 부모, 친척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고 그 뒤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통신·교통 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했고 비용도 저렴해졌다. 또 사이버 혁명은 인간의 소통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2003년 10월 28일, 하버드 대학에 재학할 당시 마크 E. 저커버그는 동기생 3명의 도움으로 ‘페이스매시’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저커버그는 하버드 보안 네트워크를 해킹해 기숙사의 학생 신분증 사진을 복사한 뒤 둘씩 묶어 게시했다. 그리고 둘 중 누가 더 매력적인지 방문자들이 선택하게 했다.
그런 다음 2004년 2월 4일, 하버드에서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라는 SNS를 출시했다. 한 달 뒤 페이스북은 스탠퍼드, 컬럼비아, 예일 대학으로 확산됐고 결국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2015년 1월 28일 티머시 스테노벡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라보다도 더 큰 페이스북’이라는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소개했다. 당시 페이스북에는 매달 13.9억 명이 접속해 뉴스 피드를 확인하고 사진을 보며 친구들과 소통했다. 그 당시 13.6억 명으로 추정되었던 중국 인구보다도 많은 수이다.
현대 사회는 거대한 글로벌 공동체가 되었다. SNS 덕분에 지리적 요인이나 물리적 단절로 인한 외로움이 많이 해소됐다. 사도행전 20장 37~38절의 바울처럼 가족과 친구들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대신 오늘날 우리는 ‘계속 소통해요’라고 말한다. 심지어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를 통해 옛 친구와 연락이 닿기도 한다.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SNS를 활용해 예수를 전할 수 있다. 친지들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워지게 하는 창의적인 방법들을 떠올려 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동혁/김아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지난 11년간 이어진 무상 교육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이어지도록
10월 29일
계획된 구식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계속 사용한 물건은 결국 못쓰게 되고 만다. 항상 최신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사고방식 탓에 이 과정은 점점 가속화된다. 1920년대 미국 주식 시장은 급격한 확장세를 탔고 막대한 규모의 자본 투기가 잇따랐다. 하지만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1929년 10월 29일, 검은 화요일이 찾아왔고 주가가 곤두박질해 ‘서구권의 산업화 이후 최악의 장기 경제 침체’가 시작됐다. 대공황(1929~39)이 찾아온 것이다. 1933년까지 미국 은행의 절반이 도산했고 실업자는 1,500만 명에 달했다.
공장이 문 닫는 모습을 보며 창의적인 생각을 지닌 이들은 새로운 생산 방식과 마케팅 기법을 개발했다. 1932년 등장한 이른바 ‘계획적인 구식화’는 버나드 런던이 고안한 개념으로 사람들이 이미 가진 물건을 신제품으로 교체하도록 부추기는 마케팅 법칙이다. 자일스 슬레이드의 통찰력 있는 책 『고장 나게 만들기-미국의 기술과 진부화』에서는 종이 생산의 혁명과 플라스틱 산업 개발, ‘연식 변경’ 등을 통해 ‘소비 경쟁’이라는 개념이 도입됐고 오래된 제품을 신제품으로 바꾸려는 소비 심리가 이 개념에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설명한다.
‘계획적인 구식화’는 잠깐 쓰고 버린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새것’을 향한 욕망은 결혼, 가족, 친구 등의 영속적인 가치를 놓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를 테면 ‘당신은 내가 써먹을 수 있을 때만 중요하고 더 이상 써먹지 못할 때는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성경은 헌신을 강조한다. 부모에게 순종하고(엡 6:1~3), “젊어서 취한 아내”를 사랑하고(잠 5:18) 자녀를 존중하라는(엡 6:4) 거룩한 의무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람은 참으로 우리의 소유보다 중요한 존재이다. 그리스도인은 새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오래된 관계가 망가지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이 관계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되는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함영식/김지은 선교사 부부(오만)
오만에 있는 외국인 선교를[부교1] 위해
10월 30일
미완성 교향곡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세상에는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일이 참 많다. 어떤 일은 자금 문제로, 어떤 일은 정치 문제로, 어떤 일은 진행자가 사망하면서 중단되기도 한다. 음악에서 가장 유명한 미완성 작품을 꼽으라면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는 탁월한 오스트리아인 작곡가이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처음에 ‘음악의 시인’이라고 불리던 슈베르트의 작품을 살펴본 베토벤은 “슈베르트의 작품에는 참으로 신성한 영감이 번뜩인다.”라며 감탄했다.
1822년 10월 30일, 슈베르트는 그 유명한 교향곡 8번 B단조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두 악장까지 진행하고 끝마치지 못했다. 이후 거의 1년이 지난 시점에 슈베르트는 그 작품을 친구에게 넘겨주었고 친구는 이것을 30년 동안 보관했다. 슈베르트의 사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세상은 그 진가를 알아보았다. 이 작품은 <미완성 교향곡>이라 불리기 시작했고 1865년 12월 17일, 빈에서 시연회가 열렸다.
슈베르트는 왜 이 대작을 미완으로 남겼을까?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슈베르트는 다른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 8번 교향곡을 잠시 미루었다고 한다. 교향곡이 이미 완벽했기에 더할 것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중도에 그만둔 프로젝트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영적인 문제라면 말이 달라진다. 구원을 거의 받거나 부분적으로 받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원받든 망하든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면 그분은 반드시 구원을 베푸신다. 찬양이 절로 나오지 않는가?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빌 1:6) 것이라고 바울은 확신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 가는 것은 평생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지만(빌 3:12~16)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를 힘입으면 바로 지금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다. 이것이 그대와 나의 경험이 되게 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을섭/이옥진 선교사 부부(일본)
갈수록 어려워지는 일본 선교에 새로운 활력을 주시기를
10월 31일
오직 믿음으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오늘이 1517년 10월 31일이라고 상상해 보라. 우리는 독일 비텐베르크에 와 있고 많은 사람이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색소니의 현자 프리드리히 선제후가 소장한 성물(聖物)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마르틴 루터의 삶』이라는 책의 저자 롤런드 H. 베인턴에 따르면 그의 소장품 목록에는 여러 성자의 치아부터 동정녀 마리아의 옷 조각, 머리카락 네 가닥, 통으로 짠 예수의 옷, 그분의 구유에 놓였던 지푸라기와 그분의 수염 한 가닥, 최후의 만찬에 올랐던 빵 한 조각, 가시 면류관의 가시, 그분의 손에 박혔던 못, 심지어 모세의 불타는 떨기나무의 잔가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1520년에는 성인의 뼈만 1만 9,013조각에 달했다. 성물을 본 사람과…어느 정도 기부금을 낸 사람은…면죄부를 받았고 이를 통해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가 연옥에서 보내는 시간을 190만 2,202년 270일까지 줄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요한 테첼은 인근 지역에 면죄부를 판매하면서 더 이상 참회가 필요 없다는 믿음을 부추기고 다녔다. 그의 돈벌이에 역겨움을 느낀 루터는 면죄부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해 비텐베르크성 교회 문에 붙여 놓았다. 그중 21~22조에서는 본질적으로 “면죄부는 구원을 주지 않는다.”, “죽은 자는 면죄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진술했다. 또 56~58조에는 사실상 성물은 그리스도의 성물이 아니라 악마의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루터는 학술적인 논쟁을 예상하고 반박문을 라틴어로 작성했다. 하지만 이 문서는 곧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뒤이어 여러 다른 언어로 옮겨졌다. 결국 로마 가톨릭의 성인 수호, 성물, 면죄부 판매에 대한 교리에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따라서 1517년 10월 31일은 두말할 나위 없이 위대한 종교 개혁의 출발점이다.
비텐베르크성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할 때 루터는 그 파급 효과를 내다보지 못했을 것이다. 95개조 반박문은 종교 개혁에 불을 지폈고 그 불길은 수많은 기독교 교파에서 계속 타오르고 있으며 세상 끝까지 지속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석곤 선교사(몽골)
몽골 삼육전문대학 졸업생들의 지속적인 신앙 유지를 위해
[부교1]선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