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도 나는 습관적으로 침대는 빠져 나왔지만 별 기대는 걸지 않은 채 까치발을 올리다 허억, 낮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직감적으로 월척, 아니 너구리 사령관이 체포 되었다고 판단되었다. 검은 자루에 덮여 락쿤은 보이지 않았지만 엄청난 크기임을 과시하듯 덫은 엉뚱한 곳으로 굴러가 있고, 또 요동도 계속되고 있었다. 월척이 말해주듯 나이를 먹으면 동물은 사람처럼 탐욕스럽지 않고 현명해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사령관은 졸병들이 다 사라진 뒤에 막판으로 걸려든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아내에게 빨리 출근해 달라는 무언의 채근이었다. 아내가 미적거리는 사이에 흥분한 깨비가 그 엄청난 놈을 해치워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내에게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게 미안해서라도 귀띔을 해주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그녀가 무지막지한 깨비의 작태를 안다면 파랗게 질려 주저 앉을 게 뻔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과연 덫에 걸린 락쿤은 엄청나게 큰 놈이었다. 사령관 감으로 손색이 없었다. 날뛰는 힘으로 금방이라도 덫을 부수며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깨비도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지 팔짱을 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또 어떤 묘기가 등장할 지가 궁금해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지금까지 쓰던 맷돌질로는 처치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한 눈에도 온전히 통 속으로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은 크기였다. 그녀도 그게 고민인 모양이었다.
그때, 정문 앞 도로에 낯 선 차 한 대가 와서 멎는 게 보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어느 새 낌새를 눈치 채고 들이닥친 동물학대 단속반원이 아닐까? 깨비도 기척을 느꼈는지 엉덩방아로 맷돌질을 하다 문득 하늘로 시선을 둘 때처럼 움직임을 멈추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소복을 입은 무당처럼 생소해 보였다. 그 생소함은 너무 허탈하게 보이는 것이어서 그 동안의 혐오스러움이나 경멸감마저 연민으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의외로 부동산회사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잔디밭에 말뚝을 박더니 <POWER FOR SALE> 이라고 쓰인 사인 판을 달고 있었다. 은행에서 경매공고를 내는 간판이었다. 얘, 너희 옆집 말야, 무슨 빛이 그리 많다니? 껍질만 남았어! 아무리 쥔양반 내조도 좋지만 그 지경이 뭐라니? 깨비가 집을 담보로 제 2금융권, 제3금융권으로 대출을 받으러 다닐 때 통역을 맡았던 신 여사가 끌끌 혀를 찼었다. 신 여사의 짐작대로 집이 차압 당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깨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장고 끝에 묘안을 도출해 낸 사람처럼 거침이 없었다. 좀 전의 허탈함은 간 곳이 없었다. 그녀는 한 걸음에 차고로 달려 가더니 진돗개를 끌고 나왔다. 온 몸이 하얀 하얀 털로 덮인 녀석이었다. 나는 난 데 없는 진돗개의 등장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얼마 전부터 그녀는 엉뚱하게, 다 자란 진돗개 한 마리를 끌고 와 기르고 있었다. 멋 모르고 기르던 교포들이 그 사나움을 감당하지 못하여 무료로 준다는 광고를 내는 게 진돗개였다. 어린 강아지부터 기르지 않았으니 그런 걸 얻어온 게 분명했다. 주인이 바뀌면 굶어 죽기까지 한다는 진돗개지만 그녀가 어떻게 완력을 썼는지 그 사나운 녀석마저 고분고분하게 제압하고 있었다. 남들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도 정작 깨비 본인은 모든 사내들이 자기를 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잠시인들 방심할 수 없었다. 더구나 자기 방까지 세를 주고 허술한 차고로 나앉은 뒤로는 더욱 그랬다. 아니, 또 모를 일이긴 했다. 세상엔 진정으로 허기진 자도 있고, 유독 식성이 좋아 아무 음식이나 음식만 보면 식탐을 내는 자가 있기 마련이니까. 말하자면 진돗개는 뒤늦게 나타나 그녀의 절개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인 셈이었다. 나부터도 녀석에게 혼줄이 난 적이 있었다. 잘못 배달된 우편물을 전해 주려 갔다가 였다. 조금 열렸던 문을 얼른 밀쳤기에 망정이지 옆집 아저씨고 뭐고 봐 줄 녀석이 아니었다. 하긴, 공자님도 도척이란 놈의 개에게 혼줄이 났다니 나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주인이 아니어서 그런 걸.
어떤 인연으로 세상에서 제일 악한 자와 세상에서 가장 선한 양반이 같은 하늘 아래, 그것도 같은 세월 속에 함께 살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도척은 역사에 다시 없는 악한이었다. 소문을 들은 공자님께서 그래도 사람을 한 번 만들어 보려 나섰단다. 문 앞에 당도해 드려다 보니 도척이란 놈이 숯불에 뭔가를 구워 먹고 있었다. 저 놈이 무얼 먹나 자세히 살펴 보니 원수 진 자의 간을 빼어 구워 먹는 중이었다. 에이, 저 놈은 도저히 안 되겠다! 공자님도 포기하고 돌아 서는데 도척이란 놈의 개가 달려 나오며 짖더란다. 원 세상에, 세상에서 제일 악한 놈의 개가 제상에서 제일 선한 사람을 보고 짖다니……. 그건 공자님이 선하지 않아서가 주인이 아니어서 짖는 거였다. 도척의 개는 도척이 악하지 않아서 안 짖는 게 아니라 주인이기 때문에 안 짖는 거였다. 쥔양반…… 쥔양반의 존재는 그런 것이기도 했다.
진돗개는 육감으로 상황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주인에게 목줄을 쥐인 진돗개는 등줄기에 갈기부터 세우고 헉헉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나타났다. 진돗개가 독종이라더니 정말 다른 개들처럼 사납게 짖거나 으르렁 거리며 엄포를 놓는 따위의 허풍은 떨지 않았다. 진돗개는 엄포 따위로 한 수 먹고 들어가려는 그런 치사한 족속이 아니었다. 락쿤도 백전노장이라 이미 그런 걸 아는 모양이었다. 락쿤도 상대에게서 오는 살기를 느꼈음인지 일체의 동작을 멈춘 채 정적을 지켰다. 웅크린 몸통이 여느 락쿤의 서너 갑절이나 되는 크기여서 진돗개보다 조금 작을 뿐이었다. 눈 주위를 둘러싼 검은 무늬가 슬퍼 보였다.
한 손으로는 목줄을 짧게 쥔 깨비가 덫 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던 락쿤이 슬금슬금 덫 밖으로 기어 나갔다. 잠시 자유의 몸을 확인한 락쿤이 갑자기 담장을 향하여 빠르게 기었다. 팡, 튕기며 줄이 끊어지듯 진돗개도 풀렸다. 앞서 달렸지만 다리가 짧은 데다 곱사등이처럼 둥을 웅크리고 기는 락쿤의 움직임은 진돗개의 적수가 아니었다. 매가 꿩을 후려치듯 날아간 진돗개가 락쿤을 덮쳤다. 순간, 락쿤의 등패기에서 화투장 만한 크기의 껍질이 너덜거리는 게 보였다. 진돗개는 이미 개가 아니라 맹수였다. 그렇지만 락쿤도 맹수였다. 등을 찢기우고 곧바로 돌아선 락쿤이 학, 학, 살쾡이처럼 소름 끼치는 괴성을 토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둘은 순식간에 엉켜 붙었다. 바닥에서 먼지가 자옥이 이는 착각이 들었다. 락쿤은 뾰족한 주둥이 속에 날카로운 이빨이 숨어 있었다. 발끝마다 에서는 송곳 같은 발톱이 다섯 개씩 뻗어 나왔다. 락쿤은 진돗개의 몸을 물고 쑤셨다. 발톱이 찌른 곳마다 피가 솟아 진돗개의 하얀 털이 점점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런 데도 진돗개의 입에서는 비굴한 비명 따위는 결코 새어 나오지 않았다. 진돗개는 춤추는 발톱에 난도질을 당하면서도 락쿤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지며 이빨로부터의 공격을 차단했다. 발톱은 위협적이지만 치명적이지는 못했다. 락쿤도 피가 얼룩져 선명하던 줄무늬가 흐려졌다. 한 눈에도 하나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싸움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먼저 힘이 달리는 쪽이 락쿤 이었다. 그 만큼 진돗개는 한 번 문 목덜미를 놓지 않고 집요하게 흔들었다. 차츰 락쿤의 발톱질이 둔해졌다. 절망적으로 보이는 듯싶었다. 그런데, 그러던 락쿤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털었다. 마치 온 몸을 산화시키려는 것 같았다. 역시 야생동물 이었다. 그 기세에 놀란 진돗개가 잠시 주춤했다. 순간, 어디에 그런 힘을 남겨 두었던지 락쿤이 용수철처럼 튕겼다. 그리고 캥거루가 튀어 오르듯 철망 담장에 붙었다. 이번에는 낚싯바늘로 휘어진 발톱이 철망을 기어오르기는 갈고리로 쓰였다. 그렇지만 뒤를 공격하는 진돗개의 동작도 나는 표범이었다. 흰 털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어 마치 거대란 핏덩이가 락쿤을 덮치는 것 같았다. 6피트 철조망을 절반쯤 기어오르는 락쿤의 등에 진돗개의 이빨이 박혔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였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기억 속의 필름을 슬로 모션으로 되돌리지 않으면 헛것을 본 것 같았다. 그래도 락쿤은 철조망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힘겹게 버티면서도 조금씩 발을 옮겼다. 뒤쪽 담장으로까지 뻗어와 열린 포도송이에서 포도 알들이 성글게 익어가고 있었다. 등에 개 한 마리를 달고 철조망을 오르는 락쿤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처절해 보였다. 진돗개는 조금씩 허공으로 몸이 떠올라도 아무런 움직임을 취하지 않고 그대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방아깨비처럼 앞다리 두 개는 꺾어 몸통에 착 붙이기까지 했다. 안간힘을 써도 락쿤은 등에 달고 있는 개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려운지 차츰 동작이 둔해지더니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진돗개의 이빨이 박혀 있는 등껍질이 조금씩 찢어지며 흘러 내렸다. 신기하게 혈흔도 크게 내비치지 않았다. 가죽이 벗겨지며 드러나는 살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김이 몽글몽글 솟아 오를 것만 같았다.
작업을 끝낸 부동산회사 직원들이 돌아가는 기척이 들렸다. 깨비는 잠시 그 쪽으로 시선을 두는 듯 하더니 개의치 않고 다시 진돗개가 매달린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는 시위구호라도 외치는 사람처럼 진돗개를 향해 주먹을 내저으며 연신 쉿! 쉿!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 그녀가 쫓겨 나더라도 포도가 잘 익어 실컷 따먹은 후이기를 바랐다. 이제 오발이란 사내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