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 문화공간인 정원과 정자
열화정
전남 보성군 강골마을의 주산 중턱에 위치한 열화정은 이진만이 지은 亭子로 1845년 쓴 悅話亭記에는 도연명이 쓴 귀거래사에 나오는 “친척과 정이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다”. 라는 글을 따서 悅話亭이라 붙였다 적고 있다. 日涉門은 향촌에서 소요자락하는 선비의 풍모로 이 또한 도연명과 관련된다. 열화정은 연못주변에 담을 쌓지 않고 누마루의 기둥도 높게 올렸는데 이는 현 득량만지역에 바닷가와 오봉산의 조망과 위해서 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솟을대문 아래 언덕에 설치된 석교를 건너 진입하였다. 열화정은 지역선비들의 집합소 역할을 하며 한말의 의병열사로 유명한 이관희 이양래, 이웅래 등을 배출한 본산이기도 하다. 연못의 형태는 방지를 기본으로 한 “ㄴ”자형을 하고 있다. 이 형태는 열화정의 누마루의 “ㄴ”자 구조와 마당에 구획된 석축의 형태가 확장된 것으로 판단되며 열화정 솟을대문 동측에 담이 없는 것을 보완하기 위한 것과도 관련되어 보인다.
이는 전통적인 연못인 방지형태에서 주변의 가옥구획에 영향을 받아 형태가 조정,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정원안에는 다양한 석물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소유주의 석물수집 선호에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김현수). 특이한 것은 연못안에 탑이 있었는데 수면위에 3층의 탑신이 들어나(이인재, 이용실, 최동환) 연꽃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던 것으로 현재는 이용욱가 내로 옮겨와 보관되어 있다. 연못에 석물을 직접 앉히는 수법은 일본정원에서 주로 나타나는 양식으로 보여지는데 이 탑의 조성(최소, 80년전 이상)이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하였던 이진만 당대에 된 것인지, 일본에 유학한 바 있는 아들인 연정 때에 이르러서 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못의 입수구는 조산에서 나는 지하수가 용출되고 산기슭에서 흘러드는 물이 대나무홈통을 통해 유입되고 있었다고 하며 출수구는 지안남측 중앙에 너비 35cm 석조로 되어 있다. 관리인 최동환(86세)의 증언에 따르면 연못에 물고기를 길러 낚시를 하고 다시 놓아주곤 하였다고 한다. 연못 주변식재로는 지안에 좀팽나무(H:6m) 1주가 식재되어 있고 주변에 영산홍이 있었다고 한다(이용실). 지안남측 아래에 대숲이 조성되어 있다. 석축(50cm×20cm)은 수면위로 3단, 밑으로 4단, 총 7단인 자연석 허튼층 쌓기로 되어 있고 1999년에 보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