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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韓明澮)는 성품이 잔학해 무릇 노복(奴僕), 하졸(下卒)들에게 죄가 있으면 기둥에 매달아 놓고 그때마다 활을 쏘았다.
그 까닭에 그 집 뜰에는 기둥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그 때 군관(軍官)으로 있던 전림(田霖)이 명령을 어겼다.
한명회가 전림을 그 기둥에 매달아 놓고 활을 쏘려고 하다가, 술을 거나하게 마신 탓에 앉은 채로 졸았다.
전림은 그가 잠든 틈을 타서 매어 놓았던 밧줄을 끊고 도망쳤다.
한명회가 깨어나 앞에서 시중들던 여종에게 쫓아가 전림을 잡아 오라고 하였으나, 잡아오지 못하자, 그녀를 기둥에 매달고 쏘려고 했다.
전림이 담장 밖에 숨어 있다가 이를 보고는 , 옷깃을 풀어 헤치며 뜰에 들어와 말했다.
처음에 장군이 사람을 활로 쏜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나 도망하여 담장 밖에 숨어 있었습니다.
장군께서 저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죽이려 하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죽음을 겁내어 도망했으니 용감하지 못한 것이요, 연약한 여종에게 저 대신 죽음을 당하도록 했으니 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청하옵건데 장군께서는 저를 쏘십시오. 저는 마땅히 옷깃을 헤치고 화살을 받을 것이요,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한명회가 그를 의롭게 여기고 용서했으며, 마침내 그를 등용해 심복으로 삼았다.
전림의 성격도 몹시 잔학하였다.
당시 해랑도(海浪島)에 도적 떼가 살면서 바다에 출몰해, 해서(海西:황해도)지방의 걸림돌이 되었다.
조정에서 전림을 장수로 삼아 장차 이들을 정벌할 것을 명했다.
전림에게는 과부가 된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단지 아들 하나만 두었다.
<계속>
*해랑도(海浪島)--
중국 동북쪽과 우리 나라 서북쪽 요해의 남쪽에 있는 섬.
연산군 때 그 섬에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들어가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국에 요청하여 이점, 전림, 조원기 등을 파견, 요동사람 64명과 우리나라 사람48명을 데리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