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번 째 산행기 올들어서 52회째 산행
▲ 총 산행횟수 : 2005년 36회 + 2006년 43회 + 2007년52회(11월24일현재) =131회 ▲
산행일자 : 2007년 11월 24일 토요일
산행장소 : 용문산
산행코스 : 용천2리공용주차장 09시 30분 도착 - 09시 55분 산행들머리 (舍那寺사나사) - 봉재산 - 10시 15분솔봉
- 12시 05분 용문산 직전에서 간식 - 14시00분 용문산 정상1157m - 14시 30분 정상에서 식사 끝
- 15시 35분 장군봉1150m - 15시 50분 함암봉(지적도)947m - 16시 30분 사나사2.1km지점에서 하산(백운봉 가기전)
- 16시 40분 고산 약수 - 16시 00 분 함왕유적지 - 17시 50분 사나사 하산 - 17시 55분 첫 들머리
함께한이들 : 임산회 5명
2007년 11월 17일 그 동안 꽉 잠겨 있었던 철조망이 열려서 용문산 정상을 진짜로 밟아볼 수 있는 날이었다.
3월 10일날 갔을 때는 정상 아래쪽에 정상이라고 간판이 있었는데 군부대 철조망을 옮기고 철계단을 정상쪽으로 만들어서
오르기 좋게 해 놓았고 정상 옆에는 정자 까지 만들어 놓았다. 돈을 내고 보는 망원경도 한 대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직은 개통을 하지
않아서 볼 수 는 없었고, 아마 500원을 내고 보는 그런 망원경인 것 같았다.(포장으로 씌워져 있었음)
정상 개방한지 일주일만에 갔던 용문산 산행이었다.
3월 10일날 3명이서 내차로 용문산을 찾았었는데 지상에서는 맑은 날씨였는데 정상에 오르니 폭설이 내려서
눈으로 뭍혀 버린 길을 겨우 겨우 찾으면서 매서운 바람 맞으면서 했던 산행이 생각났다.
그때는 죽는줄 알았다. 어찌나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치는지
그때는 상원사 쪽 상원골을 따라서 절고개 암릉 쪽으로 올랐었는데 이번에는 사나사 쪽으로 해서 용문산을 가기로 했다.
함께 하지 못할뻔 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나서 임산회(임시로급조해서 함께 하는 산행??)와 함께 하기로 했다.
토요일날 산행을 하고 저녁을 보내고 하는 일박이일 산행이었다.
3월 10일날 고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지만 기대를 가지고 산행을 하기로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해장국집에 가서 일인분은 먹고 일인분은 보온통에 넣고 밥과 반찬은 플라스틱 통에 넣고서
만남의 장소인 장암동 우성 아파트에 07시 40분에 도착했다.
08시 출발인데 요즘 수락산역에서 장암동 까지 워낙 많이 막혀서 여유있게 출발했기에 일등?으로 도착하고 말았다. ㅎㅎㅎ
08시 30분에 출발했다. 역시나 코리안 타임에 걸린 사람이 있었기에..
막히지 않아서 2시간 만에 용천리 공용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개가 심하게 끼어서 자연경관을 구경하기는 좀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0930]
사나사 쪽으로 오르니 들머리가 나타났다.
들머리에서 옷을 벗어챙겨 넣고 산행준비를 했다.
추울줄 알았는데 의외로 봄날씨였다.
[0952 들머리에서 산행 직전]
[0953 들머리 산행 안내도]
[0953들머리] 날씨가 더워서 옷을 벗어서 챙겨 넣었다.
20여분 오르니 능선이 나타났고 이정표에 좌측으로 봉재산 우측은 설봉 표시가 있었다.
봉재산이 100m밖에 안 되어서 두 명이서 이탈을 하여 갔다오기로 했다.
[1007 능선 이정표] 14분 걸려서 올라옴
사방팔방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안개를 우려했었는데 어느덧 안개는 겉히어서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었다.
비록 낙엽이진 황량한 산야였지만 아름다운 자연은 어떤 때라도 멋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0시 11분 봉재산 정상에서]
[봉재산에서 바라본 아스라히 보이는 용문산]
[봉재산 정상에서 백운봉]
산에서 100m는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봉재산을 갔다오니 선두를 따라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심히 20여분 헉헉 대고 진행하니 선두가 쉬고 있어서 함께할 수 있었다.
멀리 백운봉의 뽀쪽함을 보면서 진행하고, 좌측에는 유명산이 용문산과 능선으로 연결 된 모습이 보였다.
[1037] 쉬고 있는 일행을 따라 잡았다.
몸의 컨디션이 아주 좋지 않아서 산행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다들 잘도 가는데 나만 힘든 것 처럼 느껴진 하루였다.
솔봉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영지술도 간단하게 한 잔씩...
용문산 정상이 눈 앞에 보였다. 12시가 넘어서인지 기운이 빠졌다.
칼로리가 많이 소모가 되어서 자동으로 힘이 빠지는 것이다.
용문산 직전 봉우리에서 간식을 먹고 가기로 했다.
점심은 용문산 정상에 가서 먹기로 했기에...
[1119 쉬면서 노송을]
용문산 정상을 보니 봉우리 몇개는 넘어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산행의 맛은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자연 속에 푹 안기는 것 아니겠는가?
[1233 칼로리를 보충하고 용문산을 향하여 눈 쌓인 임도를 걷고 있는 일행들]
조금 가니 임도(나무를 관리하기 위해서 만든 길)가 나왔고, 응달이라서 눈이 5cm이상 쌓였었다.
눈 쌓인 길을 걷는 행운을 가졌다. 뽀드득 뽀드득
봉우리 몇개를 넘어야할 줄 알았는데 왠걸 용문산 군부대 정문까지 임도가 연결되어있지 않은가
군장병들에게 수고 한다는 말을 남겼다.
000"우리 아들도 상병으로 근무하고 있어" 수고해요
군인들을 보면 예전처럼 보지않는다. 자신의 아들도 군대에 있기 때문이리라.
사람은 자신의 환경 자신의 가치관 자신의 어떤 경험에서 습관화 되어지는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게 일반적일 것이다.
우회길이 있는데 구태여 철조망을 따라서 올랐다. 급경사였고 오르기는 좀 힘이 들었지만
안태나 부근에 이르러 계속해서 철조망을 따라 갈 수는 없었고
정상적인 등산로를 따라갔다. 용문산 1km남았다는 이정표....
3월 10일날 지나왔던 길이었다.
용문산 정상 오르는 길은 급경사에다가 봄날씨 같은 기온에 녹아서 질퍽질퍽 오르고 내리기가 힘이들었다.
발발 기어내려오는 여성 산객들이 많았다.
예전의 정상간판은 그대로 있었다. 그 옆으로 정상까지 철계단을 해 놓아서 오르기가 아주 좋았다.
11월 17일 처음으로 개방한 정상을 일주일 만에 드디어 찾았던 것이다.
[1347 용문산 정상을 알리는 간판 - 10일 전 까지만 해도 여기 까지만 올 수 있었음]
[1347] 정상을 알리는 간판 옆으로 새로 만든 철계단]
정상에는 정자도 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정상에서 사진을 몇방 찍었다.
[1350 용문산 정상석]
[단체]
[단체]
[용문산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
처음으로 개방한 정상이라서인지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정자에는 만원이라서 우리는 아직 녹지 않은 눈 밭에다 자리를 잡았다.
보온통에 넣어간 콩나물 해장국이 빛을 발했다. 통상 뜨거운 물을 가져가서 컵라면을 끓여 먹는데
난 처음으로 해장국을 가져갔는데 아주 좋았다.
다음에도 그리하리라.
밥과 차미스리로 목을 축이고 하산을 시작했다.
백운봉 까지 가기로 계획은 했었는데 시간이 안 될 것 같았다.
3월10일 폭설에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서 하산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한편의 추억으로 남으리라.
[1534장군봉]
[안내도]
장군봉에서 부터 두 분은 내리 빼고 말았다.
함왕봉을 지나서 통화하니 백운봉으로 해서 하산 한다고 해서
[1550] 함왕봉 측량지표
세 명은 함왕유적지 사나사 쪽으로 하산을 했다.
[1639 능선 고산약수 쪽으로 하산]
고산약수에서 약수 한 잔씩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동내 뒷산 같은 낙엽 쌓인 길을 하산했다.
하산길이 이렇게 좋은 곳은 처음 보았다.
낙엽이 발목 차서 발로 차면서 걸어야할 정도로 푹신푹신 했다.
하산 내내 홍단풍나무 군락지였다.
단풍철에 ?추어서 단풍구경 하는 것도 아주 좋으리라.
백운봉으로 올라서 고산약수 쪽으로 짧게 단풍산행을 한 번 하기로 했다.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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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왕유적지 흔적 기왓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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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에 함씨의 왕국이 있었다는 비석이 있었다. 함왕유적지였다.
후손들이 조상을 섬기는 의미에서 유적지 표시를 해 놓았었다.
하산길 내내 낙엽을 밟고 편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17시 50분 舍那寺(집사 어찌나 절사 인데 이름의 유래를 알 수는 없었다.)
주차장에 내려와서 무거운 몸 쉬일 곳을 찾았는데 팬션이고 뭐고 방이 없었다.
우리나라가 잘 살기는 잘 사는 모양이다.
경제가 세계에서 13위 국민소득 18000불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동방의 등불인가?
용문산 정상 부근에서는 눈이 올거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봄날 같은 날씨에 산행을 했던 하루였다.
용천3리로 가서 민박집을 빌려서 토종 닭도리탕에다가 차미쓰리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임산회 용문산 산행 내년에도 어딘가로 일박이일 산행을 하기로 했다.
양평에서 해장국으로 술로 쩔은 몸을 달래고 서울로 향했다.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임산회 여러분
안산 즐산 행산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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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회가 묵었던 곳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3리 220-3
보광정. 보광농원
주인장 : 유순식
전화 : 031-772-5635
011-9041-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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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명왕 7년(923)에 고승인 대경대사가 제자 융문과 함께 창건한 사찰로, 5층 석탑과 노사나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절 이름을 사나사로 지었다고 한다.
후에 고려 공민왕 16년(1367)에 태고왕사 보우가 140여 칸 규모로 중건하였으며 고려 우왕 8년(1382)에 입적한 보우의 부도와 비를 문인 달심이 사나사에 세웠다.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사찰이 불타버렸으나, 선조 41년 (1608)에 단월 한방손에 의해 재건되었다.
1909년에는 계헌이 큰방 15칸을 복구하였고, 1937년에 주지 맹현우 화상이 대웅전 15칸을 재건하면서 조사전 5칸을 건축하였다.
그 후 한 동안 유지되던 사찰은 6.25사변으로 인해 전소되었으나, 다시 1956년에 주지 김두준과 함문성이 협력하여 대웅전, 산신각, 큰방 등을 재건하고 함씨각을 지었다.
1993년에는 현 주지(住持) 한영상이 대웅전과 지장전을 재건하였으며 경내에는 도유형문화재 72호인 원증국사석종탑과 도유형문화재 73호인 원증국사석종비가 있다. ('원증'은 고승 보우가 죽은 뒤 왕이 내린 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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