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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장 백수(白水)의 노래 (6)
- 협박당했다고 할지언정 약속한 것은 지킨다.
제(齊). 노(魯) 동맹 간에 보여준 제환공의 행동은 주변 제후들에게 이만저만 높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니었다. 단순한 신뢰 정도가 아니었다. 진(陳)과 위(衛)나라는 감격까지 하였다.
- 제환공(齊桓公)은 의로운 사람이다. 믿고 따를 만하다.
진선공과 위혜공 역시 북행 모임에 참가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사자를 보내 용서를 빌었다.
- 동맹에 가담하겠습니다.
수(遂)나라를 버리자마자 두 나라가 저절로 굴러들어온 것이었다.
제환공(齊桓公)은 비로소 관중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연히 깨달았다.
"중보 덕분에 진정으로 귀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소."
"얻고 싶으면 먼저 주라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관중(管仲)은 겸손히 고개를 숙였다.
다음으로 제환공은 송나라 일을 거론했다.
송환공은 제환공 덕분에 정식으로 군위를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맹주가 되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도망치듯 북행 모임에서 떠나가질 않았던가.
"거역하는 자는 무력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관중(管仲)은 단호하고 냉정했다.
제환공은 주왕실에 사자를 보내 왕명으로 송나라를 칠 것을 건의하는 한편, 주변 제후국들에게도 송환공의 죄상을 널리 공표했다.
- 역(逆)하는 자는 벌(伐)하라.
뜻에 따르지 않는 제후는 토벌하라는 주희왕의 명이 내렸다.
왕명만 내린 것이 아니라 군대까지 보내주었다. 선나라 군후에게 왕사군을 내주어 제환공의 송나라 토벌을 돕게 했던 것이다. 선나라는 주성왕(周成王)의 작은 아들 진에게 분봉한 나라로 작위는 백작이었다. 지금의 섬서성 보계현(寶鷄縣)에 위치한 작은 나라였다. 비록 많은 군사는 아니었지만 주왕실에서 왕사군을 파견했다는 것은 제환공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 왕실, 제(齊)나라를 의지하다.
이제 제환공의 명은 천자의 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보다 더 당당한 명분이 어디 있겠는가!
제환공이 송나라를 토벌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진(陳)과 조(曺)나라도 군대를 파견할 것을 통보해왔다.
이듬해인 제환공 6년 봄, 제나라는 마침내 송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관중이 먼저 3군 중 1군을 거느리고 임치성을 출발했다. 선발대였다. 송나라 국경에서 진(陳), 조(曺) 두 나라 군사들과 합세하기로 했다. 제환공도 친히 공손습붕, 성보, 동곽아 등을 거느리고 왕사군을 이끄는 선백과 함께 관중의 뒤를 따라갔다.
관중(管仲)에게는 사랑하는 첩이 하나 있었다.
애첩의 이름은 정.
정은 종리(鍾離) 땅 태생으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고금 경사(經史)와 문학에 통달했을 뿐 아니라 지혜 또한 출중했다.
원래 제환공은 여색을 좋아해서 출행(出行)할 때는 전쟁터건 회담 장소건 항상 후궁들을 거느리고 다녔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관중 또한 출행할 때마다 언제나 애첩 정을 데려가곤 했다.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관중(管仲)은 정과 함께 수레를 타고 송나라를 치러갔다. 언뜻 보기에는 꽃놀이라도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관중이 이끄는 송나라 토벌군이 임치성 남문을 나와 30리쯤 진군하여 요산 밑에 이르렀을 때였다.
한 촌부가 짧은 홑바지를 입고 부서진 삿갓을 쓴 채 산 밑에서 소를 놓아 먹이고 있었다. 그 촌부는 길가에 서서 소뿔을 두드리며 무슨 노래인가를 연신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관중(管仲)이 지나가다가 보았다. 상당히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어디가 어떻게 특이한지는 딱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종자(從者)를 시켜 술과 음식을 그 촌부에게 갖다주게 하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촌부가 술과 음식을 다 먹고나서 말했다.
"내가 재상을 한번 만나보고자 한다."
"재상께서는 벌써 지나가셨소."
촌부가 다시 말했다.
"내가 할말이 있으니, 이 말을 재상께 전해주시오."
"무슨 말이오?"
촌부는 혼잣소리인 듯 중얼거렸다.
"넓고도 넓구나. 햇빛을 받아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강물이여!"
종자는 급히 관중의 수레를 뒤쫓아가 촌부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전했다.
관중(管仲)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그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을 고민하고 있자 애첩 정이 물었다.
"나리께서는 어찌하여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계십니까?"
관중이 무심코 대답했다.
"네가 알 바 아니다."
그러자 정이 얼굴빛을 달리하며 말했다.
"소첩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늙은 사람을 늙었다 업신 여기지 말고, 천한 사람을 천하다 업신여기지 말며, 어린 사람을 어리다 업신여기지 말고, 약한 자를 약하다고 업신여기지 말라.'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옛날 태공망은 나이 칠십에 조가(朝歌, 은나라 도성)의 저잣거리에서 소를 잡았고, 팔십에 주문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구십 세에 제나라 제후에 봉해졌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늙은 사람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또 은나라 개국공신 이윤으로 말할 것 같으면,유신씨의 딸이 은나라 탕왕에게 시집올 때 데리고 온 요리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탕왕은 그를 재상으로 삼아 천하를 다스리게 하여 태평세월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천한 사람을 어찌 천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뿐만 아닙니다. 고자(皐子, 하왕조 때의 명신)는 다섯 살 때 우왕(禹王, 하나라 초대 임금)을 도와 나라를 태평하게 이루었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어린 사람을 어찌 어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결제(준마의 한종류)라는 말은 태어나서 이레만 되면 어미말을 앞지른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보건데, 약한 것을 어찌 약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제야 관중은 애첩 정이 고금 경사(經史)에 통달했다는 것을 상기하곤 얼른 고개 숙여 사과했다.
"너를 무시한 내가 잘못했다. 사실은 조금 전에 소를 치는 촌부 하나가 내게 알쏭달쏭한 말을 전해왔는데, 도무지 그 뜻이 무엇인지를 할 수 없구나."
"무슨 말입니까?"
"혹시 너는 '넓고도 넓구나. 햇빛을 받아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강물이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아느냐?"
정이 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그것 때문에 고심하셨습니까? 첩이 알기로는 그것은 <백수시(白水詩)>의 한 구절입니다."
"백수시? 그것은 어떤 시인가?"
"옛날 한 현자(賢者)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강물을 보고 지은 노래로 알고 있습니다."
"내용을 알고 있느냐?"
"소첩이 좋아하는 시입니다. 어찌 내용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이렇게 대답하고 정은 청아하고 고운 음성으로 <백수시(白水詩)>를 읊조리는 것이었다.
넓고도 넓구나, 햇빛을 받아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강물이여!
많고 많은 송사리 떼로다.
그대 오시어 나를 부르니,
내 장차 자리를 안정되이 잡겠구나.
<백수시(白水詩)>는 <고시기(古詩記)>에 수록된 시이다.
백수에 대한 해석으로는 강 이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햇빛을 받아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강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는 후자의 해석을 택했다.
관중이 다시 물었다.
"그 뜻이 무엇이냐?"
"이 시(詩)는 예부터 초야에 묻혀 사는 현자(賢者)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그 소 치는 촌부도 나리께 벼슬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애첩 정의 해석에 관중(管仲)은 모든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소치는 촌부가 예사 인물이 아님을 직감했다.
"수레를 멈추어라!"
관중은 다시 종자를 보내 촌부를 불러오게 했다.
소 치는 촌부는 소를 몰고 집으로 가려다가 심부름꾼이 와서 전하는 말을 듣고 관중을 보러 왔다. 그러나 촌부는 관중을 보고서도 고개만 숙여 인사할 뿐 절을 올리지 않았다.
관중(管仲)이 그런 촌부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먼저 물었다.
"그대는 누구시오?"
"나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성은 영(寧)이고 이름은 척(戚)이라 합니다. 재상께서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선비를 예의로 대접한다기에 항상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 넘고 물 건너 제나라까지 왔다가 요행히 이 곳에서 뵙게 된 것입니다."
관중(管仲)은 시험삼아 그 촌부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영척은 관중의 물음에 아무런 막힘도 없이 술술 대답하는 것이었다. 청산유수(靑山流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관중은 크게 감탄하며 기뻐했다.
"보석이 진흙 속에 묻혀 있으니 찾아내어 닦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찌 참다운 가치를 나타낼 수 있으리오. 우리 주공께서 군사를 거느리고 뒤따라오실 것이오. 내가 편지를 한 통 써드릴 테니 그대는 우리 주공이 지나가실 때 편지를 바치시오. 그러면 우리 주공께서 반드시 그대를 높이 등용하실 것입니다."
관중은 말을 마치자 편지를 써서 영척(寧戚)에게 주고 떠나갔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