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시황제(秦始皇帝)는 전국 칠웅 진나라의 제31대 왕이자, 중국 최초의 황제이다. 성은 영(嬴), 이름은 정(政) 혹 조정(趙政)이다. 혹, 씨는 진(秦), 조(趙)다. 장양 왕과 조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246년부터 기원전 210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241년까지 여불위가 섭정을 하였고 241년 ~210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을 하였다. 불로불사에 대한 열망이 컸으며, 대규모의 문화 탄압 사건인 분서갱유를 일으켜 수양제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최대의 폭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도량형을 통일하고 전국 시대 국가들의 장성을 이어 만리장성을 완성하였다.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 제도와 군현제를 닦음으로써, 이후 2천년 중국 황조들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
중국 진시황은 13살에 즉위해서 38세에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가 되었는데 49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왜 죽었을까? 걱정 때문에 죽었다.
진시황에게 멸망당한 초나라 사람 장량은 무거운 철퇴를 잘 던지는 창해군이라는 사람을 시켜서 진시황을 죽이려고 진시황의 순행날짜를 알아내고 진시황이 지나갈 길목에서 창해군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진시황의 일행이 오니 수레가 한 대가 아니고 다섯 대나 되었습니다. 진시황이 머리를 써서 자신을 죽이지 못 하도록 한 것입니다. 장량은 어쩔 수 없이 한 대를 찍었지만, 진시황은 다른 수레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암살기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형가라는 사람이 암살을 시도하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지도에다가 칼을 숨겨 가지고 지도를 싹 넘기다가 칼을 뽑아서 찌르는데 칼이 짧은 거예요. 왼손으로 진시황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찔렀는데 칼이 짧았어요. 잡아당기니까 소매는 뜯어졌고 진시황도 칼을 차고 있었는데 칼이 너무 길어서 칼이 뽑아지질 않았다.
그때 한 환관이 "폐하, 칼을 등 뒤로 돌려서 뽑으세요." 그러면서 약을 담당하던 어의가 약통을 형가한테 집어던지고 형가가 멈칫하는 순간 진시황은 칼을 뽑아서 형가의 다리를 베었습니다. 형가는 쓰러지면서도 진시황을 죽이려고 칼을 던졌는데 빗나가 기둥에 맞았습니다. 이런 장면이 사기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가가 쫓아다니니까 진시황이 기둥 사이로 막 도망 다니는 장면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번의 암살기도는 모두 실패하였는데 진시황은 왜 죽었을까? 진시황은 44세 때부터 불로장생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그가 불로장생을 갈망하고 아주 집착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 놓은 이 통일제국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또 자기 나름대로 과대망상 같은 게 있어서 '내가 아니면 이것을 누가 유지할 수 있겠는가?'그래서 가능한 한 오래 살아야 하겠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진시황은 하루에 해야 할 일의 양을 정해 놓고, 그것을 마치지 못 하면 잠도 안 잤다고 합니다. 일중독입니다. 천하를 통일해 놓고, 이 제국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고민해야 했고 각종 결정과 지시를 내려 보내고, 대책회의 했다. 또 툭하면 누가 죽이려고 하죠.
진시황은 경비도 더 강화하고, 호위도 강화하고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지만 진시황은 49세 때 지방순시를 나갔다가 사구라는 곳에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 하였습니다. 진시황은 자신이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집착, 일 중독 그리고 암살이라는 스트레스로 죽은 것이다.
출처 : [EBS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
첫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