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이야기 - 79. “열악한 환경에서 빨리 살면 일찍 죽는다”

[山典水典(오융진)]

* “열악한 환경에서 빨리 살면 일찍 죽는다”

2016. 12. 27.  경기도 파주시 '지혜의 숲'

2016. 12. 27.  경기도 파주시 '지혜의 숲'

   2016. 12. 27. 활판인쇄박물관에서 만든 <오융진이 만든 이솝우화>

1. <오융진이 만든 이솝우화>

지난 27일에는 파주출판단지를 다녀왔습니다. ‘지혜의 숲’과 ‘활판인쇄박물관’을 둘러봤습니다. 심훈문학연구소가 마련한 ‘독창 일일캠프’가 마련한 행사였습니다. 당진시내 초등학교 4~6학년 29명이 참가했습니다. 심훈 선생의 상록수 정신이 깃든 필경사와 심훈기념관에서 1시간 강의를 한 후 아이들을 인솔하고 파주로 가서, 체험활동을 하게 한 후, 무사하게 당진까지 데려오는 게 제 임무였습니다. 초등학생들이라서 심훈 선생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주로 해주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니 즐거워하더군요.

“남 앞에 나서서 우쭐대기를 무척 좋아했다. 공부시간에도 묘한 질문으로 아이들 웃기는 데만 정신을 써서 선생한테 야단맞고 대들기 일쑤였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는 으레 교탁에 나가 앉아 점심을 먹고, 미워하는 선생 등 뒤에다 주먹질하다가 야단맞는 일도 있었다. 이 주먹질의 대상이 일인 수학선생이었는데, 수학이 과락이어서, 선생이 다음부터 까불지 않고 얌전히 공부 잘하면 진급시키겠다고 해도, 서약하기를 거절하고 삼학년을 재수했다는 것이다.” (동기동창 윤극영)

활판인쇄박물관은 말 그대로 활자, 인쇄기 등이 전시됐습니다. 활자를 뽑고, 인쇄하고, 제본하는 체험활동도 진행합니다. 저도 애들을 따라 <오융진이 만든 이솝우화>를 한 권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참 재미를 느끼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몇 가지 장비를 갖추면 당진의 심훈기념관에서도 <오융진이 만든 심훈시집>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당진시에 건의할 예정입니다. 심훈기념관에서 이런 체험활동이 진행된다면 무엇보다 파주로 오고가는 5~6시간은 절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심훈 선생의 문학에 그만큼 더 다가서게 하는 목적이 우선이지만요.

‘지혜의 숲’은 도서관입니다. 국내 출판사와 유명인사들이 기증한 책이 장서입니다. 1층에는 서점이 있습니다. 다른 뜻은 없이 출판단지에 왔으므로 2권을 샀습니다.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과 <글쓰기 동서대전>이었습니다. 지난 10월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그때도 여러 권을 사가지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은 제목에 이끌렸습니다. 저자를 보니 조너선 실버타운? 들어본 이름인데? 약력을 보니 <씨앗의 자연사>를 쓴 영국 에든버러대학 교수였습니다. 주로 진화생물학과 사회생물학을 연구했습니다.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이라? 죽 읽어보았습니다.

2.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저자는 과학적 연구 결과로 노화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종종 노화는 생물학적으로도 한 가지가 아니라 복합적인 작용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합니다.

“선진국에서 왜 소득 불평등이 이린 식으로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가는 정치적·사회심리적·생물학적 원인이 얽힌 복잡한 문제다. 이 예상치 못한 발견이 가져다준 희소식은 생물학자가 아니어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이여,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핵심을 바로 위 문장을 적기 전에 다음처럼 좀 길게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소득격차가 주마다 다른데, 소득격차가 가장 작은 주의 기대수명이 가장 높은 경향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추세가 관찰된다. 빈부격차가 가장 작은 나라는 일본으로, 기대수명도 가장 높다. 스웨덴은 빈부격차와 기대수명 둘 다 일본에 약간 뒤지며. 포르투갈·미국·싱가포르는 선진국 중에서 소득격차가 가장 크고 기대수명이 가장 낮다. 이 추세에서 눈에 띄는 점은 기대수명이 부 자체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의 절반이지만 빈부격차는 두 나라가 다 크므로, 두 나라 모두 기대수명이 낮은 것은 빈부격차 때문이다.”

저자는 명색이 과학자입니다. 책의 말미를 위처럼 장식했지만 대부분을 ‘과학적 연구 결과’를 논거로 삼고 있습니다. 번역본 제목은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이라고 붙였습니다. 찾아보니 원제목은 <The Long and the Short of It>입니다. 직역으로 제목을 붙였다면 <생물의 장수와 단명> 정도 되겠습니다. 만약 이랬다면 제가 이 책에 눈길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책 제목이 역시 중요합니다. 역자가 ‘우주의 일’으로 의역한 것은 아마 ‘자연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또 저자의 ‘과학적인’ 결론은 아마 다음이 아닐까 합니다.

“노화를 ‘치료’하는 생명의 영약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관련하여 중요한 함의가 있다. 노화가 단일한 현상이라면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노화는 단일한 현상이 아니다. 여러 체계의 전반적 부전(不全:몸의 기능이나 발육 등이 완전하지 않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화적 유산에서 허용되는 최선의 전략은 열차의 길이를 늘려 노화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노화를 아예 없앨 수는 없다. 생식세포계를 제외한 모든 것은 결국에는 늙고 죽는다. 알려진 모든 장수 돌연변이도 예외가 아니다.”

저자는 장수의 원인을 여러 가지 들려줍니다. 그중에 하나는 이렇습니다. “1908년에 독일의 생리학자 막스 루브너는 대사 속도와 수명의 관계를 연구하여 빨리 사는 동물이 일찍 죽는다는 ‘황금률’을 발표했다. (중략) 다른 종의 개체들이 평생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일정하다면, 에너지가 얼마나 오래가느냐는 얼마나 빨리 써버리느냐에 달렸다. 신체를 ‘빨리 돌릴수록 빨리 닳는 기계’로 본다면 루브너의 발상은 직관적으로 그럴듯하지만…….” 저자는 여러 가지 증거를 대면서 이 ‘삶의 속도 가설’은 한물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보편법칙은 아니더라도 ‘열악한 환경에서 빨리 살면 일찍 죽는다’는 것은 중요한 실마리를 던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음백과 ‘똑소리 나는 일반상식’에서 슬로시티(Slow City)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은 전통과 자연을 보전하면서 유유자적하고 풍요로운 도시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구가 5만명 이하이고, 도시와 환경을 고려한 정책이 실시되고 있으며 전통문화와 음식을 보존하려 노력하는 등 일정 조건을 갖춰야 슬로시티로 가입할 수 있다. 완도군 청산도는 옛 음식과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평가받아 지난 2007년 12월에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이런 곳에서 살면 (스트레스를 최소한 받는다면) 장수하지 않겠습니까?

2017. 12. 28.  당진문예의전 당 옆. 일본매자나무 열매

2017. 12. 28.  당진시청 길 가로수 . 이팝나무 열매

2017. 12. 28.  당진시청 길 옆. 배풍등 열매

2017. 12. 28.  당진시청길 옆. 남천 열매

3. “열악한 환경에서 빨리 살면 일찍 죽는다”

어제는 당진시청에 볼 일이 있어 길을 나섰습니다. ‘볼 일’이라고는 했지만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내일 처리해도, 내년에 처리해도 될 일이었습니다. 다만 어제 처리한다고 했기에 길을 나선 것입니다.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다른 짓, 즉 해찰을 해도 급할 것이 없습니다. 당진문예의전당 옆을 지나니 다닥다닥하게 달린 본매자나무 빨간 열매가 보입니다. 사진도 찍고, 열매도 한 움큼 따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산수유도 빨간 열매를 아직 매달고 겨울 찬바람에 아직 남은 수분을 말리고 있습니다. 산수유는 그늘에 있고, 전번에 찍었기에 그냥 지나쳤습니다.

시청에 들어가 담당 주무관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옆 자리에 앉은 팀장과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과로 가서 합덕읍지와 우강면지, 신평면지, 대호지면지 좀 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시청을 빠져 나오는데 로비 카페에서 누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니 지인이었습니다. 뭐 급하지도 않고 지인이 사주는 커피 한 잔 마시고 역시 해도 되고 안 해도 누가 때리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불어대는 겨울바람은 좀 차가웠습니다. 주변의 수목은 움츠리고 있습니다. 가로수로 심은 이팝나무는 아직 검은 열매를 매달고 있습니다. 다른 이팝나무는 가을에 익자마자 열매를 떨궜는데 이 애들은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아직도 매달고 있습니다. 배풍등과 남천도 빨간 열간 열매를 아직 간직하고 있습니다. 역광으로 보이는 배풍등 열매는 빨갛고 말갛습니다. 일본매자나무나 산수유, 이팝나무, 배풍등은 대개 가을에 열매를 땅으로 돌려보냅니다. 어떤 새가 다른 먼 곳으로 옮길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땅으로 가야 번식이란 목적을 달성하는데 한 걸음 더 다가설 것입니다.

4. 겨울, 죽음의 명상을 자아내게 하는 계절

겨울은 종교적 명상을 자아나게 하는 계절입니다. 종교에는 삶과 죽음, 현세와 내세, 극락(천당)과 지옥, 선과 악 등의 요소가 얼기설기 짜여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개념들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같은 고민거리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강도는 다릅니다. 그러니 어떤 종교의 특정한 절대자도 그 많은 인간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에는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저의 무식함에서 우러나온 아주 짧은 견해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인간의 역사를 말하면서 종교 부분에서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도 만신전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천사와 성인을 등장시켜 그들에게 역할을 부여합니다. 김대건 신부가 서해를 통해 상해로 들어갈 때, 다시 조선으로 들어올 때 타고 온 배 이름이 ‘라파엘 호’입니다. 라파엘은 여행자의 수호신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은 자인 부처(여래)와 깨달을 능력은 충분하나 여러 가지 이유로 깨달음을 유보한 존재가 보살입니다. 보살에는 천수천안관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륵보살 등 여럿입니다.

각 부처와 보살의 역할은 조금씩 다릅니다. 그렇다면 쉽게 말해 병고쳐주는 존재는 약사보살? 약사여래? 약사여래입니다. 필멸의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중 가강 심각한 것은 병과 노화, 그 후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담당하는 존재는 보살이 아니라 여래로 승격시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또한 제 상상에 불과합니다. 어쨌거나 겨울은 이런 병과 늙음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종교적 명상을 자아낸다고 여깁니다.

어제 본 일본매자나무와 산수유, 배풍등, 남천의 붉은 열매와 이팝나무의 검은 열매는 꽃피고 수분하고 열매 맺고, 익어서 땅으로 돌아가서 다시 새 삶은 시작하지 전까지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땅으로 돌아갔건만 얘들은 서두르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노화와 죽음은 천차만별입니다. 얘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열매를 아직 매달고 있는 애들은 단기적으로 볼 때 노화를 유예한 것일까, 아니면 번식경쟁에서 다른 애들에게 뒤진 것일까, 아니면 빨리 살면 빨리 죽는다고 그 조상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일까, 단순한 환경 탓일까.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의 저자는 장수와 노화와 죽음은 “정치적·사회심리적·생물학적 원인이 얽힌 복잡한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하면 위에 열거한 원인들이 조금씩은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어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하찮은 일을 처리하면서 해찰을 부릴 대로 부렸습니다. 그래도 지금 아무 문제없습니다.

[이 암]

좋은곳을 다녀 오셨네요.
삶의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것은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천천히 그리고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라면 남들이 볼때 조금은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주위를 편안하게 만들며 자신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지름길 이라지요.
정유년 새해에는 행복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