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표소 → 현등사 입구 → 눈썹바위 → 미륵바위 → 병풍바위 → 철 사다리 → 만경대 → 서봉 → 동봉(운악산) → 남근석 → 절고개 → 현등사 → 매표소'의 8km, 4시간의 원점회귀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1
운악산[雲岳山]
높이: 935m
위치: 경기도 가평군 하면 상판리
운악산은 화악산, 관악산, 감악산, 송악산과 함께 경기 5악으로 불리는 오악 중 가장 수려한 산으로 현등산이라고도 불린다.
조계폭포, 무지개폭포, 무운폭포, 백년폭포, 건폭 등 폭포를 품은 계곡이 있어 여름철 산행지로 좋지만, 가을 단풍이 특히 장관이고 봄이면 산목련과 진달래가 꽃 바다를 이루기도 한다.
운악산의 진달래는 정상부의 서쪽, 동쪽, 남쪽 사면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현등사에서 능선을 타고 운악산 정상에 이르는 암릉 코스에도 능선 좌우로 진달래가 많다.
산 중턱에서 신라 시대 법흥왕 때 창건한 절 현등사가 있고 동쪽 능선은 입석대, 미륵바위, 눈섭바위, 대슬랩의 암봉과 병풍바위를 비롯 20m의 바위벽에 직립한 쇠 다리가 아슬아슬하게 있다.
인기 명산 100 [33위]
험하지 않은 아기자기한 암릉코스가 있어 3~4월 봄, 10~11월 산행시즌에 많이 찾지만, 여름에도 인기가 있다. - 한국의 산하
2018년 말 2019년 등산방 정기산행 계획을 세울 때 3월은 운악산, 4월은 수락산을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3월 정기산행이 전임 방장 서기의 400주 차 연속 산행 기념 월악산 산행[산행기]으로 바뀌면서 4월 수락산을 운악산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2018년 3월에 낙진, 창우, 흥수와 이미 다녀왔었던 산으로 대중교통은 조금 불편하지만, 우리 등산방 정기산행의 모토에 가장 잘 맞는 산이라 생각했다[산행기]. 해서 아무런 주저 없이 수락산에서 운악산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작년 산행에는 현등사 주차장을 들머리와 날머리는 하는 환종주는 우리에게는 거리가 짧다는 판단에 애기봉을 거치는 14km, 7시간 코스를 했었다. 그렇지만 이번 정기산행은 참여자의 산행 경험이나 능력이 다양한 만큼 8km가 조금 넘는 4시간 코스의 환종주를 하기로 했다. 굳이 시간에 연연해하지 않고 남는 시간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거로. 그리고 교통편은 작년의 경험을 살려 대성리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과 환종주인 만큼 자차 이용이 가능해 차량을 가져오는 것 중 각자 편리한 방법으로 하기로 했다.
등산방에 산행 계획을 알리고 참석할 친구는 손을 들라고 했다. 방장 흥수는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고, 최종 손을 든 친구는 나를 포함 11명이었다. 수원파 선현, 낙진, 희제는 선현의 차로 움직이기로 했고, 경옥, 수경, 진아, 용석, 용준, 영빈과 나는 전철을 이용해 대성리로, 늦게 참여가 결정된 서기는 자차로 현등사 주차장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이번 정기 산행은 봄맞이 소풍이나 다름없기에 먹을 것도 푸짐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대용량 코펠과 버너, 훈제 오리 두 봉과 빨갱이, 라면과 반찬을 준비하고 낙진도 코펠과 버너 라면을 준비했다. 물론 라면을 위한 물도. 그리고 총무 수경이 쌈 채소와 과일과 만약에 대비해 물 500ml 세 통을 준비했다. 그리고 용준이 와이프가 직접 담은 수제 맥주를 가져오기로 했다. 나머지 친구에게는 비상시를 대비한 것만 준비하라고 했다. 자차는 10시 30분까지 현등사 주차장으로 전철을 이용하는 친구는 10시에 경춘선 대성리역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산행 하루 전 겨울 동안 사용한 군용 배낭에서 등반용 그레고리로 변경하는 작업을 했다. 산악회를 이용한 산행은 짐이 별로 없어 30ℓ보다 작게 느껴지는 군용 배낭을 이용했다면, 많은 인원이 참여하고, 날이 더워지는 이상 애초 등산용으로 만들어진 배낭으로 변경할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서 군용 배낭을 들어 있던 장비 중 한겨울 용은 창고에 넣고 늘 사용해야 하는 것과 여름용 장비를 그레고리 배낭에 옮겨 담았다. 이후 준비한 버너와 코펠, 음식과 새로 산 카메라를 배낭에 넣는 것으로 운악산행 준비를 마쳤다. 아, 그리고 운악산이 岳山인 만큼 등산화도 캠프라인에서 5.10으로 바꿔서 준비했다.
2 - 1
지하철 앱을 이용해 불광역에서 대성리역까지의 코스와 시간을 검토해 보니, 10시 전에 대성리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불광역에서 8시 7분 차를 타고 옥수역으로 간 후 경의·중앙선을 타고 망우역에서 경춘선으로 갈아타고 대성리역에서 내리면 그 시각이 9시 37분이라고 알려주었다. 다음 차는 10시 4분. 1시간 30분 동안 전철을 타고 세 번을 갈아타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라 대성리 버스정류장에서 현등사행 버스를 타야 한다. 그래도 산악회를 이용해 산행하는 경우 7시까지 신사역이나 사당역으로 가는 것에 비하면 1시간 이상 여유가 있다.
다른 산행 날과 다르게 느지막하게 일어나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전날 쌓아둔 배낭을 메고 7시 50분경 집을 나섰다. 배낭의 실제 무게는 군용보다 1.5배 가량 무거웠지만, 등에 멘 느낌은 더 가볍게 느껴졌다. 전용을 찾는 것과 비싼 이유가 있는 거다. 그리고 불광역을 향해 걷고 있는데 불광역행 마을버스가 막 도착해 그 버스를 탔다. 그랬더니 8시가 되기 전에 역에 도착해 지하로 내려가니 막 오금행 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애초 8시 7분 차를 탈 예정이었지만, 들어오는 차를 보낼 이유가 없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철을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의·중앙선을 탈 예정인데 시간보다 늦을 수도 있을 거 같다.'고 용준에게 연락이 왔다. 일단 차를 타라고 한 다음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니 용준이 탄 차가 내가 옥수에서 갈아탈 차였다. 옥수에서 차를 갈아타고 용준을 만나 인사 후 망우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다른 친구의 상황을 확인했다. 선현의 수원팀은 예정대로 출발해 대성리를 향해 달리고 있고 수경의 상봉팀인 진아, 영빈, 용석도 상봉역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서기도 출발했고, 그런데 가장 멀다고 할 수 있는 경옥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다.
망우역에 도착 후 경춘선 대성리행으로 갈아타기 위해 육교로 건너편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20여 미터 앞에서 빠르게 걷고 있는 여성의 뒷모습이 눈에 익숙해 같이 걷고 있던 용준에게 "경옥이 아니냐?"라고 묻자, 용준이 바로 "경옥아!"라고 불러 세웠다. 경옥이 맞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저기서 대성리행 열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여유 부릴 상황이 아니라 셋이 열심히 뛰어 열차를 탔다. 예상보다 승객이 많아 30분 동안 서서 가며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와 그 경치를 아름답게 만드는 날씨에 감탄을 거듭했다. 올해 들어 최고의 산행 날씨라며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중간 기착지인 대성리역에 도착했다. 그 시각이 9시 38분이다. 이미 선현의 수원팀은 대성리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있었고, 수경의 상봉팀도 정상대로 상봉을 출발한 이후다.
대성리역에서 수경팀과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용준이 아침용 컵라면을, 경옥이 물을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갔다. 그때 건너편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나오는 선현, 낙진, 희제를 발견했다. 편의점 외부 의자에 앉아 용준이 아침을 먹는 동안 선현팀도 합류해 내가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사다가 가볍게 한잔하며 수경팀을 기다렸다.
10시 6분에 수경팀이 대성리역 밖으로 나와서 서기를 제외한 1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거기서 논의를 통해 대성리까지 온 방식과는 다르게 여성 멤버 전원이 선현의 차로, 남성은 버스로 현등사로 향하기로 했다. 해서 선현, 경옥, 수경, 진아. 희제가 선현의 차로 현등사로 출발했고, 낙진, 영빈, 용석, 용준과 나는 10시 10분 차로 알고 있는 1330-44번을 기다렸다.
그런데 10시 15분이 지나도 버스가 나타나지 않았다. 경기도 버스 앱을 이용해 용석과 영빈이 확인하니 30분경에 대성리역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정류장에 있는 실시간 안내판에는 그 버스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해서 만약에 대비해 현등사를 향해 달리고 있는 서기에게 전화해 위치를 물어보았다. 돌아온 답이 모르겠다며 내비에 의하면 현등사 주차장에 10시 30분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럼 대성리는 지났다. 뭐 이제는 버스만이 답이다. 어쨌든 10시 31분에 버스가 도착했고 기쁜 마음으로 버스를 타며 기사에게 몇 시 차인지 물어보니 돌아온 답은 정해진 시간이 없다고 했다. 결국 교통 상황에 달렸다는 거고, 정상 상황이면 우리가 알고 있듯이 10시 10분에 대성리역에 도착한다는 얘기다.
2 - 2
11시 15분경 종점인 현등산 주차장에 도착해 미리 와 있던 선현팀과 서기를 만나 인사 후 산행 준비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11시 20분이다. 이번 산행의 리딩은 낙진이 하기로 했고 내가 후미를 보기로 했다. 현등사 일주문 앞에 있는 운악산 입석으로 단체 사진을 찍으러 모이는데 영빈과 용준이 뒤에 처져서 왔다. 용준이 버스에 폰을 두고 내렸다고. 해서 버스 회사의 전화번호를 알아보느라 늦었다고 했다. 그때 수경이 여기가 종점이고 버스가 주차장에 정차하는 걸 보았다고 알려주어 용준은 폰을 찾으러 뛰어갔다.
어쩔 수 없이 용준을 제외한 10명만 모여 입석과 일주문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올라가니 용준이 뛰어 올라왔다. 역시 용준이다! 낙진을 선두로 모두 앞서가고 더워진 날씨에 점퍼를 벗어 배낭에 넣느라 지체한 수경을 앞장세우고 내가 제일 후미에 섰다. 그렇게 올라가는데 앞선 친구들이 눈썹바위로 오르는 길을 지나쳐 현등사 쪽으로 계속 올라가는 것이 보여 불러 세웠지만, 이미 내 목소리가 미치는 지역을 벗어나 있었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망경로를 향해 능선에 올라서는 것이 산행에 유리하다. 그리고 현등사에 이르는 시멘트 포장길을 피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고.
그런데 선두가 이미 지나쳤으니. 뭐 어차피 환종주 산행이니 좌로 돌든 우로 돌든 마찬가지라 그냥 올라가도 되지만, 그래도 낙진의 생각이 궁금해 전화하니 내가 만든 계획에는 '2번 방향 표지판'에서 망경로로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어 계속 올라간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 길도 가보지 않은 지역이라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경을 앞세우고 뒤에 처져 선두를 따라 올라 12시 정각에 '2번 방향 표지판'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전혀 보이지 않아 다시 전화를 했고 2번에서 능선을 향해 올라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모두 동일한 ‘방향 표지판’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줄 알았다.
힘들어하는 수경을 뒤에서 독려하며 능선을 향해 오르는데 우리 일행의 목소리라 생각되는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그때 든 생각은 '눈썹바위에 도착해 놀고 있구나!'였다. 해서 더욱 수경을 독려했지만, 수경이 너무 힘들어해 뒤에서 배낭을 들어보니 꽤 무게가 나갔다. 아니, 뭔 배낭이 이렇게 무거워, 쌈 채소와 물 세통만 들고 오라고 시켰건만. 해서 능선에 도착하자마자 수경의 배낭에서 물 두 통과 과일을 꺼내 내 배낭에 넣고 다시 산행을 시작해 12시 22분에 눈썹바위에 도착했다. 그런데 거기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앞선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기다리기 지쳐서 먼저 출발했을 거라 생각하고 눈썹바위를 우회해 운악산에서 가장 험한 코스라 생각되는 길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왼쪽에서 나를 부르는 일행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부름에 답하고 계속 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정규 등산로가 아닌 외쪽 바위 위에 영빈이 서서 밑을 보며 방향을 지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내게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어 계속 위로 올라와 오른쪽으로 오라고 했다. 지난번 낙진과 통화 시 낙진이 길이 없어져 일행이 불만이 많다고 했었는데 난 눈썹 바위 바로 밑에서 하는 얘기라 생각해 계속 올라가라고 했는데, 사실은 전혀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다.
선행자를 뒤에서 받쳐주는 후행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였고 오히려 그래서 남들은 하고 싶어 목을 매는 30여 분의 들개 산행했으면 내 기준 더 바랄 게 없어 보였다. 선행자가 앞서갈 때 후행 자가 길이 맞는지 확인해줘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던 거로 생각된다. 특히 초행은…. 어쨌든 그 과정에서 선행을 맡은 낙진은 일 년 먹을 욕을 30분 만에 다 먹은 거 같고…. 일단 들개 산행을 마친 1진과 합류해 눈썹바위 정상과 만경봉으로 갈라지는 고개에 도착해서 한숨 돌리며 들개 산행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정상으로 향하는 일행에게 눈썹 바위 정상이 전망이 좋으니 들렀다 가자고 권했다.
12시 41분 선현, 용석, 용준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가 눈썹바위 정상에 올라 건너편으로 보이는 화악산과 그 주변 능선을 구경했다. 역시 산행 전 예상대로 한북정맥 및 화악지맥, 명지지맥이 아무것도 가리는 거 없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맑은 날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운악산 정상에서는 북한산과 도봉산도 보였다. 하기는 한북정맥이 사패산을 지나 도봉산을 거쳐 북한산 상장능선을 지난 후 노고산으로 넘어가니 운악산과는 하나의 지맥으로 연결된 핏줄이니 당연한가? 정상에서 바로 아래 골프장도 구경하고 화악산을 배경으로 각자 나름의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은 후 정상을 떠난 시각이 12시 47분이다.
암벽을 기어 올라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선현과 용석, 용준을 다시 만나 만경봉으로 향했다. 이미 1시에 가까운 시각이라 일행에게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물어보았지만, 운악산 정상을 오른 이후 먹자는 파와 적당한 장소를 찾으면 바로 먹자는 파로 나뉘었다. 그때 병풍바위 전망 데크에서 먹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일행에게 일단 정상을 향해 가다 적당한 데크에서 먹자 하고 계속 길을 갔다. 정상을 향한 능선은 온통 진달래로 터널을 이루고 있어 이미 진달래는 졌을 거라고 예상했던 모두를 놀랍게 했다. 중간중간 주변의 꽃과 운악산에 대해 터트리는 일행의 감탄에 동감하며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드디어 1시 18분에 병풍바위 전망 데크에 도착했다.
2 - 3
얼마나 많은 등산객이 병풍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전망데크 중 병풍바위 인증을 찍기 가장 좋은 위치는 데크가 부러져 위험한 상태였다. 관리부처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서기와 희제, 나는 정상을 버리고 우회했고 나머지 친구는 정상을 넘어 데크로 오고 있었다. 와중에 수경은 혼자 우회를 하는 바람에 고생했다는데. 어쨌든 속속 데크에 도착해 탄성을 지른 후 인증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경이 도착한 후 모두 자리를 잡고 점심 준비를 했다. 공공장소인 데크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당일 등산객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 몇 있는 등산객도 데크를 우회해 가는 걸 확인했기에 아무 부담 없이 그 자리에 상을 폈다. 나중에 우리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확인했지만. 그 시각이 1시 29분경이다.
낙진과 내가 준비한 도구와 훈제오리, 라면을 꺼내 준비를 하는 동안 용준은 와이프 표 수제 맥주를 서기는 인생 막걸리를 수경은 쌈 채소와 쌈장, 과일을 용석은 와이프 표 김밥을 그리고 각자 준비한 먹거리를 꺼내 상을 차렸다. 정신이 없어 누가 뭘 가져왔는지 기억도 없다. 내가 기억하는 거는 본인 준비하겠다고 또는 준비해라 했던 것과 아침에 와이프가 김밥을 싸줬다는 것에 점심 내내 최고의 화제였던 용석의 김밥, 그리고 배낭이 무거우니 빨리 비워야 한다고 떠들던 친구가 가져온 것은 기억하고 있다. 어쨌든 누가 가져왔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 대충 감은 잡히지만 - 반찬과 과일 등 예상을 초월하는 양과 질에 두 팩을 가져간 훈제 오리는 한 팩만, 10개를 가져간 라면은 3개만 먹어도 음식이 남을 정도였다. 물론 라면에 계란을 넣는 것도 있지 않았다. 낙진이 3개를 가져왔지만, 두 개만. 와중에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느라 빨갱이는 마개를 따보지도 못했다.
눈썹바위 정상에서 희제가 언급한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틀어 놓고 훈제 오리와 김밥, 과일, 라면 등을 안주로 막걸리와 맥주를 마시면 노래에 대한 평과 세상사, 인생사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그 대부분은 농담과 장난이었지만. 우리가 라면을 먹을 때 부러운 눈으로 옆을 지나간 두 등산객, 그리고 도착한 남녀 한 쌍의 등산객은 눈치상 데크에서 인증을 찍고 싶어 했지만, 우리가 장악하고 있어 아쉬운 표정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걸 보는 순간 '아차' 실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벌여 놓은 판이 너무 커 쉽게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는 일이 없도록!
더 시간을 끌어선 안 되는 상황이라 재빨리 우리가 있었다는 모든 증거를 없애고 단체 인증을 찍은 후 그 자리를 떠난 시각이 2시 31분이다. 대략 1시간 조금 넘게 만찬을 즐겼다는 얘기다. 다시 만경봉을 향해 10m 가니 그 남녀 한 쌍의 등산객이 땅바닥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차리고 있었다. 응? 인증이 아니라 점심 식당에 대해 아쉬움이었나? 뭐 어쨌든 그들을 지나 암릉에 박힌 철 계단과 철봉에 연결된 쇠줄을 잡고 만경대를 향해 올랐다. 물론 나야 암벽으로만.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 오늘 산은 한가하겠다는 판단과는 다르게 나름 등산객이 있어 교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내려오는 등산객을 기다려 보내준 후 다시 오르기를 반복해 2시 51분에 미륵암 전망대에 도착했다. 거길 오르는 중에 같이 온 여성 동무들의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라는 감탄을 계속해 들을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각자 인생 샷 또는 장난 샷을 남긴 후 다시 만경봉을 향해 출발했다.
3시 14분에 철 사다리를 지나 우회 데크를 무시하고 짧은 암릉을 기어 올라 만경대에 도착했다. 다시 암릉을 내려가 데크 계단으로 운악산 정상(동봉)에 도착한 시각이 3시 31분이다. 동봉에 모여 인증을 찍은 후 서봉으로 가 한북정맥 지도와 청명한 날씨 덕에 티끌 하나 없이 잘 보이는 실제 정맥을 보며 설명할 기회도 있었다. 물론 인증도 남겼다. 3시 56분에 동봉에 다시 도착해 벗어 놓았던 배낭을 짊어지고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동봉에서 현등사까지는 1.64km, 가평군 하판리까지는 3.35km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현등사에서 하판리까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라는 걸 고려하면 1시간 30분이면 날머리인 현등사 주차장에 도착한다는 의미였다. 그럼 시간상으로는 5시 30분이다. 동봉에서 절고개까지는 작년에 이미 갔었던 길이라 상태를 알고 있었고, 가파르기나 길의 상태는 아주 양호했다. 절고개를 향해 가며
남근석 전망대 데크를 지나는데 점심때 병풍바위 데크에서 우리를 지나쳤던 그 팀이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야영을 할 거 같은데, 하산 시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오르는 것으로 보이는 등산객 한 쌍을 만난 후 운악산에서 비박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동안 모르고 있었지만, 비박꾼에겐 꽤 유명한 산인 듯했다.
2 - 4
4시 21분에 절고개에 도착하니 이정표에는 현등사까지 1km가 남았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거리는 급경사의 소위 깔딱이라고 부르는 구간으로 군데군데 너덜로 이루어져 하산이 쉽지는 않았다. 코끼리 바위를 지날 때는 코끼리 코냐 강아지 꼬리냐, 그 위의 바위가 원숭이 얼굴을 닮았으니 원숭이 성기가 아니냐 하는 별거 아닌 논쟁을 하기도 했다. 너덜로 이루어진 급경사의 하산길은 무릎이 좋지 않은 등산객에게는 최악의 코스였다. 와중에 낙진은 바위에서 미끄러져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하산의 긴장을 풀기 위해 농담을 나누면서 조심조심 내려가 마침내 5시 6분에 현등사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30분이 더 걸렸다. 시간이 중요한 산행이 아니니 의미는 없다.
현등사에 도착하니 바로 하산하는 길과 현등사를 들렀다가 하산하는 갈림길이 나왔다. 당연히 현등사를 들렀다가 가기로 해 먼저 하산한 서기를 제외한 모두가 현등사로 갔다. 깊은 생각 없이 현등사에 들렀는데, 생가보다 오래된 절로 연륜이 깊었다. 그리고 적멸보궁이 있었다. 그럼 진신사리가 있다는 것인데. 다른 친구가 정규 코스로 절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반대로 돌며 적멸보궁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화려한 꽃을 구경하고 각 전의 본존불에게 묵례도 하며 우리 일행이 쉬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적멸보궁을 못 찾았다고 얘기하자 위를 가리키며 30m를 올라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30m를 헉헉대고 올라가니 선현, 진아, 영빈이 각자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정면으로 가지 않고 진신사리를 모신 탑을 보기 위해 바로 뒤로 돌아갔다. 예상대로 적멸보궁의 뒤는 유리로 되어 있었지만, 탑이 있어야 할 자리에 탑이 없었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이런 느낌은 오대산 적멸보궁 이후 두 번째다. 진신사리는 탑에 보관한다는 관념이 강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오대산의 전례에 따라 진신사리를 땅에 묻었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거처럼 보인다. 그런데 오대산의 적멸보궁이야 탑이 아니라 땅에 묻은 형식이라 궁에 탑을 보여주는 유리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탑이 없는 현등사 적멸보궁은 왜 뒷면에 유리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앞으로 돌아가 세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궁 안을 보니 금박을 입힌 함이 있었다. 탑이 아니라 그 함에 진신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설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적멸보궁이 있었다고 한다. 적멸보궁이 있었다면 어떤 형식이든 진신사리를 보관하고 있었을 거고... 그런데 분실했던 진신사리를 다시 찾아와 적멸보궁과 탑을 다시 세운다는 건데. 더 깊이 들어가면 머리만 아프니 여기까지.
현등산 관람을 마치고 5시 23분에 절을 떠났다. 그리고 하산 중에 계곡의 마당바위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벗어 옆에 두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뜨거운 발을 차가운 계곡물에 넣어 식혔다. 오월이 멀지 않았지만, 견디기 어려운 차가움에 발이 어는 거 같아 10초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게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발도 식히며 휴식도 취했다. 10분 넘게 계곡에서 논 후 5시 50분경 다시 하산했다. 그리고 6시 12분경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현등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3
주차장에 먼저 내려와 있던 서기와 다시 합류해 서울로 돌아가는 방식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일단 선현과 서기 두 차로 모두 서울로 향하기로 하고 서울의 초입이랄 수 있는 강변에서 뒤풀이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쁜 선현과 서기는 우리를 강변에 내려주고 바로 떠나기로. 해서 서기 차에 여성 동무 셋과 낙진, 용준 등 여섯이 타고 선현 차에 용석, 영빈, 희제 그리고 내가 타고 서울로 출발했다. 뒤풀이는 강변역 부근의 닭갈빗집에서 하기로 했다. 6시 30분경 현등사 주차장을 떠나 7시 40분경 강변역에 도착한 거 같다.
강변역을 향해 가는데 먼저 출발한 용준이 그 식당은 만원에 대기 줄이 기니 다른 선택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해서 주행이와 같이 갔던 감자탕집으로 변경하자고 했다. 용준이 좋다고 해 그 감자탕집을 알고 있는 거 같아,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라 했다. 그런데 강변역 직전에 다시 용준에게 감자탕집이 없어졌다는 연락이 와 그럼 일단 아무 곳이나 들어가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때 막 강변역에 도착해 운전하느라 수고한 선현과 작별하고 실시간 위치 추적으로 용준의 위치를 보니 내가 생각하는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있었다. 서로 다른 집에 관해 얘기했던 거다.
선현의 차로 도착한 영빈, 용석, 희제와 같이 내가 생각했던 감자탕집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사거리 건너편에서 정상 영업하는 것이 보였다. 아직 시간이 일러 손님은 몇 없었지만. 이어진 두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후 용준과 같이 있는 친구의 취향을 알 수 없어 먼저 온 우리만 감자탕 중자와 맥주, 사이다, 소주를 시켰다. 그리고 용준에게 우리 위치를 다시 알려주었다. 감자탕이 도착하기 전에 영빈이 맥주, 사이다 폭탄을 제조해서 돌렸다. 처음 보는 거라 나도 한 잔 마셔보았는데 내게는 안 맞는 조합이었다. 바로 소주로 변경에 김치를 안주로 마시고 있을 때, 용준 팀이 도착했다.
그 팀은 갈비찜을 시킨 후 모두 잔을 채운 다음 만족한 산행과 수고한 산꾼의 건강을 위해 건배했다. 감자탕이 나온 후 갈비찜도 나와 맥주와 소주 안주로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바닥을 드러낸 감자탕에는 뼈, 감자, 수제비 사리를 추가했고 깻잎을 좋아하는 여성 동무를 위해 깻잎을 잔뜩 넣고 끓여 두 번째 감자탕을 즐겼다. 먹는 걸 보니 배가 많이 고팠던 거 같았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9시 25분경 식당을 나섰다. 다들 2차에 대한 미련이 없어 보여 간단히 인사를 하고 강변역에서 헤어졌다. 거리는 8.5km 정도에 불과했지만, 운악의 "岳"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암릉 등산과 너덜 하산에 모두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매표소 → 현등사 입구 → 2번 방향 표지판 → 눈썹바위 → 미륵바위 → 병풍바위 → 철 사다리 → 만경대 → 동봉(운악산) → 서봉 → 동봉(운악산) → 남근석 → 절고개 → 현등사 → 매표소'의 8.58km(트랭글 기준), 대략 7시간 정도의 봄 소풍을 즐겼다. 실제 이동 시간은 5시간 정도니 2시간은 점심과 휴식 시간이었다.
무한대의 시야를 보여준 최고의 날씨에 최고의 산행이었다.
봄 소풍을 즐겼으니, 내년에는 가을 단풍놀이를 해보는 것도 어떨까
기회가 되면 가평이 아니라 포천 쪽에서 올라가는 운악산행을 해 보고 싶다.
첫댓글 꽃 좋고 조망도 시원한 날 잡아서 잘 다녀왔구나.
기대 이상의 청명한 하늘과
생각보다 적은 등산객
운악산은 매년 코스에 두는 거로
참 좋았으~
운악산 또 가자 ㅎㅎ
단풍놀이?
재밌었어. 좀 피곤해. 주말엔 푹 쉬어야 해...
토 산행.
일 휴식.
이게 딱 좋다. 그래야 월에 살만
오리기름이 들어간 라면도 일품이었어~
겨울산사진은 뭐야? 거기도 운악산?
"계란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있지 아니고
오타라구~ ㅋㅋ
고마웠어 대장!
겨울산이 3월 정기산행 월악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