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장하는 것이 맞다.”라고 우기며 공감하는 목회자들의 결과가 교단이다.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여쭈어서 자신들이 옳다거나 맞았다고 주장하던 내용들을 모두 기도로 하나님께 옳고 그름을 판단 받아서 신앙생활을 했더라면 또한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랐다면 교단이 이렇게도 많이 있을 필요가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교” 하나만 존재했을 것이다.
그 시대에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반박을 현대에도 적용하려는 것은 억지다. 일제 치하에서, 6 25전쟁 때 공산당에 대항해서, 그리고 현대의 그릇된 종교 흐름에 발맞추어 각기 필요하던 대응 방법을 발전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 시대에 맞는 대응방법이 필요할 뿐이고 그 이상은 추구해서는 안 된다.
너무 단순한 접근인가? 이단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한다면 더욱 할 말이 있다. 이단은 한 두 번 가르친 뒤에 듣지 않으면 멀리하면 된다. 그런데 이단을 열심히 연구하고 전략을 짜서 그런 이단에 대한 반박을 발전시키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음 짓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라고 신앙의 목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묵상해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교단을 만들어서 뜻을 함께할 교회들을 모으는 것도 아니요. 이단에 대응하기 위해서 연구하고 전략을 세우는 것도 아니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증거 하게 하셨던 사랑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보내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현대의 교회들을 보면 누가 보아도 이단인 교회, 즉 이단을 자처하는 종교 공동체가 있다. 이들은 교회라는 이름을 도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논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드러내놓고 이단은 아니지만 설교 내용을 들어보면 자신의 주장을 펴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세상의 영업 전략과 맞닿은 내용들이다. 그리고 열심히 하면 될 것처럼 강요하는 신앙이다. 열심을 가지면 마치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것 같은 착각으로 교회 공동체에서 열심을 강요한다. 상을 주고 칭찬을 하면서 말이다. 교회에 필요한 목사의 원함을 요구하며 또 열심히 건물과 교회의 조직 그리고 숫자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목회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복음은 무엇일까? 복음이 나올 리가 만무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 거룩한 복음을 아무 입을 통해서나 선포하시지 않는다.
근대의 일제 치하에서 신사를 참배하라고 일본 군부의 정치적으로 협박을 받았던 목회자들 그리고 북한이나 6 25 전쟁 당시 공산당의 협박받은 목회자들과 작금의 자발적으로 W.C.C 또는 W.E.A에 들어가서 종교 통합이라는 미명아래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종교인이다. 라고 고백하는 현대 교회의 목회자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적어도 일제시대와 북한과 전쟁 당시에는 공산당의 협박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즉 신사를 참배하지 않으면, 공산당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교회에 모이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감옥살이와 고문과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순교하신 분들이 이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현대 교회의 목회자들은 어떤가? 어떤 생명의 위협도 없으며, 자유로운 가운데 무엇을 하든지 정부로부터 어떤 조건이나 요구사항을 강요받지 않는다. 북한과 비교하면 신앙생활의 최적의 조건을 허락받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길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은 스스로 W.C.C 또는 W.E.A에 참여하여 종교를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옳게 여기심을 받았으면 옳게 여기신 그 모습 그대로 첫 사랑을 유지하면서 맡은 직분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복음을 위탁받았다는 것은 복음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 통합도 아니요. 종교인으로 변질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오직 복음만을 전해야 하며,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자세로 복음만을 전해야 한다. 목회자의 기본이 하나님과 관계이며, 소통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내야 한다. 내 안에 예수님으로 가득 차있으면 살아지게 된다.
교회라는 이름과 기독교(그리스도)란 이름을 도용하고 사용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아닌 종교인들이 종교행사를 하는 모임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마음이 맞아서 하나님이 아닌 스스로의 자족을 위해서 가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고 싶다는데 말릴 수가 있을까? 하나님을 입술과 머리의 지식으로만 추구하고 찾으며 바라보는 자들이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모든 믿는 자”는 한계를 정한 분명한 기준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 있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 생명이 없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 있는 자는 아들로부터 주어지는 영생을 가진 자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 있는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WCC와 WEA, 이들의 단체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런 허무맹랑한 공동체에 과연 하나님은 어떤 직위로 어느 위치에 존재하시며, 과연 이런 단체를 만들라고 하셨을까?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지막 시대임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악한 도구일 뿐이다. 종교를 통합하라고 하셨는가? 종교를 왜 통합해야만 하는가? 예수님 승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통합하라고 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교에 그들이 들어오도록 사도들과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빛을 비추어주셨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늘의 삶을 살으심으로 사랑이라는 소금의 맛을 맛보게 하여주셨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있다면 자신의 의지이며,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이고 이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신앙으로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그 삶에 대한 행위는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
지도자 한 사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 만큼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으로 흘러가기에 아주 좋다. 약 90년 전의 암울한 일제 치하에서 세상과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사셨으며, 복음으로 꿋꿋하게 살아내셨으며, 복음만을 설교하였던 이용도 목사님을 소개한 내용을 살펴보자.
『반면 이용도로부터 결사신앙을 배우기 거절했던 무리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용도를 매장한 교권은(평양노회) 1930년대가 끝나기도 전에 너도나도 신사참배에 굴복한 역사를 써내었다. 유명무명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승리했을 뿐, 공회와 조직들은 속속들이 무너졌다. 1930년대 초 이용도를 매장한 것이 신학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측면이 발휘된 것이었기에, 이 때의 “정치성의 계발”은 3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는 신사참배 강요에서 교권자들로 하여금 생존을 위한 발악으로써의 정치성을 발휘를 하게 했고, 이는 한국 교회의 수치와 범죄 그리고 이후 교단 핵분열의 씨앗이 되는데 일조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한국 교회가 결사적 예수 신앙의 이용도를 교회 밖에다가 못 박지 않고 엎드려 귀를 기울였더라면 신사참배의 날을 강인한 신앙으로 맞이할 내성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럼 오늘날 한국 교회는 자기 자신과 민족과 세상 앞에서 더욱 떳떳함과 긍지를 갖게 되었을 것이고 이는 민족과 아시아와 세계에 복음과 평화의 씨앗을 심는 일에 더욱 자신감과 의욕을 고취시키는 자본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용도의 순수한 결사신앙을 용납하지 않고 이용도로부터 위기의식을 느끼며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바동대다가 결국 의인의 머리를 돌로 때린 교계의 왕자들이 우상숭배 강요에 저항하지 못했던 것은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역사는 혼란과 격정, 탄식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21세기 초 오늘의 교회는 어떠한가? 성도들을 제 소유로 여기거나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명백히 드러난 주님의 뜻보다 자기의 임의에 따라 교회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그가 지금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고 자기를 높게 생각하고 있든지, 환난 날이 오면 가장 먼저 주님께 등을 돌릴 자요, 많이 가졌었기에 심판도 크게 받을 위태로운 사람이라고 역사는 힐끗힐끗 눈길을 보내오누나. 그날이 오면 숨은 동기는 만천하에 드러난다. 그러나 하나를 보고 열은 몰라도 하나만큼은 알자. 평온의 때에 희생을 하지 않는 지도자는 환난의 때에 결코 희생을 할 수 없으며, 평온의 때에 타인의 희생으로 자기가 사는 지도자는 환란의 때에 눈에 뵈는 것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누가 봐도 마지막 때이다. 북극의 두꺼운 얼음도 2030년이면 녹는다. 남극의 엄청난 빙하도 2070년이면 녹는다. 물이 지구를 덮는다. 지진과 화산 폭발 그리고 태풍과 허리케인, 홍수와 화재 기상이변이라고 주장하는 일들이 점점 더 그 횟수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는 잠자는 자들을 깨우는 것이다. 악은 또 어떠한가? 동성애와 성적 타락은 그 강도가 더해지고 있으며, 윤리와 도덕마저도 양심이 마비되는 상태에 이르러 제목뿐인 껍데기일 뿐이다.
무엇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게 해야 하는가? 경제?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사회? 세상은 고통이며, 고난의 연속이다. 결코 이데아는 이 땅에 있을 수 없다. 악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질 일들은 거짓과 속임, 죽이며, 멸망시키는 것들만 횡행할 뿐이다.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한 삶이 허용되는 곳, 아버지 집, 새 예루살렘, 새로운 성전에 소망을 두자. 이 출발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복음이다.
예수님처럼 살지 않는 목회자인가? 복음이 없다.
예수님처럼 설교하지 않는가? 복음이 아니다.
예수님처럼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공동체인가? 복음이 없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지 않는가? 복음이 없다.
첫댓글 신앙의 목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묵상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인들로 오직 복음만을 전해야 하며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자 세로 복음만을 전해야 한다
목회자의기본이 하나님과 관계이며소통하는것이며하나님의음서을ㄸ고 하나님의 마음을하나님의 생각을알고 그분의뜻대로 살아내야 한다 내 안에 예수님으로 가득 차 있으면 살아지게 된다 아멘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안에 있는 자들에게 구원을주시는 것이다 아들있는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자는 생명이없다 그리스도의 믿음안에 있는 자는 생 명을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