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뜨고있다는 [서울의 봄]을 한번 봐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그래서 간만에 쉬는 날이지만 일찍 일어났다. 근래 영화비가 상당히 비싸져서 조조할인을 받으려고 서둘렀다.
동네 극장에서 평일에 조조로 봤지만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일전에 [거미집]은 나 혼자서 봤지만, [서울의 봄]은 3,4십명이 족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중 젊은 사람들이 대다수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왠만한 사람은 다 아는 12.12.쿠데타에 대한 내용이지만, 상영시간 2시간 21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긴박하게 돌아갔다.
특히 전두광(전두환) 역할을 맡은 황정민 배우의 연기는 마치 죽은 전두환이 살아돌아온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장태완) - 정우성 배우를 응원하며 눈물을 흘리다보면, 영화는 어느새 끝을 향해 치닫는다.
우리는 정의가 승리하는 이상의 세계를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불의가 승리하고 의인은 죽임을 당하거나 고통을 겪는다.
영화는 신군부세력이 쿠데타 성공후 그 유명한 단체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를 보고나니 과거의 한 사건?이 떠오른다.
나는 거의 30년 전쯤에 학군 32기(ROTC)로 짧게 장교 생활을 했었다. 광주 상무대에서 교육을 받을 때, 계급이 대위인 한 교관이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인 것 처럼 공공연히 칭송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당시는 1994년 이었다.
그해 6월말 자대 배치를 받았다. 내가 속한 부대는 전라남도의 서남 해안을 담당하는 연대라서, 간부중에 군대에서 잘 나가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우리 부대의 부연대장이었고 당시 계급은 중령이었다. 그런데 우리 부대는 보병 부대인데 그만 기갑 병과였고, 언제나 전차용 전투복을 갖춰입고 있었고 행동거지는 늘 단정하고 꼿꼿했다.
아침 상황청취(회의) 시간에 연대장이 뭔가를 말하고 나가면, 그는 회의시간 내내 꼼꼼하게 독일어로 메모한 내용을 보고서 간부들에게 세밀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가 육사 졸업후 독일에 유학해서 전차전을 공부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전차전에 대해서는 일인자라고 했다. 그는 독일어를 잊지 않기 위해서 모든 메모를 독일어로 적었다.
또 초급 간부들에게도 마치 삼촌처럼 다정하게 상담도 격려도 잘 해주어서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 새벽마다 부인과 함께 연대 교회에 새벽기도를 나갔기 때문에 군목 - 중위가 매우 힘들어 했다. 날마다 일과가 끝나면 늘 운동복을 입고 이어폰을 꽂은 채 한 시간 정도 연병장을 달렸다.
인간적인 매력도 넘쳤던 그를 보기드문 참 군인이라고 칭송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하나회' 회원이라서 좌천된 것이었다. 내가 전역한 후에 그가 전향서같은 각서를 한 장 쓰고 '기갑학교' 교관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사람이 개인으로서는 흠잡을 데 없는 아버지, 남편, 직업인일지라도, 사회적으로는 악인이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꼭 기억해야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 역시 좋은 아버지, 남편, 이웃, 직업인이었지만, 수많은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 살해하였다. 당시 그는 군인이었으므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감옥에 있는 많은 흉악범죄자들도 자기 식구에게는 좋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 00가 그럴리가 없어요."라는 현실부정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전두환도 자기 식구와 패거리에게는 좋은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이순자가 자기 남편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칭송했을까.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악인도 늘 악한 일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 선한 일을 하는 악인을 조심해야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악, 절대부정을 낳는다. 그리고 이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칡뿌리가 조금만 남아 있어도 곧 온 산야를 뒤덮듯 다시 세상을 다 덮어버릴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깨어있는 시민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저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영화 보러 고고~ 조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