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팔공산 ; 갓바위~삿갓봉 능선 바위모음 (21.9.19/9.26)
~ 갓바위,농바위,노적봉,남방아덤,북방아덤,공기바위,주먹바위, 인봉 등등...
9.19 ; 갓바위버스정류장-갓바위-농바위-노적봉-방아덤-은해봉-삿갓봉-바른재-폭포골-동화교2 버스정류장
9.26 ;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인봉-방아덤-은해봉-삿갓봉-마애불능선-대구교육팔공산수련원-대구학생수련관입구건너 버스정류장
9/19, 9/26 연이어 동안 팔공산을 오르게 되었는데 이번 팔공산 산행기에는 주능선 주변에 있는 바위들만 골라 보았다.
(갓바위 버스정류장에서 오르는 기점)과 (대구방짜유기박물관에서 오르는 기점)
팔공산 하면 빠질 수 없는 갓바위 (관봉)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형상으로 인해 ‘갓바위’로 불리며, 갓 모양이 대학 학사모를 닮아 매년 입시철마다 전국 각지에서 합격을 기원하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
한 가지 소원은 들어 준다는데.... 그동안 욕심이 많았는가.. 보다..
갓바위(관봉) 이후 은해봉까지 주능선상에 특별히 두드러진 암봉이 몇 개 있으니 농바위, 노적봉, 남방아덤, 북방아덤이다. 바위덩어리군 하일라이트 구간이기도 하다
돌 봉우리 두 개가 토끼의 두 귀같이 솟아 있어 남사면의 동네 노인들은 예부터 '방아쌀개덤'이라 불린 방아덤과 볏가리를 닮은 노적봉과 장롱을 닮은 농바위가 있다.
"고려 말 포은 정몽주 선생이 농바위에는 옷, 노적봉에는 양식을 넣어 두고 이곳에서 공부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고도 했다.
토끼 귀 같이 생긴 것은 '방아덤'이다. 디딜방아의 모습이라 "방아덤"이라 한다 (덤은 바위의 방언)
볏가리 같이 위가 불룩하고 덩치가 큰 봉우리는 '노적봉'이다. 짚단을 쌓아놓은 모습이다.
노적봉에서 흘러 내려간 산줄기의 북지장사 윗부분에 있는 돌 봉우리의 이름은 '인봉'이다.
주능선상에 솟은 이 암봉은 멀리서 봐도 뚜렷이 두드러져 보이는 암괴로서 육면체의 형상을 해서 윗면이 평평한 장롱을 닮아 농바위라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설명과는 좀 다르게 보인다. 멀리 산 아래에서 보면 네모 모양으로 눈에 띈다.
농바위.. 올라가기가 좀 까칠하다.
농바위에서 본 노적봉
농바위... 중간쯤 올라가다 포기하다.. 바위에 글씨가 쓰여있다.
농바위 ~ 노적봉 사이에 있는 바위전망대에서 농바위 조망
농바위 ~ 노적봉 사이에 있는 바위전망대에서 노적봉 조망
전망데크와 앞에 노적봉 조망
노적봉을 우회하여 뒤로 오르는 중
노적봉보다 더 유명해진 발가락바위
발가락바위까지는 어렵지않게(?) 올라왔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일을 없애버려 올라가기가 좀 애매해서 (내려올 때가 더 애매..자일 필요) 포기..ㅠㅠ
우측에서 좌아래로.. 남방아덤/북방아덤/전망데크
테라스형 전망바위, 계단 좌측 남방아덤으로 가는 길에는 하늘문(석문)을 통과해야 한다.
남방아덤
남방아덤에는 바위 홈구멍이 2개있는데 이를 알터[성혈(性穴)]라고 한단다... 건너편에는 노적봉
노적봉 정상석이 가운데 보인다.
남방아덤에서 본 북방아덤, 전망데크....골프장, 비로봉
남방아덤에서 본 북방아덤, 전망데크....우측에는 도장바위
북방아덤 아래 도장바위 (선본사 갈림)
도장바위 위(이정표 뒤)로 가면 북방아덤이다.
북방아덤에서 본 남방아덤과 노적봉
계단을 내려가면 전망데크가 있다.
현위치번호 021 ~ 022번 사이에 있는 바위암봉.. 등로에서 살짝 비껴있다.
암봉 '891.0'..(은해봉?) 오르다.
위 아래 사진...암봉 '891.0'..(은해봉?)
은해봉(△882.6m) (구;능성재) [동봉 5.5/갓바위 1.8/은해사 6]..은해능선분기봉
바윗길에 있는 안전난간
현위치번호 030~031 사이 등로 좌측 아래 3단바위... 조금 더 가면 이런 모양이 또 있다.
현위치번호[034] '931.3' (삿갓봉 931m) 정상석/마애불능선분기봉
삿갓봉에서 바라 본 코끼리바위
팔공산 비로봉
현위치번호 036 근처에 다시 3단바위가 있다.....
지리산 마고할미가 가지고 놀았다던 5층 바위탑인 공개(공기)바위와 빗대어 공기바위[3단]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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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에서 흘러내린 인봉능선상에 있는 인봉..
바위의 생김이 인장(印章)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의 봉우리
인봉 커다란 바위틈에는 오래전 신선이 심었다는 노송이 자라고 있다. 무속인의 기도처로 삼았다고도 하며 소년대로 불리기도 한다.
바위 틈으로 들어 올라가야 한다.
인봉 바위들...
인봉의 소나무는 유명하다. 소나무는 절개를 상징하는 면도 있지만 동시에 잡신을 물리치고 장수를 비는 뜻도 있다.
공산기적석대류(公山奇蹟石臺留) 공산의 기이한 자취 석대가 남아
겁우남풍열기추(劫雨藍風閱幾秋) 비바람을 겪으면서 몇 년이나 지났던가
선자식송송기로(仙子植松松己老) 신선이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미 늙었고
가명유속소년유(佳名惟屬少年遊) 아름다운 이름만 소년의 노님에 붙였네.
'소년대(少年臺)'라는 제목으로 쓰인 이 시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이자 대구 출신인 열암(悅庵) 하시찬(夏時贊 1750~1828) 선생이 경관이 특히 빼어난 팔공산의 여덟 곳을 읊은 '공산팔영' 중 하나로, '열암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문집에서 '공산팔영'은 소년대(少年臺)ㆍ방은교(訪隱橋)ㆍ동화사(桐華寺)ㆍ염불암(念佛庵)ㆍ일인석(一人石)ㆍ·삼성암(三省庵)ㆍ·선인대(仙人臺)ㆍ·용문동(龍門洞)으로 이중에서 소년대(少年臺)를 제일 먼저 소개하고 있다. 이 시 내용을 보면 소년대라는 명칭의 석대 위에는 신선이 심은 소나무가 자라는데 이미 늙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과거 소년대로 불리기도 한 이 석대는 지금은 팔공산 인봉으로 불려지고 있다.
선인들의 기록 가운데 270여 년 전,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ㆍ1711~1781) 선생은 1748년(영조 24년)에 팔공산을 유람하고 남긴 남유록(南遊錄)에서 이곳을 감명깊게 묘사했다. “ 몇리를 들어가니 소년대(少年臺)라는 곳이 있었다. 큰 바위에 올라서니 시내가 굽어보이고, 그 위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고색창연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入數里得所謂少年 臺者巨石臨溪而 有松生其上枯其一半蒼古可愛》”고 했다.
소년대 위 이 소나무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이상정이 270여 년 전에 이미 이 나무를 고색창연하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홍종흠 매일신문 (전)논설주간 겸 팔공산 문화포럼 고문에 의하면 ˝소년대란 명칭은 1918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지도에는 579m봉우리를 소년대가 아닌 노족봉(老足峰)으로 표기하였다. 이는 소년대가 ‘장로인 천왕봉을 소년이 시봉한다’ 는 뜻에서 소년대와 같은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노족봉(老足峰)은 ‘천왕봉인 장로(長老)’ 와 소년같이 손아래 사람을 뜻하는 족하(足下)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소년대 정상에는 앙증맞게 생긴 인봉 정상석이 있는데 이 표지석은 한국지명총람(1978)에서 노적봉(노족봉이 아님)을 인봉으로 잘못 표기해서 바로잡기 위하여 2015년 2월 22일 일사산악회에서 설치하였다고 한다.
인봉 아래 뒷쪽에 숨은 공간이 있다.
인봉 위 북동쪽 능선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인봉
인봉 능선에서 바라 본 북방아덤-남방아덤-노적봉
삿갓봉
삿갓봉 아래 (마애불능선) 에 있는 주먹바위
<끝>
첫댓글 잘 봤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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