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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렬전 자료 이것저것 2005/02/23 03:09
http://blog.naver.com/sunos2/100010512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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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却說)이라 대명국 영종황제 즉위 초에 황실(皇室)이 미약하고 법령이 불행한 중에 남만 북적과 서역이 강성하여 모반할 뜻을 둠에, 이런고로 천자 남경에 있을 뜻이 없어 다른 데로 도읍을 옮기고자 하시더니, 이때 마침 창혜국(고대,중국 동방에 있었던 나라이름) 사신이 왔음에 성은 임이오 명은 경천이라 하는 사람이 왔거늘 천자 반겨 인견(引見)하시고 접대한 후에 도읍 옮김을 의논하시니 임경천이 주왈,
"소신이 옥루에서 육대산천을 망기하오니 금황지지가 마땅하옵고 천하명산 오악지중에 남악 형산이 가장 신령한 산이요, 일국 주룡이 되었고 창오산 구리봉은 변화하여 외청룡되었고 소상강 동정호는 수세가 광활하여 내청룡되어 있어 내수구를 막았으니 제왕주가 장구 할 것이요, 또한 소신이 수 년 전에 본국에서 망기하온즉 북두칠성 정기가 남경에 하강하고 삼태성 채색이 황성에 비쳤으며 자미원 대장성이 남방에 떨어졌으며 미구에 신기한 영웅이 날 것 이니 황상은 어찌 조그마한 일로 이러한 금성지지를 놓으시며, 선황제 마마 구방지지를 어찌 일조에 놓으시리까."
천자 이 말을 들으시고 마음이 쇄락하여 도읍 옮기심을 파하시고 국사를 다스리니 시절이 태평하고 인심이 조안(큰 탈이 없이 편안함) 하더라.
이때 조정에 한 신하 있으되 성은 유요, 명은 심이니 전일 선조황제 개국공신 유기의 십 삼대 손이요 전병부상서 유현의 손자라, 세대명가 후예로 공후 작록(爵祿)이 떠나지 아니하더니 유심의 벼슬이 정언 주부에 있는지라, 위인이 정직하고 성정이 민첩하며 일심이 충성하여 국록(國祿)이 중중하니 가산이 요부하고 작법이 화평하니 세상 공명은 일대에 제일이요, 인간 부귀는 만민이 칭송하되 다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매일로 한탄하여 일년 일도에 선영(先塋) 제사 당하면 홀로 앉아 우는 말이,
"슬프다! 나의 몸이 무슨 죄 있어 국록(國祿)을 먹거니와 자식이 없으니 세상이 좋다한들 좋은 줄 어찌 알며 부귀가 영화롭되 영화된 줄 어찌 알리. 나 죽어 청산에 묻힌 백골 뉘라서 거두오며, 선영향화(조상에 제사 지냄)를 뉘라서 주장하리."
하염없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 지라.
이렇듯 설워하니 부인 장씨는 이부상서 장윤의 장녀라. 주부 곁에 앉았다가 일심이 비감하여 왈,
"상공의 무후(자녀가 없음)함은 소첩의 박복함이라 첩의 죄를 논지컨데 벌써 버릴 것이로되 상공의 음덕으로 지금까지 부지하오니 부끄러운 말씀을 어찌 다 하오리까. 듣사오니 천하에 절승한 산이 남악형 산이라 하오니 수고를 생각지 말고 산신께 발원하여 정성이나 드려보사이다."
주부 이 말을 듣고 대왈,
"하늘이 점지하사 팔자에 없었으니, 빌어 자식을 낳을진대 세상에 무자한 사람이 있으리오."
장부인이 여쭈오되,
"대체를 생각하면 그 말씀도 당연하되 만고 성현 공부자도 이구산에 빌어 났고 정나라 정자산도 우성산에 빌었으니 우리도 빌어 보사이다."
주부 이 말을 듣고 대왈,
"하늘이 점지하사 팔자에 없었으니, 빌어 자식을 낳을진대 세상에 무자한 사람이 있으리오."
장부인이 여쭈오되,
"대체를 생각하면 그 말씀도 당연하되 만고 성현 공부자도 이구산에 빌어 났고 정나라 정자산도 우성산에 빌어 보사이다."
주부 이 말을 듣고 삼칠일 재계를 정히 하고 소복을 정제하여 제물을 갖추고 축문을 별노이 지어 가지고 부인과 함께 남악산을 찾아가니, 산세 웅장하여 봉봉이 높은 곳에 청송은 울울하여 태고시를 띄고 있고, 강수
는 잔잔하여 탄금성을 도도웠다. 칠천 십이 봉은 구름밖에 솟아 있고 층암 절벽 상에 각색 백화 다 피었고, 소상강 아침안개 동정호로 돌아가고 창오산 저문 구름 호산대로 돌아들며 강수성을 바라보며, 수양가지 부여잡고 육칠 리를 들어가니 연화봉이 중계로다. 상대에 올라서서 사방을 살펴보니, 옛날 하우씨가 구년지수 다스리고 층암절벽 파던 터가 어제 하듯 완연하고 산천이 심히 엄숙한 곳에 천제당을 높이 묻고 백마를 잡던 곳이 완연하였고, 추연(웅덩이)을 돌아보니, 옛날 위부인이 선동 오륙 인을 거느리고 도학 하던 일층 단이 무너졌다.
일층단 별로 모아 노구밥(산천의 신령에게 제사하기 위하여 노구솥에 지은 밥)을 정결히 담아 놓고 부인은 단하에 궤좌( 坐: 꿇어앉음)하고 주부는 단상에 궤좌( 坐)하여 분향 후 축문을 내어 옥성으로 축수할 제, 그 축문(祝文)에 하였으되,
"유세차갑자년 갑자월 갑자일에 대명국 동성문 내에 거하는 유심은 형산 신령 전에 비나이다. 오호라 대명 태조 창국공신지손이라 선대의 공덕으로 부귀를 겸전하고 일신이 무양하나 연광(年光 : 나이)이 반이 넘도록 일점 혈육이 없었으니 사후 백골인들 뉘라서 엄토하며 선영 행화를 뉘라서 봉사하리오. 인간에 죄인이요, 지하에 악귀로다. 이러한 일을 생각하니 원한이 만심이라 이러한 고로 더러운 정성을 신령 전에 발원하오니 황천은 감동하와 자식 하나 점지하옵소서."
빌기를 다함에 지성이면 감천이라 황천인들 무심할까. 단상의 오색 구름이 사면에 옹위하고 산중에 백발 신령이 일절히 하강하여 정결케 지은 제물 모두 다 흠향한다. 길조가 여차하니 귀자(貴子)가 없을쏘냐.
빌기를 다한 후에 만심 고대하던 차에 일일은 한 꿈을 얻으니, 천상으로서 오운이 영롱하고, 일원 선관이 청룡을 타고 내려와 말하되,
"나는 청룡을 차지한 선관(仙官)이더니 익성이 무도한 고로 상제께 아뢰되 익성을 치죄(治罪)하야 다른 방으로 귀양을 보냈더니 익성이 이 길로 합심하여 백옥루 잔치 시에 익성과 대전한 후로 상제 전에 득죄하여 인간에 내치심에 갈 바를 모르더니 남악산 신령들이 부인 댁으로 지시하기로 왔사오니 부인은 애휼(사랑하고 불쌍히 여김)하옵소서."
하고 타고 온 청룡을 오운간에 방송하며 왈,
"일후 풍진(전쟁) 중에 너를 다시 찾으리라."
하고 부인 품에 달려들거늘 놀라 깨달으니 일장춘몽(一場春夢) 황홀하다.
정신을 진정하여 주부를 청입하여 몽사를 설화하되 주부 즐거운 마음 비할 데 없어 부인을 위로하여 춘정을 부쳐두고 생남하기를 만심 고대하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이 찬 연후에 옥동자를 탄생할 제, 방안에 향취 있고 문밖에 서기가 뻗질러 생광은 만지하고 서채는 충천한 중에 일원 선녀 오운 중에 내려와 부인 앞에 궤좌하여 백옥 상에 놓인 과실을 부인께 주며 하는 말이,
"소녀는 천상 선녀옵더니 금일 상제 분부하시되 자미원 장성이 남경 유심의 집에 환생하였으니 네 바삐 내려가 산모를 구완하고 유아를 잘 거두라 하시기로 백옥병의 향탕수를 부어 동자를 씻기시면 백병이 소멸하고
유리대(유리로 만든 주머니)에 있는 과실 산모가 잡수시면 명이 장생불사(長生不死)하오리다."
부인이 그 말을 듣고 유리대에 있는 과실 세 개를 모두 쥐니 선녀 여쭈오되.
" 이 과실 세 개 중에는 부인이 잡수시고 또 하나는 공자를 먹일 것이요, 또 한 개는 일후에 주부가 잡수실 것이니 다 각기 임자를 옥황께옵서 점지하신 과일을 다 어찌 잡수시리까?"
향탕수를 부어 한 개를 잡순 후에 옥동자를 채금 속에 뉘여 놓고 부인께 하직하고 오운 속에 싸여 가니 반공에 어렸던 서기(瑞氣) 떠나지 아니하더라.
부인이 선녀(仙女)를 보낸 후에 일어나 앉으니 정신이 상쾌하고 청수한 기운이 전일보다 배나 더하더라.
주부를 청입하여 아기를 보이며 선녀의 하던 말을 낱낱이 고하니 주부 공중을 향하여 옥황께 사례하고 아기를 살펴보니 웅장하고 기이하다. 천정(天庭 : 양미간)이 광활하고 지각(얼굴의 바탕)이 방원
하여 초상(초생달)같은 두 눈썹은 강산 정기 쏘였고 명월 같은 앞가슴은 천지 조화 품었으며, 단산의 봉의 눈은 두 귀밑을 돌아보고 칠성에 쌓인 종학 용준용안(잘생긴 얼굴) 번듯하다. 북두칠성 맑은 별은 두 팔뚝에 박혀있고 뚜렷한 대장성이 앞가슴에 박혔으며, 삼태성 정신별이 배상에 떠 있는데, 주홍으로 새겼으되 '대명국 대사마 대원수'라 은은히 박혔으니 웅장하고 기이함은 만고에 제일이요, 천추에 하나로다.
주부 기운이 쇄락하여 부인을 돌아 보아 왈,
" 이 아해 상을 보니 천인적강(천상의 사람이 인간계에 귀양옴) 적실하고 만고 영웅 분명하며 전일 황상께옵서 도읍을 옮기고자 하여 창해국 사신 임경천더러 물으시니 임경천이 아뢰기를 북두정기는 남경에 하강하고 자미원 대장성이 황성에 떨어졌으니 미구에 신기한 영웅이 나리라 하더니 이 아해가 적실하니 어찌 아니 즐거우리까 오래지 아니하여 대장 절월을 요하에 횡대하고 상장군 인수를 금낭에 넌짓 넣고 부귀영화는 선영에 빛내고 맹기영풍은 사해에 진동할 제 뉘 아니 칭찬하리오. 산신은 깊은 은덕 사후에도 난망이요 백골인들 잊을쏘냐."
이름은 충렬이라 하고 자는 성학이라 하다.
세월이 여류하여 칠 세에 당함에 골격은 청수하고 청명은 발췌하여 필법은 왕희지요, 문장은 이태백이며 무예장략은 손오에게 지내더라. 천문지리는 흉중에 갈마두고(모아 두다) 국가 흥망은 장중에 매였으니 말달리기와 용검지술은 천신도 당치 못할레라
오호라 시운이 불행하고 조물이 시기한지, 유주부 세대 부귀 지극하더니 사람이 흥진비래가 미쳤으니 어찌 피할 가망이 있을쏘냐. (후략)
요점 정리
작자 : 미상
연대 : 미상
배경 : 공간적 : 유심 일파와 정한담 일파가 각축을 벌이는 명나라 조정과 중국 대륙
시간적 : 허구적 시간(병자 호란 후의 조선 후기 역사적 시간이 상징화됨)
사상적 : 불교 사상(유충렬의 출생과 구출, 무예 연마 과정), 유교사상(국가와 군주를 위한 입신양명, 집안을 위한 부귀공명)
갈래 : 고대 국문 소설, 군담 소설, 영웅 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문체 : 번역체, 문어체
주제 : 유충렬의 간난(艱難 : 몹시 힘들고 고생스러움)과 영웅적인 행적, 실세 계층의 세력 회복 의지와 국난 극복 의식
의의 : '조웅전'과 함께 조선 후기 대표적인 영웅 군담 소설
작가 의식 : 병자호란때 당한 국가적 고통과 패배에 대해 소설을 통한 복수 의식과 정한담과 당쟁에서 패배한 집안이 유충렬에 와서 지위를 회복하는 것은, 조선 후기 당쟁에서 몰락한 계층의 실세 회복의식의 반영
출전 : 완판본 유충렬전
줄거리 : 명나라 영종 연간에 정언주부(正言注簿)의 벼슬을 하고 있던 '유심'은 늦도록 자식이 없어 한탄하다가 남악 형산에 치성을 드리고 신이한 태몽을 꾼 뒤 아들을 낳아 이름을 충렬이라 짓고 키운다. 이때 조정의 신하들 중에 역심(逆心)을 품은 정한담·최일귀 등이 가달의 침입에 대한 유심의 유화적 입장을 문제삼아 정적(政敵)인 유심을 모함하여 귀양보내고, 유심의 집에 불을 질러 충렬 모자마저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충렬은 천우신조로 정한담의 마수에서 벗어나 많은 고난을 겪다가 은퇴한 재상 강희주를 만나 사위가 된다. 강희주는 유심을 구하려고 상소를 올렸으나 정한담의 공격을 받아 귀양을 가게 되고, 강희주의 가족은 난을 피하여 모두 흩어진다. 충렬은 강 소저와 이별하고 백용사의 노승을 만나 무예를 배우며 때를 기다린다. 이 때 남적과 북적이 반기를 들고 명나라에 쳐들어오자 정한담은 자원 출전하여 남적에게 항복하고, 남적의 선봉장이 되어 천자를 공격한다. 정한담에게 여러 번 패한 천자가 항복하려 할 즈음, 충렬이 등장하여 남적의 선봉 정문걸을 죽이고 천자를 구출한다. 충렬은 단신으로 반란군을 쳐부수고 정한담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호왕(胡王)에게 잡혀간 황후·태후·태자를 구출하며, 유배지에서 고생하던 아버지 유심과 장인 강희주를 구한다. 또한 이별하였던 어머니와 아내를 찾고, 정한담 일파를 물리친 뒤 높은 벼슬에 올라서 부귀 영화를 누린다.
본문에 수록된 부분은 소설의 처음으로 유충렬의 가계(家系)·기자 정성(祈子精誠)·비범성이 나타나 있다.
구성 :
어지러운 시대에 영웅의 출현 예고
누대 명문 집안에서 자식이 없는 슬픔
기자 정성(祈子 精誠)
천상에서 적강한 비범한 인물의 탄생
태어난 주인공의 비범성
(교과서의 지문은 전체 구성 단계상 발단에 해당함)
'유충렬전'은 '주몽신화(朱蒙神話)'에서 이미 그 구조가 확립된 영웅의 일생을 바탕으로 한 전형적인 귀족적 영웅 소설이다. 이 작품을 영웅의 일생을 정리해 보면
(가) 현직 고위 관리 유심의 외아들로서,
(나) 부모가 산천(山川)에 기도하여 늦게 얻은 아들이며, - 발단
(다) 천상인(天上人)의 하강(下降)이기에 비범한 능력을 지녔고,
(라) 간신 정한담의 박해로 죽을 고비에 처했다가,
(마) 구출자인 강희주를 만나 그 사람의 사위가 되고, - 전개
(바) 강승상도 정한담을 규탄하다가 귀양가고 충렬은 아내와 헤어져 광덕산 도승을 만나 도술을 배운 다음 갑옷과 용마, 보검을 얻는다 - 위기
(사) 정한담이 외적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그 위기를 극복하고 - 절정
(아) 충렬은 잡혀간 황후, 태자를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부모와 아내, 장인을 구하며, 천자는 큰 벼슬을 내리고 고귀한 지위에 올라 부귀를 누렸다. - 결말
특히 '유충렬전'의 첫부분에는 출생 과정에서 유충렬이 천상계(天上界)에서 자미원 장성으로서 익성[정한담]과 싸운 바 있다는 작품 전체의 전개에 대한 복선(伏線)을 제시하여 두 인물이 지상계(地上界)에서 대결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기타 :
① 조선 후기 소설중 '조웅전'과 함께 대표적인 영웅 소설이다.
② 영웅 소설은 평민 영웅 소설과 귀족 영웅 소설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작품 귀족 영웅 소설의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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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직 <혈(血)의 누(淚)>
일청전쟁(日淸戰爭)의 총소리는 평양 일경이 떠나가는 듯하더니, 그 총소리가 그치매 사람의 자취는 끊어지고 산과 들에 비린 티끌뿐이라.
평양성의 모란봉에 떨어지는 저녁 볕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저 햇빛을 붙들어매고 싶은 마음에 붙들어매지는 못하고 숨이 턱에 닿은 듯이 갈팡질팡하는 한 부인이 나이 삼십이 될락말락하고, 얼굴은 분을 따고 넣은 듯이 흰 얼굴이나 인정 없이 뜨겁게 내리쪼이는 가을 볕에 얼굴이 익어서 선앵둣빛이 되고, 걸음걸이는 허둥지둥하는데 옷은 흘러내려서 젖가슴이 다 드러나고 치맛자락은 땅에 질질 끌려서 걸음을 걷는 대로 치마가 밟히니, 그 부인은 아무리 급한 걸음걸이를 하더라도 멀리 가지도 못하고 허둥거리기만 한다.
남이 그 모양을 볼 지경이면 저렇게 어여쁜 젊은 여편네가 술 먹고 한길에 나와서 주정한다 할 터이나, 그 부인은 술 먹었다 하는 말은 고사하고 미쳤다, 지랄한다 하더라도 그따위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아니할 만하더라.
무슨 소회가 그리 대단한지 그 부인더러 물을 지경이면 대답할 여가도 없이 옥련이를 부르면서 돌아다니더라.
[옥련아, 옥련아 옥련아 옥련아, 죽었느냐 살았느냐. 죽었거든 죽은 얼굴이라도 한번 다시 만나 보자. 옥련아 옥련아, 살았거든 어미 애를 그만 쓰이고 어서 바삐 내 눈에 보이게 하여라. 옥련아, 총에 맞아 죽었느냐, 창에 찔려 죽었느냐, 사람에게 밟혀 죽었느냐. 어리고 고운 살에 가시가 박힌 것을 보아도 어미 된 이내 마음에 내 살이 지겹게 아프던 내 마음이라. 오늘 아침에 집에서 떠나올 때에 옥련이가 내 앞에 서서 아장아장 걸어다니면서, 어머니 어서 갑시다 하던 옥련이가 어디로 갔느냐.]
하면서 옥련이를 찾으려고 골몰한 정신에, 옥련이보다 열 갑절 스무 갑절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잃고도 모르고 옥련이만 부르며 다니다가 목이 쉬고 기운이 탈진하여 산비탈 잔디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가 혼자말로 옥련 아버지는 옥련이 찾으려고 저 건너 산 밑으로 가더니 어디까지 갔누 하며 옥련이를 찾던 마음이 홀지에 변하여 옥련 아버지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 오고, 인간 사정은 조금도 모르는 석양은 제 빛 다 가지고 저 갈 데로 가니 산빛은 점점 먹장을 갈아 붓는 듯이 검어지고 대동강 물소리는 그윽한데, 전쟁에 죽은 더운 송장 새 귀신들이 어두운 빛을 타서 낱낱이 일어나는 듯 내 앞에 모여드는 듯하니, 규중에서 생장한 부인의 마음이라, 무서운 마음에 간이 녹는 듯하여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앉았는데, 홀연히 언덕 밑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리거늘, 그 부인이 가만히 들은즉 길 잃고 사람 잃고 애쓰는 소리라.
[에그, 깜깜하여라. 이리 가도 길이 없고 저리 가도 길이 없으니 어디로 가면 길을 찾을까. 나는 사나이라 다리 힘도 좋고 겁도 없는 사람이언마는 이러한 산비탈에서 이 밤을 새고 사람을 찾아 다니려 하면 이 고생이 이렇게 대단하거든, 겁도 많고 다녀 보지 못하던 여편네가 이 밤에 나를 찾아 다니느라고 오죽 고생이 될까.]
하는 소리를 듣고 부인의 마음에 난리중에 피란 가다가 부부가 서로 잃고 서로 종적을 모르니 살아 생이별을 한 듯하더니 하늘이 도와서 다시 만나 본다 하여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질렀더라.
[여보, 나 여기 있소. 날 찾아 다니느라고 얼마나 애를 쓰셨소.]
하면서 급한 걸음으로 언덕 밑으로 향하여 내려가다가 비탈에 넘어져 구르니, 언덕 밑에서 올라오던 남자가 달려들어서 그 부인을 붙들어 일으키니, 그 부인이 정신을 차려 본즉 북두갈고리 같은 농군의 험한 손이 내 손에 닿으니 별안간에 선뜩한 마음에 소름이 끼치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겁결에 목소리가 나오지 못한다.
그 남자도 또한 난리중에 제 계집 찾아 다니는 사람인데, 그 계집인즉 피란 갈 때에 팔승 무명을 강풀 한 됫박이나 먹였던지 장작같이 풀 센 치마를 입고 나간 터이요, 또 그 계집은 호미자루, 절굿공이, 다듬잇방망이, 그러한 셋궂은 일로 자라난 농군의 계집이라, 그 남자가 언덕에서 소리하고 내려오는 계집이 제 계집으로 알고 붙들었는데, 그 언덕에서 부르던 부인의 손은 명주같이 부드럽고 옷은 십이승 아랫질 세모시 치마가 이슬에 눅었는데, 그 농군은 제 평생에 그 옷 입은 그런 손길을 만져 보기는 고사하고 쳐다보지도 못하던 위인이러라.
부인은 자기 남편이 아닌 줄 깨닫고 사나이도 제 계집 아닌 줄 알았더라. 부인은 겁이 나서 간이 서늘하고 남자는 선녀를 만난 듯하여 흥김, 겁김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숨소리는 크고 목소리는 아니 나온다. 그 부인의 마음에, 아까는 호랑이도 무섭고 귀신도 무섭더니, 지금은 호랑이나 와서 나를 잡아먹든지 귀신이나 와서 저놈을 잡아가든지 그런 뜻밖의 일을 기다리나, 호랑이도 아니 오고 귀신도 아니 오고, 눈에 보이는 것은 말 못 하는 하늘의 별뿐이요, 이 산중에는 죄 없고 힘 없는 이 내 몸과 저 몹쓸 놈과 단 두 사람뿐이라.
사람이 겁이 나다가 오래 되면 악이 나는 법이라. 겁이 날 때는 숨도 크게 못 쉬다가 악이 나면 반벙어리 같은 사람도 말이 물 퍼붓듯 나오는 일도 있는지라.
[여보, 웬 사람이오. 여보, 대답 좀 하오. 여보 남을 붙들고 떨기는 왜 그리 떠오. 여보, 벙어리요 도둑놈이오? 도둑놈이거든 내 몸의 옷이나 벗어 줄 터이니 다 가져가오.]
그 남자가 못생긴 마음에 어기뚱한 생각이 나서 말 한마디 엄두가 아니 나던 위인이 불 같은 욕심에 말문이 함부로 열렸더라.
[여보, 웬 여편네가 이 밤중에 여기 와서 있소? 아마 시집살이 마다고 도망하는 여편네지. 도망꾼이라도 붙들어다가 데리고 살면 계집 없느니보다 날 터이니 데리고 갈 일이로구. 데리고 가기는 나중 일이어니와…… 내가 어젯밤 꿈에 이 산중에서 장가를 들었더니 꿈도 신통히 맞힌다.]
하면서 무지막지한 놈의 행위라 불측한 소리가 점점 심하니, 그 부인이 죽어서 이 욕을 아니 보리라 하는 마음뿐이나, 어느 틈에 죽을 겨를도 없는지라.
사람이 생목숨을 버리는 것은 사람이 제일 설워하는 일인데, 죽으려 하여도 죽지도 못하는 그 부인 생각은 어떻다 형용할 수 없는 터이라.
빌어 보면 좋을까 생각하여 이리 빌고 저리 빌고 각색으로 빌어 보니 그놈의 귀에 비는 소리가 쓸데없고 하릴없는 지경이라. 언덕 위에서 웬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데 무슨 소린지는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