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 일 / 박선애
친구 정이는 집 가까운 ㅇㅇ 진도 지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10여 전에 해남에 있는 본점으로 발령 나자 더이상 미루지 못하고 운전 면허증을 땄다. 하지만 직원 차를 얻어 타거나 시외버스를 이용하며 불편을 겪으면서도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그때마다 “너도 하는 걸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돼야.”라고 내 속을 들쑤셨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나보다 달리기를 잘했기 때문에 운동 신경이 더 낫다는 것이다. 요즘의 체육 시간을 가만히 보면 다양하고 재미있는,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활동을 많이 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늘 꼴등만 하던 달리기, 힘껏 달려가다가도 발판 앞에서는 겁이 나서 우뚝 서 버리던 뜀틀 넘기 등만 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체육 부진아였다. 때로는 못난 것이 남에게 힘이 되기도 한다. 정이도 2~3년 전부터 운전하고 다닌다.
운동 신경이 둔한 데다 겁이 많아서 운전은 엄두도 못 냈다. 20대 후반에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가 학생들의 등하원을 도우려면 운전 면허증이 필요하다고 배우기 시작했다. 그걸 보니 나도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에 하는 것이니 1종 보통 면허에 도전하기로 했다. 나중에 후배가 어디에 쓰려고 1종을 땄냐고 묻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잘난 척하려고.”라고 대답하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학과 시험공부를 하는데 자동차 구조 분야는 너무 생소한 내용이라 어려웠다. 쓸 데도 없는 1종을 한 것이 후회되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문제는 기능이었다. 보충 수업하느라 방학의 반을 넘겨 버려서 교습을 받을 시간이 약 15일밖에 되지 않았다. 1톤 트럭에 올라 강사가 시키는 대로 해 보지만 핸들은 왜 그렇게 무겁고 빡빡하던지 힘이 들었다. 남매들 중에서 제일 늦게 시작했지만, 내가 할 마음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기특하고 신기하게 여겼다. 언니는 내가 제대로 하는지 궁금하고 못 미더워 남동생을 염탐하러 보냈다. 동생은 “온몸으로 핸들을 돌리고 있는 것을 보니 짠합디다.”라고 하면서 손으로만 해도 될 것을 어쩌면 그렇게 어렵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잔뜩 긴장한 채 선에 걸리진 않는지 창문으로 내다보려고 몸을 문짝에 딱 붙이고 배우느라 한동안은 왼쪽 어깻죽지가 시커멓게 멍들어 있었다.
기능 시험은 코스와 주행 두 가지를 봐야 한다. 코스는 얼마큼 익혔지만 주행은 하다만 채로 시험날이 되었다. 배운 대로 한다고 했는데 마지막 에스(S) 자 코스에서 후진하다 선에 걸려서 주행은 해 보지도 못했다. 몇 달 후에 겨우 날을 잡아 다시 봤지만 코스만 통과하고 이번에는 주행에서 떨어졌다. 여름 방학에 재도전했어도 이제 배운 지도 오래되어 잘할 수가 없었다. 수업을 맡기고 연가를 낼 주변도 못 되니 다시 겨울 방학에야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거의 1년이 걸려서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면허증은 땄지만 운전할 마음이 안 생겼다. 번잡한 도로에 차를 가지고 나갔다가 오가지 못해 쩔쩔매는 성가신 꿈을 꾸기도 했다.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에서만 살았다면 아마 지금도 못 했을 것이다.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시골에서 출퇴근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더는 견디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어렵게 운전을 시작했다. 운전하면 신세계가 열린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불안하고 무서웠다. 처음에는 학교까지만 겨우 가다가 시간이 지나니 읍으로, 나중에는 가까운 도시까지 나갈 수 있었다. 그 사이 주변 사람들에게 놀림도 받고, 난폭한 운전자한테 생전 듣지 못한 욕도 먹었다.
아버지는 같이 사는 내가 운전을 하자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호기심이 많았다. 새로운 것을 얼른 받아들이고 배우는 데도 적극적이었으며 나이가 들어도 늘 당당했다. 그런 아버지도 어쩔 수 없이 부러워하기만 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노래였다. 여행을 좋아해서 동네 사람들, 친구들을 모아 여행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관광버스 안에서 노래자랑이 벌어지면, 한 곡 멋들어지게 불러 주목받아야 직성이 풀릴 텐데 그 능력은 타고나지 못해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또 하나는 운전이었다. 시골까지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이미 아버지는 연세가 너무 많았다. 조금만 젊었으면 운전을 배웠을 거라고 안타까워했다. 옆 마을 바닷가에서 자가운전으로 여행 다닌다는 노부부를 만나고 온 날은 더했다. 어느 날 부모님과 나들이하는 나를 본 먼 친척이 자신의 차에 부모님을 한 번만이라도 태워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부러워하는데 너무 슬퍼 보였다. 운전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같이 차 타고 나가면 신나서 창밖 풍경을 보며 계속 아는 것을 설명해 주거나, 모르는 것을 궁금해했다. 때로는 어머니와 내가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 사납다고 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가 참 그립다.
올해 새로 옮긴 학교까지는 차로 30분 걸린다. 만약 운전을 못 했다면 어떻게 다녔을까.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다. 아마 몇 번 갈아타면 갈 수는 있을 것이다. 또는 학교 앞에 역이 있으니 시내버스로 목포역까지 가서 기차로 가도 될 것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새벽부터 나서서 서둘러도 시간에 맞추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요즘에는 출근길에 만나는 자연이 아주 볼 만하다. 산기슭과 길가, 밭, 마을 등 천지가 꽃이다. 오가며 몇 가지나 보았을까 세어 보기도 한다. 저수지도 있다. 아침이면 수면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물가의 버드나무는 연둣빛을 뽐낸다. 저수지 옆 길에는 벚꽃이 한창이다. 오늘은 좀 일찍 출발했더니 여유가 있어 차에서 내려 차분히 구경했다. 그동안 못 봤는데 맞은편에 작은 저수지가 또 하나 있고 거기에는 한쪽에 습지가 있다. 그곳에 재두루미(정확한지는 모르는데 아무튼 천연기념물처럼 귀해 보인다.)가 늘씬한 다리로 우아하게 서 있기도 하고 날개를 쫙 펴고 하늘을 날기도 한다. 물에 비친 나무와 동산이 사진 속에서는 더 선명하고 아름답다. 운전을 배우지 않았다면 이런 것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운전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체육 부진아라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것이 잘한 일이다.
첫댓글 차가 없으면 너무 불편할 것 같습니다. 중고 차를 처음 사서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을 태워 드렸던 생각이 나네요. 이제 어른이 다 됐다고 좋아하셨는데, 그게 벌써 20년 전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생업에는 운전이 꼭 필요하지요? 히히. 저도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처음 운전 배울때는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나도 1종 운전면허증을 받았는데 거의 써 먹을 일이 없네요.
저도 운전 하는 저 자신이 기특해요.
1종 면허라니요. 박선애 선생님과 어울리지 않아서 놀랐어요. 그래도 따서 손해될 것은 없어요.
저도 1종. 하하!
왕초보 시절 사고 내는 악몽을 얼마나 많이 꾸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2종 오토로 면허증을 땄는데 보건소 직원이 이걸 어디다 쓰냐고 당장 바꿔오라고 꾸지람하던 생각이 나네요. 운전을 하면 세상 반을 가지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긴 호흡으로 쓰는 샘 글, 배우고 싶어 꼼꼼히 읽어요.
1종보통, 대단 하시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 몸처럼 잘 숙달 하서서 맘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운전으로 부모님께 효도했군요.
부럽습니다.
그런데 1종이라니, 대반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