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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수필 창작 어떻게 할 것인가-김상태
저- 김상태
출- 풀흔 사상(2004. 9.15. 281)
독정-2019. 10. 11.금
<가을이라네>김상태
당신은 가을이라느 녀석을 본일이 있나? 하지만 녀석을 아무도 본 사람은 없단다. 그런데도 나는 녀석을 동구밖 어디쯥에선가 맞닥뜨릴 것만 같다. 조금은 신비롭고 침착하고 외롭고 오만하고 부드러운 미소도 늘 입가에 띄고 있을 녀석이다. 가을의 창백하고 비쩍 마른이 녀석은 항상 어딘가 외출중이다. 황극 물결을 이랑아랑 휘젓고 다니다가 문득 우두커니 서 있기도 하고 산등성이 고갯마루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가 하면, 아름드리 밤나무 밑에서 영근 밤톨을 줍느라 정신을 잃를 때도 있다. 늦은 저녁 동구 밖 같은 데서 사름을 만나면 조용히 한켠으로 비켜선다. 얼굴은 외로 꼰 채. 녀석은 좀처럼 얼굴을 정면으로 주지 않는다. 내가 책을 보고 있으면 녀것은 어깨 너머로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때 그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 아득히 펼쳐진 지평선. 티없이 맑은 푸른 하늘이 그와 나의 사이에 들어온다 나느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리곤 그는 가버린다.<가을이라네>김상태
<바늘의 문화는 끝나는가>이어령
바늘의 길은 안방으로 향해 있다. 그 길에는 아이를 낳고 기르며 끝없이 갈라지는 것. 떨어져 나가는 것, 그 마멸과 단절을 막아내는 결합의 의지가 있다.
바느질은 칼집ㄹ고 달리 두 동강이 난 것을 하나로 함치게 한다. 바늘의 언어는 융합과 재생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개구쟁이 아이들이 밖에 나가 싸우고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바늘을 들고 그 터진 옷깃이나 옷고름짝을 기워준다. 아니다.
그런 싸움이 아니라. 시간은 가만히 얌전하게 있어도 인간의 옷을 해지게 만든다. 어머니는 이 시간의 마멸과 싸우기 위해 칼보다 더 예리한 그 바늘 끝은 세우는 것이다. 그 바늘 끝에에서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정이 흘러내린다,
남자들이 칼을 찼을 때 용감해 보이는 것처럼 여자는 화장대가 아니라 만짇고리 옆에서 바느질 하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바느질하는 모습은 수도사와 같은 경건한 자세를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연거푸 의문 문장을 쓰면서 자기 말을 확인시켜 준다. 이 의문문을 쓸 때는 약간 거리를 두면서 그 말이 다만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
<신촌 로터리>고임순
고서, 골동 도자기, 사화 작품들이 진열된 인사동 거리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랑ㄴㅈ혀 준다. 3데ㅐ를 이어 성헙하는 전북지업사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는 통문관, 낡은 간판이 예스러운 전총 찻집 등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를 연상하게 한다.
<보리>한흑구
솔잎 끝과 같은 새파란 머리를 들고, 하늘 향하여 솟아오르고 있다. 이제 모든 화초는 시심 속의 따스함을 찾아서 다 잡자고 있을 때, 너 보리만은 그 억센 팔들을 내뻗치고 새말간 얼굴로 생명의 보금자리를 깊이 뿌리박고 자라왔다.
-보리를 의인화해서 쓴 글이다. 직접적 청자는 보리지만 필자가 보리에게 하는 말을 독자로 하여금 엿듣게 한다.
·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그의 친구에게 말했다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 학 중에 재일 중요한 것은 인생학이다.
· 이어령 교수의 <알을 깨는 두 방법>- 통일의 원칙
①알은 불안하다 그래서 달걀을 지고 성 밑을 지나지 못한다는 속담도 생겨 난 것 같다. 알의 껍질은 그렇게 얇고 힘이 없다. 알처럼 파괴되기 쉬운 것은 없다, 그것은 저항하지 못한다. 단지 둥근 모습으로 침묵할 뿐이다, 조금만 굴러도 유리창이 깨지는 그런 소리초자 내지 못한 채 균열이 간다.
-이 문단의 소주제는 “알은 깨어지기 쉽다.”이다. 이 말을 강조하기 위해여러ㅗ 뒷받침문장이 쓰였다.-
②그러나 알속에서 생명을 꺼내려는 사람에게는 알의 껍질처럼 두꺼운 것도 없다. 알이 부화하여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을 필요로 하는가? 며칠이고 자리를 /드지 않고 품어 주어야만 한다. 우리가 만약 곡괭이로 벽을 허문다면 그것이 아무리 두/거운 콬크리트라 할지라도 하루 이틀의 노역이면 될 것이다. 육중한 청동의 문이라도 다이너마티트나 산소용접기만 있으면 금시 헐어버릴 수 있다
-첫 문단의 소주제가 부정되고 있는 것이 둘째 뭄ㄴ단의 소주제다. “샘여을 거내려는 살마에겐 알의 껍질이 두껍다”는 것이다.-
③ 생명을 꺼내는 알의 껍질은 얼마나 단단한가? 적어도 그 껍질에 금이 가려면, 그래서 그 벽이 무너져 새의 노란 부리와 솜털이 바깥 공기 속으로 나타나려면, 무수한 밤과 낮을 지나야만 한다. 알을 깨어 먹으려는 사람에겐 그껍직이 연약하게만 보이지만, 알에서 생명을 꺼내려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콘크리트 벽보다도 두껍고 단단하다.
-둘째 문단의 뜻을 더 보강하고 있다. 일종의 점층법의 효과다 -
④사물들은 알처럼 모두 껍질을 가지고 있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선, 그것들은 얇은 피막 하나로 자신의 생명과 의미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물의 의미를 거내기 위해서는 폭력을 쓴다, 아주 쉬운 방법으로 그 의미를 캐내려 한다, 저것은 구름이고, 이것은 꽃이고, 그것은 강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알을 두드려 깨는 일과도 같다.
-알에서 생명을 꺼내는 일의 의미를 일반 사물로 확장해 간다.-
⑤ 다만 시인만이 기다를 줄 안다, 사물의 의미를, 그 생명의 의미를 꺼내기 위해서는 며칠이고 참을성 있게, 그것을 품어 주어야 한다. 시인들은 그 부화의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과 역사의 의미들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⑥ 세계는 그렇게 해서 그가 감추었던 노란 부리와 털복숭이의 몸을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이 스스로 병아리처럼 소리는 내는 것을 듣는다. 의미의 알이 얼마나 두껑누 껍질을 가졌는가를 알았을 때 비로소 당신은 시인이 된다.
-알이 부화할 때를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자만이 시인이 된다는 뜻이다. 마지막 문단이 주제가 된다. ①~④은 알에 관해서만 말해 필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궁금하다.⑤⑥ 문단에 와서야 필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알을 얘기했던가를 짐작한다. 윗 문단의 소주제들은 큰 주제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고 각기 다른 소주제를 가지고 있어 독자가 싫증을 느낄 수 없게 다양한 소주제들이 전체의 주제를 위해 조화를 이룬 통일의 원칙을 지킨 글이다.
· 해묵은 식탁-오래된 식탁으로 바꿈이 좋다.
세월 여려움보다 많은 어려운 세월을 함께 해온 식탁이라해야 표현이 맞다.
· 외딴 수상석 위에서 주둥이를 뒷가슴 깃 속에 틀어박고 깽지발로 한가히 서서 졸고 있는 늙은 갈매기나마 한 마리 눈에 뜨인들 이렇게도 무색하지는 않을 것을<바다>계용묵
⑥얼굴을 들 수 없다. 얼굴이 안 선다. 볼 낮이 없다. 얼굴에 먹칠을 한다. 등 안식으로도 쓴다. 이 차리는 바로 한국 사람이 서양 살마보다 얼굴로 대변되는 면목이다 체면을 한결 소중히 여긴다느 의식구조의 소치다. 얼굴은 무러 정의할 수도 없다. 손에 쥘 수도 없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수의 사람 앞에 노출됨으로써 도렷하게 존재한다. 한국인에게 있어 그것은 재산보다 한결 소중하고 그것 때ㅔ문에 한국인은 죽음도 불사한다. 경우에 따라 그것은 내각을 붕괴시키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목숨보다 소중한 체면>이규태
· 팔에 안긴 아기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와 같이 종이에 싼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하숙집을 찾아가 화병에 물을 갈아 부은 뒤에 가지고 가던 꽃 중에 두 송이를 꽂아놓았다. 그리고 딸을 두고 오는 어머니같이 뒤를 돌아보며 그 집을 나왔다.<장미>피천득
갈릴리 바다의 빛은 그렇게도 푸를까? 단물이 고이 ㄹ대로 고인 능금 송이가 잎 드문 가지에 젖꼭지같이 처졌다. 가들을 생각지 않은 것은 사렁 아래 드레드레 드리운 청포도의 사연인 듯 싶다<청포도의 사상> 이효석
쾌소. 쾌식, 쾌통. 기분좋게 웃고 즐겁게 먹고 시원하게 배설하는 것이 심신건강과 장수 비결이다. <삼쾌>장덕순
· 개나리라는 말은 일본 순경을 뜻하는 은어로 쓰여 꽃 이름치고는 인상이 험하다. 일본 관헌 뒤에서는 개하고 불렀고 앞에서는 존칭으로 나리라 불러 합치면 개나리가 되었다. 이상제 선생이 강연을 할 때 일본 형사들이 군중 속에 끼여든 형사를 보고 먼산을 보듯 “허 개나리가 만발하였구나.‘해서 폭소가 터졌다는 일화도 있다.<개나리, 문명의 봄을 몰고 오는 피플 피워>이어령
·해가 지려 했다. 차가운 설원은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침묵으로 그 존재를 드러냈다. 그 침묵을 바람이 살짝 건드리고 지나갔다. 전신주 위에 앉은 까마귀들이 달을 올려다 보았다. 길 양쪽에 일렬로 늘어선 집들은 흐린 불빛을 알처럼 품고 있었다.
-기술적 묘사는 주로 신문 보도나 설명서 등에 많이 쓰이는 반면에 암시적 묘사는 소설이나 수필 등에 많이 쓰인다. 따라서 기술적 묘사는 정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한 주관성이 배제된 어휘를 써야 한다. 또 직유나 은유를 써서 생생한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술집보다 더 어두운 그늘이 깃들인 저녁과 함께 있은 냄새, 청년은 사실 언제나 늦저녁철머 그늘진 이 몰로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술잔에서 풍기는 술향기를 맡으며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냄새를 생각해내는 것이었다<그늘>황순원
-청년이 느끼는 이미지를 통하여 할아버지를 그리고 있다. -
·그 기름ㅎ나 얼굴에 그다지 고생으로 해 생긴 주름살 같지 않은 잔주름이 몇 개 가로 건너간 이마와, 노르께한 수염발이 잡힌 코밑과 어딘가 전날에 소홀하지 않는 지체 속에서 생활해왔다는 위엄을 발산하는 듯한 턱. 그것은 곁ㅇ에서 보기에 고독하고 쓰라리기까지 한 고독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남도사내는 남도의 어떤 몰락한 양반의 후예의 하나인 것만 같다. 상투를 갓지른 듯한 거슬려 뵈는 머리털과 망건 자리가 잡혔던 듯 다른 데보다 좀 흰듯한 머리의 아랫 둘레<그늘>황순원
-남도 사내도 그의 모습을 자세하고 묘사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특징을 잘 잡아내고 있어서 눈앞에 남소 사내를 떠올릴 수 있다. 암시적 묘사다. 독자가 감각적으로 경헌한 것 같은기분을 느끼게 한다.
·약을 달이는 동안 내내 누릿하고 매음한 냄새는 집안 곳곳에 스며 들고 ㅂ1 ㅣ닺ㄴ개구리의 살과 뼈는 독한 연기로 피어올라 마침내 낙짅처럼 무겁고 끈끈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빈혈증과 구역질로 헐떡이며 건성의 피부에 더럽게 피어나는 버짐과 잔주름으로 거울 앞에 매달렸다 얼룩은 변질된 스테인레스로 기억보다 독하고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어제와 다름없이 잘 되었다. 부엌 선반의 식?ㅖ는 다섯 시 반을 가치키고 밥은 한뜸 들어가는 중이고 노릇노릇 구워진 생선에서는 비늘 타는 연기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서향의 창으로 비껴든 햇빛은 젖은 도마의 잘게 파린 ㅎ롬바다 끼인 찌꺼기를 뒤져내고 칼빛을 죽이며 개수대의 물에 굴절되어 물 속의 뿌연 앙금을 떠올렸다. <저녁의 게임>오정희-필자는 후각과 시각으로 감지된 것을 묘사내 내고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 경북 상구군편-구비문학 채록이다. 서사 형태이다.
어떤 살마이 아바지 아니 한 70되고요. 아들은 한 50됐어요. 아들은 하도 효자 중에 그런 효자가 없는데 아바이가 어?떻게 용렿하던지 아들을 만날 상투 쥐고 뚜디리 패요. 하루는 아들이 실컷 울자 아바이가
“이누무 자석이 울기는 와이레 우노? 눈에다 마 재를 한 웅큼 집어옇고 아가빠리에다 흙을 집어여뿔라. ”이카그덩.
“아부지 그걸기 아입니더, 아부지가 이전에는 날 때릴 때는 아푸더이 우짠지 아푸지를 않으이 아부지가 아매 곧 별세하지싶어 웁니더.”이카이
“응, 무라카노? 헤이헤이 내가 니를 기여이 때렸다. 내가 이런 효자 자석을 때라다이. 이누무 성질 참 덜분 성질이다, 내 인자 다시 안 때리께이. 때린게 후회 막금하다. 그거 잘못했다.”그뒤로 부텀 어떠큼 그 부자간에 좋은지, 아바이도 아들을 그저 못 애끼가 애가 마리고 잘못 한기 있어도 “그거는 그래가 안될끼다.”이카고 또 아들도 그 아바이가 샌정에 선내는 걸 몬 보겠어요. 그러이 그 뒤로는 아바이가 개과천선해서 아들도 조심해서 부모 봉양하고 지냈어요.
<행위와 시퀀스>
①나는 조반을 먹고 전철 타고 학교 갔다
②교실에 가니 많은 친구들이 있어 뒷자리에 앉았다.
③강의가 끝나자 영화와의 약속을 생각하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①②③문장을 보다 큰 단위로 묶은 것이다 .문장보다 더 큰 단위로 묶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시퀀스라 한다. 시퀀스는 큰 단위로 만들 수도 있고 작은 단위로 만들 수도 있다.
· 하면이 성급한 자의 음식이라는 것은 표면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밥은 주식이고 떡은 별식이기 때문에 기호론적으로 볼 때 그 대립구조는 일상성과 비일상성으로 구별 된다 가령 우리가 누구의 집에 갔을 때 떡이 나오게 되면 으레이 “웬 떡이냐?묻는다, 무슨 날이냐는 물음이다. 밥보고 웬 밥아냐 할 사람은 없다. 따라서 웬 떡이라는 말은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이나 보통 때는 잘 일어나지 않는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놀라움을 표시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성가 속의 문지방>이어령
빗방ㄹ울이 수직으로 낙하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는 것은 빗방울을 아래로부터 위로 올려다볼 때 이야기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하늘하늘 춤추듯 흐느적거리며 땅을 향해 내려간다. 스물 한층을 다 오르고 나면 다리가 뻣뻣해지고 숨이 가빠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지간하면 견딜 수 있다. 문제는 아픔 것이 아니라 머니가 빙빙 도는 일이다, ㄱ?ㅖ단이 나선형으로 이어져 이?ㅆ고, 높이가 그 나선형의 나선당무을 충분히 발휘할 정도로 길다. 그런데 높은 아파트에 살면서 터득한 이런 사실들은 모두 높음을 한껏 껴안고 누리지 않으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일이다. 저는 통유리에 매달리듯 기대어 조금도 두려움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드며 고개를 쑥 내밀고 아래를 보지 않으면 하느작거리는 빗줄기으 훔을 확인할 수 없다. 차들이 길게 꼬리를 이어 흐르는 광경을 비로소 그 흐름의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길게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하려면 자연히 온몸을 통유리에 바작 붙이지 않으면 안된다. 나선의 계단을 오르는 일고 그저 오르기만 하는 것으로 되지 않는사. 이런 계단 오름은 층을 굽이돌 때마다 내가 얼마나 높이 왔는지 밖을 내려다보며 확인하지 않으면 아주 쉽게 지쳐버린다.<고소공포증>정진홍
맣은 사람이 부석사에서 사랑을 떠올리는 이유는 선묘설화덕분일 것이다. 이 절집을 창건한 의상 대사가 당에 유학 갔을 때 유곽의 여인 선묘가 의상에게 반했으나 의상이 본체만체하자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 의상이 돌아오는 뱃길과 의상이 창건한 이 절집을 보호하고 부석(든 돌 선돌)이 되었다는 전설. 지금도 부석사 밑에 용이 살고 있단다.
<사랑과 기다림으로 이어진 부석사 가는 길>정끝별
어째서 바보처럼 좋아지는지 설명 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눈이 오면 어째서 마음이 즐거워지고 훈훈해지는 것인지 설명해 낼 수 없다. 지나가는 발소리마다 귀를 나발 통처럼 열어놓고 남편을 기다리느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따뜻한 정이 있어,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훈훈히 녹여주는 한겨울은 춥지 않다.<겨울밤>노천명
우리는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젃으로 극히 좁은 공간에서 극히 짧은 시간 속에서 극히 작은 시시한 욕망들의 추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상에 대한 의식을 통해서 우리들의 자아, 시시한 욕망들이 새로운 빛에 의해 조명되고 그것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며 해석될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들의 생물학적 삶에 대해 혹은 우리들의 본능적 맹목적 욕망에 대해 재검토가 가능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보다 뜻 있는 그리고 보다 짙은 삶을 살 수 있다.<죽음>박이문
달아나는 여자를 못 봤냐는 한 무리 청년더러 붓다는 “젊은이들이여, 달아난 여자를 찾는 일과 자기 자신을 찾는 일 중 어느 것이 더 보람있는 일인가? 전혀 예상칯 못한 질문을 받고 한동안 멍하게 서 있던 청년들은 ”물론 자신을 찾는 일이 더 보람되겠지요.“했다.
순임금이 스승에게 물었다. “도란 자기 것철머 가질 수 있나요?” “네 몸도 네 것이 아닌데 어떻게 도를 가질 수 있겠냐? 네 몸은 천지가 잠시 맡겨 놓은 것일 뿐이다.”
몸은 내 것이라면 내 의지대로 움직여햐 한다. 그런데 몸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늙고 죽어간다. 자기 마음대로 어쩔 수 없는 것을 과연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그것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면 마음이나 정신이 진정한 나일까?<도대채 누구인가>진현종>철학적 수필이다.
창을 사랑한다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창>김현승
창이 있음으로 멀리 있는 바다를 가까이 끌어다 가슴에 담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고운가. 차창으로 보이는 산, 듥, 강, 집, 사람들 모두가 새롭고 반갑고 정답다. 살아 있는 사람만이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수 있음도 더욱 새롭게 느껴본다. 오늘은 창가에서 한 장의 엽서를 쓴다.<창을 사랑하며>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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