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이 좋아 / 박미숙
‘표고버섯이 났을까?’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이다. 연휴라서 온 큰딸에게 좋은 것은 뭐든 주고 싶다. 바구니를 들고 산으로 올라간다.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이라 나무와 풀이 엉켜 있어서 걸어 다니기 불편하다. 가시에도 찔리니 청바지를 입고 나서길 잘했다. 아, 활짝 핀 것이 몇 개 있다. 살짝 데쳐 무쳐 주면 딸이 잘 먹을 것이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숲속, 참나무에 버섯 종균을 심어서 키운 아주 귀한 버섯이다. 그런데 6~7년이 되다 보니 수확량이 점점 줄어든다. 내년 봄에 다시 종균을 심어햐 할 것 같다.
밤도 주우려고 조금 더 높이 올라갔다. 제피 냄새가 난다. 상큼하다. 잎을 하나 따서 먹어 보니 알싸하다. 다른 해보다 밤이 많이 없다. 내일이 장날이라 기계로 껍질을 벗겨 오려고 했는데 한 되도 안 될 것 같다. 거름도 하지 않고 많이 줍길 기대한 내가 양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상 기후가 밤 수확에도 영향을 끼쳤나 보다. 돌배나무도 열매가 하나도 열리지 않고 잎도 새카맣게 다 타버렸으니.
부지런하지 않아 텃밭까지 가꾸진 못하지만, 사시사철 산에서 나는 것들을 잘 챙겨서 먹는 편이다. 봄에는 두릅과 쑥, 취나물을 캐고 고사리를 꺾어 나물 하고 솔 순으로 술을 담근다. 여름엔 매실로 매실청과 장아찌를 만들며 산딸기를 따 먹기도 한다. 지난겨울에는 나무줄기만 한 칡을 캐어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고 차도 많이 끓여 마셨다. 둥굴레도 있는데 한 번도 캐 보진 않았다. 물을 끓여도 맛있지만, 밥할 때 넣어 먹으면 그렇게 구수하다고 하니 올겨울에는 꼭 해 봐야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귀한 것들을 해마다 이렇게 먹을 수 있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이뿐만 아니다. 광양시는 주민들의 문화 복지에 힘을 많이 쓴다. 해마다 문화 예술 회관에서 유명한 가수들을 초대하여 콘서트를 한다. 부산에서는 입장료가 비싸서 쉽게 갈 수 없었는데, 여긴 5천 원이다. 경비 대부분은 시에서 부담한다. 그 행사에 참여하면서 해바라기, 남궁옥분, 김도향 등 유명한 가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노래하면, 아줌마 부대가 춤추고 손뼉치며 열광하는 분위기에 흠뻑 젖어 보기도 했다. 주민 문화 센터에서 하는 여러 강좌도 모두 무료 수강이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라인댄스(line dance)는 걷기 말고 유일하게 운동하는 시간이라 많이 기다려진다.
다양한 문화 혜택 중 으뜸은 주말 내 놀이터인 도서관이다. 넓은 공간에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그날그날의 상황에 따라 내가 앉고 싶은 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 책 읽을 때는 창가의 원탁과 편안한 의자를, 글 쓸 때는 노트북 전용 자리를 택한다. 그리고 어떤 날은 몸 전체가 다 들어가는 빨간 동굴이 회전의자에 쏙 들어가 앉기도 한다.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 긴 시간 오래 있기 눈치 보이나, 도서관에서는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읽고 싶은 책이 없을 땐 희망 도서 목록을 적어 내면 2주 이내에 사들여 제일 먼저 볼 수 있게 해 주니, 전국에 이런 곳이 몇 개나 있을까 싶다. 1층 북카페(Book Cafe)에는 어르신들이 많다. 주로 신문이나 월간지를 보신다. 간혹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하시는 분도 있다. 도서관을 벗으로 삼아 노후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정년 후 나도 그럴 것 같아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부산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귀농 귀촌을 생각하면서도 쉽사리 결정을 못 하고 있다. 그런데 난 일찌감치 이렇게 터를 잡고 있으니 참 잘했다 싶을 때가 많다. 친구들에게 내가 사는 곳 자랑하기 바쁘다. 마치 광양 홍보대사인 것처럼.
얼마 전에 언니와 형부가 여기로 3박 4일 여행을 왔다. 백운산 자연휴양림에 숙소를 정하고 아침마다 황토 맨발 걷기도 하고 이곳저곳을 방문했다. 여행 첫날, 형부가 “정년퇴직하고 나면 부산 와서 살아라.”라고 했을 때 난 여기가 좋다고 했다. 퇴근 후 매일 만나서 함께 밥도 먹고 산책도 하며 광양의 정취를 느끼게 해 드렸다. 고향을 떠나와서 잘 살아가는 것을 보고 언니도 안심하는 것 같았다.
부산으로 돌아간 형부가 블로그에 쓰신 글을 봤더니 광양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짧은 기간인데도 이곳의 매력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光陽, 빛 광(光)에 볕 양(陽) 지명에서도 느껴지는 밝은 기운이 두 분 마음에도 살포시 내려앉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