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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0강 5장 19절에서 26절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26.05.12(화)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24절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오늘 이제 갈라디아서 열 번째 시간인데요.
우리가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말미암아서 베풀어진 이 자유가 이웃을 섬기기 위한 자유 더 나아가서 이웃의 종이 되기 위한 자유였다.
요런 이야기까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근데 이제 우리가 아 맞구나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베푸신 것이 우리가 이제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자유를 베푸셨구나라는 걸 안다 하더래도 우리의 마음이 늘 그렇게 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근데 이제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바울이 복음적 해답을 이제 제시를 합니다. 그래서 오늘 그리고 다음 주까지 바울이 제시하는 복음적 해답이 어떤 건지 좀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제 먼저 제시하고 싶은 개념은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면 다시 말하면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게 하시고 이웃의 종이 되게 하신다면 어떤 열매가 드러나는가 요걸 중점적으로 볼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이제 전체적으로 내용은 이렇게 됩니다. 16절부터 18절을 이제 우리가 보면서 육체 역할과 성령 역할 그러니까 이제 우리 안에 육체가 저지르는 죄 그리고 그걸 이제 성령께서 어떻게 바꾸시는지에 대한 개괄적인 얘기를 좀 할 거고요.
그 다음에 이제 19절부터 21절에 바울이 길게 육체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그걸 간단하게 볼 거고,
그다음에 이제 이거는 많은 분들이 잘 아시는 말씀이죠. 성령의 9가지 열매라고 부르는 그 열매들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 고 이야기가 아마 다음 주까지 이어지게 될 겁니다.
먼저 육체의 역할과 성령의 역할 성령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사실 육체 역할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을 행하시는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거든요.
16절 17절을 보면요 여기에 보며는 이제 2가지가 대비가 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러면서 육체 소욕이 나오구요.
그 다음 또 성령이 육체를 거스른다 그러면서 성령님이 나옵니다. 분명히 딱 나오지는 않았지만 여기에는 성령님의 소욕 혹은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어떤 능력이라는 것이 암시돼 있죠.
그러면서 이 둘이 즉 육체와 성령이 서로 대적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좀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실 단순히 내가 의지적으로 아 내 예수님 믿어야지 해 가지고 결심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심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를 행하십니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하면 죄를 짓고 싶어 하는 우리 마음 가운데에 소욕이 여전히 있습니다.
여전히 있는데, 거기에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서 의를 행하고 싶어 하는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어 하는 새로운 소욕이 생깁니다.
이걸 로마서 6장에서도 바울이 좀 깊이 있게 설명을 했는데 거기에는 뭐라고 이 저기 얘기하고 있냐하면 죄의 지배와 은혜의 지배 이런 식으로 인제 두 개를 구분해서 설명을 합니다.
근데 이 똑같은 개념을 여기서는 육체 소욕과 성령의 소욕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육체의 소욕은 뭐겠습니까? 육체라고 써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육체는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그냥 이 육체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이 바울이 육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예전에도 말씀드렸는데 이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의 성향 죄짓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인제 육체 소욕은 성령을 거스른다
다시 말하면 신자 안에 믿기 이전에도 있었던 옛 본성 믿기 이전에도 있었던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하는 죄짓고 싶어 하는 본성이 여전히 남아있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계속 죄책감이 들죠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 개념들이 이제 계속 안에서 싸우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게 싸우면 어떻게 되느냐 성령님께서 어쨌든 대적하니까 어쨌든 원하는 걸 하지 못하죠. 그쵸. 원하는 내 마음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게 이제 일종의 개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죄의 소욕과 성령님의 소욕이 계속 싸우게 될 거고, 그 안에 갈등이 있을 건데 이제 성령의 소욕을 따르거라 이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육체 소욕이라는 말은 갈라디아서 전체의 문맥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뭐냐 하면 육체 소욕은 단순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죄짓고 싶어 하는 마음 이런 것들만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고 마음을 먹는데 우리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는 노력들 이런 것들까지 포함해서 육체 소욕입니다.
왜 그게 나쁜 것이냐하면 우리 안에 죄짓고 싶어하는 마음 혹은 뭐 악을 행하고 싶어 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선을 행하고 싶어 하는 마음 역시 죄악에 물들여져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아닌 방식으로 우리가 그냥 우리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선을 이루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실제로 선을 이루기보다 겉으로 볼 때는 선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죠. 그렇지만 선을 이루기보다는 결국 선을 위장한 악을 이루게 됩니다. 자기자랑 같은 것들을 이루게 되죠.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만약에 성령이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자 그래서 바울은 이제 육체 소욕을 따르는 것과 성령님으로 말미암에 인도함을 받으면 이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구체적으로 예증을 하고 싶다. 해주고 싶어하는데요.
넘어가면 육체의 일부터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육체의 일을 쭉 여러 절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로 말을 하고 있어요.
근데 여기에는 일종의 네 가지 범주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나열하지만 존스턴트 목사님 분석한 거를 정확하게 따르지 않고 이제 존 스턴트 목사님 분석하신 것을 조금 바꿨습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4가지 범주를 좀 우리가 볼 건데 이 첫 번째 범주는 성욕의 범주입니다. 이제 바울은 뭐라고 그러냐면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이게 육체의 일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요. 여기서 이제 호색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일종의 중독을 가리킵니다. 성적인 중독이죠.
이 음행이 결혼 바깥에서의 성을 의미하고 더러운 것이 이제 하나님께서 만드신 성의 질서를 어기는 것이라면 이제 호색은 뭐냐하면 이 두 가지 다시 말하면 음행이나 더러운 것에 계속 지속적으로 중독되는 상태를 가리키죠
이것이 바울이 말하고 싶은 첫 번째 범주입니다.
우리가 육체 소욕을 따라서 살아가면 다시 말하면 이제 우리 안에 죄의 욕심을 따라서 살아가고 또는 우리가 성화를 이루려고 한다 하더라도 성령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면 여기서부터 벗어나고 싶어도 결국은 이 안에 머물게 된다는 거죠.
두 번째 범주는 종교적 타락의 범주입니다.
종교적 타락의 범주는 이제 우상 숭배와 주술이라고 돼 있는데요.
우상 숭배는 물론 이제 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뭐 여러 가지 우상들을 놓고 뭐 제사를 드린다든가 혹은 뭐 절을 한다든가 이런 것들도 포함됩니다.
당연히 그렇지만 우상 숭배의 가장 깊은 뜻은 하나님께서 최고의 경배와 사랑을 받으셔야 하는데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과 경배의 대상으로 두는 모든 것들을 의미하죠.
그리고 주술은 뭐냐하면 그렇게 이제 하나님을 최고의 사랑을 대상으로 놓지 않으면 결국은 하나님의 최고의 주권도 따르지 않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주술 중에 하나가 뭐 점치는 것이라든가 혹은 뭐 아주 가볍게 그런 것도 타로점이라든가 이런 것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주술에 포함되는데 이 주술이라는 게 결국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고 다스리고 계시고 섭리하신다라는 것을 안 믿는 태도거든요.
그러니까 우상숭배와 주술도 결국은 같은 범주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요. 그리고 주술은 하나님을 최고의 주권자로 여기지 않는 태도인 거죠.
자 그럼 세 번째는 인간관계의 범주다 이건 좀 많아요.
예 여기 보면 이제 총 8개가 있지 않습니까? 8개가 있는데, 분쟁 시기 분냄 투기가 한 묶음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원수 맺는 것 당 짓는 것 분열 이단이 또 한 묶음입니다.
여기서 보면 이제 우리가 좀 생각할 수 있죠. 이런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일들은 우리가 육체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죄의 성향 죄짓고 싶어 하는 성향을 따를 때뿐만 아니라 아 내가 이제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 뜻으로 거룩하게 살겠어 라고 하는 생각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도우심 없이 우리의 의지와 노력 우리의 죄악된 성향만을 따를 때도 이 일들은 계속 일어납니다.
그래서 분쟁 시기 분냄 투기 이런 것들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 실제로 마음을 가리키고요.
그리고 이 마음들이 결국은 열매를 맺으면 다시 말하면 이 마음들이 인제 행동으로 움직이면 어떻게 되냐하면 원수 맺는 것이나 당 짓는 것이나 분열이나 이단 같은 것들이 나타나는 거죠.
성경은 바울은 뭐라고 말하느냐하면 결국 이러한 것들이 다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죄악된 성향을 따르고 그리고 죄악된 성향을 극복하려고 하더라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하려고 하지 않으면 나타나는 일종의 열매들이라고 말하는 거죠.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는 무절제의 범주입니다
여기는 술 취함과 방탕함이 있죠. 술 취함은 잘 아시죠. 그냥 말 그대로 술 취함입니다.
이 술 취함이라는 것은 단순히 술을 마신다 안 마신다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은 항상 성령에 중독되라 혹은 성령에 취하라고 말하거든요.
근데 이제 술 취함은 단순히 술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이든 중독되어서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방탕함도 결국은 같은 것이에요.
방탕함도 중독을 가리키거든요.
그러니까 이것도 한 가지의 범주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게임 중독이니 뭐 성 중독이니 혹은 뭐 알코올 중독이니 뭐 이런 것들은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겠죠.
그렇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때 그렇게 악해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워커홀릭이라든가 일 중독이라든가 스마트폰 중독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좀 나쁘게 보지마는 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잖아요.
이런 것들도 전부 다 무절제 범주에 포함되는 거죠. 다시 말하면 바울은 이제 이 네 가지 범주를 다 봤는데요.
이 모든 것들은 뭐라고 말하느냐면 이제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특히 이런 일은 할 이런 일을 하는 자들 이 부분을 좀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까지만 얘기 들으면 아 나는 이런 일들을 많이 하고 그리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데 그럼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법으로 받지 못하나 나는 구원 못 받나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인제 우리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해야 됩니다. 첫 번째는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이라고 돼 있잖아요.
이 말에 그리스어 시제를 보며는 단순히 이런 일들을 이제 마음의 죄악된 욕심을 따라서 실수하면서 하는 것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이런 이제 육체의 일들에 푹 빠져 지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는 사실상 신자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한도 내에서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계속 죄를 짓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게 바울의 의도였다면 지금까지 갈라디아서의 가르침을 내내 부정하는 꼴이 되겠죠.
근데 이제 한편으로는 뭐 그걸 보면서 아 이것이 인제 일종의 푹 빠져있는 상태구나 하나는 완전히 반대하는 상태구나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야 됩니다.
계속 죄밖에 짓지 않아요. 그렇죠.
그리고 뭐 하나님을 기뻐하거나 하나님 뜻대로 살거나 이런 것들은 거의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근데 교회를 다녀요 문화적으로는 교회에 적응됐어요. 그러면은 아 내가 문화적으로 교회에 적응됐고 예배도 계속 드리고 있고 뭐 십일조도 드리고 있고 그러니까 나는 신자야 이렇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경고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분별을 해야겠죠.
그래서 이제 지금까지 육체의 일들을 봤고요.
그 다음에 성령의 열매를 보겠습니다.
성령의 열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유명한 말씀이죠.
사랑과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기서 열매라는 말을 한번 생각을 해볼게요 열매 이 열매는 단수입니다. 열매들이 아니에요. 열매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이 사랑부터 절제까지 이 9가지는 9개의 열매라기보다 한 열매가 드러내는 9가지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각자 이 열매의 측면들을 좀 살펴보려고 하는데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은 이 열매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임하셔서 드러내는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겁니다.
이 9가지를 좀 자세히 살펴보잖아요.
그러면 기본적으로 이 아홉 가지는 인간의 인제 인간이 성령님을 따라서 맺는 열매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성품이에요.
그래서 보면요 사랑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랑은 어떻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가장 유명한 말씀이죠. 여기 보면 요한일서 4장8절인데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인간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사랑이신 것을 연결시킵니다.
왜 그러냐면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삼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서로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도 서로 사랑하셨어요.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근데 하나님을 믿게 되잖아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성령님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가잖아요. 그러면 사랑이신 하나님을 따라서 사랑하게 됩니다.
자식이 부모 닮듯 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닮아가게 돼요. 사랑을 받고요. 그 다음에 희락도 마찬가지입니다. 희락도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하심으로써 기쁨이 넘치셨어요.
그래서 예를 들면 요한복음 17장 13절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에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내 기쁨을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이죠.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기쁨이 넘치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서로 사랑하심으로써 기쁨이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예수님의 기쁨으로 말미암아서 기쁨이 충만할 수 있다는 거죠.
자 화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화평 보면은요 고린도 후서 13장 71절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죠. 정확히 번역하자면 이제 평강이신 하나님 자체가 아까 화평이라고 번역된 단어하고 이 평강이라는 단어하고 그리스어로는 같습니다. 이 하나님 자신이 평화의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주변을 평화롭게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제 아무런 분쟁과 다툼 고난이 없다라는 의미가 아니고 가급적 분쟁하는 것 가운데서 서로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화평을 이루려고 노력을 한다는 거죠.
자 오래 참으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억나는 말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저 회개에 이를 때까지 길이 참으십니다.
로마서 2장 4절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속성 물론 다 모든 속성이 다 아름다워요 근데 오래 참음이라는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우리가 계속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용서해 주실 수 있는 겁니다.
누군가 우리가 하나님한테 대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우리한테 대하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뭐 한 달 뭐 혹은 1년도 가지 못해 가지고 관계를 쉽게 끊어버릴려고 할 거예요. 근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자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여러 세대에 나타냅니다.
자비는 풍성하게 흘러넘치는 분에 넘치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것 역시 우리가 자비롭게 남을 대할 수 있는 것 누군가 우리에게 주는 대로 대하지 않고 더 풍성하게 대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라는 거죠. 그게 이유입니다.
자 그래서 이제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렇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이거는 하나님의 자비의 속성입니다. 근데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말하죠.
양선 양선은 그냥 선함입니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대로 나를 가르치소서 이게 인제 시편 119편에 있는 말씀 있습니다. 시편 119편이 무슨 얘기냐 하면 물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시인이 굉장히 큰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근데 그 고난들조차 곰곰 따져보고 그 고난들이 자기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주님이 늘 선하셨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그 선함을 드러내게 되죠.
자 충성입니다. 이 충성은 신실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실함 여기 보면 로마서 3장 3절을 보면 뭐라고 말합니까? 믿지 아니했으면 어찌하리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미쁘심을 패하겠느냐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실하게 신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사람들을 대해 오셨다는 거죠.
자 온유입니다. 온유 역시 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그죠 근데 그 다음 절에 보면요 그다음 이제 민수기입니다. 모세가 한 말입니다.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왜 모세가 온유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모세가 따르고 섬기는 하나님께서 온유한 분이기 때문이죠.
자 마지막으로 절제입니다.
절제라는 것은 이제 뭐 하나님이 절제하신다 이 말은 이제 그런 의미입니다. 이 절제라는 것은 무언가 최고의 목적을 위해서 나머지 모든 일들이나 목적들을 배치시킨다라는 의미거든요.
근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최고의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이런 모든 아름다운 영광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심지어 아들이라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어요.
그 말은 무슨 말이죠.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저기 배치시켜서 실제로 아들의 희생이라도 하셨다는 얘기잖아요.
이건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절제입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배치시켰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뭐라고 하냐하면 이기기를 다투는 일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느니 그들은 썩은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 역시 절제해야 된다라는 이야기를 하죠.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이제 이 끝 5장 끝부분부터 인제 6장 초반부까지 그 얘기를 할 건데요.
우선은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 이게 바로 적용할 점이 되는 거죠.
두 가지로 볼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성령을 따라 행하자그리고
두 번째로는 죄 사악한 속삭임을 버리자
제가 이렇게 얘기했는데 실제 말씀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자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라 라고 말하죠. 이게 첫 번째예요. 우리가 생각해야 될 이게 나중에 있긴 하지만 이게 첫 번째 생각해야 될 겁니다.
그리고 그다음 무슨 얘기를 하냐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말합니다.
먼저 성령으로 살면이라는 말을 설명하고요.
그 다음에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한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사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이 뭘까요?
이 요한복음 14장 26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에게 모든 것을 뭐예요? 가르치고 내가 너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라고 말합니다.
이게 물론 성경님께서는 정말 많은 일들을 하십니다.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기도 하고요. 그리고 다양한 기적을 일으키시기도 합니다. 근데 제일 중요한 것 다시 말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가장 하고 싶어 하시는 일이 이 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말씀 있죠.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기록한 말씀 즉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를 가르치심입니다.
성령께서는 설교를 들을 때 혹은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을 때 이걸 가르치시고 깨닫게 해주세요. 그리고 말씀한 모든 것을 그때그때 생각나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계시고요.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지킬 힘을 순간순간 주세요.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 단순히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순간순간 의식하면서 생각하고 우리가 배운 말씀을 기억하고 그때 생각나게 하시니깐요. 그리고 성령님께서 내가 죄의 유혹에 있을 때마다 이것을 이기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일이고 그리고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죠. 한편으로는 이것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따라서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지킬 힘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죠 그리고 또 하나는 아까 얘기했지만은 이제 우리는 이미 우리의 탐심과 욕심과 정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합니다.
이 로마서 6장 2절이 인제 아까 우리가 읽었던 그 말씀을 또 확증하는데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는 이제 죄에 따를 수 없다는 거죠. 뭐라고 말하느냐하면 죄에 대해서 죽었다 우리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말은 아까 갈라디아서에서 했던 말씀과 같은 개념을 나타내는데 바울은 죄가 우리 안에 있는 육체의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첫 번째로는 죽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 틀림없이 죽습니다. 절대 살아날 수 없어요. 계속해서 십자가 못 박히실 때도 옆구리를 찔렀는데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이 의학자들에 따르면 이 피와 물이 나왔다라는 것은 심장이 터졌다라는 의미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틀림없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고 부활하시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을 때 다시 말하면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소욕들 육체의 소욕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틀림없이 죄에 죽습니다. 다만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바로 죽는 게 아니고요. 서서히 죽습니다.
이 로마 군병들 같은 경우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일들을 자주 행했는데 십자가에서 죽는 사람들은 서서히 고통을 겪다가 길게 이게 72시간까지 고통을 겪다가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사실 처한 꼴이 이런 거라는 겁니다. 지금 죄는 어떻게 돼 있느냐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습니다. 그러니깐 죽을 거예요. 우리의 육체 죽음과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죄도 끝납니다.
우리가 이제 천국에 가잖아요. 그럼 더 이상 우리 안에 죄가 없어요. 우리가 부활하잖아요. 더 이상 우리는 죄 짓고 싶은 소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뭐야?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죽을 운명인 거예요. 그렇지만 바로 죽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어요.
그래서 뭐라고 말하냐면 우리에게 내 말을 들어라 너 계속 죄를 지어라 성령님의 소욕을 따르지 말고 내가 짓고 싶은 이 죄를 네가 계속 지어라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유혹을 받죠.
그러면 그걸 따르는 거는요 우리 안에 이미 왕으로 좌정하신 성령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서 끝날 운명인 그 죄수의 말을 따르는 꼴이 됩니다. 바울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너에게 하신 일이 무엇인데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너희 죄가 이미 끝나버렸고 이제 장차 죄는 죽을 운명이고 너는 이제 완전히 성결해져서 아름다워질 운명인데 왜 제 죄의 성령을 따르냐 죄가 너희의 마음 가운데 속삭일지라도 그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다 끝났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 말을 따르지 않고 성령님의 음성이 민감하면 그분의 음성을 따라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라 라고 격려하는 것이죠.
이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의 의지에만 성화를 거룩함을 맡겨두시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서 거룩한 삶을 빚어내십니다.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아까 말씀드린 드렸지만은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하시고요.
또 다른 한편으로 육체의 일을 죽이게 하시죠.
자 지금까지 우리가 이제 갈라디아서 10강 그래서 이제 성령의 열매와 육체 일 이것을 살펴봤는데요.
우리가 이제 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을 좀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10강 여기까지 하고요.
어 11강에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다시 한번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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