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스미노 요루 /소미미디어
<<요점정리>>
“느닷없이 카니발리즘에 눈을 떴어?”
->같은 종끼리 서로 공격하거나 잡아먹는 행동
“간이 안 좋으면 간을 먹고, 위가 안 좋으면 위를 먹고, 그러면 병 낫는다고 믿었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P.12-13)
췌장의 역할
“췌장은 소화와 에너지 생산의 조정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당분을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 인슐린을 만들어낸다. 만일 췌장이 없으면 인간은 에너지를 얻지 못해 죽는다. 그래서 너한테 내 췌장을 대접해드릴 수는 없겠다. 미안해.”(P.14)
“췌장은 네가 먹어도 좋아.”
“내 얘기 듣고 있어?”
“누군가 나를 먹어주면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산다는 신앙도 외국에는 있다던데.”(P.37)
“너에게, 산다는 것은, 뭐야?”
“아마도 나 아닌 누군가와 서로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 그걸 가리켜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 거야.”(P.222)
아, 그런가.
나는 그걸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존재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시선이며 목소리, 그녀의 의지의 열기, 생명의 진동이 되어 내 영혼을 뒤흔드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인정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 누군가를 싫어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짜증난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 누군가를 껴안는다, 누군가와 스쳐 지나간다..... 그게 산다는 거야. 나 혼자서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없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누군가는 싫어하는 나,
누군가와 함께하면 즐거운데 누군가와 함께하면 짜증난다고 생각하는 나, 그런 사람들과 나의 관계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산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있기 때문이고, 내 몸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잡아주기 때문이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는 지금 살아있어. 아직 이곳에 살아있어. 그래서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어. 나 스스로 선택해서 나도 지금 이곳에 살아 있는 것처럼.”(P.222)
나는 그녀를 만나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것을 그녀는 알려주었다.
이렇게 메시지를 교환하는 것도 그녀에게서 배운 것 중의 하나였다. 타인과의 대화가 주는 즐거움을 처음으로 알았고, 그래서 그녀에게서 재미있는 반응이 돌아올 만한 말을 선택하곤 했다,
무엇보다 대단한 점은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 대부분이 그녀의 한정된 생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 그녀는 항상 그런 모습이었다. 물론 사상은 조금씩 가다듬어지고 언어는 풍성함이 더해졌겠지만 그 뿌리는 분명 그녀가 일 년 후에 세상을 떠나든 떠나지 않든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녀인 채로 대단하다. 나는 그게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모두 다 솔직히 털어놓자. 뭔가를 배울 때마다 나는 그녀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 겁쟁이여서 지금껏 나 자신 속에 틀어박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하지 못 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또한 해내는 사람.(P.249)
그녀가 나에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 그때에,
내 마음은 그녀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실은 네가 되고 싶었어.
타인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타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로 하고 보니 내 속마음과 딱 맞아떨어져 속속 스며드는 것을 깨달았다. 저절로 입가가 쭉 올라갔다.
나는 어떻게 하면 네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네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렇다면, 하고 깨달았다.
『너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고 싶다.』.....(중략)......(P.250)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 말을 그녀의 휴대폰을 향해 보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P.251)
나의 클래스메이트 야마우치 사쿠라는 주택가 골목길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인근 주민에게 발견되었다. 필사적인 치료도 소용없이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 세상을 소란스럽게 했던 묻지 마 사건의 살인마에게 희생되었다.
그녀가 죽었다.
세상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았다.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나는 여전히 만만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남겨져 있다고만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른다.
최소한 나는 어느 누구에게나 내일이 보장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다.(P.253)
나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그녀에게는 당연히 내일이 있는 것처럼 생각했었다.
아직 시간이 있는 나의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이미 시간이 없는 그녀의 내일은 약속되어 있다고만 생각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인식이었던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생명만은 이 세상이 잘 봐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다. 없었다.
세상은 차별하지 않는다.
건강한 몸을 가진 나 같은 인간에게도, 병을 앓아 머지않아 사망할 그녀에게도, 그야말로 평등하게 공격의 고삐를 풀지 않는다.
우리는 잘못 생각했다. 바보였다.
하지만 어느 누가 잘못한 우리를 비웃을 수 있을까.
마지막 회가 정해진 드라마는 마지막 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끝이 정해진 만화는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P.254)
전조도 복선도 오독도 그냥 내팽개쳐둔 채.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알아내는 게 불가능하다.
그녀가 꾸민 밧줄 장난의 결말도.
그녀의 비장의 마술 트릭도.
그녀가 사실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이제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P.255)
투병이 아니라 공병(共病) 이라고 내 일기에 이름을 붙였다.(P.268)
나는 말이지.... 너를 동경했어.
얼마 전부터 계속 느낀 바가 있었거든.
내가 너 같았다면 좀 더 어느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슬픔을 너나 우리 가족에게 내 보이는 일도 없이,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만, 오로지 나 자신만의 매력을 갖고, 나 자신의 책임으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의 내 인생은 최고로 행복해. 하지만 주위에 사람들이 없어도 단지 자신 혼자만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너를 나는 동경했어.
내 인생은 항상 주위에 누군가 있어준다는 것이 전제였어.
어느 순간에 문득 깨달았어.
내 매력은 내 주위에 있는 누군가가 없어서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라고.
...(중략)....누군가와 비교당하고 나를 비교해가면서 비로소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어.
그게 ‘내게 있어서의 산다는 것’이야.
하지만 너는, 너만은, 항상 너 자신이었어.
너는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너 자신을 응시하면서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었어.
나도 나 자신만의 매력을 갖고 싶어.
그래서 그날 네가 돌아간 뒤에 나 혼자 울었던 거야.
네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준 날. 나에게 더 오래 살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해준
날.(P.288-289)
친구라느니 연인이라느니, 그런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네가 나를 선택해준 거잖아.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를 선택해준 거잖아.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으로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이 단 한 사람뿐인 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어.
고마워.
17년, 나는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기를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벚꽃이, 사쿠라가,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걸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책도 읽지 않는 주제에 이 <공병문고>라는 기록 방법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어.
나 스스로 선택해서 너를 만난 거야.
정말로 누군가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니, 너는 대단한 사람이지? 다른 친구들이 모두 다 너의 매력을 알아주면 좋을텐데.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너의 매력을 꿰똟어봤다니까.
죽기 전에 너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고 싶어.
......라고 써놓고 나서 문득 깨달았어.
....(중략)...
나는 역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P.290-291)
나는 울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갓난아이처럼 울어버렸다.....(중략)....하지만 봇물처럼 밀려드는 수많은 감정이 나에게 자기완결을 허락하지 않았다.
기뻤다.
전해졌다는 것, 통했다는 것.
그녀가 나를 필요로 해주었다는 것.
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
기뻤다.
동시에 상상해본 적도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메아리가 멈추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
차례차례 떠오르는 그녀의 얼굴.
울고 화내고 웃고 웃고 웃는 얼굴.
그녀의 감촉.
향기.
달큼한 그 향기.
지금 바로 저 앞에 있는 것처럼, 지금 바로 저 앞에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났다.
하지만 이제는 없다. 그녀는 이제 없다.
어디에도. 내가 줄곧 보았던 그녀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P.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