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하라고 해서. 많은 아이들이 그러하듯 나도 그래야만 하나 보다
그래서,
등교도 같이 하고, 하교도 같이 하고
운동회 연습 때는 달리기가 무서워 같이 화장실에도 숨어보고
새학년 새학기가 되면 내 짝꿍은 그 아이고.
워낙 낯을 가리는 아이라 철부지들은 그 아이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못난이 남자애들은 어디 힘 자랑할 데가 없어 그 아이에게 언어로 상처를 입히곤 했다.
나는 키도 크고 생긴 것도 누구에게도 모자라지 않고,
철부지 시절이라도 못난이들은 이런 나를 가벼이 여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홀대당하는 그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이젠 둘 다 50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왔니? 이리 와서 밥 먹어”
“먹고 왔어”
“한 술만 더 떠”
몇 번을 더 권해도 얘는 계속 거절 중이다.
“아유, 고집은...”
결국 포기하고 먹던 밥을 계속 먹는 중이다.
한 번은 마트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니 마트 직원이 사은품이라며 세제를 준다. 뭐 브랜드도 딱히 눈에 익지 않고. 어차피 나에게도 꽁짜라 좋지만, 얘한테는 더 좋은 꽁짜겠지 싶어 세제를 건넸다.
바로
칼같이 거절당했다.
봄꽃이 지천에 만발하고 우리 엄마가 꽃을 좋아하는데
이러면 침대에만 누워있는 엄마에게 조금은 위로가 될까? 싶어 마트에 가만 종종 꽃을 사서 식탁 위에 꽂아놓곤 했다.
어느 날은
차림새가 너무 형편없다며 차에서 내리지 않겠노라며 이런 걸 묻는다.
“꽃이 얼마야?”
“얼마 안 해”
지갑을 여니, 5천원과 천원 몇 장이 있다. 제일 큰 돈인 5천원을 건네며
“이거면 될까? 나도 아줌마한테 꽃을 사드리고 싶은데”
“충분해”
내 돈도 합해서 푸짐하게 꽃을 들고 오니
얘가 크게 웃는다.
일주일에 한 번은 시골에 방문하면서 얘를 불러 같이 점심을 먹는다.
상추를 들고, 삼겹살을 얹고, 김치를 집어, 자그마한 입을 작게 열어
각각의 손가락 하나하나가 움직여 상추 한 쌈을 먹는데...
그 모습이 정갈하다.
절제되고, 조심스럽고, 느리지만 답답하지 않고... 정갈하다.
“삼겹살이 맛있어”
“그래? 더 먹어”
“아냐, 배불러”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절대 다시 들지 않는다.
시골 냉장고에는 엄마를 위한 죽이 다양하게 놓여있다. 지금 방문하는 요양보호사님이 끓여 놓은 것인데 많이 끓여놨으니 자꾸만 가져가란다.
엄마가 드실 걸 가져가라니 맘이 불편한데 굳이 자꾸만 말하니 그걸 거절하는 것도 또 불편하여 가져왔다.
팥죽이 맛있다.
또,
가져가란다.
“요양보호사가 죽 가져가서 먹으라는데 지난번 먹어보니 맛있더라. 너 가져갈래?”
“아냐, 우리 엄마 죽 안 좋아해.”
“그래? 그럼 할 수 없고, 근데 아줌마는 요양보호사비 얼마나 내니?”
“우리는 기초생활수급자라 안 내지”
“아...”
이전에도 몇 번 들었는데... 늘상 얘가 기초생활수급이라는 사실을 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