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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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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한국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 수가 이미 60만을 넘어섰지만 협동조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아는 사람들의 인식도 농업협동조합이나 생협 매장 정도이다. 하지만 농협이나 수협이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생협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유기농이나 친환경 먹거리를 구입하는 매장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협동조합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도는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엔이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정하고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이후 협동조합이 일자리 창출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대안으로 떠오르자 한국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고 서울시가 협동조합도시를 선언하는 등 사회적인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그런 관심 이면에는 한국의 경제가 재벌들의 손아귀에 포획되어 있고 수출 의존도가 높아 외부환경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말이다.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사람으로서 사회적인 관심이 반갑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관심이 협동조합‘운동’의 확대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분명 경제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존재는 독점재벌이나 일반 기업보다 노동자에게 훨씬 나은 노동조건을 제공한다. 허나 협동조합이 있다고 해서 그 사회가 시민의 좋은 삶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농협이 있다고 해서 농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매출규모가 증가한다고 해서 승자독식의 자본주의와 정치와 경제가 유착되고 중앙집권화된 국가구조가 자동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협동조합‘운동’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이 글은 협동조합운동의 관점에서 협동조합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협동조합기본법 이후 협동조합운동의 과제를 찾아보려 한다.
1. 한국 협동조합운동, 어디까지 왔나
협동조합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과 달리 협동조합에 소속된 조합원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농협의 조합원수가 2백 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수협도 16만 명, 신용협동조합도 5백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이런 수를 바탕으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 농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수협, 신협, 아이쿱생협 등이 가입되어 있다). 현재 연합회가 구성된 국내 소비자생협의 조합원 수와 공급액은 아래 표와 같이 추정된다.[각주:1]
구분 |
지역조합수 |
조합원수 |
공급액 | ||||
2010 |
2011 |
증가율 |
2010 |
2011 |
증가율 | ||
한살림 |
30 |
247,072 |
293,442 |
18.8 |
186,686 |
222,581 |
19.2 |
아이쿱생협 |
75 |
118,824 |
155,705 |
31.0 |
219,647 |
290,132 |
32.1 |
두레생협 |
23 |
85,022 |
103,874 |
22.2 |
66,674 |
75,072 |
12.6 |
민우회생협 |
5 |
22,792 |
26,763 |
16.4 |
16,962 |
17,015 |
0.3 |
합계 |
123 |
473,890 |
579,757 |
22.3 |
489,996 |
604,800 |
23.4 |
이 자료를 보면 소비자생협연합회에 소속된 조합원 수는 2011년을 기준으로 약 58만명이고, 조합원이 이용하는 물품거래비용도 6,000억원을 넘는다. 더 놀라운 건 불황과 경기침체 속에서도 조합원 수의 평균증가율이 22.3%이고, 공급액 증가율도 23.4%에 달한다는 점이다. 증가율을 고려하면 이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그리고 소비자생협 외에 2009년을 기준으로 한국의료생협연대에 소속된 의료생협의 조합원 세대 수를 합치면 15,280세대나 된다.[각주:2]
비교기준 |
안성의료생협 |
인천평화의료생협 |
안산의료생협 |
원주의료생협 |
주요 설립 동기 |
농촌지역 의료봉사 |
산재 및 직업병 해결 |
지역환경보호운동 |
생협간의 협동 |
설립 년도 |
1994년 4월 |
1996년 11월 |
2000년 4월 |
2002년 5월 |
조합원수 |
3426세대 |
1749세대 |
2414세대 |
1570세대 |
비교기준 |
대전의료생협 |
서울의료생협 |
전주의료생협 |
함께걸음 의료생협 |
주요 설립 동기 |
지역화폐운동 |
신협운동의 확장 |
보건의료운동과 공동체운동 |
장애우 평등세상 |
설립 년도 |
2002년 8월 |
2002년 6월 |
2004년 4월 |
2005년 6월 |
조합원수 |
1361세대 |
1650세대 |
408세대 |
526세대 |
비교기준 |
청주 의료생협 |
용인해바라기 |
성남의료생협 |
수원 |
설립 동기 |
복지네트워크 |
장애아동부모모임 |
장애인무료치과 진료 |
복지네트워크 |
설립 년도 |
2007년 5월 |
2007년 3월 |
2008년 2월 |
2009 3월 |
조합원수 |
365세대 |
480세대 |
671세대 |
340세대 |
비교기준 |
시흥 의료생협 |
마포(준) |
살림의료생협 | |
설립 동기 |
복지네트워크 |
지역사회 돌봄 |
여성주의 돌봄공동체 | |
설립 년도 |
2009년 9월 |
2010년 5월 발기인대회 |
2012년 2월 창립총회 | |
조합원수 |
500 세대 |
|
1,000세대(2013년 1월) |
둘을 합하면 조합원 세대가 약 73만 세대나 되고, 소비자생협과 의료생협 모두 조합원의 구성이 세대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숫자로 그 가능성을 점칠 수는 없지만 조합원의 수로 판단한다면,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낡은 브랜드가 아니라 외려 뜨는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소비자생협의 조합원수와 공급액 증가속도는 다른 산업보다 월등하게 빠르고, 먹거리와 건강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협의 성장가능성은 무시될 수 없다(그래서인지 ‘유사소비자생협’과 ‘유사의료생협’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소비자생협의 활동은 단순히 농산물의 직거래와 안전한 먹거리로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생협은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다양한 활동들, 먹거리 교육이나 학교급식조례운동, 농업살림운동, 협동하는 생활문화정착, 지역살림운동, 지역사회 식품안전생활시스템 구축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료생협 또한 질병의 치료보다 건강한 삶을, 그리고 주민참여와 협동으로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운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조합원들이 사회적 주체로 등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협동조합은 사업체이자 결사체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협동조합의 수는 2012년 12월에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법이 발효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전국에서 일반협동조합이 119건, 사회적협동조합이 17건 신청되었다.[각주:3] 과거 소비자생협의 설립기준이 조합원 300명 이상, 출자금 3,000만원 이상이었다면, 협동조합기본법은 출자금 규모에 상관없이 5인 이상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그런 점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사업 대상도 먹거리나 의료에서 대리운전, 도시농업, 재생에너지사업 등으로 늘어날 것이다. 심지어 주식회사 <해피브릿지>는 2012년 연말에 주식회사 해산총회를 열고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을 결의하기도 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협동조합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만 따지면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분명히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2. 한국의 협동조합운동, 어디로 갈까?
어떤 제도가 사회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똑같은 효과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귤이 황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조건은 제도에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경향이 한번 만들어지면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을 제도의 ‘경로의존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협동조합기본법에 앞서 2007년 1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었다. 당시 노동부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 재화․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면서 그 수익을 사회적 목적을 위해 재투자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춘 기업을 사회적 기업이라 정의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쨌거나 이런 지원정책에 따라 사회적 기업의 수는 2007년 446개에서 2012년 2,221개로 5년간 498% 증가했고, 2012년 9월 기준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도 17,410명이고 이 중 취약계층이 10,640명이다. 그리고 노동자의 평균 급여는 월 107.6만원이고, 비정규직 비율이 52.7%이다.[각주:4]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이런 수치로만 보면 사회적 기업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사회적 기업보다 사회적 일자리가 부각된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제도를 시작할 당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노동부 장관의 인증을 받아야 하고, 인증을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인증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인증이 신규사업보다 기존에 이미 진행되어오던 사업들, 즉 이미 인력과 자원을 가진 곳으로 집중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또한 사회적 기업이 사회성보다 일자리를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비판, 정부가 최저임금만을 보조하고 나머지 부족분을 사업을 통해 보충하도록 해서 저임금 일자리가 확산된다는 비판, 정부가 노동복지(workfare)를 강조하면서 기본적인 복지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비판 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도 이런 경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기본법에서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구분된다. (일반)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설립되고 신고만 하면 등록절차를 거쳐 활동할 수 있다. 반면에 지역사회에 공헌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월평균 소득의 60% 이하, 고령자, 장애인, 결혼이민자, 경력단절여성, 갱생보호 대상자 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들을 고용하는 비중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가능한데,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설립될 수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달리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과 비슷하게 ‘인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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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
사회적 협동조합 |
법인격 |
(영리)법인 |
비영리법인 |
설립 |
시도지사 신고 |
기획재정부 장관 인가 |
사업 |
업종․분야 제한 없음(금융․공제 제외) |
업종․분야 제한 없으나 주사업 규정 |
적립 |
잉여금의 10/100 |
잉여금의 30/100 |
협동조합의 국제연대기구인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라 정의한다. 그런데 협동조합기본법은 협동조합을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이라 정의한다. 두 정의에서 어떤 차이점이 느껴지나? 한국의 협동조합기본법은 협동조합을 공동구매/생산/판매/제공을 하는 ‘사업조직’으로 제한하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인가하는 기획재정부도 협동조합을 “함께 규칙을 만들고 착실하게 이용하는 정의로운 사업체”로 정의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규칙과 정의는 케이크를 나누는 방식에 관한 것이지 어떤 케이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다루지 않는다.[각주:5]
협동조합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은 협동조합기본법 시행령이 전 세계적으로 합의된 노동자협동조합(workers cooperative)이라는 개념을 직원협동조합이라는 애매한 개념으로 바꿔버린 점에서도 드러난다. 법률상의 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기업육성법의 경험을 통해 협동조합기본법을 해석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적 기업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의 지원을 통해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날 수 있지만 사회성이나 협동의 강화보다 고용 창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고, 시장경쟁에 내몰린 협동조합들이 실패를 경험할 것이고, 협동조합이 공공서비스 민영화의 명분(사회적 협동조합은 국가와 지자체의 사무 중 일부를 위탁받을 수 있다)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협동조합운동의 강화가 아니라 왜곡이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경제는 연대의 경제, 즉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구축하는 것”이자 “새로운 시장조절양식을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시장과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고, 시장활동의 우선적 수혜자의 영역에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시장을 사회적으로 재구축하는 방안을 고안하고자 하는 것”인데,[각주:6] 한국사회에서 이런 의미는 드러나지 않는다. 협동조합은 기존의 시장질서를 보완하지 관계를 재정립할 힘을 가지지 못한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과정에서 드러난 특이한 점은 소비자생협을 비롯한 기존의 협동조합운동진영이 기존 법률에 있던 정치참여 금지 조항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1999년 2월에 공포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4조는 “①조합은 공직선거에 있어서 특정 정당을 지지ㆍ반대하거나 특정인을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못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할 수 없다. ②누구든지 조합을 이용하여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생협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든 생협들은 단체의 정관에 ‘정치관여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협동조합운동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자본주의 질서와 다른 살림살이 질서를 짜려면 이는 정치적인 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 협동조합들이 조합원의 사회참여와 지역적인 살림살이 회복을 추구한다면 지역정치에의 개입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운동이 기본법 제정과정에서 이런 조항을 수용했다는 점은 협동조합운동의 방향이 결사체를 배제한 사업체에 향하고 있음을, 즉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과 협동조합의 방향이 수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협동조합이 탈정치를 지향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이 정부의 방향과 수렴된다는 점은 더 큰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협동조합운동이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없다.
3. 세계적인 흐름은 어디로 가고 있나?[각주:7]
협동조합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지역이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다. 협동조합의 규모가 작을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연합조직)의 자산은 약 53조에 달한다.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몬드라곤의 자산규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인 현대중공업(2011년 기준 약 54조)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다. 그리고 몬드라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수도 무려 8만 4천명에 달한다. 고용인원으로만 따지면, 몬드라곤은 SK나 롯데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협동조합들은 생산과 소비, 신용, 문화 등의 영역에 폭넓게 퍼져 있다. 유럽의 조합원 수나 매출고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수준이다. 전 국민의 60%가 조합원인 스위스에서는 협동조합이 카르푸의 매장을 인수했고, 이탈리아의 볼로냐시는 한국 협동조합 관계자들의 순례코스가 되었다. 유럽만이 아니다. 캐나다의 협동조합은행 데자르댕(Desjardins)은 조합원이 580만명으로 자산이 216조, 노동자가 4만 7천명에 이른다.
이런 규모를 보면 협동조합은 결코 미미한 흐름이 아니며, 전 세계 경제규모에서 적지 않은 부문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년과 올해 계속 소개되는 해외의 협동조합 사례들은 이런 성공사례들이고, 실제로 한국의 많은 소비자생협들이 스위스의 미그로(Migros)와 같은 유럽생협의 대형매장을 부러워하니 한국의 협동조합운동도 이런 해외사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외국의 협동조합들이 아무런 위기를 경험하지 않으며 성장만 해온 것은 아니다. 유럽의 협동조합들은 세계대전과 파시즘, 경제위기, 유럽통합이라는 실험을 통과해야 했고,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외국의 협동조합들이 큰 몸집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런 위기와 무관하지 않고, 그런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그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더 이상 바스크 지방의 협동조합이 아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에 소속된 노동자 중에서 러시아와 멕시코, 중국, 브라질,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고용된 인원은 201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약 1만 6천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에 협동조합만 속해 있는 것도 아니다. 몬드라곤은 1990년대부터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들을 만들었다. “특히 유통 부문의 자회사들은 상당수가 비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결과 몬드라곤에 소속된 260여 개 회사 가운데 대략 절반만 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각주:8]
몬드라곤의 글로벌화와 조직형태의 변화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관한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전체 고용규모는 늘어났지만 이것은 해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고, 에로스키를 비롯한 유통부문이 인수․합병을 통해 공격적으로 사업체를 늘려온 분야에서는 조합원 노동자의 비중이 급격히 떨어졌다. 즉 규모는 커졌지만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이 증가한 것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고, 협동조합의 자회사들이 협동조합이 아닌 주식회사로 세워지는 모순이 만들어졌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노동자 조합원의 비중을 늘려나간다고 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를 고려할 때 제조업 조합원 중심의 몬드라곤이 그 구상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정체성 변화는 협동조합의 의사결정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상시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총이사회와 상임위원회, 사무국의 권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위기구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가 자신의 규정으로 개별 협동조합을 규제하려 들기도 한다. 또한 노동자 조합원들은 사업과 배당에 관심을 갖지 조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뀐다면 이 조직을 협동조합이라 부를 이유가 없다.
갈러(Z. Galor)는 이런 경향을 탈협동화(demutualization)라 부른다.[각주:9] 갈러는 전 세계 다양한 협동조합들에서 탈협동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그런 경향이 소비자협동조합과 에너지협동조합에서 두드러직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탈협동화 경향이 나타나는 주된 원인은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 부족이다. 즉 협동조합이 탈협동화되어도 조합원들은 관심이 없거나 외려 주식회사로의 전환을 지지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문제가 조합원들 탓은 아니다. 조합원의 삶을 지지하거나 조합원과 함께 성장하지 않는 협동조합의 구조도 문제이고, 세계화에 따른 경제구조 변화나 초국적기업들과의 경쟁, 협동조합이 낡은 것이라는 편견같은 외부요인들도 탈협동화를 부추긴다.
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따져 보자. 이스라엘의 트누바(Tnuva)는 연계형 협동조합(secondary cooperative)으로 농업공동체인 모샤브(Moshavim)와 키부츠(Kibbutzim)가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곳이다. 지난 몇 십년 동안 트누바는 빠르게 성장했고, 그와 더불어 조합의 지분과 가치도 높아졌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아니라 두 조합의 위원회가 트누바를 운영했고, 조합원들은 트누바의 성장에서 자기 몫을 공유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이스라엘의 대기업이 트누바를 인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에이팩스(APAX)사가 10억 달러(트누바의 실제 자산가치는 8억 달러 정도)를 제안하자 총회는 압도적인 비율로 지분의 매각을 결정했다(에이팩스사가 51%의 지분을 차지!).
갈러는 조합에 관심을 가진 조합원 그룹이 존재했다면 그들이 탈협동화에 맞섰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어쨌거나 이런 전환의 결과 2011년 7월에는 트누바의 비싼 치즈가격 때문에 이스라엘 시민들이 불매운동을 조직하는 일까지 생겼다. 시민들의 조직이어야 할 협동조합을 시민들이 불매운동하는 비극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일이 이스라엘의 협동조합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협동조합간의 연대도 좋지만 연계형 협동조합이 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구조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런 변화가 온전히 협동조합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갈러가 탈협동화의 외부요인이라 얘기한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결정권의 집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와 시장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면서 엄청난 힘을 가진 괴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치, 경제의 영역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단순히 초국적 자본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괴물들이다. 심지어 국가의 고유한 영역이라 불렸던 치안과 군대 영역도 점점 민간기업의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동조합의 성공을 점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싸워야 할 상대의 힘이 집중된다고 해서 협동조합운동도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논리 역시 괴물을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세계가 ‘1 대 99의 사회’로 전락한 것은 99%의 사람들에게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99%의 사람들이 다시 결정권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이지 1%를 위한 벤처사업이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해외의 이런 탈협동화 경향을 무시하고 한국의 협동조합들은 양적인 성장에 올인하고 있다. 최근 박승옥이 “성장은 결사체로서의 성장과 사업체로서의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지, 자본주의 성장신화에 갇힌 성장지상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때로 협동조합은 지나친 성장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를 뛰어넘는 사업의 성장은 그 자체로 결사체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 것은 이런 성장에의 열광을 비판한 것이다.[각주:10]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의 작은 섬에 불과하다며 부정적이었던 레닌(V. Lenin)조차 “협동조합을 신경제정책에 적응시킬 것이 아니라 신경제정책을 협동조합에 적응시켜야 한다”고 말할 만큼 다른 세상을 꿈꿨던 협동조합운동의 힘은 어디로 갔을까?
3. 사회변혁 전략으로서의 협동조합운동은 불가능한가?
지금 한국의 협동조합에게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전 세계가 경제위기로 허덕이고 피크오일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협동조합운동은 어떤 전략을 고민해야 할까?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구조가 협동조합운동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협동조합을 지지하는 대안적인 정치세력이 없는 한국,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와 재벌 중심, 토건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 무한경쟁구조에 갇힌 한국에서 협동조합은 어떻게 자신의 전략을 만들어야 할까?
데이비드 맥낼리(D. McNally)는 세계경제 전체를 보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이되는 경제위기의 속성을 파악하지 않으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각주:11] 자본주의의 위기는 일시적이지 않고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으로의 변화는 위기의 힘과 규모를 넓히고 있다. 맥낼리는 그런 경향에 맞서 정치를 되살리고 희망의 기운을 만들 다양한 고리들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항들은 그런 고리를 구성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니 협동조합도 지역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변화를 읽고 지역적인 행동으로 변화에 개입하고 그 사건들을 조직해야 한다.
협동조합운동이 그런 개입과 조직의 전략을 고민할 때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은 자본주의 마케팅이나 다른 사회운동의 전략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원칙이다. 협동조합운동은 이미 협동조합 7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이 원칙에 대한 소극적인 해석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석,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훈이 지금이야말로 필요하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원칙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는 가족과 사회집단에의 참여가 강제성을 띠고 성과 재산, 인종,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별이 심한 한국사회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협동조합은 아무나 오세요가 아니라 오는 사람을 환대해야 하고, 조합에 문턱이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 중산층이나 이성애 가족의 전유물처럼 인식된 협동조합은 사회적 양극화나 가족구성의 변화라는 시대변화에 맞게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 단지 물건을 거래하는 매장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가지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이 되어야 첫 번째 원칙이 힘을 가질 수 있다.
두 번째 원칙 ‘민주적 관리’는 1원 1표를 따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1인 1표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출자금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똑같은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건 조합원들의 자존감을 강화시킨다. 이 원칙은 나와 다른 사람이 동등한 사람이라는 평등의 원칙이자 내가 원하는 바를 드러내고 주장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자유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통해 조합원들은 나와 가족의 경계를 넘어 지역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배제되고 조직구성과 일상활동, 주요한 의사결정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이 원칙은 일터의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나와 조합이 분리되지 않고 한 몸임을 깨닫고 나와 조합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과정은 오로지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협동조합은 그런 성장과 역량강화를 위한 틀이다.
세 번째 원칙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는 협동조합을 움직이는 자원이 조합원의 것임을 강조한다. 협동조합이 조합원에게 출자금을 받는 것은 필요한 자원을 공정하게 조성하고 그것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그 과정은 내 몫이 커지려면 우리의 몫이 커져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몫을 내놓음으로써 우리의 관계를 더욱더 단단하게 다질 수 있고, 그렇게 몫을 내놓아야 서로 만나야 할 이유가 생긴다. 이런 공유를 위해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은행이나 보험회사, 주식에 매달리지 않고 조합을 통해 살림살이를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합원의 욕구와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 곧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임을 깨달아야 한다.
네 번째 원칙 ‘자율과 독립’은 국가나 자본과 거리를 둬야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빵집, 사진관 등 문어발식 확장이 기본인 재벌경제에서, 그리고 정부가 민간단체를 길들이고 통제하려 드는 한국에서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주의가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조직이다. 협동조합이 이런 정체성을 강화시킬수록 국가는 협동조합에 개입하려 들 것이고, 친환경 유기농 시장이 커질수록 자본은 협동조합을 집어삼키려 들 것이다. 이에 맞서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지키는 것은 국가나 자본이 통제할 수 없는 공공성의 영역을 유지하고 확장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조합원이 늘어날수록 그런 영역의 힘이 강화되는 셈이니.
다섯 번째 원칙 ‘교육, 훈련 및 정보의 제공’은 조합의 성공이 조합원들에게 있음을 알리는 원칙이다. 서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아무런 매개 없이 가능할 수 없다. 우리 세계가 어떤 지경으로 몰락하고 있는지, 조합이 어떤 꿈을 꾸고 있고 그런 꿈을 실현하려면 조합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합원들이 스스로 꿈을 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기 위해 어떤 장이 필요한지, 협동조합은 끊임없이 이런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의 모습으로만 살아온 사람이 조합을 통해 다양한 자기 얼굴을 확인하고 그 꿈을 조합에서 실현할 수 있을 때 협동조합은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여섯 번째 원칙 ‘협동조합 간의 협동’은 일종의 연방제 원리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한 조합의 힘이 충분히 강하지 않더라도 그런 조합들이 여럿 뭉치면, 즉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의 어소시에이션이 되면 그 힘을 키울 수 있다. 협동의 힘이란 애초에 그런 것이고 공생(共生)을 지향한다. 자본주의가 적대적인 경쟁과 인수합병(M&A), 승자독식을 권장한다면, 협동조합들이 힘을 모아 서로간의 경쟁을 누그러뜨리고 새로운 장을 만들고 사회적 시장을 형성하고 살림살이를 바로잡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협동조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의 질서이고, 자치와 자급이 조합을 통해 실현된다.
일곱 번째 원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는 중앙집권화된 근대국가에서 지역의 힘을 강화시키려는 시도이다. 협동조합과 지역사회의 관계는 선택적인 것이 아니고, 지역사회가 붕괴되어가는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의 역할은 지역공동체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초국적 자본과 중앙권력이 지역을 수탈하는 한국에서 협동조합은 지역을 강화시키려 노력한다. 협동조합과 지역사회를 나누는 경계가 사라질수록 그 힘은 커지고, 그것이 곧 협동조합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기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원을 기부하거나 자원활동을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역성(locality)을 부활시키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일곱 가지 원칙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협동조합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국가의 사회보장체계와 자본의 소비체계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협동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 섬으로만 존재해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고, 설령 섬으로 존재하더라도 그 섬들이 서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회변화를 바라는 다양한 세력과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연대는 타자가 내 쪽으로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타자의 편에 서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단순히 이타적인 운동을 지향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삶에 관심을 쏟다보면 그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 조합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 지역사회의 변화, 조합원 가계의 노동조건, 생활상의 어려움 등에 관심을 가지고 개입하다보면 새로운 상대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협동조합운동에게만 요구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회운동들이 협동조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협동조합에 관한 후보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박근혜 후보는 ‘소상공인의 사업인프라 구축 지원’을 위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자율조직화 유도를 위하여 협동조합 활성화 전폭 지원”하고 “소상공인 협동조합 활성화를 기반으로 공동브랜드, 공동판매 등 공동사업 활동 활성화”를 지원하며, ‘지속가능한 축산업 육성’을 위해 “생산에서 도축·가공·유통·판매까지 협동조합 중심의 축산계열화체계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는 ‘사람중심 협동경제, 사회적 경제’라는 구호 아래 “사회적 경제를 통해 지역중심 순환경제가 활성화되고 품위 있는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가의 대열에 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사회적 금융을 조성하고 사회투자기금 2조원을 조성하며 사회적 경제에 관한 공감대를 강화시키고 사회적 경제를 통한 공공서비스(돌봄서비스나 보육 등) 공급을 30%까지 확대하며 사회적 경제 모델을 적극 활용하는 기초자치단체를 집중 지원하며 대통령 직속의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신설한다는 등의 공약을 발표했다.
반면에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나 노동자대통령을 표방했던 김소연 후보의 대선투쟁공약집에서는 협동조합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김순자 후보의 정책에서는 경제분야가 아니라 ‘에너지 혁명과 생태적 전환’ 정책에서 협동적 소농체제를 중심으로 농촌을 재생하기 위해 협동생산판매체제를 국가 차원에서 구성하고 농협중앙회 등을 협동조합 섹터의 중심체로 전환한다는 정도의 내용이 확인된다. 보수정당의 고민이 외려 구체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운동이나 사회운동이 협동조합을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다. 과거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교육기관들은 협동조합을 세우는 것을 당연한 과정으로 여긴 반면, 참교육을 지향하는 교육운동이나 대안학교들은 협동조합을 자신의 기관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서로 연대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연대에 관한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설령 진보정당이 협동조합과 관련된 정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지 깊은 고민은 없는 상태이다. 협동조합은 국가의 하부조직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율과 독립을 지켜야 하는 조직이다(과거 러시아의 경험은 협동조합이 국가의 하부기관이 되면서 자기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줬다). 그렇다면 진보적인 정치운동은 협동조합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협동조합운동도 자신이 누구와 함께 지역사회를 재구성할 것인지를, 그리고 단순히 후보 캠프에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의 정치를 어떻게 재발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소상공인, 노동자, 청년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재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지역사회가 자신의 힘과 지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4. 나가며
단순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그것이 차지하는 몫이 커진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협동의 그물망으로 엮이지는 않을 것 같다. 공산당이나 사회당, 녹색당이 대안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나라의 협동조합과 대안정치세력이 거의 없고 생협의 정치참여를 법으로 금지당한 한국의 협동조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분권화된 국가의 협동조합과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의 협동조합은 매우 다른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 활동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넘어서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 그대로 ‘함께 살자’이다.
함께 살려면 일단 먼저 서로를 마주봐야 한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우리가 어떤 삶을 지금 살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상상해야 한다. 그렇게 마주보고 상상하다보면 먼 미래의 좋은 삶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협동조합운동은 그런 삶을 위한 틀이 될 때 온전히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