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시인의 노래' 가수 한경애의 삶과 음악
작사 이경미
작곡 이현섭
노래 한경애
마른 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
그대가 나무라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해도
우리들의 사이엔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요
그대가 나무라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해도
좋은 날엔 시인의 눈빛되어
시인의 가슴이 되어
아름다운 사연들을 태우고
또 태우고 태웠었네
뚜루루루 귓전에 맴도는 낮은 휘파람 소리
시인은 시인은 노래 부른다
그 옛날의 사랑얘기를
♩♪♬ ~ ♩♪♬ ~
좋은 날엔 시인의 눈빛되어
시인의 가슴이 되어
아름다운 사연들을 태우고
또 태우고 태웠었네
뚜루루루 귓전에 맴도는 낮은 휘파람 소리
시인은 시인은 노래 부른다
그 옛날의 사랑얘기를
그 옛날의 사랑얘기를
뚜루루루~~~ 뚜루루루~~~
이 노래는 초겨울에 어울리는 노래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 이제 세상 사람들은 ‘한경애’를 자주 떠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1980년대만 해도 그녀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의 주인공 중에 한사람이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인기 정상 가도를 달리던 가수 ‘한경애’
[옛 시인의 노래]와 [타인의 계절]이 대표곡이다.
당시 대중들은 길을 걷다가 전파상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웅얼웅얼 따라서 불렀고 커피숍에 가도 약방의 감초처럼 흘러나오던 곡 이었다
특히 연애를 하던 젊은 커플들에게 이 노래는 아주 따봉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당시 젊은 층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였다.
한경애는 본명이 한소영으로 1954년생이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 2학년 때 노래를 시작했다.
처음에 그녀는 교내 행사에서 대타로 노래를 불렀다.
교내 행사에서 예산이 부족하여 유명가수들을 초대하기 어려울 때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차분하고 고운목소리와 풍부한 성량은 소문이 나서 방송국에서도 섭외가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노래실력을 인정받아 방송에 출연할 것을 제안 받았으나 학업을 위해서 고사했다.
그녀는 차분하고 재치 있는 말솜씨로 가수보다는 MC와 DJ로 먼저 데뷔를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77년 KBS TV의 교양 오락 프로그램 ‘새 노래 고운노래’ 진행을 맡게 되었다.
1978년에는 동양방송(DBS) 라디오 프로그램 ‘3시의 다이얼’도 진행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 편의 시를 읊는 듯이 차분하고 고운 목소리였기에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방송을 하면서도 대학 시절 전공을 살려 [동아미술제]에 출전하여 당당하게 입선을 했다.
이후 방송, DJ와 더불어 작사가로도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1978년에 데뷔앨범인 [한경애의 고운노래 모음]을 발표했지만 성공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1980년에 발표한 세 번째 음반이 히트하면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앨범에는 '옛 시인의 노래'와 '파도였나요'가 수록돼 있다.
'옛 시인의 노래'는 제목에 들어있는 시인처럼 시적인 가사다.
한때 사랑했지만 이별을 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가사에는 사랑하는 상대를 ‘나무’로 표현하고, 마른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새’를 자신으로 표현하며 쓸쓸한 이별의 뒷모습을 시인이 노래하는 것으로 설정을 하고 있다.
‘이경미’가 작사하고 ‘이현섭’이 작곡한 이 노래는 이들의 결혼기념곡이라고 한다.
'옛 시인의 노래'는 이후에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는데 몇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81년 [MBC 10대가수상]에서 [여자신인가수후보]로 까지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송 인기차트에서 꾸준히 1위를 하다가 1982년 제1회 카톨릭 가요대상을 수상하였다.
1982년 MBC라디오가 아마추어 노래자랑에 참가한 7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출전곡 1위는 '옛 시인의 노래'였다.
그리고 2위는 '못 잊어', 3위가 '백지로 보낸 편지' 이다.
그때는 '옛 시인의 노래'가 막 발표되어 히트하던 시기이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1990년대에는 어떨까?
1980-90년대는 시청자가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하여 노래를 부르는 시청자 참여프로그램들이 많았다.
KBS 2라디오 ‘임창제, 홍영숙’이 진행하는 ‘전화노래자랑’에서 1991년부터 4년간 조사를 해 보았다.
참여자들이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 1위가 '옛 시인의 노래'였고, 2위가 설운도의 '원점'이었다.
조사결과를 보면 '옛 시인의 노래'가 90년대까지 꾸준히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표한 후 한참이 지난 1992년에도 KBS 제2라디오에서 진행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다.
한경애는 '옛 시인의 노래'가 크게 히트한 후 '파도였나요'(1980), '타인의 계절'(1981)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80년 대 초에 불렀던 "옛 시인의 노래"와 "타인의 계절"은 어렵고 고달프고 힘들었던 젊은이들에게 활명수와 같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던 노래들이다.
집집마다 전화도 변변치 않았고 휴대전화는 꿈도 못 꾸던 시절!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이 보고 싶을 때는 밤을 꼬박 세워가며 편지를 썼다.
그리고 다음날 우체통에 넣으면 일주일 후에나 답장이 오던 그 시절…….
포장마차에서,
다방에서,
낙엽 떨어지는 길가에서
한경애 씨의 노래를 들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삭이곤 했다.
비록 연식은 좀 지났지만 마음만은 아직도 옛날 젊은 시절 그대로인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
‘옛 시인의 노래’와 ‘타인의 계절’을 들으면서 오늘도 건강하시길~~~
그대를 사랑하면 할수록
이렇게 외로워지는 건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이
너무도 깊은 까닭에~
우리 사랑 여기 이대로 머물 수 있을까?
오늘이 가고 먼 훗날에도 남아 있을까?
사랑이 깊어가면 갈수록
우리들 가슴은 빈 술잔
낯선 바람은 꽃잎 떨구고
눈물이 되어 고여라~
♩♪♬ ~ ♩♪♬ ~
우리 사랑 여기 이대로 머물 수 있을까?
오늘이 가고 먼 훗날에도 남아 있을까?
사랑이 깊어가면 갈수록
우리들 가슴은 빈 술잔
낯선 바람은 꽃잎 떨구고
눈물이 되어 고여라~
눈물이 되어 고여라~
루루루루루루루루~
그녀의 노래는 이 외에도 ‘잊혀지지 않아요’, ‘겨울바다’, ‘파도였나요’, ‘눈물속에 피는 꽃’, ‘그대 내손 잡아주오’등이 있다.
이후 전공인 미술을 마친 후 1988년부터는 성우로 전업하여 활동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방송과 광고에서 목소리로서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가수보다는 성우와 DJ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첫댓글 이 아침 조용히 한경애의 옛시인의노래를 듣습니다.
그 옛날 믾이도 설레였는데~~
'옛시인의 노래'나 '타인의 계절' 모두가 좋은 노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