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경천/양화 저수지 둘레길
2023년 06월 27일, 넷째 주 화요일.(기온 21˚~ 27˚)
신원사 경천/양화 저수지 둘레길
산행출발 : 충남 공주시 계룡면 신원사동길 1 (신원사 주차장)
산행도착 : 충남 공주시 계룡면 신원사동길 1 (신원사 주차장)
코스 : 신원사주차장 - 신원사경내(점심공양) - 경천/양화저수지 둘레길 - 신원사주차장
거리 및 시간 : 7.95km / 5시간 10분(놀며 쉬며)
함께하신 분들
민대걈 / 달친 / 피오나 / 이프로 / 청마
신원사에서 만난 계룡둘레(솔로몬)
차량지원 : 이프로
사진 청마(靑馬)
좋은 분들과 함께 신원사에서 점심공양을 하고 간단하게 경천/양화 저수지 둘레길을 돌아보기로 하고
현충원역 3번 출구에서 만나 신원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경내에 들어서니 현충원역에서 잠시 만났던
계룡둘레길(솔로몬)을 다시 만나 함께 하루를 같이 보낸다.
신원사(新元寺)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보덕이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651년(의자왕 11)에 열반종(涅槃宗)의 개산조 보덕(普德)이 창건하였다.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이곳을 지나다가 법당만 남아 있던 절을 중창하였고, 1298년(충렬왕 24)에는 무기(無寄)가 중건하였다. 조선 후기에 무학(無學)이 중창하면서 영원전(靈源殿)을 지었고, 1866년(고종 3)에 관찰사 심상훈(沈相薰)이 중수하면서 신원사라 하였으며, 1876년에 보연(普延)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룡산 동서남북 4대 사찰 중 남사(南寺)에 속하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향각(香閣)·영원전·대방(大方)·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중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八作)집이며, 내부에는 아미타불이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다. 또 향각의 불상은 명성황후가 봉안한 것이라고 전한다.
문화재로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인 오층석탑과 부도가 있다. 오층석탑은 여래사리탑(如來舍利塔)으로 신라 말 고려 초의 양식을 띠고 있으며, 상층 일부가 없어지고 4층만 남아 있다. 1975년의 보수공사 때 1층 탑신의 사리공(舍利孔)에서 사리구(舍利具)와 함께 개원통보(開元通寶)·함원평보(咸元平寶)·황송통보(皇宋通寶)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모두가 고려시대의 것이다.
이 밖에도 대웅전에서 동쪽 약 50m 거리에는 이 절에서 관리하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호인 계룡산 중악단(中嶽壇)이 있다. 본래는 계룡산의 산신제단(山神祭壇), 즉 계룡단이었던 것이 조선 말 고종 때 묘향산에 상악단(上嶽壇), 지리산에 하악단(下嶽壇)을 두고 있었으므로 중악단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라 때는 중사례(中祀禮)로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는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사를 지냈으나 현재에는 향전(香奠:초상집에 부조로 내는 돈이나 물품)을 올릴 뿐이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多包) 팔작집으로 조선 말기 건축 중 우수한 것이다. 우리 나라 산악신앙의 제단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중악단의 경역은 612㎡로 둘레에 축담을 둘렀고 전면에 이중의 내외문(內外門)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고왕암(古王庵)·등운암(騰雲庵)·마명암(馬鳴庵)·남암(南庵)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고왕암은 660년(의자왕 21)에 창건하였고, 1419년(세종 1)에 중건하였으며, 1928년 청운(淸雲)이 또다시 중건하였다. 암자의 이름을 고왕이라고 한 것은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이 신라의 장군 김유신(金庾信)과 합세하여 백제를 침공할 때 백제의 왕자 융(隆)이 피난했다가 이곳에서 신라군에게 항복함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고 있다.
신원사대웅전(新元寺大雄殿)
신원사(新元寺)는 계룡산에 있는 절로 651년(백제 의자왕 11년) 열반종의 개조(開祖)인 보덕(普德)이 창건했으며, 1298년(고려 충렬왕)에 무기(無奇)에 의해 중건됐다. 조선 태조 때 무학(無學)이 삼창을 하면서 영원전(靈源殿)을 지었으며, 1876년(고종13년)에 보연(普延)이 다시 중수했다. 경내에는 계룡산의 산신제단(山神祭壇)인 중악단(中嶽壇)이 있다.
중악단(中嶽壇)
중악단은 신원사 대웅전 우측 뒤편에 자리 잡은 산신각으로 계룡산신을 모시는 제단(祭壇)이다. 산신각 중에는 전국 최대 규모이며, 조선 태조는 1394년(태조3년)에 북쪽 묘향산의 상악단, 남쪽 지리산의 하악단과 함께 영산(靈山)으로 꼽히는 3악의 하나인 계룡산의 신원사 경내에 계룡단(鷄龍壇)을 세우고 산신제를 지내오다가 1651년(효종2년)에 단이 폐지됐으며, 1879년(고종16년)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건축하고 이름을 중악단(中嶽壇)으로 고쳤다.
특히 신원사에는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중악단이 자리 잡고 있다. 신원사 동쪽에 위치한 중악단은 조선 태조 3년에 창건된 것으로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던 산신각이다. 효종 때 철거됐다가 고종 16년에 명성황후가 다시 건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궁궐양식을 그대로 축소해 만든 왕실 산신제단으로 그 가치가 높아 1999년 보물 제1293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중악단에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진급을 앞둔 계룡대 군인과 경찰, 수능시험과 공무원시험 등을 준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기도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다.
신원사는 현 주지 중하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지난 2012년부터 매년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기리는 천도·추모대재를 봉행하고 있다. 두 사람의 재는 명성황후의 원과 고종황제의 명으로 폐위되었던 중악단을 복원한 것에 대한 고마움과 일제 침략자들에게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왕비의 넋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10월8일에 봉행하고 있다. 또 신원사는 명성황후 추모대재를 국가차원에서 봉행하는 것을 청원하기 위한 것과 중악단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서명을 받고 있다.
여명사(黎明寺)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65-1번지
한민족의 성산(聖山)인 계룡산을 병풍 삼아 신원사 입구에 자리 잡은 청정수월 도량이다.
계룡산은 민족의 명산이며 신령스러운 산이다.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에 도읍을 정하려고 답사를 왔을 때 동행했던 무학대사가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이고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고 한데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계룡산 동쪽에는 동학사가 있고 서쪽에는 갑사, 북쪽에는 구룡사가 있었지만 폐사되었고 남쪽에는 신원사가 자리하고 있다.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을 배경으로 하여 천황봉과 연천봉 사이를 흐르는 계곡 옆의 최승지에 신원사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신원사 동쪽의 신도안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신도읍으로 정하고 1년여 동안 궁궐 조영 공사를 하다가 중단한 곳으로, 지금은 궁궐공사에 쓰였던 주춧돌 115개가 남아 있어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신원사는 651년(백제 의자왕 11) 열반종의 개산조 보덕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신원사의 본래 이름은 신정사(神定寺)였으나 뒤에 신원사(神院寺)라고 했다가 1866년(고종 3)에 지금의 신원사(新元寺)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신원사는 1394년(태조 3) 무학대사가 크게 중창하였고, 이때 영원전을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1644년(인조 22)에는 당시 주지 삼욱스님이 영준스님의 증명 아래 괘불을 조성하였다. 이 괘불은 드물게 보이는 노사나불 독존상으로서, 현재 국보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다. 1866(고종 3)에는 관찰사 심상훈이 중수하면서 지금처럼 신원사라 하였으며, 1876년 보연화상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차량지원을 해준 이프로 둘레길 안내를 해준 계룡둘레 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보시느라 수고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