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와의 전쟁
요한일서 4장1절『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도키마제테)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아가페토이(Ἀγαπητοί)는『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아』라는 의미이고, 도키마제테(δοκιμάζετε) 분별하다라는 말은 철저히 검증해서 잘 판단하라는 의미다. 많은 거짓선지자가 나왔다는 말은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를 바탕으로 거짓복음을 전하는 자가 교회 공동체에 들어왔다는 말이다. 신도의 영적 전쟁의 대상은 사탄이 아니라, 사탄 아래 있는 거짓선지자들이며, 또한 육적 자기자신의 생각이다. 우선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서 살펴보면 그들의 영을 판단해야만 한다.
4장 2-3절『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기노스케데)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사르키)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기노스케테(γινώσκετε)는 알다(히브리어:야다)는 의미이며, 성령을 통하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음이 성령의 감동으로 역사함을 의미한다. 사르키(σαρκὶ)는 육체가 아니라 육신이며 성육신을 의미한다. 성육신은 임마누엘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육신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면 안되고 사람이신 그리스도라는 의미다. 육신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는 것이다. 거듭난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들어온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이 부분이 빠져 있는 사본들이 있다. 물론 빠져 있어도 문맥상 앞의 부분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임마누엘 신앙을 믿지 않는 자들은 성도의 임마누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그 성전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들어가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거짓선지자들이라는 말이다.
거짓선지자들은 성경의 원래의 언어인 히브리어나 헬라어에 능통하지 못하거나, 신학대학교에서 교육받은 교리를 진리인양 생각하거나, 성경 말씀을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 사고를 바탕으로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여 신도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되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15절에서『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이는 왜곡된 성경 말씀을 통해서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구렁텅이로 인도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다.
4장 5-6절『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아쿠에이 헤몬)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세상에 속한 말은 기복적인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서 잘되고 물질적 축복을 얻게 하는 모든 것들이다. 아쿠에이 헤몬(ἀκούει ἡμῶν)은 우리가 소유한 것을 듣고 라는 것이다. 헤몬(ἡμῶν)은 소유격으로 그 대상이 빠져 있는 것이다. 우리의 ( )에 대한 말을 듣고 라는 의미다. ( )는 진리를 전하는 성령이다. 자칫 잘못하면, 요한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들은 형제의 영을 살리는 자들이 된다. 영을 살리는 것이 사랑이며, 형제들은 서로 살아있는 영에 대해서 격려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기노스케이γινώσκει)은 하나님과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가페의 사랑, 즉 하나님이 육신으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죽었던 영을 살리기 위함인 것이다. 그래서 부활의 열매가 되게 한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잘못된 교리를 하나 말을 한다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일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신도들은 예수를 믿으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믿는 신도의 죄를 하나님이 사해주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가지의 오류가 있다. 신도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신도가 예수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의미가 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이 말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도가 연합되어 죽고, 그 결과 대속의 죽음으로” 라는 의미가 된다. 함께 죽지 않으면 대속의 죽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약시대 죄인이 희생제물을 죽여 피를 제단에 뿌리고, 살을 태웠는데, 이 희생제물과 죄인이 연합되어 죽은 것을 죄인은 믿는 것이다. 그래서 희생제물이 죽으므로, 이제 죄인은 다시 태어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깨닫는 자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오늘날도 함께 죽는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로마서 6장 4절『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신도의 죄를 사해주는 것”에 대해서, 이는 과거의 죄만 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죄인이 희생제물(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죄인에 대해서 현재와 미래에 적용할 법조문이 없다는 말이다. 로마서 8장 1-2절『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오늘날 거의 대부분 교회에서 예배를 시작할 때, “지난 주에 지었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예수의 피로 용서받읍시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목사가 이제 모든 죄가 다 사해졌음을 기쁘게 받습니다 라고 말을 하면 신도들은 모두 아멘으로 화답한다. 이게 율법주의 전형이다. 히브리서 10장 1-5절『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히브리서 10장 6절에서는『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고 말을 하고, 10장 17-18절에서『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하나님은 이렇게까지 말씀해 주셨는데, 이것을 믿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날마다 죄를 용서받기를 계속한다면, 날마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용서받지 못하는 성령훼방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육신의 연약함을 몸소 체험하셔서 잘 알고 계신다. 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하며, 부활생명으로 거듭난 자라는 것을 기억하며 복음에 정진해야만 한다.
부활생명은 육체가 죽은 후에 육체가 다시 되살아나는 개념이 아니라, 죽었던 영적 존재가 다시 영적으로 살아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육은 죽고 영의 몸으로 거듭나는 것이 부활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부활생명을 불어넣으셔서 영적 몸을 입혀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