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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대하 7:12-16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13.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15.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16.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제목 : 하나님 앞,
이 시간에는 “하나님 앞”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렘 23:23-24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십니다.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 앞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장소와 사람이 있습니다. 구별된 곳, 구별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애급에서 즉 세상에서 선별하여 불러 내셔서 자기 백성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은 그래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담배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오락하는 장소에서 그것을 즐기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교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께 사랑 받고 또 형통케 하십니다. 그 자리가 어디일까요? 그 자리는 바로 하나님 앞입니다. 그래서
시16:11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했습니다.
눅10: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시며 발아래서 말씀 듣는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몸이 교회에 나온 것도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진정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몸은 교회에 나와 있는데 생각은 마음은 딴 데가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 하나님 앞이 얼마나 축복된 곳인가를 성전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본문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성전에 나오는 자들에게 여러 가지의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 나오면 어떤 복을 주십니까?
1.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15절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여러분,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계십니까? 찬송가 420 장처럼 나의 괴롬과 슬픔을 누가 알겠습니까? 남에게 이야기 하면 해결 되겠습니까? 들어 주어도 한, 두 번이지 계속 같은 이야기 반복하면 징징 댄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얼굴을 찾으면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같은 이야기라도 100번이러도 들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끊어진 상태에서 자기 욕망을 위하여 또는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 문제가 생기면 회개하지 않고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았을 때는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삼상 7장을 보면 블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큰 우뢰를 발하여 블레셋 군대를 물리쳐 주셨습니다. 진실로 통회하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왕하 20:5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
사 57:15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사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하십니다.
하나님 앞이란 세상 죄악 다 떨쳐버리고 회개하는 자리요, 온 마음으로 경외하는 신앙의 자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너무 형식적, 의식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실한 회개와 헌신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엘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 앞에 살면 다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 15:7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쓴 서신서에 보면 거의가 주안에 영어로는 In Christ라고 말씀하고 있고 예수님도 “ 내 안에” 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그럼 주안. 내안이란 무슨 뜻 입니까?
요일 3: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하십니다.
2. 죄를 사하여 주심.
14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처럼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13: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의 두 팔을 벌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실재를 누리려면 그 앞에 나와야 합니다.
요일 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빛은 말씀입니다. 빛은 성령님입니다. 말씀 순종하고 성령님 인도함 받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 5: 16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여러분 안에 빛이 있다면 그것은 비추게 되어있습니다. 빛의 역할은 어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빛이 있다면 어두움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의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되시길 바랍니다.
- 찬양: 502 장
사 55:7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했습니다. 처음에는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몸이 따라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주어지고 용서의 확신도 오고 죄악도 사라지고 예수 안의 영광 복이 더 믿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악인도 아니고 불의한 자도 아니라고 세상 윤리와 도덕을 비추어 생각합니다. 나는 그런대로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것 즉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를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재앙이 사라짐.
13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미국의 유명한 펄벅 작가가 쓴 “ 대지”라는 소설책에 보면 메뚜기 떼에 대하여 나옵니다. 영화로도 나온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그 떼가 얼마나 많은지 구름 같아서 해를 가려 세상이 어두워 집니다. 메뚜기 떼가 한번 지나가면 그야말로 초토화가 됩니다. 메뚜기 떼가 한번 지나가면 곡식의 뿌리조차 남기지 않고 다 먹기 때문에 푸른색이 너머나지 않는것은 말할 것도 없고 들판이 일시에 황량해 집니다. 그러니 메뚜기 떼가 나타나는 것은 큰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면 그 재앙을 거두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102명의 청교도들은 그해 겨울에 굶주림과 질병,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44명만 살아남았습니다. 지속되는 흉년에도 낙심하지 않던 그들에게 3년째 되던 해 풍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추수를 얼마 앞두고 벌레들이 수없이 나타나 곡식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황금 찾아 온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을 제대로 섬기겠다고 왔는데 그 삶이란 처절한 사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낙망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하여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신앙이 그야말로 정금 같지 않습니까?
아무리 벌레를 잡아도 소용이 없자,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살았던 저희를 용서해 주소서.” 그러면서 밤새 회개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참새 떼가 하늘을 덮을 듯이 새까맣게 날아와 벌레들을 모조리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외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노라.” 그 일로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부족했음을 깨달았으며,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추수감사예배를 풍성하게 드리고 이 감사의 정신은 후손들에게 계속하여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앙을 당하면 선지자를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했습니다. 전쟁이 닥칠 때도 그랬고, 기근이 올 때도 그랬고, 질병이 유행할 때도 그랬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화가 김진홍 목사님이 하시던 남양만의 활빈교회에도 있습니다. 옛날에 왕십리를 지난 청계변에는 극빈자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정부에서 재개발한다는 명목으로 하루아침에 남양만에다 이주를 시켰습니다. 말은 이주인데 실제로는 갔다 버린 것이지요. 50년전에 도로도 변변치 않은 갯벌과 맞다은 황무지에 갖다 놓고 개척해서 살라고 하니 기막힌 일입니다. 농사를 지어야 먹고살겠는데, 땅에 소금기가 있으니 볍씨가 다 썩고 싹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비롯한 전 주민이 비가 많이 와서 토지에 있는 소금기를 씻어나가게 해달라고 눈물로 부르짖었습니다. 눈물의 기도를 응답하셔서 3년 만에 소금기가 완전히 가시지도 않은 땅에서 수확을 하여 추수감사제를 드리고 눈물로 밥을 먹었다고 자서전에 쓰고 또 영화로도 나오고 농촌 진흥촌에서 연구대상으로 연구를 하였다고 합니다. 결론은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가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오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개인이건 국가건 하나님께서 치유하셔야 진정한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야 재앙은 물러가고 나가나 들어가나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4. 병을 고쳐 주심.
13절 하 반절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이 말씀은 병을 고쳐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옛날에는 전염병이 한번 돌면 대책이 없어 다 죽었습니다. 흑사병 때문에 중세 유럽인구의 삼분의 일이 죽었다고 합니다. 위생관념도 희박하고 세균에 대하여도 무지한때에 전염병은 그야말로 어떤 전쟁보다도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가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도 하나님 성전에 나와 기도하면 없애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출15:26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하셨습니다.
약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그렇게 할 때 치료가 급속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 특별히 사랑 하심.
16절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이 말씀은 성전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겠다는 뜻이며 하나님 얼굴을 찾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전 아닌 데는 그 어디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있느냐 아니면 등지고 있느냐의 결과는 엄청납니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있느냐 잊어버리고 있느냐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으로 우리가 찬양하며 경배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할 때 그 모든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축복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죄악에서 떠나 겸손하게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그 얼굴을 찾아, 주시는 영육간의 풍성한 축복을 자녀로서 당당히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