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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영계록(統制營啓錄)○고종(高宗) / 고종(高宗) 10년(1873) 6월 25일 승정원 개탁
일시에 도착한 포항 첨사(浦項僉使) 최석봉(崔錫鳳)의 치보 내용도 동일하였습니다.
嶺誌要選序[李▼(金+憲)永] 崔同樞錫鳳纂領誌要選二▩示余仍丐置一辭于 卷端凡大嶺七十州山川戶口風土人物樓觀題詠 瞭然如指掌一寓目而盡得之所謂博而約者非耶 此不唯博古家珍玩居觀察之職者所不可闕也如 君可謂有志之人昔蕭相國先取圖籍者意其在玆 歟余曾持斧右省足跡殆遍而惟以未覽全局爲恨 伊今以後是編存矣又何必蠟余屐也壬辰( 1892, 고종 29)維夏巡察使東蓮李▼(金+憲)永書
李𨯶永 | 1837 | 1910 | 全州 | 敬度 | 敬窩, 東蓮 | 文貞 |
[嶺誌要選增補藏板閣記]
嶺誌要選者崔同樞錫鳳所編本二冊朴秘院永琪 氏病其疎略躬走州郡收集鄕案及祠院旌閭亭齋 科蔭書籍增補而刻之板二百三十餘枚金督郵容 台氏許寢郞宣君相與議曰此全省文獻非一家所 私醵貨敦工閣以藏之屬相稷記其事竊念我東州 郡典故莫如勝覽之備然猶未及續修實有半上落 下之嘆此書旣完嶺之幸也苟以是例而推之七省 將與中國之一統志相頡頏矣視古之高麗志風俗 通義朝鮮志東國地志八道地志輿地考諸篇豈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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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哉閣在檜山之吐月驛與孤雲之翫月臺寒岡之 觀海亭芝山之芝介洞眉叟之達天洞下廬之長山齋一境相望百代共守亦不偉哉且竊惟之旣藏板 焉則合有印繡之所請構數棟于閣傍扁之曰大嶺 講舍要省內士流而修契事自案中圈長貳管攝閣 務歲一設會講學習禮扶得嶺鄕本俗尤有光於嶺誌盍相與商確哉 辛未(1931)元月上元日光州盧相稷記
노상직(盧相稷, 1855~1931)
西岡遺稿(서강유고) 安益濟(1850 ~ 1909)
西岡遺稿卷之一
詩
觀海亭 在馬山浦寒岡鄭先生捿息於此而命名之亭也有板上韻故敬次...
時軒文集(시헌문집) 安禧遠(1846 ~ 1919)
時軒文集卷之二
詩
與金文直孫殷瑞辛士衡登觀海亭 亭在昌原寒岡所建
한강연보 제1권[연보(寒岡年譜)]
15년 우리나라 선조 20년 정해(1587) 선생 45세
○ 고(故) 사문(斯文) 박한주(朴漢柱)를 위해 사우(祠宇)를 창립하였으며 그의 무덤 위에 흙을 더 쌓고 제사를 지냈다. - 박한주는 연산조(燕山朝) 사람으로 무오사화(戊午史禍)에 관련되었다. ○ 제문은 문집에 나와 있다. -
○ 관해정(觀海亭)을 지을 터를 창원(昌原)의 회원(檜原)에 미리 정하였다. - 회원은 바닷가에 있는데 옛날에 최 문창후(崔文昌侯 최치원(崔致遠))가 놀았던 곳이다. 선생이 그 경치를 사랑하였고 또 선현의 유적을 경모하여 이곳에 오가며 놀면서 구경하였다. 고을 선비들이 이 때문에 나중에 정사(精舍)를 세웠는데, 선생이 그 이름을 취백당(聚白堂)이라 하였다. ○ 함께 온 사람들에게 절구 한 수를 지어 보여 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는야 바닷가에 정자 하나 지으련다, 이 좌중에 그 누가 채서산이 되려는가. 치자, 유자, 매화, 대 일찌감치 심어 두고, 여섯 해를 비바람에 시달리지 않게 하소.〔我欲爲亭近梅灣 座中誰作蔡西山 梔橘梅筠須早植 莫敎風雨六年間〕”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