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서평 쓰기> - 6/24
내가 춘향전을 읽게 된 계기는 비록 국어시간의 수행평가 '춘향전을 읽고 서평쓰기'를 위해서였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고 인상깊게 읽은 것 같다. 내가 읽은 출판사의 '춘향전'은 이 소설이 판소리계 소설이라는 점을 착안하여 '~하였구나', '아이고, 아이고', '~하였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고'와 같은 진짜 판소리 같은 추임새를 넣어 읽는 독자(나)를 신명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요소들을 중간중간 넣어 책을 읽는 것이 아닌 잠시 스토리텔링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이 '춘향전'이라는 소설 속에는 감명깊었던 부분과 약간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있었는데, 그중 굳이 하나를 꼽아보자면 소설의 초반부에서 이도령(이하 이목룡)이 처음 그네를 뛰는 춘향이를 보고 하인을 시켜 말을 전하고, 춘향이도 자신의 하인을 시켜서 이목룡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중에 이목룡이 춘향이를 자신이 늘 춘향이를 보고 있던 정자로 불러 대화를 나누다가 혼인서약(반지를 나눠가짐)을 하는 부분이 제일 감명이 깊었던 것 같다. 양반과 기생(지금으로 따지자면 대기업 회장 아들과 평범한 일개 회사원쯤..?)이 서로 좋아하고 특히 양반댁 자제가 먼저 결혼하자고 하는 장면에서 '남녀간의 사랑하는 마음'과 '신분을 초월한 만남'과 같은 키워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적당한 남녀사이의 수줍음 까지도 잘 표현한 것 같아 로맨스 장르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가장 감명이 깊었다. 그리고 이몽룡의 행보를 보아도 소설이기는 하지만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왜냐하면 정식 과거시험도 아닌 그저 나라에 좋은 일이 있어서 감작스레 치른 시험에서 그 누구보다 빠르게 주어진 주제를 보고 시를 쓰고 장원급제까지 하여 임금에게서부터 암행어사의 직책을 부여받고 남원고을로 내려가 자신과 혼인서약을 한 춘향을 못된 변사또로부터 구해내어 마침내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평가하기에 이몽룡은 굉장히 성공한 사람이다. 그 이유를 따지자면 일단은 첫번째는 현제의수능과 비슷하지만 조금 난이도가 더 높은 과거에서 한번에 장원급제를 한 것이고, 두번째는 어렸을적부터 장거리연애를 하던 여자친친구에게 성공한 모습으로 돌아가 찝적되던 남자를 호혼쭐내고 결혼까지 한 것이다.
만약 이 책을 읽고 내 인생이 변할 수 있다면 그 변하는 것은 춘향이의 절개와 일편단심을 닮는 것일 것이다. 춘향이의 끝까지 자신의 절개를 잃지 않는 모습과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목룡만 바라보는 일편단심의 사랑. 이런 소설 속 춘향이의 모습들을 본받아 나도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일편단심으로 결혼할 때까지 여자친구만 바라보고 살 것이다.(마~안약에 생긴다면...ㅋㅋㅋ)
이쯤에서 춘향전의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양반댁 자제 이목룡은 그네를 뚜고 있던 춘향이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하여 춘향이와 혼인서약까지 하게 되지만 곧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떠나면서 이목룡은 춘향이에게 다시 돌아오겠다 약속한다. 이목룡이 한양으로 올라간 사이 춘향네 고을에는 변학도라는 사람이 사또로 오게 되었는데 변사또는 춘향이에게 수발을 들라 하지만 춘향이는 이를 거부하여 옥에 갇힌다. 그 사이 안양에서 과거급제를 하여 암행어사가 된 이목룡은 춘향이네 고을로 발령을 받게 되고 결국 이목룡은 변사또를 처단하고 옥에 있던 춘향이를 구해 혼인을 올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나의 '춘향전'에 대한 최종 평가는 '춘향전'은 고전 소설이지만 현대의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며, 어려운 표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남녀노소 할 필요 없이 즐길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나의 막내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막내동생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발표하기> - 9/22
오늘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대, 그러니까 2018년에 갔었던 일본여행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겠다. 일단 내가 일본을 가게 된 이유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한 일본학교와 교류하기 위하여 대표단 자격으로 갔다. 아직도 그 학교 이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학교 이름은 '금강학원'이었다. 어쨌든 교류단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면접으로 뽑혔는데 나는 당시 전교임원을 하고 있고, 또 특기로 바이올린을 할 수 있어서 면접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 당일까지 자매학교에서 선보일 공연을 준비했고, 당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나리타 국제공항까지 비행기로 갔다. 나리타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우린 모노레일을 타고 공항 본건물로 가서 짐을 찾고 버스를 대여해 가이드분과 근처 호텔로 향했다. 그 전에 일본 마트(편의점 같기도...)에 들러 약간의 간식을 샀는데 그곳에서 곤약젤리를 처음 먹어봤다. 그리고 호텔에서 짐을 놓고 조금 쉬다가 호류사라는 일본 절 같은 것을 방문했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호류사 5층 목탑이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 이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금당벽화도 봤던 것 같은데, 그 그림은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런 곳에서 한국의 역사의 일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그 다음날에는 '나라'라는 지역을 갔는데 그곳에는 거대한 청동 불상이 있었다. 부처상의 손바닥에는 성인 7~8명 정도가 올라갈 수 있는 크기라고 한다. 불상의 크기가 어느 정도냐 하면, 보통 아파트의 높이의 한 4~5층 높이 정도 됬다. 또한 그 밖에는 많은 사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사슴들에게 먹이를 줄 수 있도록 먹이도 따로 판매하고 있었다. 나도 먹이를 사서 사슴들에게 주다가 한 사슴을 놀리다가 그 사슴이 화가 났는지 나의 배를 입으로 물어 멍이 들었다. 사슴들에게 먹이를 주고 난 뒤, 모두 다같이 그늘에 앉아 타코야키를 먹었다. 나는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는데 크기가 내 주먹의 반 크기였고 또 굉장히 부드럽고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사실 한국에 와서 타코야키를 또 먹어봤지만 그때 그 맛을 찾지 못해 굉장히 아쉬웠다). 그 후 우리는 '왕인 박사의 묘'라는 곳을 찾아갔다. 왕인 박사는 백제사람인데 일본에 천자문을 전해주어 일본에서 한자가 널리 전파되도록 하여 일본사람들이 그를 추앙하며 그가 죽었을 때 커다란 묘에 묻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 금강학원에 찾아가 각자 준비한 공연을 선보였고, 그쪽에서는 사물놀이와 태권도 등을 보여주었다. 그 후 우린 백제의 왕을 기리는 신사를 찾아갔는데 그 신사에는 백제의 왕을 신으로 추앙하며 참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의 한 고분을 찾아갔는데, 그 고분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고분에 그려진 벽화에서 고구려의 그려진 벽화와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고구려의 치마 등). 고구려 고분에서 볼 수 있는 치마와 색깔배열 등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교류가 있었다는 아주 중요한 자료라고 하였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지친 우리는 삐에로 쇼핑몰에서 컵라면과 여러 간식들을 들고 호텔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그 다음날 우리는 귀국을 했다. 그때의 여행을 통해 아직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땔래야 땔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