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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9.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누가복음3:7-9)
7 Crowds of people came out to John to be baptized by him. “You snakes!” he said to them. “Who told you that you could escape from the punishment God is about to send? 8 Do those things that will show that you have turned from your sins. And don't start saying among yourselves that Abraham is your ancestor. I tell you that God can take these rocks and make descendants for Abraham! 9 The ax is ready to cut down the trees at the roots; every tree that does not bear good fruit will be cut down and thrown in the fire.”
청문회를 보았습니다.
틀림없습니다.
그 국회의원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목사님을 향해 따졌습니다.
“목사님 맞습니까?
영혼을 구원해야 할 사람이 사람을 실족하게 하면 되겠습니까?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만나셨을 때 그 녀에게 조용히 잘못을 지적해 주셨어야지요.
그리고 신부들은 고해를 비밀로 지키지 않습니까?”
그런데 목사님이 그 분에게 답했습니다.
“나 목사 맞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용산과 국힘 국회의원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국회의원은 개인 구원을 목사님은 사회 구원을 말하는구나 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좌우파를 가르기도 합니다.
그것이 그럴 듯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이것으로 신앙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나?
히브리 백성들이 애급에서 심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그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물론 그들은 애급 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떠나야 할 애급 땅에 논을 사서 수천 평의 모를 심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옆 밭을 탐내지 않을 것입니다.
심어둔 모가 자라서 벼 이삭이 팰 때쯤 그것을 뒤에 놔두고 떠나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이층집을 지어두고 떠날 것입니까?
이 땅은 썩고 말(mortal) 땅입니다.
이제 그들은 썩을 애급을 뒤에 두고 썩지 않을(immortal) 땅을 약속받게 된 것입니다.
그 약속을 받은 이상 누구나 약속받은 그 땅에 입장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극장이든 공원이든 혹은 박물관이든 그곳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돈 내고 사야 합니다.
돈 없으면 그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원 가려는 사람은 입장비부터 챙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도 들어갈 때 입장권을 내야 합니다.
그 입구에서는 그 사람의 의를 확인합니다.
불의한 사람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주제는 오직 의입니다.
유대인들의 제사 의미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양과 소가 목이 잘려서 제물로 드려지는 이유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속죄의 의미입니다.
결국 제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입장권 때문입니다.
속죄를 통해서 우리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신 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기독교는 이 의의 주제를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의와 성경의 말씀하시는 의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의는 세상과 다른 의의 내용을 가집니다.
33. 너희는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스스로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34.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눅12:33,34)
그러니까 이제 떠날 애급에 논을 사서 그 논에 모를 심을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를 심으면 바보 취급 받을 정도가 아닙니다.
16. 그리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18.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20.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12:16-20)
이 부자는 그 날 밤으로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애급 땅에 창고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기를 친 것도 아닙니다.
그의 농사는 그 해에 유난히 풍작이었던 것입니다.
소유가 너무 많아지고 보니 창고를 더 크게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창고를 지은 그 땅이 애급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땅을 약속해 주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애급땅이 전부인 줄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따라서 했다가 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 데다가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생각도 못 할 고도의 윤리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로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로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마6:28-30)
이런 하나님의 요구를 인간이 어떻게 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님이 그 의를 감당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의에 대한 요구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요구 때문에 그들이 요한이 베푸는 세례 의식에 몰려든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씻는 의식에 참여하려 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그들이 요한의 뜬금없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7. 독사의 자식들아,
7 “You snakes!”
당사자들은 몹시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친척 사이라든지 알고 지내던 친구여서 요한을 찾아갔더라면 요한에게 그런 소리를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깡패가 깡패짓하는
강도가 강도짓하는
도둑이 도둑질하는 것을 두고 그 사람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열매도 없는 주제에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찬송하며 교회 가는 그 사람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종교적 이율배반을 일삼는 자들을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들이 요한이 베푸는 정결례를 염두에 두고 참여했기 때문에 그런 험한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실은 이 일이 요한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 성수로 예수님과 유대 사람들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성수를 위해 병자조차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
그들의 눈에 엄청나게 불경한 행위를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하시며 오히려 그들을 공격하셨던 것입니다.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막3:4)
예수님은 그들이 안식일 성수라는 종교적 명분을 내세우면서 막상 악을 행하고 있다고 고발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안식일 성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온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른 다음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7.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7 “Who told you that you could escape from the punishment God is about to send?
하나님의 뜻은 죄인들로 죄가 없는 존재 즉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에게 몰려든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이용하려 했던 것입니다.
죄인들에게 닥칠 징벌에서 기회주의적으로 피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의로워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매를 피해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벌이 있는 곳은 그들이 피할 자리입니다.
자신들이 변화될 의사는 없습니다.
마귀의 문화는 그 사람의 속의 것 존재의 문제에 진지하지 않습니다.
그저 현실 보장만을 관심합니다.
만사형통이라나!
수학 숙제를 받아왔는데 답안지를 보고 베껴간 것입니다.
답을 맞는데 그 문제를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꿈은 100점 맞아서 진급도 되고 제 보장받는 것입니다.
요한은 고민하면서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1에서 10까지 덧셈했다면 11부터도 덧셈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성서의 문제는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데에 있습니다.
세상은 예수님 믿고 벤츠 몰고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벤츠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들은 징벌 문제를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대처한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를 닥칠 징벌을 피하고자 하는 기회로 삼으려 한 것입니다.
요한은 그들의 가벼움과 교활함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들은 독사의 자식들이 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과 똑같이 신앙 행위를 통해서 독사의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불행한 일을 원치 않는다면 요한의 시각으로 우리의 종교 행위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은 그 무리에게 바로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8 Do those things that will show that you have turned from your sins.
즉 세례를 받으러 온 이 사람에게 회개에 알맞은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없이 세례를 받으러 온 그들이 독사의 자식으로 불린 것입니다.
제 세속의 처신을 위해 바이든이 날리면이라고 거짓말을 해놓고는 세례받으러 오는 행위가 독사의 자식들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지적한 것은 세례를 받으러 오는 행위뿐 아닙니다.
이제는 그들의 속 생각을 고발했습니다.
8.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8 And don't start saying among yourselves that Abraham is your ancestor.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고백을 하면서 간단히 자신을 의인 취급하는 것입니다.
의인도 아니면서!
그 유대 사회에서 이 고백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의인이었습니다.
이 속생각이 복음의 첫발도 못 떼게 하는 고질병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속마음을 견고하게 방어합니다.
제 생명을 걸고 속마음을 방어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제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른 채 죽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8일이 되신 예수님을 두고 이런 예언을 했던 것입니다.
34.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도록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을 받는 표징으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35.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꿰뚫을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의 마음에 품은 생각들을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눅2:34,35)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고난을 받으실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실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칼로 마음이 꿰뚫려 찔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런 고통을 감수하셨던 동기가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품은 속의 생각을 드러내시기 위한 것입니다.
요한은 제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찬송하며 교회를 향하시는 목사님이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성경이 바로 그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마16:2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많은 고난을 당하셨던 것은 장로들과 목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속으로 나는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라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나 깡패 두목이라고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특별한 자의식을 속으로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이제 그 고백을 공격했습니다.
그 고백이 진통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회개에 알맞은 열매로 인해 일어나는 통증을 진통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요한이 노한 것은 첫째로 1,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는 사라지고 1,000원짜리 반지통만 남은 신앙을 이르는 것입니다.
둘째로 1,000원짜리 반지 통에 2,000원 짜리 가짜 유리 반지를 넣어두고 다이아몬드라고 자랑을 삼는 경우입니다.
그 사람은 정말로 그 유리 조각을 다이아몬드라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빈 껍데기를 공격하셨습니다.
39.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대로 하였을 것이다.
40. 그러나 지금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요8:39,40)
과거에 그 반지통에 1,000만원 짜리 진짜 다이아몬드가 담겨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빈 통입니다.
둘째로 2,000원짜리 유리를 다이아몬드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천국문 앞에 많았습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1:22)
주님 주님을 외치며
예언하며
주님의 이름을 귀신을 쫓아내며.......
그것들은 모조리 2,000원도 못 되는 가짜들이었습니다.
그것에 꼬빡 속아버린 것입니다.
강사가 손을 들자 모조리 팩 쓰러지고 낄낄대면 굴러다니고.......
도대체 거기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람 생명의 사랑은 찾을 수 없습니다.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8.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8 God can take these rocks and make descendants for Abraham!
발에 치이는 돌멩이가 귀할 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써 비교될 수 없는 귀한 존재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들을 돌멩이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내용성을 가졌는지 자신을 반성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잃는 것을 불신으로 여겨온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요한은 그들이 잊고 지내는 몇 가지 사실을 경고한 것입니다.
네 속에 아브라함의 내용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껍데기 안위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런 돌멩이로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드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만 것입니다.
돌멩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그들은 돌멩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만 그들이 존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존귀하게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여겨주셨을 뿐입니다.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의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9.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다.
9 The ax is ready to cut down the trees at the roots;
요한의 기적은 너희가 지금 너희 영적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끼가 이미 네 발 밑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로 그 나무 존재의 유무를 결정할 것입니다.
성전 앞의 무화과나무처럼!
9.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9 every tree that does not bear good fruit will be cut down and thrown in the fire.”
좋은 열매란 만나면 인사 잘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돈 잘 빌려 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8 Do those things that will show that you have turned from your sins.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두고 좋은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열매란 영어로 직역하면 네가 너의 죄로부터 돌이켰다는(have+pp) 사실을 보이려는 것(those things that will show that you have turned from your sins.)입니다.
탕자는 아버지께 치명적인 죄를 지었습니다.
탕자는 되는대로 살다가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돼지 사료로 밥을 대신하다가 견디지 못해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생각지도 못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 탕자의 경험이 그 이후로 그의 모든 사고를 지배했습니다.
탕자는 어떤 일로도 아버지께 제 주장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온갖 열심을 다 하고도 오직 아버지 은혜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공로를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형이 그에게 이 막되먹은 놈이라고 해도 그는 형님에게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했습니다.
형이 아버지께 저 놈을 집에서 내어 쫓으라고 해도 그는 조용히 제 일만 했습니다.
그 모든 행실이 곧 회개에 알맞은 열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형은 돼지 사료를 먹다가 집에 돌아온 경험이 없었습니다.
돼지 우리 안에서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다 주인의 발길질에 채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없다 보니 그는 아버지께 대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란 바로 그 탕자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발뿌리에 도끼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뿌리가 찍히고 그 나무는 불 속에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고백 대신에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이 말하는 회개에 알맞은 열매란 우리 귀에 너무 추상적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한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요한은 이것들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예배당 안에서 경배와 찬양으로 보여져야 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보여져야만 합니다.
이전에는 나만 보였습니다.
내 경건을 위해 요한을 찾아가서 세례를 받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회개에 합당한 사람의 눈에는 한 벌의 옷조차 없는 이웃들이 보였습니다.
내 경건만이 보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두 벌 옷 중에 한 벌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눅3:11)
최소한의 소유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두 벌 옷이 많다고 느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남아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남아도는 사회가 남긴 환경 파괴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40년의 광야 길에서도 이틀치 만나는 오염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본래 이틀 치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사회에 가난한 사람들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사회 구원이니 빈부 격차니 어려운 사회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독사의 자식은 개인의 신앙의 요구를 추구하지만 가난한 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자를 이릅니다.
좋은 열매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13. 요한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눅13:12,13)
이것도 소유에 대한 것입니다.
더 챙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14. 또 군인들도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요한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거짓 고발을 하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해라."(눅3:14)
공무원들은 강탈하는 것
거짓말로 고발하는 것
봉급 이외의 것을 탐하는 일들에 익숙합니다.
이해가 가지 않은 사람들은 청문회를 보시면 될 것입니다.
검사 판사 군인 장관 고위 공무원들이 그 사람들이 하는 그 짓을 하지 않는 것이 회개에 알맞은 행위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구조 악이나 사회 구원이니 개인 구원이니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단어들이 성경의 말씀을 사회학적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특별히 개인 구원을 사회 구원과 대립 개념으로 오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주장은 한 개인이 제대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 개인 구원은 사회적으로 구원을 이루는 열매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사회 구원은 곧 개인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강화중앙교회의 전신 잠두교회는 1900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당시에 김씨 성을 가진 할머니 교인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80이 넘은 나이에 교회를 다니시다가 한글을 깨쳤습니다.
제가 시무하던 봉성 교회에도 그렇게 한글을 깨치신 집사님들이 계셨습니다.
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18:18)
할머니는 성경을 읽으시다가 문득 여종 복섬이 일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교인들을 불러 모으신 후에 그들 앞에서 복섬이의 노비 문서를 불태워버렸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니 우리 주인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다 같은 형제라.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을꼬. 내가 복섬이를 부리는 것은 땅에서 매고 사는 것인데, 이러고도 어찌 하늘에서 푸는 복을 받을 수 있을꼬.”
“복섬아, 이제 너는 내 종이 아니다. 자유로운 몸이 되었으니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그러자 복섬이는 “마님, 나가라니요. 제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요. 제발 나가라는 말씀만은 말아 주세요.” 고백했고 그렇게 복섬이가 김 할머니의 양녀가 되었습니다.
김 할머니에게 개인 구원이고 사회 구원이로 그런 개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사회 구원을 몸소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개인의 신앙은 그 열매를 사회 구원으로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자위하면서도 자본주의 행태를 따라 축복을 규정하고......
교회가 오히려 자본주의를 대변하면서.......
김 할머니는 말씀을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극복해 버리신 것입니다.
김 할머니에게 개인 구원이나 사회 구원이나 같은 말입니다.
신앙의 나무에 좋은 열매가 풍성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최후의 심판 자리에서 김 할머니에게 바로 이 말씀을 들려주셨던 것입니다.
35.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마25:35,36)
개인의 종교적인 경건을 추구하면서 사회적인 열매가 없는 사람들은 독사의 자식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청문회에서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대립시켜서 서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 이 본문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개인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면서 바이든이 날리면으로 들리는 사람의 귀는 독사의 자식들의 귀입니다.
좋은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개인 구원이 곧 사회 구원을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