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향기 향기요법 도구
소스: 한국향도문화원
송 씨는 분향하고 향로와 향합을 함께 사용한다.송나라 회화에서 착향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첨향자는 집게손가락, 엄지손가락으로 향환을 뽑고 재가 가득한 난로 안에 넣는다.송나라에서도 향신료를 '향전(香",)'으로 누르고, 가루 형태의 향신료 틀을 고정된 모양으로 눌러 불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송대는 일찍이 향료를 대량으로 수입했는데, 북송시향약은 시수입에서 가장 큰 품목 중의 하나이다.진라, 발해, 부들, 안남 등지에서는 유향, 용뇌, 잔향이 많이 나며 조공품에도 향약이 주류를 이룬다.일부 향은 유향 등 금지 물품에 포함되며 정부가 독점 판매하며 민간은 자가거래를 할 수 없다.
송대 향약은 비록 수입량이 많지만 여전히 공급이 딸린다.송나라 사람들은 향을 많이 쓰고, 분향하는 데 쓰는 양이 많다.제사축제, 관헌의 잔치, 문무관 시험 및 제후의 동년잔치, 축수 등의 자리에서 향을 피우지 않았다.
송인은 유실외에 분향하는 이른바 '시향(試香)'도 있고, 때로는 정원 내 '시선당(詩禪堂)'에서 새로 만든 합향을 피워보고, 향 냄새와 향무의 모양과 연기를 품평해 보는 것도 송나라 사람들의 생활 정취 중 중요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송인은 합향의 훈열법에 대해 특히 신경을 썼는데 향에 불을 붙이고 난로 안에 보온 작용이 있는 재를 두껍게 깔고 불에 타는 숯덩어리를 골라 정중앙에 묻고 얇게 덮은 재만 살짝 비쳤다.얇게 썬 은조각으로 불을 막고 얇게 썬 은조각에 향을 버무려 자연스럽고 건조한 담배가 없다.조금 신경 쓴다면, 숯덩이평범한 숯이 아니라 정제된 숯 덩어리였다.
송인도 향전(香也)을 쓴다.남송항주성의 주택가에는 각종 서비스 업종 중 '향인판 제공'을 전문으로 하는 서비스업이 있는데, 이들은 고정된 '분석가'를 싸서 매일 향전(香篆)을 찍어내고 매달 향전(香錢)을 받는다.
송대의 향로에는 현재 시카고 예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과 같이 송영청 조형 향로(1112세기)에 덮인 원앙 같은 물새가 웅크리고 앉아 있고, 노체에 연판무늬가 두 겹 붙어 있고, 승판도 있다.내친김에 여전한 운두화족이 있다.향로는 새부리에서 나와서, 난로 몸체에 작은 공기 구멍을 파서, 담배가 윗부분의 새부리에서 흩날리게 하였다.나다. 송대에 또 다른 콩모양 향로가 유행했는데, 모양이 마치 하이발컵 같다.
원, 명, 청대에는 향도구, 예를 들면 원대에는 '1로 2병'이라는 향도구 세트가 유행했다.명대 16세기의 회화에서는 이미 "난로, 병, 상자"가 나왔다.이런 조합식 향기는 바로 향저와 삽을 저장하는 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명나라 가정관요에도 오공(五供)이라는 것이 있는데, 오공(五供)은 화로, 양촉대, 양화병(兩花病)의 세트로, 제사 및 태묘(太廟), 사관(寺觀) 등의 공식 석상에서 사용되었다.명대에 동제 향로가 성행했던 것은 선덕 때 대량으로 만들어졌던 선덕동로와 관련이 있다.선덕연간에는 태국에서 공물로 바친 구리 수만 근을 사용해 3천3백여 점을 주조한 선덕로였다.내일 말기에 민간에서 대량으로 구리 향로를 만들어서 디자인이 우수해.구리 향로의 성행은 당시 각종 품종의 심향목 조각을 태우는 것이 성행했던 것과 관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