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다섯 재가 신자[게송 251]⁶⁷⁾ 다섯 명의 재가 신자가 제따와나 수도원에서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을 듣게 되어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런데 그들은 각기 부처님에 대해서, 이분은 갓띠야(왕족)이시다. 이분은 브라흐만이시다, 이분은 재산이 많다, 이분은 가난하다는 등 갖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다만 한 사람만이 중요한 것은‘오직 부처님께서 어떤 설법을 하시느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는 동안 한 사람은 잠이 들었고, 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흙바닥을 파고 있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옆에 있는 나무를 붙잡아 흔들고, 또 한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는 등 가지각색이었고, 다만 한 사람만이 설법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때 아난다 테라는 부처님 곁에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해드리면서 다섯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 두었다가 부처님께 이렇게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은 마치 우레와 같고 소나기를 동반한 폭우와도 같이 장엄하였지만 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법문을 듣는데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테라에게 물으시었다. “아난다여, 너는 이 사람들을 알지 못하느냐?” “예, 알지 못합니다.” “아난다여, 여기 있는 다섯 사람 가운데 잠을 잔 사람은 지난 오백 생 동안 뱀의 몸을 받았었느니라. 그는 그때마다 머리를 몸속에 박고 잠을 잤느니라. 그런 과거의 훈습 때문에 그는 이번 생에도 역시 잠에 빠져서 여래가 하는 설법을 듣지 못한 것이니라.” “그렇다면 부처님이시여, 저 사람은 계속해서 뱀의 몸만 받았었습니까? 아니면 중간에 다른 몸도 받았었습니까?” “아난다여, 그는 어느 생은 인간으로, 어느 생은 천상인으로, 또 다른 생은 뱀으로 태어났느니라. 그가 생을 받아 태어난 횟수는 실로 탁월한 지혜로써도 밝힐 수 없으리만치 많으니라. 그리고 그가 무엇으로 몇 번 태어났는지를 밝히기도 실로 어려우니라. 아난다여, 그는 이같이 오랜 세월 동안 뱀으로 태어나 잠만 잤거니와, 아직까지도 잠을 만족치 못하는구나. 또 아난다여, 저기 손가락으로 바닥을 파고 있던 남자는 지난 오백생 동안 흙 속에 사는 지렁이로 태어나 흙 속에 파고들며 살았기 때문에 지금도 여래의 법문을 듣는 일에 실패한 것이니라. 그리고 나무를 붙잡아 흔들던 저 남자는 지난 과거 오백생 동안 원숭이였더니라. 그래서 지금도 방향을 자주 바꾸며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던 버릇이 남아 그 같은 행동을 한 것이며, 역시 여래의 설법이 귀에 들어가지 못하였느니라.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던 사람은 지난 오백생을 하늘의 천문을 연구하고 별들의 가는 길을 보고는 점을 치던 사람이어서 지금도 계속하여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의 길을 관찰하고 있느니라. 그러나 아난다여, 여기 여래의 설법에 귀를 기울여 열심히 들은 사람은 과거 오백생 동안 브라흐만으로 태어나 세 개의 웨다(Veda)에 정통하고 그 성전을 독송하는 데 열성적이었느니라. 그래서 그는 오늘도 여래의 법문을 예전에 그가 성전을 받아들이듯이 열성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니라.” “그렇다면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의 설법을 대개 피부를 가르며 골수에 스며들 듯이 사람들에게 스며드는 법인데, 어찌하여 저 사람들은 부처님의 설법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입니까?” “아난다여, 너는 여래의 법문이 매우 듣기 쉬운 것으로 아는 듯하구나.” “그렇다면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가 쉽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아난다여, 세상의 수 많은 중생들은 과거 억겁의 세월 동안 부처님에 대해 들어본 적도, 담마와 상가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느니라. 그래서 그들에게 여래의 법문을 알아듣는 일이 실로 어려우니라. 그들은 생을 받기 시작한 아득한 옛날부터 여러 가지 모습을 받아 태어났고, 때로는 짐승들의 소리와 말을 많이 듣고 사용했었느니라. 그래서 그들은 인간이 되어서도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며 그에 취해 있을지언정 여래의 법문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며, 그것이 쉽지도 않느니라.” “그렇다면 부처님이시여, 그들은 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입니까?”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시었다. “아난다여, 그들이 여래의 법문을 잘 듣지 못하게 된 것은 욕망 때문이며, 성냄과 증오와 어리석음 때문이니라. 욕망의 불꽃보다 더한 불꽃은 없나니, 이 불꽃은 모든 중생을 태워 버리되 재 한 점 남겨 놓지 않는 무서운 것이니라. 이 세계가 전부 불길에 휩싸이며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다 태워지는 것은 태양이 일곱 개가 되는 때인데, 그것은 특정한 때와 장소에 국한되느니라. 그러나 욕망의 불길에 태워지지 않는 곳은 없나니, 그러므로 욕망의 불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고, 성냄과 증오보다 더 잘 얽매이고 붙잡는 것은 없으며, 어리석음보다 더 깊은 함정은 없고 갈망의 강물보다 거세게 흐르는 것은 없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18-17-251 욕망 같은 불길은 없고 증오 같은 얽매임은 없으며 어리석음 같은 그물은 없고 갈망 같은 강물은 없다. 부처님의 이 같은 긴 설법 끝에 주의 깊게 부처님의 설법을 듣던 브라흐민은 소따빳띠 팔라를 성취하였다. 67) 설법장소 : 제따와나 수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