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곳, 가장 중요한 시기
정동식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 선봉 부대 지휘관으로 발령이 났다. 전보 전에 희망보직을 받기는 하지만 내가 원하던 곳으로 간 기억은 별로 없다. 이번에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사실 적잖이 놀랐다. 지난 10년간 이런저런 엉킨 사연들이 많아서 조용한 자리에서 시험공부에 매진하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간 같은 직급에 머무르다 보니 후배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내 개인적으로도 어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장 바쁜 곳이라니?
그런 들 어찌하랴. 묻지도 따질 수도 하소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들었던 어느 선배님의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라는 말이 생각났다. 얼른 마음을 다잡고 부대를 진단
했다. 부대 현황을 살펴보니 최악의 상황에 대처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특이사항은 부대원들의 키였다. 대열에 함께 서면 내가 가장 낮았다.
177cm도 보통 키가 아닌데, 대원들의 평균신장이 무려 185cm쯤 되었으니 웬만한 농구선수 키였다. 물론 행정을 보는 사람들은 나보다 작은 사람도 2-3명 있었다. 1:1 심층면담을 해보니 선임들은 자신감과 우월감에 차 있었지만 준선임 이하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미래에 대한 긴장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특히 신임대원들은 선봉중대라는 명칭이 주는 무게감으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고, 내가 과연 이 부대에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존재했다. 그리고 극히 일부는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는 대원도 있었다. 불안감 조성에는 선임들의 무용담도 한몫했다. 한 번도 현장경험이 없는 대원들에겐 그럴 만도 하다. 미지의 세계, 불확실한 상황에 관한 얘기를 듣고만 있자면, 두려움이 더 해지는 건 당연하다.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도 보이지 않는데 있다. 벌건 대낮이라도 가고자 할 길이 불투명하고 가시밭길이면 암흑의 그림자가 엄습한다.
그래서 선임에겐 무용담 자제령을 내렸고 신임에게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로 했다.
나는 정신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 부대를 진정, 강한 부대로 만들고 싶었다.
정신교육을 위해서는 리더의 철학이 담긴 괜찮은 슬로건이 필요했다.
이럴 때 쓸려고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 있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곳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이 문구는 내가 존경하던 K 참모총장님께서 부대 지휘를 하실 때 사용했다고 들었다. 이 슬로건이라면, 부대원
으로서 나의 역할은 무엇이며, 임무수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대원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부대 행정실 앞에 ‘대한민국 선봉중대’라는 세로 현판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대원들이 부대 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볼 수 있도록, 복도 벽면과 천장사이에 가로로 걸 수 있는 현판을 생각했던 것이다.
이 현판에 담긴 의미라면, 그리고 누가 썼다는 사실을 굳이 나타내지 않는다면, 세월이 흘러도 부대와 역사를
함께 할 것 같았다. 이 임무를 누구에게 맡길까? 돈을 주고 업자에게 의뢰하기보다는 우리 식구 중에 누군가가
작업을 하면 의미가 더 클 것 같아 H군을 발탁했다. H군은 D대 재학 중이며 반듯하고 심성이 좋았다. 장차 공직
으로 입문할 뜻을 가진 대원이었다. 나는 H군을 불렀다. 취지를 얘기했더니 금방 알아차린다.
면담을 통해 이 대원이 뭘 잘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모교의 서예 동아리 선배에게 부탁하여 글씨를
받아와서 현판에 새기는 작업은 H군이 직접 공을 들였다.
현판이 완성된 이후 우리는 특별한 격식 없이 새로 만든 현판을 게시했다.
현판식을 하고 나서 우리는 훈련을 많이 했다. 왜냐하면 부대임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다. 키는 크지만 의외로 연병장 20바퀴를 돌지 못하는 대원이 있었다. 우리는 체력이 약한 그들에게 맞춤훈련을 하기로 했다.
나는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 함께 뛰며, 20바퀴부터 시작해서 뛸 때마다 5바퀴씩 올리는 단계적 훈련을 실시했다. 그리고 개인훈련은 별도로 본인 주관하에 실시하도록 자율성을 주었다. 드디어 어느 날, 부대 전체가 낙오자 없이 50바퀴를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그 대원의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 기뻐서 부대 위문을 왔다.
그날 우리 부대는 하나 된 기분으로 기분 좋은 회식을 했었다.
언젠가 H군이 포항으로 부임해 왔을 때 전화가 왔다. 보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았지만 나도 한 지역의 치안 책임을 맡고 있어서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아쉽게도 우리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불과 1년 만에 그는 서울로 복귀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며칠 전, ‘오늘 생일인 친구’ 여러 명중에 H군의 프사가 보였다. 반가웠다.
그리고 명분이 생겼다. 제일 예쁜 이모티콘과 함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더니 잠시 후 벨이 울렸다. 이번에 사무관 승진을 했단다. 정말 듣고 싶은 소식이었다. 함께 생활했던 그때부터, 많은 세월이 앞을 다투며 달려 나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판 얘기를 했다. 내가 들었던 슬로건 현판의 마지막 얘기는 H군이 지난번 그 부대 지휘관으로 부임했을 때, 현판이 안 보였고 행방을 알 수 없다는 내용까지였다.
그런데 최근에 그 부대의 상급부서 참모로 보직 신청을 했는데 현판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상급부대의 지휘관 사무실 앞에 늠름하게 게시되어 있단다.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누군가 개념 있는 지휘관이 그 현판에 살아 숨 쉬는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리라.
세월이 지났건만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40여 년전, 나의 군생활 마지막 근무지는 ‘남부 전선’이었다.
머나먼 남쪽 나라에 있는 다낭이나 호찌민 얘기는 아니다. 남부 전선이란, 내가 군 복무를 할 때, 후방군인들의
위상을 높이려고 만들어낸 우스갯소리이다. 그러면 안 되지만 일부 전방에 근무하는 친구들이 후방 군인들을
얕잡아 보며 농담하는 경우를 가끔 보았기 때문이다. 전방이든 후방이든, 군인에겐 저마다 고유의 업무가 있고
모두 대한민국의 믿음직한 국군인데, 굳이 서로 잘났다고 핏대를 세울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대개 사단급 정도라면 부대마다 캐치프레이즈 같은 것이 있다.
캐치프레이즈는 슬로건과 같은 의미로 사용해도 무방하지 싶다.
지휘관의 부대 지휘방침과는 별도로, 부대장의 통솔의지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내가 제대한 사단의 캐치프레이즈는 “훈련은 피 대신 땀을 흘리는 전투다.”였다. 후방이라 하더라도 군인의 본분은 훈련이며 전투력향상을 위해 땀방울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단장님의 의지가 뼛속 깊이 묻어 있다.
나는 이 문구를 잠언처럼 새기고 있어서, 실제 대원들을 통솔해야 하는 곳에서는 훈련을 많이 강조했다.
하지만 내가 선봉 부대를 맡았을 때는 훈련강조 같은 단일메시지보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충만해질 수 있는
슬로건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만의 부대 슬로건이자 캐치프레이즈가 탄생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곳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세월이 저만치 훌쩍 흘러간 지금도, 이 문구를 보면, 저절로 어깨가 올라가고, 임무 수행은 꼭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솟구쳐 오르는 것 같다. 아~! 보고 싶다. 당시 고생했던 부대원들의 모습. 이젠 그 얼굴조차도 가물가물 잊혀
가지만, 험한 세파를 잘 견뎌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감히 이 글을 청춘 선봉대원들에게 올리며, 아무쪼록 모두 무탈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2023.2.25.
첫댓글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곳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군인으로서 책임감과 의무감이 있는 멋진 글입니다. 더욱 분발하여 멋진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