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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가 주는 교훈
2025년 12월 21일 / 다니엘 3장 16-18
단 3:16-18 /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서를 읽어보면 중요한 교훈들이 있는데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첫 번째 교훈은 풀무불 이야기와 사자굴 이야기
▶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만 버린다면 입신양명의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왕이 큰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지겠다고 했을 때, 세 청년은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3:16)라고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것도 왕이 최대한도로 아량을 베풀며 또 그들을 아끼는 입장에서 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은 세 사람 모두가 다 동일하였다. 그들은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여호와를 섬기는 문제라면 왕에게 더 이상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어떤 조건,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에 관한 문제라면 확실한 정리가 되어 있던 청년들이다. 십계명의 ‘우상에 대해 절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지 않기 위해 절하지 않고, ‘우리를 풀무불에 던진다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풀무불에서도 건지시리라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들의 모습은 과거 바벨론 포로가 되기 전의 이스라엘과는 너무 판이하였다. 그때 이스라엘에 이와 같은 신앙인들, 청년들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나라가 망하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18절에는 다니엘서의 신앙의 핵심적인 부분이 나타나 있다.
단 3:18 /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역경과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이 구해 주실 줄 믿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떡하느냐는 생각에 미리 그 믿음을 포기하고 자기 의지대로 해서는 안 된다. 순탄할 때야 누구나 잘 믿을 수 있다. 그러나 풀무불같은 역경과 시련과 핍박이 닥칠 때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해 보는 게 아니라 3청년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기꺼이 풀무 불에 들어가겠다’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 6장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굴에 들어갔다. 하룻밤을 뜬눈으로 새운 왕에게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나를 상해치 아니하셨사오니’라고 고백하였다. 여기에서 다니엘서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도 풀무불이나 사자굴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는 믿음 즉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내 생명과 삶 자체를 여호와께 드릴 수 있는 믿음이 확고하게 서 있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은 다니엘과 그의 3친구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다 가져야 하는 신앙임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고, 그러한 신앙으로 무장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현재 그들이 처해 있는 풀무불, 사자굴과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약속이기도 했다. 이 약속은 그들만이 아닌 믿는 모든 이들에게 통용되는 약속이기도 하였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가 다 이러한 신앙을 가졌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로되었던 곳에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나 마음과 믿음을 갖기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그렇게 살기를 위하여 노력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과거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대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2. 다니엘서가 주는 두 번째 교훈
다니엘서가 쓰인 시대는 세상의 왕들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몹시도 핍박하던 시대이다. 그 속에서 다니엘서는 뭐라고 말하는가? 아무리 권력 있는 자가 세상을 좌지우지하더라도 그들은 우리를 잠시 핍박하는 자일뿐 세상사의 주관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것은 이때뿐만 아니라 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요, 그렇게 역사가 흘려왔다. 믿는 우리 또한 바라는 바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본 큰 신상이야기에서도 나타났다. 신상의 머리, 가슴, 팔, 배, 넓적다리로 상징된 세상 왕국들의 종말은 어떠했는가? ‘또 왕이 보신 즉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때에 철과 금과 놋과 은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단 2:34-35) 땅에서 날아온 출처를 알 수 없는 돌, 뜨인 돌은 바로 심판자 되시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우상을 친 돌, 세상의 권력, 역사를 까부숴 버린 ‘뜨인 돌’(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돌)인 예수님이 하실 일과 앞으로 우주의 역사, 종말의 역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말해 준다.
또한 느부갓네살 왕이 정신 착란증으로 7년 동안 풀 뜯어먹는 들짐승과 같은 생활을 한 사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단 4:32-34 /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33)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34) <느부갓네살 왕의 하나님 찬양>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이방인인 느부갓네살 왕이 이렇게 깨달았다고 한다면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도 천지를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양을 돌려야 한다. 이러한 다니엘서의 기록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3. 우리가 배워야 할 신앙
벨사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쓰던 금 그릇, 은 그릇을 약탈해 전국 귀족 통치계급을 바벨론 성에 모아놓고, 그 그릇들을 술그릇 삼아 밤새 주연을 베풀었다. 그때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를 썼다. 다니엘이 이를 해석하였은즉 그 뜻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파르신’ 프레스는 나뉜다는 뜻으로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데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단 5:24-25)
이 이야기의 핵심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개인, 나라, 왕도 저울에 달아서 채점을 매기고 있다는 것이다. 멋대로 사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나라, 한 교회까지도 모두 하늘나라 저울에 달아서 채점하신다는 것이다.
벨사살 왕이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 내일 일도 모르는 채 만조백관을 불러 연회를 열 때,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져온 은잔과 금잔을 꺼내어 평상시에 원하던 대로 술을 부어 마셨다. 아무리 술을 마실지라도 어떻게 성전에서 빼앗아 가져온 그릇에 술을 담아 마실 수가 있으며, 그것도 금은 목석으로 만든 신상을 찬양하기까지 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그들을 이 땅에서 제거하는 심판하셨다. 다음 날 새벽에 사람이 지은 성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는 바벨론 성을 페르시아의 다리오가 강줄기를 돌리고 강 밑바닥을 파서 성을 무너뜨렸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무시할 때는 비록 그곳이 성전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심판할 것이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은 어느 곳이라도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요 2:18-21 /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러나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 이국땅에서 늘 성전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그곳에 가서 마음을 모아 예배할 것을 기도하며 서원하자 그들의 말대로 고국에 돌아와서 그들은 초라하였지만 나름대로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예배했다.
4. 다니엘서가 주는 교훈들
1. 하나님의 저울에 합격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받고 압제와 고난에 승리하는 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다니엘서 6장 3절을 보자.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남으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다니엘의 마음은 민첩하였다. 15세에 포로로 끌려와 종이 되었으나 그는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마음의 민첩함이란 정확한 판단력, 과감한 추진력을 둘 다 갖춘 것이다. 이를 위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순종하는 마음을 구해야 한다. 우리가 난세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민첩해야 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15세 때부터 뜻을 정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인생을 걸고 세 가지 결심했다.
❶ 자기를 관리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였다.
❷ 왕궁의 기름진 산해진미를 먹지 않고 채식하겠다고 하였다. 젊은 날의 실천 사항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과 바꿀 정도로 철저했다. 따라서 난세에 큰 업적을 남기고 위대한 신앙인으로 오늘날 우리의 신앙 교훈이 되는 것이다.
❸ 다니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하루 3번씩 무릎을 꿇고 조국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기도한 이는 사형장에 끌려간다는 왕명을 알면서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구차스럽게 세상 영화를 누려보겠다고 허리 굽혀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지조와 절개를 지키다가 당당하게 사자굴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담력과 지조, 품위를 지키는 신앙인이 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2. 다니엘은 자기 조국의 해방을 언제 볼 수 있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기도가 시작되는 순간 바벨론으로부터 종살이하는 이 백성을 해방하라고 천사들에게 명하셨다(단 9:23). 선진국이 되는 것, 통일이 되는 문제, 청소년들의 문제 등이 나라와 자신의 모든 병이 대체 언제 나음을 받을 것인가? 바로 경건한 사람들이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는 그때부터 세상의 병든 역사는 고쳐진다. 주기도문에도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의 뜻이 나와 가정, 우리 동네, 이 세상 위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다니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열심히 기도하였지만, 그 당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의 잘못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준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때가 가까우매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국가를 위해서나 우리 각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마고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3. 단 12:10-12을 보자 / 많은 사람들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1,290일을 지낼 것이요 12) 기다려서 1,335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사자굴, 풀무불 같은 연단은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정결케 하시려는 뜻이매, 하나님께 순종하고 감사하면 고난을 곧 거두어 주신다. 신앙과 절개를 마지막까지 굽히지 않고 마침내 풀무불과 사자굴을 통과하는 사람에겐 복이 있다(12절). 그는 하나님 품안에서 평강을 누리고 주신 바 축복의 업을 누리게 된다(13절). 우리가 사는 현실의 삶이 험한 사자굴이며 풀무불임을 알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초지일관 믿음으로 극복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믿음을 지키고 순종하는 자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도 해주셨다.
사 43:1-3 /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담대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보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그대로 우리 삶에서 살아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하면 유익한 글들
❚ 주남선 목사님이 일제 때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잡혀가 고문을 받았다. 일본 경찰의 고문은 잔인해서 말로 하기 힘들다. 엄지손가락 두 개를 노끈으로 한데 묶어 대들보에 매달기도 하고, 고춧가루를 탄 물을 콧구멍에 붓기도 하고, 손가락 사이에 나무토막을 끼우고 짓누르고, 손톱 사이에 대나무침을 꼽고, 인정사정없이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고문하던 형사가 ‘잘 생각해보고 마음을 돌이켜라!’라고 하자, 주 목사는 ‘백번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요. 참 신은 하나님뿐이고 다른 신은 있을 수가 없소.’라고 하였다. 또다시 몽둥이가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주 목사는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기절하였다. 얼마 후 의식을 찾아서 눈을 떠 보니 추운 겨울에 물로 젖은 시멘트 바닥이 불 땐 온돌방처럼 따뜻하였고, 그의 온몸은 포근한 담요에 싸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고 한다. 후에 주 목사는 이 일을 회상하면서 ‘그 자리에 우리 주님이 와서 계셨습니다.’라고 간증했다. 정필도 목사도 저도 이런 체험을 했다. 중학교 때 추운 겨울날, 교회 지하실에서 철야기도를 하는데, 새벽 한 두 시쯤 너무 춥고 잠이 왔다. 갑자기 따뜻한 기운이 퍼져서 마치 담요로 온몸을 감싼 것 같이 몸이 따뜻해지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얼마나 이상한지, 이상하다 하면서 기도하는데 그 추운 겨울에 추운 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기도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 신석구(申錫九) 목사는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일제의 갖은 협박과 회유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변절하지 않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재판받을 때 ‘피고는 조선 독립이 될 줄로 생각하는가?’ ‘그렇다. 될 줄로 생각한다.’ ‘장래에 또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그렇다. 나는 한일합방에도 반대하였으니 독립이 될 때까지 할 생각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일제 재판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상소를 포기했다. 감옥 생활을 하다가 출소한 신목사는 목회에 전념하였다. 1938년 일본이 2차대전을 일으키면서 우리 민족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였는데, 이때 등장한 정책이 신사참배였다. 당연히 반대했던 신목사는 다시 체포되어 2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 후 감시와 협박 속에서 목회하던 중 65세 나이에 일제에 협력하는 세력에 의해 강제 은퇴당하고 체포되어 구치소에서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해방 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또 박해를 받았다. 1949년 4월 19일 공산 정권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으면서 ‘김일성을 비롯한 모든 공산당 정치인들은 마땅히 회개하라. 하나님을 부인하고 민중을 죄악의 길로 인도하여 생명을 아낄 줄 모르는 너희 공산당은 하나님의 지엄하신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라고 외쳤다. 재판관이 ‘동무가 그런 반동의 소리를 하면 출옥하기 어렵다’라며 회유하자 ‘나는 출옥하기를 원치 않는다. 38선이 터져 통일이 되기 전에는 감옥이나 사회나 일반이다.’라며 타협을 거부하였다. 징역 10년이 선고되었다. 그리고 1950년 10월 19일 국군이 평양을 점령한 후 교화소를 찾아가 보았으나 그의 시체를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신석구 목사는 순국하셨고 또한 순교자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그는 주를 위한 고난당함에 무엇으로도 대답할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 신앙인 유관순 열사는 수많은 핍박을 이기고 승리한 사람 / 당시 17살 고등학교 여학생인 유관순 열사를 일제는 고문으로 핍박하였다. 머리에 콜타르를 발라 가발 벗기듯 머리 가죽을 통째로 벗겨내고, 벤치로 손톱과 발톱을 강제로 뽑았다. 움직이지 못하는 좁은 상자 안에 3일간 감금하고, 입과 호수를 연결하여 물 주입하고, 달군 쇠로 몸을 지지고, 다른 독립 열사들 앞에서 칼로 양쪽 가슴을 도려냈다고 한다. 상체를 벗겨 공중에 매달고 밤낮없이 채찍으로 후려칠 뿐 아니라 많은 일본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에 개 줄을 묶은 채 네발로 기어가게 했다. 헝겊을 얼굴에 덮고 뜨거운 물을 붓기도 하고, 전기고문은 물론 관에 넣고 물을 부어 질식시키기도 하였다. 알몸으로 성고문을 하였다. 일제가 공공연히 떠든 말 가운데 하나는 ‘조선 사람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런 무서운 고문을 견디지 못하면 신앙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끝까지 신앙을 지킨 사람들은 그 모진 고문과 핍박을 견디어 냈다. 기도의 사람 유관순 열사는 만세 운동을 하기 전 ‘오 하나님, 이제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원수 왜(倭)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유관순 열사는 그 모진 핍박을 견디며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라는 유언을 남기며 순교하였다. 결국, 유관순 열사는 사단이 사용하는 핍박에서 승리한 것이다.
❚ 다니엘의 세 친구는 목숨을 잃을 것조차 각오하고 신앙을 지켰다. 그리고 고난조차 감사함으로 받았다. 그랬을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났다. 이게 원리이다. 고난 중에도 감사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감사하는 게 마땅하다. 우리는 죽어도 천국이기 때문이다. 온 천하보다 귀한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니 말이다. 그것을 기억하며 고난 중에도 소망을 가져야 한다. 프랑스인 쟝 도미니크 보비는 30여 년 전 잘 나가던 사람이다. 세계적인 패션 잡지 <엘르 Elle>의 편집장으로 저널리스트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퇴근길에 뇌혈관이 터지며 뇌졸중에 빠졌다. 뇌졸중 가운데서도 가장 극악무도한 ‘자물쇠 증후군’에 걸려 마치 자물쇠로 채운 듯 인체의 기능이 한꺼번에 정지되고 꼼짝 못 하게 되었다. 왼쪽 눈만 움직이고 귀로 들을 수 있을 뿐 사지가 마비되고 혀까지 마비되어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소망을 잃지 않고 대필자를 세운 채 왼쪽 눈을 깜박거리며 작품을 썼다. 1년 3개월 동안 무려 왼쪽 눈을 20만 번이나 움직여 가며 <잠수복과 나비>라는 작품을 썼다. 그 책은 20만 부나 팔리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가 만일 절망했다면 그 작품은 세상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한 말이다.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당신은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목숨을 잃을 것조차 각오하고 신앙을 지켰다. 그리고 고난조차 감사함으로 받았다. 그랬을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났다. 이게 원리이다. 고난 중에도 감사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감사하는 게 마땅하다. 우리는 죽어도 천국이기 때문이다. 온 천하보다 귀한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니 말이다. 그것을 기억하며 고난 중에도 소망을 가져야 한다.
❚ 사탄이 두 번째로 욥을 치니까 온몸에 악창이 나서 피고름이 줄줄 흐르고, 구더기들이 버글버글해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으니까 피가 더 나고, 따갑고 쓰렸다. 욥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의 아내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고 친구들이 와서 위로해 주지는 않고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기에 그렇게 되었느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욥 자신도 뭐라고 변명할 수조차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러나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욕하거나 원망하거나 배반치 않았다. 도리어 그 극심한 고통 중에도 말하기를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겠노라(혹은 그에게 소망을 두겠노라)’(Though He slay me, yet will I hope in Him)고 했다(욥기 13:15).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내 믿음이 변치 않으리라고 하는 놀라운 신앙이다.
❚ 대통령이 되기 전 링컨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대령 한 사람이 담배를 권했다. ‘저는 못 피웁니다’ 링컨은 그 담배를 거절하였다. 그런데 한참 후에 또 대령이 ‘한잔하시지요’하고 술을 권했다. ‘그것도 못합니다!’라고 링컨이 대답하자 대령이 하는 말이 ‘무슨 남자가 그렇습니까?’하며 핀잔을 주었다. 링컨이 말을 했다. “내가 9살 때 어머니의 임종을 맞았는데 그때 어머니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얘야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일생토록 입에다가 술과 담배를 대지 말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어머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입에 절대로 술과 담배를 대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 주기철 목사님의 옥중 고백 때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 ‘주님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다 피하다가 이 다음에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 위하여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오리까? 주님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다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오리까?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 없이 못가는 길, 골고다의 길, 영문 밖의 길, 주님 가신 길 내 따르오리다.’ 고난의 길을 다 피하고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주님 때문에 받고 얻고 누렸던 분복만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있겠는가? 십자가의 길을 다 버리고 하늘 면류관 쓸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 좋은 것들만 감사하다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 받을 수 있겠는가?
❚ 우리는 ‘조건적 감사’에 익숙해져 있다. 좀 믿음이 있다고 하는 분들은 ‘믿사옵고 감사’까지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을 감사하는 성도라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까지 해야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감사가 된다. ‘조건적 감사’도 해야 하고, ‘믿사옵고 감사’도 해야 한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까지 해야 한다.
아주 오래전 어느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날도 추수감사절이었다. 목사님의 설교 후에 감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나와서 짤막하게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다. 줄줄이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서 감사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대학에 붙어서 감사합니다. 내 병이 나아서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 사업이 잘되어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이 장가가서 감사합니다. 취업이 되어서 감사합니다.’ 간증이 끝날 때마다 할렐루야 아멘의 반응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런데 아주 뜨거운 감사의 열기가 솟아나는 그곳에 마치 찬 물을 끼얹는 것과 같은 일이 생겼다. 나이가 듬직한 중년의 남자 한 분이 나오셔서 이렇게 간증했다. ‘제가 망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만일 제가 망하지 않고 제 일이 계속 잘되었다면 저는 계속해서 교만해졌을 것이요. 일 때문에 신앙생활을 점점 게을리했을 것입니다. 제가 망함으로 저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내가 망하게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분의 간증 앞에서 모든 사람이 옷깃을 여기며 무엇이 하나님 앞에 참된 감사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 다니엘의 기도 제목은 감사였다 / 지금 하나님 잘 섬기다가 죽게 되었는데 무엇을 감사했겠는가?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이 많다. ❶ 느부갓네살 왕 때부터 지금까지 약 60년을 넘도록 이국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 ❷ 바벨론을 지나 메대 바사와 같은 대국에서 국사를 돌보며 쓰임 받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 ❸ 나라는 잃었지만, 기도는 잃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 ❹ 자신이 무엇인데 세상 사람들의 궤계와 술수를 통하여 고난에 동참하게 된 것에 대한 감사 ❺ 세상의 이빨보다 기도의 능력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했다.
단 6:28에 ‘이 다니엘이 다리오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라고 했다. 형통하다는 말은 영어성경 KJV과 NIV에는 prosper로 써 있는데 이는 번역하면 ‘잘되다, 번성하다, 순조롭게 되다’는 뜻이 있다. 우상을 숭배하는 제왕시대에 믿음을 지키며 최고의 자리를 지켜 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런데 다니엘은 형통했다. 다니엘은 세 왕조(바벨론, 메데파사, 파사 제국)의 네 임금(느브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밑에서 4번의 총리를 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의 인생을 형통하게 하시고 번영시켜 주신다.
❚ 버나드 뱅글 리가 쓴 책 ‘날마다 예수님 마음 가까이’ / 위기를 당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하였다. ❶ 자신의 연약함을 숙고하라. ❷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가장 작은 일이라도 성취할 수 없음을 인정하라. ❸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구하라. ❹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고, 그것을 얻기 위해 갈 곳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 김진홍 목사님이 청계천 활빈교회를 개척하면서 빈민선교를 하다가 그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치범으로 몰려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감옥에서도 선교하시며 감방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일깨우다 그만 독방에 수감당했다. 한겨울에 너무나 춥고 떨려서 죽을 것만 같았다. 앉아도 춥고 누워도 춥고 좁은 방에서 껑충껑충 뛰어도 춥고 견딜 수 없었다. 너무 추운 나머지 성경에서 불(火)자가 들어 있는 구절을 찾기 시작했다. ‘구름기둥, 불기둥,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불을 던지러 왔노라, 성령이 불의 혀같이’ 등등의 불자만 찾았다. 왜? 너무 추워서 불이 그리우니까? 그런데 몇 시간 성경을 읽으며 불자를 찾는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온몸이 점점 뜨거워지고 그렇게 춥던 감옥이 따뜻해졌다. 감옥에 불이 난 것도 아니고, 누가 난로를 갖다 놓은 것도 아니고, 바깥 날씨가 풀린 것도 아니고, 솜옷을 누가 넣어 준 것도 아닌데 방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푸근해지고 감사의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마음이 한없이 평안해졌다. 성령이 그에게 불로 임한 것이다. 감옥에서도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다. 얼마 후 하나님은 감옥에서 석방해 주셨고 한국 교회사에 큰일을 하는 목사로 사용해 주셨다. 감옥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한 그를 도우신 것이다.
❚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열한 살된 안젤라라는 소녀는 신경 계통을 포함한 신체 무력증이라는 병에 걸렸다. 안젤라는 걸을 수도 없었고 몸의 움직임도 한정된 부분만 가능했다. 의사들은 안젤라가 이병에서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별로 갖지 않았고 그녀가 평생을 휠체어에서 보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안젤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자기가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걷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의사들은 안젤라에게 시각화 요법을 가르쳐 주었다. 자신이 걸어다니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그려보는 방법이다. 안젤라는 상상 속에서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젤라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침대에 누워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두 다리가 움직이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기적이 일어났다. 침대가 움직인 것이다. 침대가 병실 안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젤라는 소리쳤다. ‘이것 좀 봐요! 드디어 해냈어요! 난 해냈다고요! 내 몸이 움직였어요!’ 이 순간 병원에 있던 모든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서 대피소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장비들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유리 제품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바로 그날이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난 날이었다. 안젤라는 그것도 모르고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안젤라는 진짜 일어서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안젤라는 다시 건강하게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찾아온다. 우리가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 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어려울수록 더 포기하지 말고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반드시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 오스트리아의 애들러 박사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이런 처방을 자주 했다고 한다. ‘앞으로 매일 남을 기쁘게 하려면 무슨 일을 할지 그것만 골똘히 생각하고 실천해 보세요. 2주 동안만 그렇게 살면 당신 병은 깨끗이 나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나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왜 마음에 병이 생기는가? 왜 짜증스럽고 불평이 쌓이고 원망스럽고 남이 미워지고 용서가 안 되는가? 이기주의가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늘 자기만 위하려 하니 그런 사람 곁에는 그 사람을 위해 줄 사람이 더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병이 생기는 것이다. 우울증을 치료하려면 무조건 감사하고 섬기며 살아야 한다.
❚ 식사 시간 때 감사기도를 하고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미국 생체학자 존 자웨트 박사는 식사할 때 감사기도를 하고 먹는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세 가지 특이한 물질을 발견했다. ❶ 연구자인 존 자웨트 자신도 완전히 규명할 수 없는 일종의 신비한 백신(Vaccine)인데, 이 백신은 모든 질병을 예방해 주고 인간의 면역기능을 향상 시켜준다고 한다. ❷ 항독서(앤티타신Antitoxin)라는 물질이다. 이것은 항체 역할을 담당하여 각종 질병의 진행을 억제시켜주고, 병균의 침입을 막으며, 살균을 해주기 때문에 질병의 예방과 아울러 치료에까지 도움을 준다고 한다. ❸ 안티셉틴(Antiseptin)이라는 물질인데. 이것은 방부제 구실을 한다. 이 방부제는 위장 내에서 음식물이 이상 발효하거나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고, 소화 흡수를 도와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작용을 한다. 감사기도를 드리고 식사하는 사람이 건강하게 산다.
❚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떤 감리교 교회의 한 사모님의 간증 / 위암 판정받고 수술하려고 의사가 개복했다. 그런데 너무 암이 커져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크리스천 의사였던 주치의는 공책과 볼펜을 가져다주며 ‘사모님! 특별히 할 일도 없으시니까, 일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했던 일이 있으면 열심히 적어 보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감사를 적으려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하자고 감사를 적기 시작했다. ‘첫 번째, 예수 믿어 구원받게 하시니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두 번째, 못된 성격이지만 이렇게 목사 사모가 되어서 교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 번째, 우리 아이들이 믿음 안에 건강 안에 잘 자라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 만에 137개를 적었다. 그렇게 감사를 적었을 때 의사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니까 ‘사모님! 이제 복수에 물이 차면 와서 한 번씩 빼시면 될 것 같고 이제 집에 가서 쉬시는 게 낫겠습니다.’라며 퇴원시켰다. 그런데 퇴원하여도 매일 감사일기를 적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한 것을 계속 적었다. 계속 감사를 적다 보니 은혜가 충만해졌다.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았는가에 감격하게 되고 기쁨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교인들을 심방하고 불신자에게 가서 전도도 하고 또 기도도 해주고 이런 일을 반복했다. 교인들은 걱정했다. ‘사모님이 곧 돌아가신다는데 저러고 돌아다니시면 어쩌나?’ 그런데 사모님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나기 시작했고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여 몇 달 후 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받았다. 검사한 의사는 ‘사모님!! 암이 기적처럼 다 나았습니다.’라고 놀라워했다. 다니엘에게 일어난 감사의 기적이 그 사모님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은 몸 안에서 특정한 물질로 변해 분비된다. 이것을 조지타운 대학의 생물 물리학 교수인 캐더스 퍼트(Candace Pert)박사는 ‘감정의 분자’라고 명명했다. 퍼트 박사에 의하면 우리 몸에서는 매초 막대한 양의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감정은 정보를 물리적 실체로 전환하는 과정, 다시 말해서 마음을 물질로 바꾸는 과정에 관여하는 세포의 일종이라고 한다. 그는 홀로된 부인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2배나 높고 만성 우울증 환자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4배나 높다는 발표를 근거로 들어, 생각과 감정과 신체 기관 사이의 밀접한 교류를 주장했다. 실제로 감사하는 사람들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 습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인격을 낳는다. 오랫동안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오래 가면 성품이 되는 것처럼 감사가 성품화되어 버린다. 늘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비난하는 못된 습관을 지닌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비상하지 못한다. 습관은 인생의 미래를 결정한다. 불평과 원망과 비난의 습관은 고치지 않으면 한평생을 괴롭히는 가시가 된다. 미래는 일상 습관의 총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미 듀크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가 매일 하는 행동의 40%가 의사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습관 때문이라고 한다. <습관의 힘>의 저자, 잭 D. 핫지는 ‘일상적인 행동의 90%는 습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행동하는 것은 대부분이 습관이다. 모든 사람은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갖고 있다.’라고 했다. 이렇게 중요한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를 <나를 위한 행복한 습관 만들기(강상구)>에서는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현상 유지 메커니즘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탁월한데 담배를 피우던 사람은 일상적으로 공급받던 일정량의 니코틴을 유지하려는 항상성 때문에 쉽게 담배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새로운 변화'와 '현상 유지'라는 2가지 기능 중에서 체계의 일관성을 기하려는 현상 유지 속성이 먼저 나타난다. 지금까지 축적되었던 사고방식, 믿음, 숙련, 현재의 편안함 등과 같은 '현재의 습관'이 '새로운 습관'을 방해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은 첫 반평생 동안 얻은 습관으로 나머지 반평생을 살아가는 존재다"라고 했는데 이미 뇌에 저장된 반평생의 습관은 100일은 훈련해야 새로운 습관이 몸에 익힐 수 있다.
영국 런던 대학교의 제인 위들 교수팀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같은 행동을 얼마나 반복해야 생각이나 의지 없이도 그 행동에 대해 자동으로 반사하는지'에 대한 실험을 했다. 그들은 식사 후 과일 한 조각 먹기, 저녁 전 5분간 뛰기 등 건강 관련 행동 중에 하나를 선택해 실천하게 했다. 그들은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66일이 되어서 의도적인 생각이나 의지가 없어도 자동으로 같은 행동을 하는 습관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을 확인했다. 66일간은 한 가지를 반복해서 새로운 습관이 자동으로 반응하고 행동으로 옮겨지는 최소의 기간, 새로운 습관으로 바뀌는 임계시간이라고 한다. 임계점에서는 자칫 방심하면 이전의 습관으로 돌아가기 쉬운 불안한 시간이어서 우리나라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100일 잔치하는 것처럼 새로운 습관이 완전히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100일째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산모의 몸은 출산 후 100일이 되면 임신과 출산으로 망가진 몸이 활동하기 적합한 새로운 상태로 변화가 완성된다고 한다. 우리는 습관화된 감사, 체질화된 감사를 하려면 감사의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나쁜 습관을 다스리지 못하면 습관이 인생을 지배해 버린다.
우리 뇌 속에 시냅스라는 회로가 있다. 비가 오면 마당이 패이게 되고 계속 흐르다 보면 골이 나고 그것이 물길이 된다.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다. 감사로 반응하는 시냅스가 생기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체질이 된다. 그래서 감사훈련을 해야 한다.
❚ 헬라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인 크산티페는 소문난 악처였다. 하루는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함께 이런저런 토론을 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게 되었다. 크산티페는 그를 향하여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아니, 남자가 되어서 처자식이 굶는지 안 굶는지도 모르고 밖으로만 쏘다니면 다예요? 들어오기는 왜 들어와요? 차라리 나가서 살지!’ 그러면서 바가지에 찬물을 담아서 물벼락을 씌웠다. 그러니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그런데도 소크라테스는 쓴웃음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에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결국 물벼락이 떨어지는구먼.’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크라테스의 친구는 참다못해 그를 밖으로 불러내어 이렇게 말했다. ‘아니, 여보게! 어떻게 저런 여자하고 일평생을 같이 살 수 있겠나? 그러니 지금이라도 갈라서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때 소크라테스는 이런 명언을 했다. ‘아닐세! 나는 늘 내 아내로 인해서 감사한다네. 생각해 보게나. 만일 내게 저런 악처가 없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철학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사람은 비기독교인이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기독교인이다. 감사는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형편 속에서도 감사한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66장 ‘다 감사드리세’가 작사한 배경은 이렇다. 작시자 마르틴 린카르트(Martin Rinkart 1586∼1649)는 17세기 독일교회를 담임했던 목사였다. 그 당시 독일을 비롯한 전 유럽에는 아주 무서운 흑사병이 나돌고 있었다. 그 병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린카르트 목사님의 아들조차도 흑사병에 걸려서 죽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의 장례를 치러야 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린카르트 목사의 교회에서만 50명의 장례식을 한꺼번에 치를 정도였다. 그때 린카르트 목사가 작사한 찬송이 ‘다 감사드리세’였다.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 감사와 찬송을 다 주께 드리어라.’
❚ 지속적인 노력의 과정에서 실수도 있고 실패도 있디. 그러나 진정한 실패는 해보고 안 되는 실패가 아니라 해보지 않고 안된다는 실패이다. 위대한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은 전구와 축음기, 영사기를 포함해 일생 1,093개를 발명했다. 그의 성공은 반복의 성공이었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10,000번의 실험을 했다. 그는 만 번 실패한 것이 아니라 만 번 시도한 것이다.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은 고등학교 농구부에 지원하는 날 거절당했다. 코카콜라의 사업 첫해 매출은 단 400병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좋은 일은 좋은 것을 반복할 때 생긴다. 모세도 십계명 받으러 시내산에 8번이나 올라갔다. 사무엘도 성전에서 세 번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님도 앞을 못 보는 장님을 위해 두 번이나 기도하셨다. 바울은 한번 선교한 곳을 네 번이나 반복해서 찾아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말씀은 366번이나 반복하셨다. 성경은 우리에게 900번이나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했다. 좋은 것을 지속해서 공급받아야 좋은 것이 된다.
❚ 모든 습관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영적인 습관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가면 새들백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새 가족으로 등록하면 일정 기간의 성경공부 과정을 마친 후 반드시 3가지에 서명해야 한다. ❶ 나는 묵상과 기도를 위해 매일 조용한 시간을 갖겠다. ❷ 나는 내 수입의 10%를 십일조로 드리겠다. ❸ 나는 작은 교회의 일원으로 반드시 목장모임에 참여하겠다. 이것을 ‘영적 성숙을 위한 언약’이라고 부른다. 새들백교회가 의도하는 것은 신자들은 마땅히 기본적인 영적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릭 워렌 목사는 말한다. ‘목회자로서 내 사명은 교인들에게 영적 삶의 원리를 일러주고 그것을 습관화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습관화된 교인들이 스스로 신앙생활을 할 것이다. 니는 신자들을 강요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다만 습관에 따라 스스로 하기를 원한다.’
❚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는 저서 ‘믿음 연습 (Facing the Giants)’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둘러 기도하고 좋은 충고를 받아들이며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그는 플로렌스 채드윅(Florence Chadwick)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면했다. 1952년 채드윅은 카타리나섬에서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대기록을 수립하는 수영에 도전하였다.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50km 떨어진 섬이었다. 안개가 잔뜩 낀데다 파도까지 높았지만 15시간 동안 쉬지 않고 헤엄쳤다. 급기야 근육에 경련이 오기 시작하였고 도전 의지도 약해졌다. 채드윅은 건져 달라고 요구하였다. 보트를 타고 따라오던 어머니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격려했다. 그녀는 다시 헤엄치고 또 헤엄쳤지만, 너무 지쳐 수영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결국 구조대원이 채드윅을 물에서 끌어내어 배에 태웠다. 몇 분쯤 노를 젓자 안개가 걷혔다. 그런데 웬일인가? 해안까지 고작 5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채드윅은 기자 회견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안개밖에 안 보였어요. 해안이 보였더라면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탄식하며 말했다. 맥스 루케이도는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앞에 있는 바닷가에 주목하라. 슬럼프의 안개에 갇혀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두어 번만 팔을 더 저으면 결승점에 도달할 수도 있다. 바로 지금 하나님이 천사장에게 승리의 나팔을 불라고 손짓하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강조하였다.
❚ 시편 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다. 괴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라고 했다. 성경 로마서 1:21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하였다. 감사를 아는 사람은 꽃 한 송이를 자신만 보기 위해 방안에 가두어놓지 않는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형수를 건져 내어 해방해 주었던 명 변호사 Samuel Leibowits는 회고하기를, ‘내가 평생에 전기의자에 앉아야 할 사형수를 78명이나 구원해 주었는데, 자기에게 찾아와 감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라고 하였다. 라디오를 통해 직업을 알선하는 Art King씨도 술회하기를, ‘내가 지금까지 2,500명에게 직업을 찾아 주었는데, 오직 열명 만이 감사장을 보내 왔었다’라고 하였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시고 필요를 해결해 주셨다. 그러나 주님께 감사한 사람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영국 격언에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라고 했다. 안소니 안은 ‘세상에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보다 더 악독한 자가 없다’라고 했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볼 때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떠한 상황도 감사로 해석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그 감사는 감사를 낳게 되어 있다. 그러나 불평으로 해석하면 그 불평은 다시 불평을 낳고 불행해진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며 인격화된 감사생활이다.
❚ 카메론 페디(Cameron pedy)라고 하는 사람은 30살에 목사가 되어 60살이 되도록 성령의 능력을 모르고 목회를 하다가 사모님이 병이 나서 신유에 대해서 연구하다 보니 예수님이 많이 병자를 고친 것과 지금도 믿으면 신유와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깨닫고 4년 이상이나 매일밤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간구했다. 계속 기도하던 중 4년 이상 되었을 때 어느 날 낮에 사모님이 출타 중이라 자신이 감자를 깎으며 식사 준비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으면서 기도하고 싶어서 방에 들어가 기도하다가 큰 능력을 받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졌다. 그때 마침 누가 찾아와서 교인이 방금 죽게 되었다고 기도해 달라고 해서 찾아가 손을 얹고 기도했더니 펄펄 뛰며 뒹굴던 사람이 조용히 가라앉아 잠이 들면서 병이 낫다. 그러면서 카메론 페디(Cameron pedy)목사는 ‘성령의 능력을 모르고 30년 목회한 결과보다 성령의 능력과 신유 은사를 받고 석 달 동안의 목회한 것이 더 많이 전도했다’라는 것이다.
❚ 한때 세계 최대의 교회이며 5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기까지 이르렀던 캐나다 토론토의 회중교회(People's church)의 오스월드 스미스(Oswald Smith)목사도 어디서 그런 영력을 얻어 교회를 부흥시키느냐고 할 때, 자기는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먼저 성경을 보고 기도하는 생활을 한다고 했다. 기도하다가 졸음이 오면 서재를 왔다 갔다 거닐면서도 기도한다고 했다. 모두 다 그런 영력과 부흥이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남모르는 규칙적인 기도를 하는데서 얻어진 것이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John Wesley)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2시간씩 기도하고 성경을 보았다. 그런 까닭으로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할 때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여 영국을 무혈혁명으로 구원하고 세계 최대의 교파의 하나를 이루었다. 그는 일주일에 이틀씩 수요일과 금요일은 한 끼니만 먹고 금식하였다. 그의 생활이 얼마나 규칙적이었는지 ‘규칙쟁이’란 별명에서 오늘날 ‘감리교회’(methodist chursh; method 규칙, 방법, 질서의 뜻)란 이름이 생겨났다.
❚ 한동대 김영길 총장의 부인 김영애 교수가 쓴 ‘갈대 상자’라는 책이 있다. 김영길 교수는 과학자로서 카이스트대학 교수 자리를 버리고 당시 대학 경영에 파탄이 난 무명의 한동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시작부터 부도가 나고 7년간의 법정투쟁의 고통의 시간, 기독교 학교라는 이유로 인하여 격은 수많은 핍박과 반대 속에서 기적같이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눈물의 사연들을 부인인 김영애 사모가 정리했다. 대학은 부도에 직면하고 행정상 오해를 사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바로 학교 가고,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꽃 한 송이를 들고 교도소를 찾아가서 교도소 담벼락에 엎드려 기도하고, 꽃 한 송이를 꽂고 가는 바람에 교도소 담벼락이 온통 꽃밭으로 변해있었다. 실로 감동의 장면이었다. 이 책에서 김영애 사모님은 한동대를 세우고 지탱해 가면서 겪은 온갖 시련과 고통, 그 고난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버텨 갈 때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셨는가,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보내서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썼다.
❚ 아프리카 우간다를 이디아민이라는 독재자가 통치를 했는데 그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였다. 그때 그 우간다에 케파센팡디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가 있었다. 그는 이 이디아만의 잘못된 정치에 대해서 늘 비판도 하고 지적도 했다. 예언주의적인 삶을 살았다. 불의를 고발하였다. 그러니까 늘 권력자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날 부활절날 아침 70여명의 교인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목사님은 자기 직무실로 돌아왔는데 그 직무실에 5명의 비밀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케파목사의 이마에 총을 들이대고 ‘너는 반국가 사범이다. 국가의 이름으로 너를 처단하로 왔다’라고 했다. 이때 이 케파 목사님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 죽어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부활절이고 나는 죽어도 반드시 다시 살 것을 믿기 때문에 언제 죽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죽기전에 소원이 있습니다. 내게 기도할 시간을 주십시오.’ 비밀경찰이 그것은 허락했다. 목사는 선 채로 하나님 앞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 땅 위에 이디아민 대통령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디아민 대통령에게 긍휼한 마음을 주세요. 그를 변화시켜 주세요. 그의 하수인이 되어서 저를 죽이러 온 이 아무 죄도 없는 5명, 이분들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세요. 이 땅에 진정 자유가 오고, 민주화가 꽃피고, 인권이 살아나는 그런 땅이 되게 해 주옵소서. 사랑의 땅 공의의 땅이 되게 해 주시어 저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런 비참한 죽음이 없도록 해 주시옵소서.’ 목사님이 기도를 마쳤을 때 눈에 이슬이 맺혔다. 그것을 바라보는 이 비밀경찰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 리더격의 사람이 ‘목사님 우리가 오늘 큰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목사님 같은 분을 죽이면 우리가 천벌을 받죠. 우리는 목사님을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어서 피신하세요. 그러고 그들은 돌아갑니다.’ 비밀경찰들은 사람 죽이는데 전문가들로 사람 하나 죽였다고 그들은 눈 깜짝하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더구나 그들은 목사님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들도 죽는다. 수많은 악을 행해온 그들이 목사님 하나 죽인다고 그게 무슨 가책이 되겠는가. 그런데 바로 그날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기도의 무릎을 꿇은 죽음을 초월한 기도를 드리는 목사를 살려주셨다. 케파 목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비밀경찰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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