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공문서를 위조하라
위소보는 중도에 어떤 변고도 생기지.않도록 일대의 효기영 군사들을 뽑아서 한 명의 좌령이 거느리도록 하여 오지영과 함께 가서 범인들을 데려오도록 하였다. 그는 내당으로 들어가 사람을 시켜 이력세 등에게 상의하자는 전갈을 보냈다. 그러자 쌍아가 앞으로 다가와서 갑자기 그 의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울며 말했다.
[상공, 상공께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위소보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킨 다음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쌍아, 그대는 나의 목숨과 같소. 무슨 일인지 내 반드시 그대를 위해 처리하지.]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위소보는 이를 보 고 왼손을 들어 소맷자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쌍아는 말했 다.
[상공, 이 일은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저는 상공에게 부탁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위소보는 왼팔을 뻗쳐 그녀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
[어려운 일일수록 내가 그대를 위해 처리한다면 그만큼 내가 쌍아를 총 애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소? 무슨 일인지 빨리 말해 보시 오.]
쌍아는 창백한 얼굴에 약간 홍조를 띠고 나직이 말했다.
[상공, 저는....저는 조금 전의 그 벼슬아치를 죽여야겠습니다. 상공께 서는 저에게 화를 내지 마십시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 두 사람은 그야말로 뜻과 길을 같이하게 되는 셈인데 그대가 나에게 부탁을 하다니 이것이야말로 정말 멋진 일이 아니겠는 가!)
[그 벼슬아치가 그대에게 어떤 죄를 지었지?] [그는 저에게 죄를 짓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오지영은 우리 집안의 큰 원수예요. 장씨 집안의 큰나리와 작은나리 모두 다 그에게 해를 당해 돌아가신 거예요.]
위소보는 대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장씨 집안에서 본 여자들은 모두가 과부였었고 집안에는 많은 영위를 차려 놓지 않았던가! 그 원흉 이 바로 그 사람 오지영이었구나 하고 깨달은 위소보는 물었다.
[그대는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오?]
쌍아는 다시 눈물을 줄줄 흘리며 흐느꼈다.
[아니에요. 잘못 알 리가 없어요. 그는 포졸과 벼슬아치들을 데리고 장 씨 집안으로 들이닥쳐 사람들을 잡아갔어요. 저의 나이가 아직 어릴 때 였지만 그의 흉악하던 모습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어야만 그녀는 내가 크게 인정을 베풀었다 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잠시 동안 깊이 생각한 후 망설이는 듯 말 했다.
[그는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이며 양주부의 지부요. 황제가 나를 양주로 보내어 일을 처리하는데 그대가 만약 그를 죽인다면 나도 벼슬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오. 조금 전 그는 또 나에게 와서 큰일을 얘기했는데 그 대가 그를 죽인다면 아무래도....아무래도....]
쌍아는 초조한 듯 눈물을 흘렸다.
[저는....저는 이미 상공께서 매우 난처하시리란 것을 알고 있어요. 하 지만 장씨 집안의 노마님 아니 셋째 작은마님, 작은마님 그녀들은.... 매일같이 영위 앞에서 절을 올리고 그 오가라는 고약한 벼슬아치를 죽 여 원한을 갚겠다고 맹세하고 있어요.]
위소보는 무릎을 탁 치고 말했다.
[좋아! 나의 사랑스런 쌍아가 부탁하는 것이니, 내가 황제를 죽이고 스 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부탁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대의 말을 쫓겠 소. 더군다나 일개 조그만 지부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소? 그러나 내가 입맞춤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어야 하오.]
쌍아는 온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기쁨과 부끄러움에 휩싸여 고개를 돌리고 나직이 말했다.
[상공께서는 저를 이렇듯 잘 대해 주시는군요. 저는....저라는 사람은 이미 그대의 것이에요. 그대는....그대는....]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위소보는 그녀가 부드럽고 유순한 것을 보고 그만 마음이 약해져서 그녀에 대하여 경박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좋소. 우리들이 일을 성공시킨 날 나는 그대에게 입맞춤을 하겠소. 그 대는 그때에 도망치지 말도록 하시오.]
쌍아는 얼굴을 붉히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지금 그를 죽인다면 원한을 갚는 방법이 그리 통 쾌하지 못할 것 같구려. 내 그대로 하여금 그를 데리고 장씨 집안으로 가서 그를 장씨 집안의 큰나리들과 작은나리들의 신위 앞에 끓어앉게 하고는 셋째 작은마나님들로 하여금 친히 그놈을 죽이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쌍아는 이 일이 너무나 좋은 일이라고 느껴졌으나 믿을 수 없었다. 그 리하여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위소보를 쳐다보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공, 그대는 저를 속이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어째서 그대를 속이겠소? 그 개 같은 벼슬아치가 그대의 윈수라 면 또한 나의 원수도 되는 것이 아니겠소? 그는 나에게 부귀공명을 누 릴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했지만 이젠 달갑지가 않소. 그저 쌍아가 나에 게 잘 대해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좋소.]
쌍아는 마음속으로 감격한 나머지 그의 몸에 기댄 채 다시 참을 수 없 다는 듯이 눈물을 흘렸다. 위소보는 그녀의 부드럽고 섬세한 허리를 껴 안게 되자 매우 즐거워졌다. (이와 같이 쉽게 인정을 베푸는 거라면 매일같이 여덟 내지 열 가지를 부탁해도 힘들지 않다. 오지영이라는 개 같은 벼슬아치가 어째서 아가 의 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았지? 아가가 만약 나에게 원한을 갚아 달라고 부탁을 하며 나로 하여금 그녀를 껴안도록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는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아가의 부친은 이자성이 아니면 바로 오삼계이다. 어찌 오지영에게 해 침을 당하겠는가?) 이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라왔다. 이력세 등이 당도한 것을 알고 위소보는 말했다.
[이 일은 안심해도 좋소. 지금 나는 중요한 일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 를 해야 하는데 그대는 문 밖에서 지키고 있되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절대 우리들이 하는 말을 엿들어서는 안 되 오.]
쌍아는 대답했다.
[예, 저는 한번도 그대가 하는 말을 엿들은 적이 없어요.]
그녀는 위소보의 오른손을 잡고 몸을 구부려 손등에 입맞춤을 한 후 재 빨리
[문을 나갔다. 이력세 등 천지회의 군웅들은 방안에 이르자 다투어 자 리에 앉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여러 형들, 어젯밤 나는 중대한 소식을 듣고 사태가 긴급한지라 여러 분들과 상의하지 못하고 급히 여춘원으로 달려갔소. 어찌되었든간에 운 수가 나빠 그야말로 창피한 소란을 일으키고 말았지만 끝내 고염무 선 생과 오륙기 형의 목숨은 건질 수 있게 되었소.]
군웅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위 향주가 어젯밤의 일에 지나치게 당당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기녀원에 들어가 기녀를 끼고 자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기녀원에서 커다란 침대를 떠메고 나올 뿐 아 니라, 일곱 명의 여자들을 옮김에 있어서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 록 한 것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짓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바로 고염 무와 오륙기를 구하기 위해 그런 짓을 했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생 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지라 일제히 자세한 사정을 물었다. 위소보는 웃 었다.
[우리가 곤명에 있을 때 여러 형들은 오삼계의 위사들로 가장하고 기녀 원으로 들어가 술을 마시고 싸움을 벌이지 않았소? 형제는 그 계책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하고 어젯밤 똑같은 짓을 또 행하게 된 것이오.]
군웅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같이 생각했다. (그랬었구나.) 위소보는 여기서 말을 더 하게 되면 마각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 고 신중히 입을 열었다.
[이 중간의 상세한 점은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구려.]
그는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오륙기가 놓고 간 그 한 통의 편지를 꺼 냈다. 전노본이 받아 탁자 위에 펼쳐 놓고 사람들과 함께 읽었다. 그리 고 보니 편지의 끝에는 '윤황인형선생도감(伊黃仁兄先生道鑒)'이라고 쓰여 있고 편지의 말미에는 '설중철걸(雪中鐵乞)'이라는 넉 자의 서명 이 있었다. 모두들 설중철걸이 오륙기의 호라는 것은 알았으나 윤황 선 생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편지에서 말하는 서남에서 큰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중산과 개평이 장거를 도모하려 하고 또 청전 선생 이 아니면 계획을 세워 공을 세우지 못한다느니 하는 전고(典故)와 은 어(隱語)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로의 얼굴을 바 라보며 위소보의 설명을 조용히 기다렸다. 위소보는 웃었다.
[내 뱃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은 양주의 탕포(湯包)와 장어면(長魚 )이지 먹물은 조금도 없소이다. 여러 형들의 뱃속에도 아무래도 먹물보다는 술이 더 들어 있겠구려. 고염무 선생이 얼마 후 도달하게 될 것이니 우 리 그 선생에게 듣도록 합시다.]
말을 하는 사이에 친위병이 손님이 찾아왔다는 보고를 했다. 한 사람은 대라마이고 한 사람은 몽고 왕자라고 했다. 위소보는 천지회의 군웅들 을 친위병으로 가장해서 함께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이 두 결의형제는 얼굴을 붉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한편으로 아기 를 모셔오도록 했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마주 대하자 상결과 갈이단은 매우 다정하게 굴었다. 그리고 위소보의 의리가 매우 깊다고 크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가 아기가 기뻐서 달려나와 맞이하는 것을 보고 갈이단은 더욱더 마음 이 느긋해졌다. 이때 아기는 손에 찼던 수갑이 제거되었고 다시 지분 바르고 옷매무시를 고친 상태였다. 위소보는 웃었다.
[다행히 두 분 형의 무공이 절세적이라 요사한 인물들을 물리치게 되었 소. 그렇지 않았다면 형제들의 생명을 보존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 한 떼의 요사한 인물들의 무예는 약하지 않았고 사람들 또한 많았소. 두 분 형님들은 적은 수로 많은 사람들을 이겼고 그들로 하여금 똥오줌을 갈기며 황망히 도망치도록 만들었으니 형제는 크게 탄복하오. 우리 다 시 경공연(慶功宴)을 일어서 두 분 형이 천하에 위세를 떨치고 큰 성공 을 이루고 돌아온 것을 축하하도록 합시다.]
상결과 갈이단은 신룡교에 잡힌 몸이었는데 다행히 위소보가 홍 부인을 석방함으로써 이 두 사람을 맞바꾸어 온 셈이었다. 그러나 위소보는 마 치 그들 두 사람이 적을 크게 무찌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상결은 얼굴에 부끄러운 빛을 띠었으나 속으로는 고마워했다. 갈이단은 신이 나서 싱글벙글했고 심지어는 의기 양양해졌다. 술상을 차리라는 위소보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당에는 즉시 성대한 주연 이 베풀어지게 되었다. 위소보는 몸을 일으켜 두 분의 의형과 잔을 들 었다. 그리고 아첨하는 말을 거센 조수가 들이닥치는 듯한 기세로 해대 어 나중에는 상결마저도 자기가 사로잡혀가 욕됨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 을 정도였다. 그러나 위소보가 그의 무공이 천하 제일이라고 재차 찬양 하자 상결은 연신 손을 내저었다. 그는 홍 교주에 비하면 자신의 무공이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 술을 마신 이후에 상결과 갈이단은 몸을 일으키고 작별을 고하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아무래도 두 분 형님께서 각기 한 장의 상주문을 써서 이 형제로 하여 금 황제께 바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래에 큰형이 서장의 활불 이 되고 둘째 형님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형제가 황제 옆에서 요란 하게 북을 쳐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음성을 낮추어 말했다.
[이후 오삼계 늙은 녀석이 반란을 일으키게 될 때 두 분 형님이 황제를 도와 그 늙은 녀석을 공격한다면 우리들의 일이 어찌 성공하지 않을 턱 이 있겠소이까?]
두 사람은 크게 기뻐 일제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하며 웃었다. 위소 보는 두 사람을 데리고 서재로 갔다. 갈이단은 말했다.
[우형은 글씨를 쓰는 데 있어서는 능통하지 못하니 상주문은 역시 형제 가 대신 써 주시구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이 형제는 자신의 이름자라고 하더라도 그저 소(小) 자 정도만 틀리지 않고 쓸 뿐이지 위(韋) 자만 하더라도 믿을 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리 고 보(寶) 자로 말씀드리면 아무리 써 봐도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든답니 다. 우리들은 사야보고 대신 쓰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상결은 말했다.
[이 일은 매우 은밀하니 남에게 알려서는 안 되오. 우형의 문장력이 그 렇게 매끄러운 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쓸 수는 있을 것이네. 다행히 우리들은 과거를 보는 것도 아니니 황상께서는 문필의 좋고 나쁨을 따 지지 않을 것이네. 그저 의사소통만 하면 될 것이네.]
그는 모든 손가락이 한 토막씩 잘라져 있었으나 쓸 수는 있었다. 그리 하여 그는 자신의 상주문을 갈이단을 대신해서 쓰고 갈이단으로 하여금 손도장을 찍도록 하였다. 그리고 세 사람은 다시 맹세를 거듭했다. 장 래의 부귀는 함께 나누고 어려움은 서로 도와 주기로 했으며 결코 형제 의 의로 맺은 정을 잊지 말자고 맹세했다. 위소보는 세 쟁반에 금을 나누어 두 분의 형과 아기에게 나누어 주고, 말과 교자를 준비해서는 공손히 문 밖으로 나가 전송했다. 대청으로 돌 아오자 친위병이 오지부가 이미 죄인들을 압송해 왔다는 보고를 했다. 위소보는 오지영으로 하여금 동쪽 대청에서 기다리도록 하고 고염무 등 네 사람을 데리고 내당으로 들어가 친위병을 물리친 다음 수갑을 풀어 주고 천지회의 군웅들만 남겨 둔 후 문을 닫았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말했다.
[천지회의 청목향주 위소보가 형제들을 이끌고 고 군사와 사 선생, 그 리고 여 선생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이날 사윤황은 오륙기의 밀서를 받고 난 후 크게 기뻐서 여유량과 함께 양주로 와서 고염무를 찾아 상의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오지영이 마침 고염무의 시집을 조사하기에 이르러 포졸들과 아문의 벼슬아치들을 데 리고 사람들을 잡으러 나와 사윤황과 여유량 두 사람을 함께 압송한 것 이다. 그리하여 검색을 해본 결과 뜻밖에도 사윤황의 몸에서 오륙기의 밀서를 몰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세 사람은 부끄러움과 희한에 죽고 싶어했으며 하나같이 그들의 목숨을 잃는 것은 상관없지만 오륙기의 밀서가 누설된다면 큰일을 그르치게 되 는 것이라고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흠차대신이 자칭 천지회의 향주라고 하니까 그만 놀람과 기쁨에 얽혀서 아직도 꿈을 꾸 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게 되었다. 그날 하간부에서 살귀대희를 열었을 때 위소보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으 나 이력세, 서천천, 현정 도인, 전노본 등은 모두 고염무와 인사를 하 였었다. 그리고 고염무와 사윤황, 여유량 세 사람은 과거 운하에서 위 험에 부딪히게 되었을 때 천지회의 총타주 진근남의 구원을 받지 않았 던가! 그런데 이제 이 눈앞의 소년 흠차가 바로 진근남의 제자라는 것 을 밝히자 더욱 의심이 없어져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윤황 이 오륙기의 편지에 중산과 개평, 그리고 청전 선생에 대한 사연을 밝 히자 천지회 군웅들은 그제서야 확연히 깨닫고 매우 위험했다는 말들을 하였다.
[아! 우리 세 사람과 또 한 분의 황이주의 황형은 존사의 구원을 받은 적이 있소이다. 그런데 오늘 조심하지 않아 다시 화를 일으키고 말았는 데 위 형제가 어려움을 풀어 주었구려. 아! 정말 서생이란 쓸모가 없나 보오. 귀하 사부와 제자분의 커다란 은혜는 더욱더 보답할 길이 없을 것 같구려.]
위소보는 말했다.
[모두 한집안 사람인데 여 선생께서는 그토록 겸손해 하실 것 없습니 다.]
사윤황은 말했다.
[양주부 아문의 포졸들이 갑자기 대문을 깨뜨리고 들이닥친 것은 그야 말로 갑작스런 천둥소리에 미처 귀를 막을 수 없는 형편이었소. 나는 정세가 잘못된 것을 알고 재빨리 우형의 편지를 찢어 없애려 했으나 이 미 손과 발이 잡히고 뒤로 꺾이게 되었소.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커다 란 화를 입겠구나 하고 생각되어 속으로 고문을 받게 되면 편지를 쓴 설중철걸이 오삼계라고 하려고 했었소. 이 형제의 늙은 목숨은 보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오륙기형의 안전은 지키기로 마음먹었던 것이오.]
사람들은 소리내어 웃으며 모두 잘된 계책이라고 말했다. 사윤황은 밀 했다.
[그것도 부득이한 궁여지책이외다. 설중철걸은 천하에 이름이 알려져 있어 오삼계와는 어떤 관계를 맺게 할 수도 없을 거외다. 만약 관원이 오형의 필적을 가져와 대조하게 된다면 반드시 진상이 밝혀지게 될 일 이지요.]
고염무는 말했다.
[우리가 두 분 오형의 비밀을 누설하고 두 번 구원을 받게 된 것을 보 면 하늘의 뜻이 있는 것을 살필 수가 있소. 따라서 오랑캐의 기운은 결 코 빌지 않을 것이니 오형은 반드시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되는구 려. 그러나 이후 이 일은 다시 입밖에 내어서는 안 될 것이오. 어떻게 든 세 번째 가서는 이와 같이 운수 좋게 풀려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구려.]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고염무는 위소보에게 물었 다.
[위 향주, 그대가 볼 때 이 일은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소?]
위소보는 말했다.
[세 분 선생과 만나 뵙기가 어려우니 세 분께서는 이곳에서 며칠 묵도 록 하시고 여러분들과 함께 술을 들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오지영 이란 개 같은 벼슬아치를 불러서 그를 옆에 세워 두고 구경을 하도록 하면 그는 아마 놀라 죽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그 개 같은 벼슬아치가 담이 커서 놀라게 해도 죽지 않는다면 한칼에 그의 개 같은 목을 베는 것이죠.]
고염무는 웃었다.
[그 방법은 가슴속의 울화를 풀 수는 있으나 그렇게 된다면 아무래도 이 일이 누설될 것이외다. 그 개 같은 벼슬아치는 조정에서 임명한 관 리인데 위 향주가 그 관리를 죽인다면 어찌되었든간에 죄명이있어야할 것이외다.]
위소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있습니다. 사 선생께서 한 통의 가짜 편지를 만들어 오삼계가 그 개 같은 벼슬아치에게 써준 것으로 하면 됩니다. 이 개 같은 벼슬아치의 족보를 따져 볼 때 오삼계가 그에게 아저씨뻘이 된다고 했으니까요. 만 약에 가짜 편지를 만드는 것이 귀찮다고 느끼신다면 오륙기 형님의 편 지를 그저 베껴도 될 것입니다. 다만 아래의 이름을 바꾸도록 해야겠지 요. 그 누구든간에 오삼계와 결탁했다고 하면 내가 그의 머리를 치는 데 대해서 소황제께서도 반드시 찬성할 것 입니다.]
모두들 좋다고 말했다. 고염무는 웃었다.
[위 향주는 생각이 깊고 기민하구려. 이와 같은 계책은 정말로 화살 한 대로 두 마리의 독수리를 쏘아 잡는 격이외다. 그 사람의 술수를 그 사 람에게 되돌려주어 다스리는 법이기도 하지요. 윤황 형, 써갈기도록 하 시오.]
사윤황은 웃었다.
[뜻밖에도 오늘 오삼계 그 늙은 도적의 기실(記室:서기)이 되어야겠구 려.]
위소보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해서 한 통의 편지를 가짜로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로 느껴졌다. 그래서 원래의 편지를 베끼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러나 고염무와 사윤황, 여유량 세 사람은 당금 세상의 명 사로서 붓을 들고 편지를 쓰는 것을 마치 위소보가 주사위를 던지고 노 름을 하는 것처럼 밥먹듯 흔하게 하니 뭐가 어렵겠는가! 사윤황은 붓을 들고 막 쓰려고 하다가 물었다.
[오지영의 자가 어떻게 되오? 오삼계가 그에게 편지를 써줄 때 만약 그 의 자를 쓰게 된다면 더욱 친숙한 것처럼 보일 것이 아니겠소?]
위소보는 말했다.
[마형, 그대가 가서 그 개 같은 벼슬아치에게 물어 봐 주시구려.]
마언초가 나가서 물어 보고는 돌아와서 웃으며 말했다.
[그 개 같은 벼슬아치의 자는 현양(顯揚)이라고 한답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자기의 자를 묻느냐고 하더군요. 저는 흠차대신이 북경의 이부 (吏部)와 형부圻賠D 두 분 상서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세하게 그의 공로 를 칭찬하고 그의 관명과 자를 알리려고 한다고 했소이다. 그랬더니 그 개 같은 벼슬아치는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나에게 열 냥의 은자까지도 주었소.]
그리고 그가 한 덩어리의 은자를 흔들어 보이자 사람들은 소리내어 웃 었다. 사윤황은 금세 편지를 써서 고염무에게 건네주었다.
[정림 형, 그대가 볼 때 그럴싸하오?]
고염무가 받아든 편지를 여유량이 옆에서 함께 넘겨 본 후에 그들은 하 나같이 말했다.
[매우 좋습니다. 매우 좋아요.]
여유량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가 처음 오(吳)나라라고 일컫게 되었 더니 놀랍게도 삼백 년 후에 우리 숙적의 성씨와 부합된다는 것을 그 누가 알았겠소. 한 마디의 오자는 그야말로 사람을 꼼짝없이 만드는 것 이니 아무리 변명을 한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을 것이외다.]
고염무는 웃었다.
[이 두 마디 '백사(白蛇)를 베고 대풍(大風)의 노래를 짓고자 하나 바 라건대 우리 조카는 흙다리 아래에서 신발을 들어올리는 창피를 무릅쓰 기 바라며 깊이 생각하고 분발하여 하늘의 뜻에 호응함으로써 우리 조 카가 성의지작(誡意之爵)을 얻을 수 있기 바라오'라는 말은 륙기 형의 '중평과 개평의 위업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청전 선생으로 하여금 계책 을 세우게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을 것이오'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 아니겠소?]
사윤황은 웃었다.
[똑같은 방법으로 흉내를 낸 것이외다.]
천지회의 군웅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그들 세 사람이 무슨 말을 하 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방회에서 하는 암호를 말하거나 강호의 언어로 말하는 줄 알았다. 그리하여 고염무는 모두에게 설명을 했는데 명 태조 주원장이 처음 거사를 일으켰을 때 스스로를 오국공(吳國公)이라고 일 컬었고 나중에는 오왕(吳王)이라 칭하였는데 이는 오삼계와 오지영의 성씨와 상통한다는 것이고, 백사를 베고 대풍가를 지어 부른다는 것은 한 고조 유방의 일이며, 돌다리 아래서 신발을 줍는 것은 장량의 고사 이고, '성의'라는 작위에 봉해진 사람은 바로 유백온이라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 편지는 오륙기 형님이 쓴 것보다 더 좋군요. 오삼계는 본시 황제가 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한 고조와 주원장에게 견주는 것은 그를 너무 추켜올리는 것입니다.]
여유량은 웃었다.
[이것은 오삼계 자기 자신이 추켜올리는 것이외다.]
위소보는 웃었다.
[맞았습니다, 맞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오삼계 스스로 쓴 것임을 잊었 소이다.]
사윤황이 물었다.
[아래에는 무엇이라고 서명하는 것이 좋겠소?]
고염무는 말했다.
[이 편지는 누가 보더라도 오삼계가 쓴 것으로 알 것이니 서명이 애매 하면 애매할수록 더욱더 그럴싸하게 보일 것이오. '숙서수찰(叔西手 札)'이란 넉 자로 서명을 하는 것이 좋겠구려.]
그는 전노본에게 말했다.
[전형, 이 넉 자는 그대가 쓰도록 하시오. 우리들이 쓴 글에는 선비들 의 기운이 엿보여 군사를 거느리는 무인의 글씨와 같지 않구려.]
전노본은 붓을 들고 전전긍긍하며 쓰고는 겸연쩍게 말했다.
[이 넉 자는 삐뚤삐뚤해서 모양이 안 나는군요.]
고염무는 말했다.
[오삼계는 무인이라 자연히 편지는 기실로 하여금 쓴 것이 되지 않겠 소? 이 넉 자의 서명은 매우 좋소이다. 일정한 법칙은 없으나 매우 힘 찬 글씨라서 무장의 글씨라고 할 수 있소.]
사윤황은 겉봉에다가 친정양주부가지부노야친탁(親呈揚州府家知府老爺 親託)이라는 열두 자를 써서는 편지를 봉투 안에 넣어 위소보에게 내밀 며 미소를 지었다.
[편지를 위조한다는 것은 음흉하고 덕행을 거스르는 행동이라 할 수 있 으며 그야말로 성인군자의 소행이라 할 수 없소. 하지만 대업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조그만 것을 저버리지 않을 수 없구려.]
위소보는 생각했다. (오지영과 같은 도적을 상대하여 한 통의 가짜 편지를 만든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선비들은 정말 가소로울 정도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구나.) 그는 편지를 거두며 말했다.
[이 일이 잘 처리되면 그 후에 다시 술을 마시면서 세 분 선생을 환영 해 드리지요.]
고염무는 말했다.
[위 형제와 륙기 형은 그야말로 한 사람이 문관이라 하면, 한 사람은 무관이라 할 수 있으니 반드시 명나라를 중흥하는 기둥이 될 것이고 등 고밀과 곽분양 역시 그 정도에 불과할 것이외다. 만약에 오삼계라는 늙 은 도적을 거꾸러뜨릴 수 있다면 그것은 오랑캐의 한 발을 없앤 것과 다름이 없게 될 것이외다. 위 형제의 그 한 잔의 술은 커다란 공을 성 사시켰을 때 다시 마시도록 합시다. 우리 세 사람은 이대로 작별을 고 해야겠소. 이곳에 오래 지체함으로 인해 소문이 누설되어 큰일을 그르 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되겠소이다.]
위소보는 마음속으로 고염무를 퍽이나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세 분 명 사들의 말은 그야말로 문자를 입으로 씹어서 하는 듯 한마디 한마디마 다 심오했기 때문에 알아듣기가 수월한 노릇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 과 좀더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온몸이 부자연스러워질 것 같은 판인데 그들이 가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어찌 더 이상 만류하겠는가. (세 분 선생들은 분명히 노름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기녀원의 소저들 을 보면 깜짝 놀라서 혼마저 달아나게 될 것이오. 내가 만약 제기랄! 하고 욕을 하면 반드시 그대들은 눈을 부릅뜨고 수염을 부르르 떨기까 지 할 테니 역시 빨리 가 보시는 게 좋겠소.) 그는 한 응큼의 은표를 꺼내 모든 사람들에게 일천 냥씩 나눠주어 노자 로 삼도록 하고 서천천과 마언초가 뒷문으로 그들을 호송해서 성 밖으 로 나가도록 만들어 주었다. 고염무와 사윤황, 그러고 여유량 등이 떠 나자 위소보는 기분이 홀가분해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조정의 문관들도 글공부를 하는 선비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재미가 있구나. 강소성의 벼슬아치들, 예를 들자면, 마 무태, 모 번태 등도 고 선생이나 사 선생 등에 비하면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친구를 사 귄다면 오지영이란 녀석이 세 분 노선생보다는 나은 편이다.)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친위병이 와서 순무와 포정사가 뵙기를 청한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움찔했다. (혹 비밀이 누설됐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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