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자르 카간의 봉신들이 무슬림 군대를 이끌고 오자
군사도 요새도 없는 린 사막의 부족장은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말과 양떼를 버리고 목책을 두른 마을 안으로 숨어들어가 돌과 화살로 응전했지만
수천의 군대 앞에 성벽도 해자도 없는 조그마한 마을이 버틸 수는 없는 법인지라
곧 기아에 시달린 그들은 목숨만을 구걸하며 나와 항복했으나
무슬림군은 카간의 명령에 따라 그들에게 자유와 재산을 허락하였다

쿠만 왕의 패전이 확실해지자 서쪽의 부족장들은 적이여야할 카자르의 카간에게 공물을 바치며 평화를 애원했다.
그들로서도 서쪽에서 동진해오는 러시아 정교도들이 더 급한 적이었던 것이다.
카간 역시 그들이 쿠만왕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곧 흔쾌히 공물을 받고 그들의 독립을 보장해주었다.

카간께서 사막의 부족민 중에서 또 군대를 소집하여 그 군세를 불리고
군막을 걷어 쿠만왕의 수도인 사라이로 진격하고 있던 중
멀리서 예상치 못한 대군이 나타나니 쿠만왕이 서쪽의 러시아 전선을 포기하고
남은 전 병력을 이끌고 카자르군을 막기 위해 온 것이었다.
러시아 정교도들에 비해 약한 카자르군을 먼저 쳐서 항복을 받아내고 그 군사를 합쳐 서부를 방어하려는 것이였으리라.
그러나 카간께서는 일찍이 정교도들이 야만인, 특히 이교도 사람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팔아넘긴다는 것을 아셨던 바
쿠만왕이 그것을 알고도 러시아 전선을 포기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과연 쿠만의 군세는 키예프의 침략 이전에 비하면 채 1/3 남짓한 패잔군이었지만
그 수적 우위로 카자르군의 좌익을 거의 무너뜨렸다.
그러나 쿠만 영토를 유린하던 수천의 정예 카자르 병력이 좌익에 합류하니
갑작스런 응원군에 놀란 쿠만왕은 좌익을 보강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달아나니
카자르군은 4천5백여 병력 중 좌익 1천을 비롯하여 총 2천여명을 잃은데 반해
쿠만군은 5천5백 병력 중 살아돌아간 자가 채 1천5백만이 되지 않았다.

곧 8천의 군세를 나누어 쿠만의 수도 사라이의 패잔병 1천을 내쫓는 동시에
하(下) 볼가로 쳐들어가 성을 함락하고 여족장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쿠만은 다시 한번 패잔병을 모아 사라이를 포위하고 있는 카자르군을 공격해왔지만
압도적인 수적 열세, 그리고 지휘관의 무능함 탓으로 승패는 결정된 것과 다름이 없어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다시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카자르군에게 큰 비보가 전해져왔으니
셀주크에게 호되게 혼나 병력을 일으킬 수 없을 것 같던 그루지야가
카자르가 쿠만과의 전쟁에 여념이 없다는 것을 노리고 카자르 봉신의 영토로 쳐들어온 것이다.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라, 온 카자르군이 그루지야의 비겁한 행위에 치를 떨었지만
전군과 모든 국력을 쿠만과의 일전에 쏟아부은 카자르로서는 그루지야가 거기서 멈춰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으나
카간의 막사에서는 "바루스, 아니 그루지야!!! 내 3개 군단을 돌려줘!!!"라는 처절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고 한다.


쿠만왕은 포기하지 못하고 남은 천여명의 병력으로 수도 탈환을 시도해보고 Kasogs 지역을 공략해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잔여 병력으로는 조그만 마을 하나 함락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며
더욱이 그들의 영토로 몰려드는 수천의 카자르군을 막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결국 쿠만의 왕은 사라이 외곽의 전투에서 3백의 병사를 잃고 포로로 붙잡혀
카자르의 카간에게 모든 땅을 내주고 목숨만을 구걸하는 치욕적인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삭 공은 쿠만인들의 시선을 염려한 바 어린 왕에게 돈강 하류의 조그만 땅을 남겨주었다.
사라이의 크고 아름다운 쿠만 궁전을 본 카자르의 중신들은
카간에게 새로이 수도를 옮기고 카자르와 쿠만의 왕에 오를 것을 종용하였으나
카간은 쿠만의 왕만 받아들이고, 수도는 옮기지 않으셨으니
이는 수도를 옮겨서는 카자리아의 부활이라는 명분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쿠만과의 길지는 않지만 컸던 전쟁은 결국 카자르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게 되었으나
이로 인한 과다한 세금과 백성 동원, 용병들의 횡포 그리고 내정의 방치 등으로 인하여
카자리아에는 오래된 평온과 평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기아와 도적들이 횡횡하게 되었다
이에 대신들은 다시 한번 카간에게 종전과 내치를 종용했으나
카간은 쿠만이 재기할 수 없도록 모든 영토와 봉신국들을 카자리아의 손 아래 넣어야 카자르인들이 안전해질 수 있음을 알았다.

그 무렵 교황청에서는 흑해 무역에 종사하는 이탈리아 상인들을 통해
흑해 연안에서 러시아의 정교도를 도와 이교도 쿠만족을 정벌하고 있는 세력이 있음을 알고
이 프레스터 존의 왕국이 동방교회나 정교도에 붙기 전에 바티칸의 휘하에 넣기 위해
사절을 통해 수많은 성물을 선물하며 예루살렘의 십자군을 명했다.
카간은 사절에게 수많은 선물을 전하며 십자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카간은 유대교도들을 박해하고 카자리아를 멸망시켰던 기독교 세력에 힘을 보태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단지 야만스러운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이틸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두려워서 협력하는 척했던 것이다.

카간은 남은 쿠만의 영토를 빼앗기 전에 반란을 일으킨 무슬림 봉신을 격파하니
무슬림들은 그들의 수도 데르반트에서 2천여 병력으로 결사항전했으나
카간의 3천 병력에 그 반수가 도륙당하고 결국 다시 항복하였다.
4개 영토 중 그루지야 너머의 두 영토를 빼앗아 세력을 약화시킨 연후에 다시 봉신으로 삼았다.

잉여스러운 동맹 모르드빈 부족에서 동맹으로서 전쟁 참여를 요청하였으나 남는 병력이 없어 거절하였다.
다시 쿠만족과 전쟁을 벌일 구실을 찾아보니, 쿠만의 봉신이었던 자가 쿠만을 쳐 정벌하고 있기에
어린 쿠만 왕을 보호하고 반역자를 징벌한다는 명분으로 샤루칸 부족을 쳐 가신으로 삼고
국내로 병력을 돌려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는 이교도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다시 쿠만의 옛 가신이었던 아조프 대부족장을 치려 하였으나 휴전 조약을 맺은 바 있기에
그 가신인 쿠반 족장에 선전포고하니 아조프 대부족장은 계략인지도 모르고 전쟁에 참가하였다.

이미 쿠만왕의 지휘 아래에서 거의 전멸해버린 바, 쿠반과 아조프의 병력은 미미하였고
카자르군은 그들을 전멸시키고 곧 성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성의 함락을 기다리던 카간에게 나쁜 소식이 들려왔으니
미약한 아제르바이잔 군대가 틈을 타서 카자리아에 선전포고해왔던 것이다.
수백의 카자리아군은 수천의 아제르바이잔 군대 앞에서 맥없이 쓰러졌으나
카간의 군대는 북쪽에 묶여, 또 그루지야에 가로막혀 남쪽의 영토를 지킬 수 없었기에
아제르바이잔에게 남쪽 땅 하나를 떼어주었다.

남쪽으로부터의 비보에도 불구하고 카간의 군대는 곧 쿠반을 함락하여 봉신으로 삼고
또 아조프 대부족장도 쳐서 봉신으로 삼았다.

카간 가라사대
아제르바이잔 이 XXX 복수할거야 XXX
그리고 채 몇년이 지나기 않아 아제르바이잔은 전 병력이 전멸하고 전 국토가 점령당해
아제르바이잔 땅 하나만 남기고 모든 국토를 양도하고 또 봉신이 되는 굴욕적 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어 sugrov 부족도 쳐서 봉신으로 삼고

간헐적인 전투에도 불구하고 후방의 본토는 매우 안전하고 전비는 적들의 공납으로 충당하니
백성들이 풍요롭게 잘 살아 돈이 넘쳐나게 되니
selfish 트레잇을 얻기 위해... 가 아니라 전비를 충당하고 새 건물들을 짓기 위해 잉여생산물을 모두 착취해버렸다.

sugrov의 히틀러는 아니고 이틀러(?) 족장도 가신으로 삼고...

어린 뤼코모리에 족장도 카자리아 소년원행

안타깝게도 샤루칸 영토의 인민들은 잔학한 러시아 정교도들의 압제에 떨어졌습니다.
이교도라는 이유로 학살당하고 노예로 팔려나갈 그들을 위해 묵념하면서 카간은 언젠가 복수하실 것을 맹세하면서
페체네그 영토로 진출할 육로를 열기 위해 쿠만왕의 영토를 다시 침략하여 모두 정복하고
동쪽의 아랄해 인근의 가난한 프로빈스 하나만을 허락하고 모두 빼앗지만
이미 카간의 선군정치가 널리 펼쳐지니, 쿠만인들은 쿠만왕이 동쪽 무슬림 땅으로 쫓겨나는 것을 보며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고 오히려 카간을 쿠만의 왕으로 추대하려 하더라.
이에 카간도 호응하여 하류 드네프르를 손에 넣어 정교도들에게 빼앗긴 샤루칸을 제외한 전 쿠만의 영토를 차지하고서는
쿠만의 왕을 선포하였다.
"짐은 이제 이 순간부터, 아니 이전부터 쿠만의 왕임을 선포하노라.
짐은 카자르공으로 즉위한 이후부터 카자리아의 부흥을 위해 싸워왔노라.
저 잔학한 이교도(러시아 정교도)들에게 맥없이 스러졌었지만
카자리아는 억압받던 카자르, 알란, 쿠만의 모든 야만족들이 유대교의 위대한 가르침 아래
스스로 문명이라 자처하는 억압자들에 맞서 이룩했던 위대한 역사이니
짐은 이를 계승하여 모든 야만인들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왕국을 재건하겠노라.
짐은 카자리아의 왕이요, 카자리아의 왕은 모든 야만인들의 왕이다.
짐은 카자르의 카간이요, 알라니아의 지배자요, 쿠만의 왕이니
카자르, 알란, 쿠만의 모든 인민들은 짐의 뜻을 받들어
안으로는 화합하고 밖으로는 야훼의 뜻을 받들어 오만한 이교도들을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도륙하여야 할 것이다."
첫댓글 쿠만의 왕이 되었으니.. 이제 하자르 족의 특성 중 남은 건 인종하고 종교.. 정도 겠네요. 그건 그렇고 클레임 포기 + 속국화는 사기적인 영토확장법 ㄱ-
왕위 안먹으니 속국화할 걸 땅 다 빼앗고 분봉해야되는 일이 생기더군요-ㅁ-;; 여기서는 일단 두들겨 패서 영토 다 빼앗고 해서 괜찮은데, 리처드 전기에서는 반란 일으킨 동네를 싸우지도 않고 봉신화했던 ㅎㄷㄷ
옛날에 카마제국도 저만큼 컸죠
3화에서 저 크기가 되었으니... 세계정ㅋ벅ㅋ도 순식간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