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조동진의 시작은 록 밴드였다. 대부분의 시작이 그렇듯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록 밴드를 만들어 처음 음악을 시작했다. 1969년 황규현, 이태원 등과 함께 쉐그린(Shegreen)이란 밴드를 결성해 활동한 게 본격적인 음악 이력의 첫 시작이었다. 쉐그린에서도 그는 그리 오래 있지 않았다. 강근식이 이끌고 있던 연주 그룹 동방의 빛에서 세컨드 기타리스트로 잠시 몸담았던 것이 그의 짧은 밴드 경력의 마지막이었다. 쉐그린에서 나온 것도 카피곡이 아닌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같은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던 그는 솔로로 독립해 포크 음악을 하면서도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이 갖고 있던 메시지나 음악의 진지함은 그대로 가져갔다.
1980년대를 1년 앞둔 시점에서 나온 조동진의 첫 앨범은 (정치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암혹했던 1970년대 중후반을 마감하고 1980년대의 르네상스를 예고하는 작품이었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는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대부가 됐으며 사람들에게 숨어있는 은자로 인식됐다.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포크 음악인들이 사회에 대한 비판과 현실에 대한 노래를 부를 때도 그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 자신만의 서정을 노래에 담고자 했다. 노래를 노래 자체로 바라보려 했고 예술로 승화시키려 애썼다. 노랫말 하나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들이 사람들의 가슴에 닿았다. 겨울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는 사모곡 '겨울비'와 '행복한 사람'이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첫 번째 앨범이었음에도 이미 조동진의 세계는 완성되어 있었다. 그가 추구하는 서정의 세계에는 자연을 통한 성찰과 삶에 대한 관조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4집(1990)에서부터는 좀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시대는 1990년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1990년대는 조동진과 동생 조동익이 이끄는 하나음악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시대이기도 했다. 그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후배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나음악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조동익, 이병우, 장필순, 낯선 사람들, 한동준, 윤영배 김광진, 박용준, 유희열 등 쟁쟁한 음악인들의 처음 시작에는 조동진이라는 커다란 존재가 있었다. 4집부터 조동익이 함께 하기 시작했다. 조동익은 베이스 기타 연주뿐 아니라 조동진과 함께 편곡을 맡으며 공동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훌륭하게 해냈다. 조동익과 작업을 함께 해오던 이병우(기타), 김현철(키보드), 김영석(드럼) 같은 연주자들이 새롭게 참여하여 조동진의 음악에 새 옷을 입혔지만 큰 동요 없이 나직하게 이어지는 조동진의 노래는 앨범을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관조적인 성격의 앨범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항해'의 큰 스케일은 이어질 다섯 번째 앨범의 성격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6년 만이었다. 2집 이후로 거의 5년 주기로 앨범을 발표했던 조동진은 1990년 네 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다시 긴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섯 해를 넘기고 나서야 여전히 낮고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5집(1996)을 발표했다. 조동진은 조동익에게 더 많은 곁을 내주었다. 이미 4집에서부터 조금씩 변화의 옷을 입어보던 조동진의 음악은 조동익, 함춘호(기타), 이병우, 박용준(키보드), 김영석 같은 후배들의 연주를 만나며 가장 진보적인 사운드의 앨범을 만들어냈다. 앨범의 첫 곡 '새벽안개'에서부터 그 변화는 바로 드러났다. 이는 명백한 프로그레시브 록이었다. 조동진이 젊은 시절 심취했던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지천명의 나이에 자신의 언어로 다시 풀어놓은 셈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영적인 기운은 조동진의 독자적인 세계였다. '멀고 먼 섬'의 아름다운 기타 연주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여백의 공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새로운 연주자들의 명징하고 공간감 넘치는 연주 위에서 조동진은 "가슴을 게워내"며 치열하게 노랫말을 쓰고 선율을 만들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같은 말도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언더그라운드는 헤비메탈과 펑크, 그리고 전위적인 음악인들이 쌓아놓은 그들만의 세계를 연상시켰다. 우선 인디를 떠올리게 되는 2000년대에는 인디음악의 다양화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 전반까진 사뭇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 언더그라운드가 어떠한지에 대하여 말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깊은 서정과 음악적 모양이 어떻게 합쳐져 하나의 노래가 되는가를 알려준 조동진이다. 그리고 여기에 조동진이 어떠한 음악인인가에 대하여 말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앨범이 있다. 10년이 넘도록 묵묵히 채워오다가 첫 번째 앨범에 담아낸 그의 서정은 세월의 바람에 조금도 빛이 바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삶과 세상을 관조하는 시선과 그윽한 명상이 느림과 비움을 거쳐 비로소 스며 나와 이 그릇을 채웠다. 당대의 히트 곡인 ‘행복한 사람’은 물론이고 명곡이라 칭하기도 죄송스러운 ‘겨울비’는 여전히 시리다. ‘작은 배’와 ‘다시 부르는 노래’ 역시 묵직한 울림을 품는다. 조동진의 포크는 성찰이었고 시적인 사유의 아름다움이었다. 맑은 차 앞에서 몸이 차분해지듯 이 노래들 곁에서 머리는 파동을 멈춘다. 단지 감성에만 호소하고 있지 않다. 조동진은 시인이 아니라 음악인이다. ‘바람 부는 길’과 ‘불꽃’을 덧칠한 소박한 관악 선율과 고즈넉한 음성은 최소한의 편성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노래에 은근히 힘을 보탠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이 색칠은 진지함과 우울함이 아니라 재미있고 순수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에서의 템포와 무드의 작은 미동, 귀엽기기까지 한 멜로디가 끼어드는 ‘흰눈이 하얗게’는 해맑은 미소를 번지게 한다. 만약 누군가 음악 교과서에 실을만한 대중음악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이 음반부터 집어들 것이다. 어떤 곡이 더 좋을지 하루 종일 고민해야겠지만. |
출처: 길 위에 흐르는 음악 원문보기 글쓴이: 호크아이(이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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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참 좋은 노래...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