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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종격투기 원문보기 글쓴이: 동방신기
도쿄에서 만난 K-1 파이터 추성훈 | |||||||
[스포츠2.0 2007-05-02 18:31] | |||||||
‘나는 한국사람도 아닌 일본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부초다.’ 재일동포 소설가 가네시로 카즈키가 2000년 발표한 자신의 첫 장편소설 〈GO〉에서 주인공 스기하라의 아버지를 통해 한 말은 그랬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재일동포 3세다. 작가는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연애소설 형식을 빌어 밝히고 있다. 재일동포 4세 유도선수였던 추성훈(32)은 2002년 일본 국적을 얻어 아키야마 요시히로라는 이름을 얻었고 법적으로 일본인이 됐다. 유도를 떠나 이종격투기 K-1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경기에 나설 때마다 태극기와 일장기가 함께 새겨진 도복을 입는다. 스포츠에서 국적과 피부색보다 주목받아야 할 것은 이마에 맺힌 땀과 투혼이다.
4월 14일 갑작스레 이종격투기 K-1 선수 추성훈의 취재 일정이 잡혔다. 추성훈을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와 인사를 나누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다소 막막한 감정이 들었다. 거울에 심장을 비춘듯 정직하게 말하면 추성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일단 사전 취재에 들어갔다. “추성훈은 불행한 한국인이다.” 한 선배 기자를 만났을 때 그는 30분이 넘도록 추성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주먹을 쥐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유도계가 추성훈에게 남겨놓은 아픔을 이야기할 때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이 아니었다. 일본 취재를 앞두고 추성훈이 ‘어떤 이종격투기 선수인가’를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대개가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부초’ 추성훈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추성훈에게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일부는 추성훈의 이름을 들으면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입에 머금은 사람처럼 떨떠름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차별은 무슨 차별입니까. 실력이 부족하니까 한국 유도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던 거죠. 그렇게 민족을 사랑한다는 사람이 일본에 귀화해 조국을 메친답니까?” 한 유도인은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유도 남자 81kg급 결승에서 안동진을 물리치고 1위 시상대에 올랐던 사람이 한국에서 ‘추성훈’으로 불리는 일본의 ‘아키야마 요시히로’였음을 상기하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기자가 바라던 대답은 어느 쪽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정작 기자가 듣고 싶었던 조언은 K-1 파이터로서의 추성훈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31일을 기점으로 뒤바뀌어버린 인생을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한 사내의 근황이었다. 결국 4월 16일 도쿄 하네다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준비한 자료집을 들추며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했다.
가장 기쁜 연말과 가장 슬픈 새해를 맞았던 사내
하네다공항에 도착했을 때 취재진을 가장 먼저 반긴 건 봄비였다. 참을성 있게 같은 양으로 내리는 봄비를 뚫고 취재진을 태운 승합차는 도쿄 시내로 향했다. 잠시 차창 밖의 도쿄를 감상하다가 다시 추성훈 자료집을 펼쳤다. ‘K-1 다이너마이트 2006’과 관련된 기사를 읽고 있을 무렵 전날 잠을 설친 까닭일까. 자료집을 정독하던 눈이 조금씩 감겼다. 그리고 잠시 후 자료집의 문자가 꿈틀거리다가 갑자기 환한 불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2006년 12월 31일 오사카 교세라 돔. ‘K-1 다이너마이트 2006’ 메인이벤트를 보기 위해 자리에 앉아있던 수만 명의 관중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한 선수의 입장에 집중했다.
한쪽 어깨에는 태극기, 다른 한쪽 어깨에는 일장기를 단 사내는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Time to say good bye)’가 장내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초조한 얼굴로 입장하고 있었다. 일부 관중이 그를 향해 “아키야마” “추성훈”을 연호했지만 그는 묵묵히 링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K-1 히어로스 라이트헤비급 초대 챔피언인 추성훈에게 이 경기는 격투기 인생이 걸린 중요한 일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일본 종합격투기의 신화 사쿠라바 가즈시(39). 추성훈은 K-1 데뷔 2년 만에 스타급 선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사쿠라바와 같은 거물급 선수와 승부를 벌이지 않았던 만큼 추성훈의 위치는 ‘수족관 안의 물고기’에 지나지 않았다. 추성훈이 사쿠라바를 반드시 꺾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쿠라바는 백전노장답게 추성훈과 눈을 마주치면서도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드디어 1회전 시작을 알리는 공이 올리고 두 선수는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탐색전에 들어갔다. 애초 예상은 사쿠라바가 탐색전을 펼치다 태클을 이용한 그라운드 기술로 추성훈을 제압한다는 것. 그러나 실제 상황은 달랐다. 오히려 사쿠라바가 초반부터 적극적인 타격으로 추성훈을 몰아세웠다. 숨 막히는 탐색과 기습적인 펀치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허점을 노리던 두 선수. 먼저 기회를 엿본 건 추성훈이었다. 추성훈이 사쿠라바의 얼굴을 향해 뻗은 왼손 주먹이 제대로 들어갔다. 주춤하는 사쿠라바를 따라가며 연속해 유효 주먹을 날리는 추성훈. 이윽고 사쿠라바가 링에 쓰러지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추성훈이 파운딩을 시도했다. 추성훈의 계속된 파운딩으로 사쿠라바가 혼미해지자 심판은 경기를 중지시켰다. 추성훈이 ‘큰 강의 물고기’가 되기까지 5분 37초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1라운드 추성훈의 TKO승.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관중들은 넋이 나갔고 추성훈의 팬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2006년의 마지막 날이었던 12월 31일 추성훈은 그가 그토록 꿈꾸던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연말을 가장 뜨겁고 행복하게 보낸 사내가 됐다.
그러나 뜨거운 물일수록 설탕은 빨리 녹게 마련이다. 추성훈이 새해를 가장 비극적으로 맞은 사내가 되기까지에는 고작 열흘이면 충분했다. K-1 주최사인 FEG(Fighting Entertainment Group)가 1월 11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성훈과 사쿠라바의 대전을 반칙으로 인한 무효 경기로 처리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사쿠라바 측이 추성훈이 몸에 스킨로션을 많이 발라 기술을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다며 강력히 항의한 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FEG는 추성훈이 고의적인 반칙 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경기를 무효 처리하고 대전료를 돌려받는 선에서 사태를 끝맺었다.
“자, 일어나십시오.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내일 추성훈 선수와의 인터뷰는 낮 12시로 예정돼 있으니 푹 주무시기 바랍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조금 전까지 보이던 영상은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차는 호텔 앞에 멈춰 있었다.
부드럽지만 강한 남자
4월 17일 나이키 저팬이 위치한 도쿄 시내의 한 빌딩. 추성훈과의 인터뷰가 예정된 장소였다. 현재 추성훈은 세계적인 스포츠브랜드 나이키의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전용 광고모델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K-1 히어로스 2006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후 이종격투기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나이키 모델로 발탁됐다. 추성훈이 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 축구의 호나우지뉴(FC 바르셀로나),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세계의 유명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 트레이닝하는 광고는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반대다. 2월초 첫 전파를 탔던 이 광고는 ‘스킨로션 사건’이후 추성훈에 악감정을 품고 있는 일본 격투기팬들의 저항과 비난으로 홍역을 치렀다.
지금은 해당 광고 대신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고 있는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출연한 나이키 광고가 방송되고 있다. 그러나 이날 같은 장소에서는 인터뷰 외에도 나이키 코리아가 추성훈을 모델로 광고촬영을 진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앞선 나이키 저팬의 사례를 모르는 게 아닐 텐데 어째서 나이키 코리아에서는 추성훈을 광고모델로 선택한 것일까. 여기서 나이키만의 뚝심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이키 저팬은 일본 격투기 팬들때문에 홍역을 치르기는 했지만 추성훈을 모델로 등장시킨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았다.
나이키 코리아도 같은 관점이었다. 나이키 코리아는 추성훈을 모델로 트레이닝복인 ‘나이키 프로’의 광고를 찍을 계획이었다. 자신들의 제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델이라면,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를 의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공평한 관점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전제로 깔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추성훈은 정확히 낮12시에 맞춰 사무실에 들어섰다. 매니저와 수행원을 대동한 채 간편한 반팔 차림으로 나타난 추성훈은 매우 정중한 태도로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주고 받았다. 기자도 그와 악수를 나눴는데 뜨거운 암석에 손을 댄 기분이었다. 그만큼 손은 단단했고 힘이 느껴졌다. 게다가 구리빛 피부와 조각 같은 몸 때문인지 그는 멀리서 봤을 때보다 더 강한 인상이었다.
추성훈에게 먼저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일본에서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인 기요하라 카츠히로(오릭스 버팔로스)와 어떤 사이인지 물었다. 두 사람은 같은 오사카 출신이다. 추성훈은 “잘 아는 아나운서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기요하라씨도 그를 알고 있었다. 하루는 기요하라씨가 그 아나운서에게 나를 소개해 달라고 요청한 모양이더라”며 “그렇게 처음 인연을 맺은 후 지금까지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기요하라와의 인연은 추성훈이 평소 응원하던 고향팀 한신 타이거즈와 등을 돌리는데도 일조를 했다. “기요하라씨가 가는 팀을 응원하다보니까 이제는 한신 타이거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추성훈이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 인터뷰 전에 추성훈 측에서 양해를 구한 내용이 있었다. 여자친구 문제와 ‘스킨로션 사건’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다소 민감한 내용은 가능하면 질문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기자도 이번 취재는 추성훈의 사생활보다는 경기력과 그의 현재와 향후 계획에 집중했던 터라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추성훈에게 꼭 하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당신같은 격투기 선수들이 상대 선수를 가격했을 때 손에서 느끼는 감정을 알고 싶다”가 그것이었다. 추성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가 있다”고 대답했다.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라, 두 상황이 어떻게 다를까. “유도와 이종격투기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유도는 사람을 때리지 않지만 이종격투기는 내가 상대를 때리지 않으면 지게 돼 있는 스포츠다. 따라서 생각했던 데로 상대방에게 유효펀치를 날렸을 때는 기분이 좋지만 이기기 위해 때려야만 할 때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추성훈의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상대에게 맞을 때의 감정은 어떤가. 추성훈은 환하게 웃으며 “정신없이 아프다”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조금씩 대화가 진행될수록 추성훈은 근육질의 액션스타라기 보다는 빗자루 하나로 세상을 지배하는 해리 포터처럼 내면에 힘을 감춘 부드러운 청년으로 비춰졌다. 추성훈이 밝힌 유일한 취미는 서핑이다. 얼굴이 늘 까맣게 타 있는 것도 서핑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추성훈에게 유도계 은퇴 후 이종격투기로 전향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없었는지 물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추성훈의 대답은 그랬다. 덧붙여 “만약 은퇴 후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평범한 회사원이 됐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그에게 ‘평범한 회사원’은 수프를 포크로 떠먹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다. 과장되게 표현하면 재일동포들에게는 ‘꿈’과 같다. 사실 기자는 ‘부초’로서의 추성훈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는 한국계지만 일본에 생활기반을 둔 일본인이다. 일부 사람들은 말한다. ‘어째서 그는 한국의 추성훈도, 일본의 아키야마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신세냐’고. 그러나 오히려 이렇게 자문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째서 한국과 일본은 그에게 추성훈과 아키야마라는 이름을 강요하는 것이냐’고. ‘혹시나 한국은 일본을, 일본은 한국을 향해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라는 가장 손에 쥐기 쉬운 돌멩이를 들고 상대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냐’고.
미국에는 인종차별을 빗대 “색깔별로 분리해야 하는 것은 세탁물뿐”이라는 말이 있다. 스포츠에서의 민족과 국적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의 이마에서 떨어지는건 피나 지문이 아니라 땀이다.” 추성훈의 세계관은 ‘자유’다. 추성훈의 지인은 “그를 진정 자유롭게 하는 방법은 그를 가만히 놔두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그는 누구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무엇이 옳은지 지도가 필요한 계몽의 대상도 아니다"고 힘줘 말했다. 잠시 후 나이키 코리아가 진행하는 광고촬영이 시작됐다. 추성훈은 링 위에 올라 투혼을 발휘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했다. 이곳이 링 위였으면 그는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근성과 두려움 사이
추성훈은 2004년 7월 유도계에서 은퇴하고 프로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 대부분의 이종격투기 선수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데뷔전을 갖는다. 그러나 추성훈은 그해 12월 31일 ‘K-1프리미엄 2004 다이나마이트’에서 프랑수와 보타(프랑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벌였다. 지나치게 서두른 데뷔전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결과는 1라운드 1분 45초만에 암바로 보타를 제압한 추성훈의 승리였다.
추성훈의 장점은 유도선수 출신임에도 타격기술에 능하다는 점이다. 일본 격투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도영웅’ 요시다 히데히코(38)보다 타격기술만은 추성훈이 앞선다는 평도 있다. 추성훈에게 과연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그는 잠시 고민하다 수줍게 “조금”이라고 답했다. 물론 “경험과 다른 기술에서는 요시다 선배가 앞선다”는 전제를 빼놓지 않았다. 격투전문가 김영훈씨는 “격투선수는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타격기술에 능해질 수 있다”며 “추성훈은 어린 시절부터 스트리트 파이터로 성장한 까닭인지 매우 공격적이며 대범하다”고 평가했다. 타격기술이 어렸을 때부터 뛰어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김씨는 “유도선수들의 전형적인 단점인 턱이 열리는 습관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도는 도복의 깃을 잡는 기술로 승부가 가려지는 종목이기 때문에 상대가 치고 들어오면 몸을 낮추는 동작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때 자연스럽게 턱이 열려 상대의 타격기술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이는 요시다와 김민수 같이 유도출신 격투기 선수들의 한결같은 단점이다. 도쿄에서 만난 최홍만의 에이전트 박유현씨는 “추성훈의 기술이나 근성은 반드시 인정해줘야 한다”며 “유도에서 이종격투기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FEG의 공인 에이전트이기도 한 박씨는 “(최)홍만이가 추성훈의 근성과 노력을 닮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빈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박씨도 따끔한 조언을 빼놓지 않았다. “추성훈은 정상에 오르는 법은 배웠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법에는 아직 미숙하다”고 말했다. ‘스킨로션 사건’으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추성훈이 아래로 내려가는 법을 모른다니. 그보다 더 잔인하게 추락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 또 있을까.
박씨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추성훈이 지난해 10월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 됐을때 9개 일본주간지에 표지인물로 동시에 등장했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광고계에서도 추성훈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러다보니까 언제부터인가 패배에 대한 겁을 집어먹기 시작한 것 같다”며 “언제부터인가 추성훈의 눈빛에서 ‘절대 지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읽을 수 있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추성훈을 가장 잘 아는 이종격투기 선수 가운데 김민수(33)가 있다. 과거 추성훈이 국내에서 유도선수로 활동할 때부터 형제처럼 지냈던 김민수는 추성훈의 가장 큰 장점으로 근성과 욕심을 꼽았다. “유도할 때 보면 그만큼 열과 성의를 다해 집중력을 발휘하는 선수가 없었다”고 회상한 김민수는 “자신에 대한 욕심이 많은 선수다. 옷 하나를 입어도 정성을 들여 입을 정도로 스스로를 위하고 관리할 줄 아는 선수”라고 평했다.
K-1 재기를 꿈꾸며
추성훈은 K-1 복귀를 위해 4월 12일부터 개인훈련에 들어간 상태다. 사쿠라바와 일전에서 입은 오른팔 골절상이 어느 정도 나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추성훈의 매니저 코시오 유카리씨는 “아직 오른팔이 완쾌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을 사용하지 않는 훈련만 진행하고 있다”며 추성훈의 근래 일과를 알려줬다. 코시오씨에 따르면 추성훈은 매일같이 아침에는 트레이닝, 점심에는 휴식을 하고 저녁에는 이종격투기 도장에서 각종 기술을 연마한다. 그러나 추성훈의 손을 봤을 때 그가 과연 손을 사용하지 않는 훈련을 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왼손 주먹 마디마디의 피부가 모두 까진 채로 피멍이 맺혀 있었다. 추성훈에게 이 상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살짝 웃다가 주먹으로 펀치를 날리는 시늉을 하며 또렷한 한국말로 이렇게 대답했다. “막 치는 훈련을 하니까요. 그러니까 이렇게 됐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정체될 수도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아쉬움을 한숨 대신 주먹으로 토해낸 것인지 모른다. 그때 문득 추성훈이 K-1을 떠나 프라이드로 이적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생각났다. 명확한 입장을 듣고 싶었다. 추성훈은 질문에 단호한 태도로 대답했다. “절대 그런 일은 없다.” 추성훈은 이어 “K-1 복귀를 인내심있게 기다릴 것”이라며 “앞으로 미르코 크로캅같은 풍부한 가능성을 가진 선수가 되고 싶다”고 자신의 희망을 밝혔다.
아직 추성훈의 복귀시기는 결정되지 않았다. 여러가지 설이 있긴 하다. 조만간 복귀가 공식결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K-1은 격투기 스타를 키우는 거대한 꽃밭과 같은 곳이고 추성훈은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꽃이다. 추성훈같은 흥행카드가 링 밖에 있는 건 FEG로서도 대단한 손해다. 4월 28일 열릴 예정인 K-1 미국 하와이 대회에 추성훈이 불참한 건 이종격투기계에서는 재앙으로 통한다. FEG의 한 관계자는 “K-1은 특정선수에게 휘둘릴 만큼 약한 곳이 아니다”며 “얼마간의 돈을 벌기위해 K-1의 자존심을 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추성훈은 2004년 12월 K-1 데뷔 전 이후 앞만 보고 달려왔다. 1월 1일 연습을 시작해 12월 31일에는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긴 호흡이 필요한 시기다. 복귀가 허락되는 날. 긴 호흡은 강한 걸음으로 진화할 것이다.
도쿄=박동희 기자, 서울=류한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