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 연필
연필 사달라면 어머니는 이전에 쓰던 연필을 꼭 가져오라 시켰다.
짧아진 그 연필을 새끼손가락 틈에 끼워 그 길이를 견주어
손가락보다 짧아야만 사주었던 기억이 난다.
필통에는 몽당연필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세상 살면서 물심으로 욕심이 나고
샘이 날 때마다 몽당연필을 견주던
어머니의 새끼손가락이 생각나곤 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유품전에서
몽당연필이 가득한 손자 필통을 보았다.
새끼손가락 길이보다 짧았던 그 몽당연필들을 보고
여사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서도 손가락과 견주는
근검 습속이 있었던가 물어보고 싶었었다.
한 중견 시인이 미당 서정주를 집으로 찾아가
배고파서 시 못 쓰겠다고 한 일이 있다.
이에 대한 미당의 대꾸가 잊히지 않는다.
“이 사람아, 배부른 사람 시 잘 쓴다는 말
동서고금에 들어본 일이 있나.
몽당연필에 침을 칠해 꾸욱꾸욱 눌러써야
좋은 시가 나오는 거여” 하던ㅡ.
몽당연필은 넉넉해서 파생되는
미세한 어느 흠집도 곁들일 여유를 주지 않는,
그래서 꼭 있을 것만이 있는 최소한의 결집이다.
‘연필깍지’라는 북유럽지방의 동화가 생각난다.
눈먼 소녀가 병석에서 죽어 가는데
머리맡을 더듬어 손에 쥐인 것이 몽당연필이었다.
눈먼 소녀는 죽음에 쫓기어 그 몽당연필로 더디게 글씨를 써 나갔다.
‘A-V-E M-A-’까지 쓰고 연필이 너무 짧아 쓰이질 않았다.
이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연필깍지를 소녀의 몽당연필에 끼워 주었고,
소녀는 ‘-R-I-A’까지 썼고 몽당연필은 생명이 빠져나간 손에서 굴러떨어졌다.
이 세상에서 돌아보지 않은 가장 작고 하찮지만
세상사람이 잊고 있는 가장 크고 소중한 뭣을 몽당연필이 대변했고,
성모 마리아가 촛불을 들고 그 소중한 것에 희미하게 비춰 주었다.
근간된 마리아 테레사의 수기에서 그녀는
하느님 손아귀 속에 든 하나의 몽당연필이라고 자기 정의를 했다.
육체는 건포도처럼 깡말라 쓸모없어졌지만
애오라지 남은 심령만은 신이 들고
침을 칠해 눌러쓰면 써지는 그 몽당연필,
지금 깍지를 끼인 채 신의 머리맡에 놓여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