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봄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지난 며칠 사이 세상은 온통 꽃밭입니다. 언제 저런 준비를 했는지 내가 먼저라는 듯 이곳저곳 꽃들이 앞다퉈 피고 집니다. 그냥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세상이 금세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예로부터 이 아름다운 꽃을 부처님 전에 공양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요?
불가에서는 일찍이 ‘꽃’을 부처님께 올리는 6가지 공양물 중 으뜸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살의 수행을 상징하는 만행화(萬行花)로 여겨 존귀하게 여겨왔던 것이지요. 따라서 불가에서 꽃을 공양하는 것은 만 가지 선행을 통해 이 국토에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실현하겠다는 약속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꽃 공양의 의미를 떠나 생각해보더라도 꽃을 올린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신앙의 대상인 법신불께 최고의 찬사와 존경을 보낸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향기로운 것이니 그 꽃을 올리는 행위야말로 법신불께 바치는 최고의 공경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 꽃을 많이 공양하면 어떠한 공덕이 있는 것일까요? 불설 삼세인과경에 따르면 부처님께 맑고 신선한 꽃을 많이 올리면 내생에 수려한 외모를 타고 나게 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내생에 정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려면 수많은 꽃을 공양하는 것도 좋겠지만 먼저 내 마음을 아름답게 가꿔 피워 올린 심화(心花)를 공양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지나친 장엄은 도리어 법신불께누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도한 장엄은 자칫 법신불의 위를 무너뜨릴 수 있고 귀한 생명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되도록 절화(折花)보다는 생화(生花)를 공양하는 것이 더 좋고, 때에 따라 조화(造花)를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편집자 주 | 그동안 연재해 온 ‘정도연 교무의 7분 명상’은 지난 100회를 끝으로 마쳤습니다. 그동안 연재를 해 주신 정도연 교무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번 호부터는 편집부가 엮는 ‘현문우답’으로 여러분을 새롭게 찾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