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이 내겐 천은天恩이었어요
-故 양재평 장로 추모
황영준
애양원교회 양재평 장로가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42년 신안군 지도출생, 열다섯 소년으로 여수 애양원에 들어와 반백년도 더 되는 65년 세월을 남해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전도받아 겸손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으니 그의 말대로 ‘한센병이 내게는 천형(天刑)이 아니라 영생(永生)을 누리는 천은(天恩) 즉,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라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이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병 진단을 받았다. 꿈 많은 소년이 한 순간에 날벼락이 맞았다. 아버지는 의사를 만나보고, 학교에는 가지 않겠으니 나병이라는 사실만은 숨겨줄 수 없겠느냐고 통사정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꿈 많던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 지도로 내려왔다. 부모와 누이들이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웠다. 죄인 아닌 죄인, 가까이할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한 동네 살며 다정했던 이웃들이 어느 날부터 샘물을 같이 먹을 수 없다 했고, 한 곳에서 빨래하는 것도 피하며 꺼려했다.
천형의 섬이라는 소록도에 안 들어가고, 1942년 12월 26일에 애양원에 들어갔다.
원생 모두가 기독교 신자여서 자연스럽게 그들 따라 예배당에 나갔다. 매일 새벽 기도, 성경 공부, 주일 낮 예배, 밤 예배로 이어지는 모임들이 신앙생활이며 일과이고 공동체 생활이었다. 그 시절 애양원은 의료와 치유가 있고 섬김과 나눔이 있는 ‘예수 사랑 마을’이었고 세상에서 못 보았던 ‘별천지’였다.
미국인 선교사들 설립한 애양원이 저들을 품어주었다.
집 주고 밥과 옷을 주고 약도 주었다. 양재평이 예수 믿고 훗날 깨달으니 모든 것이 ‘예수 사랑’이었다.
애양원의 이런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걷고 또 걸어서 불편한 몸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언제든지 들어갈 수는 없었다. 철조망 울타리가 가로막았다.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곳이라서 인원이 한정되었다. 입원 순서를 기다리며 그곳을 떠나지 않고 주저앉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애양원 출입문이 ‘천국 문’ 같이 보였다.
‘사랑의 원자탄’이라 부르게 된 손양원 목사님께 세례 받은 양재평은 장로가 되었고, 평생을 ‘사랑과 섬김’으로 교회 중심으로 살았다.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한센병 후유증으로 장애가 겹치면서 1951년에 시력을 잃었다.
1954년부터 ‘성서암송반’을 모았다. 장애기 있지도 남겨진 청각과 기억력으로 성경을 암송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지문도 감각도 없어 점자도 못 읽지만 봉사자의 낭독 소리를 듣고 신약성경 전체를 암송하는 것은 놀라운 자기 성취였다. 40여명이 모였고, 한 주간에 이틀씩 모였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살았다.
양 장로가 병원에서 수요예배를 인도할 때면 손에 성경책이나 찬송가가 없어도 막히지 않고 성경이야기가 풀려나왔다.
고향 지도 사람인 한국대학생선교회 김준곤 목사의 초청으로 전국 CCC 여름수련회 강사로 초청되어 암송과 간증을 보이기도 하였다.
양 장로는 방문객들을 맞이하여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의 삼부자(손양원 동인 동신)의 순교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곁들여 들려주는 애양원 사람들의 믿음 이야기와 자신의 신앙생활 간증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우리는 이중 삼중의 장애를 입었지만 오직 예수 믿음 붙들고 이렇게 열심히 삽니다. 당신들은 건강하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하면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며 위로하고 격려했다. 나는 그의 휠체어를 밀면서 ‘장로님, 건강해야 합니다. 찾아오는 성도들에게 장로님의 믿음의 이야기를 늘 들려주어야 합니다.’ 하며 위로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때는 4월(2007년)이었고 중병을 앓고(장암)을 앓고 있었다. 암송반에 나오지 못해 평안요양소 장로님 방으로 찾아가 기도를 올렸다. 내 기도에 이어서 드리는 그의 기도는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진실하고 간절했다.
‘부족한 종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내 생명 남은 날 동안 주님 만날 준비 잘하게 하시고, 7천만 민족을 사랑하사 북한에 무너진 교회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는 두 가지 내용이었다. 그 기도를 마지막으로 2007년 10월 15일 별세했다.
세상 떠난 지 이미 여러 해이지만 생각나고 보고 싶다.
평안한 얼굴을 다시 뵙고 함께 찬송하고 은혜스러운 간증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