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578년, 전국에 위용을 떨치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긴장할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전국최강 "에치고의 용"이라 불리는 명장 우에스기 겐신이 움직였다는 급보였다. 겐신은 그 옛날 1561년 제4차 가와나카지마의 결전에서 "가이의 맹호" 다케다 신겐과 막상막하의 자웅을 겨루었던 인물로 군신 "비사문"이라는 별칭까지 지닌 천하에 그 적수를 찾아볼수 없는 명장중의 명장이었다. 오다가문은 초긴장상태, 이에 노부나가는 가내 제일의 맹장 시바타 가쓰이에를 총대장으로 하시바 히데요시, 마에다 도시이에, 삿사 나리마사, 니와 나가히데, 이케다 쓰네오키(훗날의 뉴도 쇼뉴)등 오다가문의 첫손을 꼽는 명장들만을 엄선하여 이 위대한 강적을 맞아싸우게 했다. 이미 에치젠을 점령하고 있었던 오다군과 에치고에서 출발한 우에스기군. 양군의 승패는 두 지역사이의 엣츄를 점령하는 것이 그 승패의 관건이라 할 수 있었다. 오다는 먼저 엣츄 나나오성의 하타케야마가문과 연결하여 우에스기를 저지할 생각이었지만 겐신은 이미 엣츄로 진공하여 나나오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오다군의 총대장 시바타는 군을 독촉하여 엣츄로 진공했지만 이미 나나오성은 우에스기에게 함락된 후였다. 그리하여 시바타 휘하의 오다군은 테도리가와를 뒤로한채 배수의 진을 칠수 밖에 없었다. 포진법은 3년전, 나가시노에서 강병 다케다의 기마대를 분쇄했던 철포 삼단의 배치, 이때 오다군 총병력은 약 4만 8천, 우에스기의 총병력은 3만 2천, 병력면에선 오다군이 수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겐신은 가쓰요리가 취했던 돌격전술을 사용하지 않고 테도리가와 주위의 여러 요충지가되는 성들을 공략(성의 이름들은 자세히 모릅니다.... 아시는 분은 리플을...)하여 오다군을 완전포위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오다군내에서도 의견충돌이 있어 하시바 히데요시는 단독을 군단을 이탈하여 수도로 돌아갔다. 또한 수도에 있는 오다 노부나가마저 마쓰나가 히사히데의 움직임을 수상히 여겼기에 함부로 지원을 나설수가 없었다. 마침내 시바타는 교전없이 퇴각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퇴로를 막고 있던 테도리가와가 범람하는 바람에 시바타군은 발이 묶이게 되었고 추격한 우에스기군에게 군대의 대부분이 섬멸되는 대패를 맛보았다. 다행히 시바타등 이름있는 장수들은 목숨을 건져 달아날 수 있었지만 병사들은 대부분이 죽임을 당했다. 이 대승리에서 우에스기는 오다를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되었고 이 전투를 묘사한 동요에서도 "기는 오다, 날으는 우에스기"라는 구절이 있는것으로보아 당시 오다군의 패배가 얼마나 침통했는지 알 수 있다. 겐신은 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오랜만에 성에서 술을 마셨지만 뒷간에 가려는 도중 계단에서 구르는바람에 뇌졸중에 걸려 후계자마저 지명하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다. 이때문에 오다군은 우에스기의 발톱을 피할수 있었고 오히려 군단장 시바타를 시켜 엣츄,노토까지 진출하고 우에스기가문에 대해 공세적 입장을 취할 수 있게되었다. 그리하여 노부나가사후 히데요시가 오다가의 대권을 쥐자 우에스기의 당주 가게카츠(겐신의 조카이며 양자)는 히데요시에게 신종하여 도요토미가 5대로의 한명으로 중용되었다.
테도리가와의 전투는 어찌보면 미카타가하라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전국시대 최강이라 불리던 명장 우에스기 겐신의 마지막 전투이자 또한 그의 강력함을 보여준 전투. 약간 다르다면은 자기보다 많은 병력을 거느린 적을 대파한 통쾌한 전투라고나 할까? 이 전투에서는 전략, 전술적으로 겐신이 노부나가에 대해 승리를 했다고 볼 수 있다.(단, 겐신에 한해서...) 먼저 겐신은 노부나가 휘하의 효웅 마쓰나가 히사히데와 밀약을 맺고 노부나가가 출전하면 뒤를 치겠다는 협상을 하였고 또한 전략적 요충지인 나나오성을 오다보다 한발 먼저 점령함으로써 전술적으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또한 전술적으로는 자기보다 많은 수를 보유하고 자기부대의 특성을 노린 적의 포진법(우에스기의 주력은 다케다와마찬가지로 기마대임, 겐신은 기병전술을 상당히 즐겼다함)을 포위책으로 완전 무효화 시킴으로써 적의 퇴각을 유도, 퇴로에 강이 가로막은 적의 지형적 불리함까지 이용해 적은 피해로 많은 적군을 살상할 수 있었던것이다. 게다가 오다군이 용병제도로인해 훈련과 충성도가 의심스러운 잡병들인 반면(오와리, 미노의 군사제외) 우에스기군은 다케다군과 쌍벽을 이루는 충성심과 용맹함 그리고 가공할만한 기마대를 보유하고 있었기때문에 이러한 병사들의 질적 우수함도 숫적 열세를 커버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겐신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내부에서는 후계자 다툼이 일어났고 외적으로는 손을 잡았던 마쓰나가가 토벌되는 한편, 오다군의 침임도 받아 대국적인 전략에서는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정말로 예상치 못한 것으로 겐신의 급사는 신겐의 죽음과 같이 천하무쌍의 명장이 꿈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각인되어 사람들에게 많은 아쉬움과 동정을 자아내게 한다.
첫댓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