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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개봉 & 2017 재개봉 / 124분>
=== 프로덕션 노트 ===
감독 : 전인환
출연 : 노무현 & 백무현 & 김원명 & 김하연 & 백승영 & 조덕희 & 박영희 & 장철영 & 김희로
2000년 부산 그리고 2016년 여수
다른 시대, 같은 꿈을 향한 노무현과 백무현의 도전
미처 말하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최종판으로 만난다
김원명 작가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현상에 고민하던 중,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동지인 노무현과의 만남을 떠올린다.
어느덧 그가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지 일곱 번째 오월을 맞아 원명은 무현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2000년 부산 총선에 출마한 노무현은 지역주의 해소와 권위주의 타파에 열정을 쏟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고
2016년 여수 총선에 출마한 백무현은 다른 당의 유력후보에 맞서 최선을 다하지만 또 다른 지역주의 벽에 부딪히는데…더 나은 세상을 향한 그들의 치열했던 도전을 미공개 영상으로 만난다.
=== 제작 노트 ===
ABOUT MOVIE _ 1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 미공개 영상을 추가한 최종판
노무현 대통령 탄생 71주기에 맞춰 개봉
8월 30일, 미처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공개한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 파이널 컷>은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최종판으로 2000년 부산 노무현 후보와 2016년 여수 백무현 후보의 선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향한 그들의 도전을 그린 휴먼 다큐멘터리이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탄핵 전 박근혜 정부 시절 기획 제작되었고 작년 개봉 당시 엄혹한 시기적 상황과 러닝타임 등으로 미처 담지 못한 미공개 영상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공개 영상을 추가한 최종판 <무현, 두 도시 이야기 : 파이널 컷>이 제작되어 관객들과 만난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 파이널 컷>은 2000년 총선 부산 북강서 을에 출마한 노무현과 2016년 총선 여수 을에 출마한 백무현의 이야기가 더 추가되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그들의 노력이 더욱 면밀히 보여질 것이다. 또한 2000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지사, 그리고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시민들의 촛불집회에 대한 이야기도 최종판에 추가되어 영화에 현재성을 더해 줄 것이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노무현의 평범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들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우러져 ‘노무현’이라는 존재가 주는 특별한 가치를 되돌아볼 기회가 될 예정이며 노무현 대통령 탄생 71주기 기념, 탄생일인 9월 1일에 맞추어 8월 30일 개봉한다.
ABOUT MOVIE _ 2
시민들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기록
3137명의 후원인, 1억 2,300만원의 모금액
2016년 한국 다큐멘터리 흥행 1위! 관객수 19만 3,686명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힘을 보태어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개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진행했던 ‘펀딩21’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향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초 목표했던 모금액 1억원을 123% 초과하는 1억 2,300만원의 금액이 모이며 펀딩21에서 진행했던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사상 최다 금액을 달성한 것. 3,137명의 시민들이 후원자로 참여해 펀딩 기간이 마감되기 이전에 이미 목표액을 초과해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이는 앞서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제작비 모금으로 화제가 됐던 <26년><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귀향> 등의 작품들을 연상케 하며 이러한 성원에 힘입어 3,137명의 후원인들을 비롯해 전?현직 국회의원 및 문화계 인사가 포함된 배급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배급위원회 구성원들은 개봉 및 상영관 확보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관객들의 관람 요청이 쇄도하면서 상영관은 개봉 주 단 30개에서 약 100여개로 확대되었다. 전인환 감독은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으로 전국 곳곳의GV를 다니며 관객들과 만나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19만명 이상 관객을 모으며 2016년 한국 다큐멘터리 흥행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480만 명), <워낭소리>(293만 명), <노무현입니다>(185만 명), <울지마, 톤즈>(44만 명)에 이어 역대 한국 다큐멘터리 흥행 5위에 올랐다. (2017.8.7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통계 기준)
이렇듯 관객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지지로 기적 같은 기록을 세운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미공개 영상을 더한 최종판 <무현, 두 도시 이야기 : 파이널컷>으로 더 생생하고 큰 감동을 전달할 예정이다.
PRODUCTION NOTE _ 1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고민과 결심
아쉬웠던 부분들, 미공개 영상 추가로 마침내 최종판 완성
<무현, 두 도시 이야기 : 파이널 컷>은 지난 16년 <무현, 두 도시 이야기> 개봉 당시 정치적인 상황과 러닝타임 그리고 개봉시기에 대한 압박으로 많은 자료 영상을 편집해야 했던 감독의 아쉬움에서 시작되었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만들 때 영화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던 제작진은 한국사회에 오래도록 뿌리내린 지역감정을 타파하고자 열정을 쏟았던 노무현의 행적을 통해 ‘영남’과 ‘호남’이라는 두 지역을 연결하는 모티브를 얻었다. 기획 단계부터 예상했던 대로 제작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평범한 우리가 기억하는 노무현’이라는 단순 명료한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에 장르적인 흥미 요소와 생동감을 살려 내기 위해 출연진들의 인터뷰 대신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고안하게 되었고, 누구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로서 포장마차와 팟캐스트 녹음실 등을 배경으로 40시간이 넘는 분량을 촬영했다. 여기에 특정한 시기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무현의 부산 북강서 을 출마 당시 영상을 집중적으로 담아내었고 총 300시간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대대적으로 검토했다.
순탄치만은 않았던 제작과정을 마친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는 수많은 시민들의 힘과 지지를 바탕으로 작년 10월 기적 같은 개봉과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시기적인 상황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았던 전인환 감독은 수많은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더 보강하여 다시 개봉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당시 담지 못했던 미공개 영상을 담아 최종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더라도 기획의도가 왜곡되거나 편견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감독은 최종판을 통해 관객들의 아쉬움을 해소하고 영화에 현재성을 더해주어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미공개 영상이 추가된 이번 ‘파이널 컷’에서는 백무현 후보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2000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지사 등 노무현과 함께 했고 당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 그리고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졌던 시민들의 촛불집회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탄생한 <무현, 두 도시 이야기 : 파이널 컷>은 오리지널편을 관람한 이들에게도 추가된 미공개 영상으로 다시 만나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PRODUCTION NOTE _ 2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무현, 두 도시 이야기 : 파이널 컷>을 함께 만들다.
김원명
김희로의 아들. “아버지가 장준하, 백기완과 함께 유신헌법반대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어. 집 앞에는 늘 검은색 지프가 감시하고 있었지. 그때 나는 국민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유신의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다녔어. ‘시월의 찬란한 유신의 새 아침이다. 조국의 영광을 길이 빛내자 길이길이 빛내자~’”
조덕희
시각예술가. “왜 호남사람, 호남 사람이라고 하지? 심지어 친구들조차 은연중에 갖고 있는 불편한 시선과 말투. 난 그런 게 싫어. 너희들은 호남을 몰라. 아니, 알 수가 없어.”
김하연
사진가, 신문지국장. 2대째 한겨레 신문 지국을 운영 중이다. 그의 신문 배달은 창간 때부터 지켜온 아버지의 신념이다.
박영희
배우, 독립예술가. “가끔 소년교도소로 연극을 가르치러 갑니다. 소년원이 아니고 교도소로요. 아이들이 거칠 것 같죠? 편견이에요.”
백승영
백무현의 딸. “내 나이 스물 여섯, 그때부터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됐어요. 아버지를 원망했어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옳다고 믿어요.”
장철영
사진작가. ‘사람 노무현’을 사랑한 사진작가. 2003년 11월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기간까지 4년여 동안 대통령의 일상을 빠짐없이 사진에 담은 인물.
김희로
시인. “나는 그 곳에 자주 안 가… 이미 부활해서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데… 그는 바로 우리란다.”
백무현
만화가, 여수 을 후보. 시사 만평가 백무현은 어느 날 신문사를 그만두고 선거에 뛰어든다. 그의 무모한 도전은 이름만큼이나 노무현의 그것과 흡사하다. 운명처럼.
그리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시민들 …
노무현(1946.9.1~2009.5.23) 대통령 약력
1975년 4월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1977년 ~ 1978년 대전지방법원 판사, 변호사
1978년 ~ 1987년 법무법인 부산 인권변호사
1988년 ~ 1991년 제13대 국회의원
1993년 민주당 최고위원
1996년 ~ 1999년 제15대 국회의원
2000년 8월 ~ 2001년 3월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
2003년 2월 ~ 2008년 2월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2009년 5월 23일 서거
네 번의 도전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노무현은 부림사건 등을 거치며 시국 사건과 노동 관련 사건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1985년에는 ‘노동법률상담소’를 차리기도 했으며, 1987년에는 6월 민주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1990년에는 3당 합당에 반대하여 통일민주당 잔류를 선언하며 민주당 창당의 주역이 되었다. 14대 총선 이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지역 발전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16대 총선에서 부산 지역에 다시 도전했으나 패배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가 결성되었다.
"우리 함께 꿈을 현실로 만들어 봅시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불신과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개혁의 시대, 통합의 시대로 갑시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물려줍시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중)
2000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된 그는 낮은 자세의 리더십으로 공직사회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았고, 2002년에는 마침내 국민참여경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16대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기도 했으며, 재임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원성을 많이 듣기도 하여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나, 사후 가장 인간적이고 서민적인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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