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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빌립보서 4장1~7절
제목 : 행복한 공동체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구원 받기위해서,
어떤 사람은 천당 가기위해서,
어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십자가 사랑의 언어를 끝없이 배우고 행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가라는 곳으로 가기위해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 중심으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구원을 얻은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서정에 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구원의 서정은 9가지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①부르심(소명) ②거듭남(중생) ③회개 ④신앙 ⑤칭의 ⑥양자(입양) ⑦성화 ⑧견인 ⑨영화
이 단계들 사이에 시간적인 경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것들은 즉시, 실제로 동시에 일어납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계속 나를 성화시켜 예수를 닮아가는 성화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바르게하여 나중에 주님 앞에 설 때에 상 받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빌립보서 3: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행복한 공동체’ 가 이루어 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길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은 행복한 만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인생을 불행하게 살았다는 것은 불행한 만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만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면 오늘 우리의 삶은 어제의 만남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에 따라 오늘의 나의 삶이 결정되고,
내일의 삶은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남에 있어 신중해야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외지교회 교인이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공동체가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만남이 결과적으로 내 인생을 바꾼 획기적인 모임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이 공동체를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옆 사람과 인사를 하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당신은 내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유럽을 전도 할 때 비단장수 루디아 자매를 만났으며,
그녀의 가정을 중심으로 빌립보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자매들이 중심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에 분열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감옥에서 자신에게 헌금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빌립보 교회의 분열에 대하여 한마음으로 연합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소 3장 17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고 말씀 합니다.
여기서 함께가 중요합니다.
함께 나를 본받으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4:16절, 11:1절에서도 “나를 본받으라”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러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함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행복한 공동체를 위해 권면합니다.
본문은 행복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첫째는, 행복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한 형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형제들아’라고 부릅니다. “형제들”이라고 부른 말씀이 신약성경에서만 157번이 나옵니다.(빌립보에서는 7번)
우리는 같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12:50절, 막3:3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 이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맺어진 형제 관계라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제가 2년전에 두란노 본부에서 실시하는 목회자 아버지학교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갔더니 모든 호칭을 형제자매로 통일 시키고 위반 시는 벌금을 물게 하였습니다. 분위가 좋았습니다. 우리는 한 형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함께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까지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입니다.
사도바울은 형제 관계의 특징을 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안에 서라”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 간의 관계를 한마디로 “형제자매” 의 관계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형제 관계의 특징을 네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①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웁니다.
따라서 자녀들은 부모를 닮아 갑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도 사랑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사랑하시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셨으니 형제를 용서하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오래 참아 주셨으니 서로를 오래 참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서로를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어떻게 대했느냐를 가지고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평가하십니다.
우리가 이처럼 예수님 마음으로,
예수님을 대하듯이 형제를 대한다면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1서3장 10절 말씀에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요한1서 3장 14절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요일4장7절 상)
Dear friends(Beloved) let us love one another,
직장에서 있었던 예화#1
아주 문제가 많은 직장에 발령을 받아 갔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투서가 가장 많은 직장이었습니다.
제가 그 곳에 발령 받아 제일 먼저 한 것이 서로 사랑하자는 표어를 걸고 사랑운동을 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직장이 점점 변화되어 나중에는 최우수 직장까지 되었습니다. 지금도 좋은 직장으로 평가 되고 있습니다.
② 형제는 사모하는 관계입니다.
사모하는 것은 함께 없을 때 마음에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관계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지금 빌립보에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마음속으로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심장으로 사모하고 있습니다(1:8).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은 시간과 공간이 다를지라도 하나로 묶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몸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마음은 항상 함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육적인 사랑이 아니요 정신적인 사랑입니다.
③ 형제는 기쁨입니다.
형제를 생각하면 기쁨이 됩니다.
형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한없이 기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며 항상 기쁨으로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형제가 기쁨이라는 것은 내가 형제에게 기쁨을 주는 관계입니다.
나를 만나면 부담을 주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그에게 기쁨을 주는 관계입니다. 형제는 서로 간에 기쁨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④ 형제는 면류관입니다.
면류관은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경우에 일등을 한 사람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입니다.
면류관은 자랑이요 영광입니다.
이는 형제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어 함께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형제를 낮추어서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높여서 내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형제가 잘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 간에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에게 주안에서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안에서 사단 공격은 막고 세상 유혹을 이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면 우리 관계는 깨어집니다.
우리는 주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래야 형제의 관계도 견고해집니다.
주안에 서야 행복한 사랑의 공동체가 됩니다.
아름다운 공동체가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공동체가 됩니다.
2. 주 안에서 서라
주 안에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축구 선수는 축구장에 들어가면 몇 가지 지켜야 할 룰이 있습니다.
같은 유니폼을 입어야 하고, 11명이 넘어서면 안 되고, 라인을 벗어나면 안 되고, 뒤에서 딴지를 걸면 안 되고, 발을 너무 높여서도 안 되고, 나름대로 지켜야할 사안들이 있습니다. 반칙을 해서는 안 됨니다.
이것을 위반하게 되면 퇴장시키던가 경우에 따라서는 깨임을 몰수까지도 당합니다.
바울 사도는 형제들에게 “주 안에서 서라”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서려면 다섯 가지를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① “같은 마음을 품으라” 고 하십니다.
2절 “사도바울은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다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팟으면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3:18)라고 했겠습니까?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눈물을 흘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간절히 간구하고 있는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2장2절~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겸손의 마음입니다. 어디까지 겸손입니까?
1) 성육신과 천한 지위를 소유하심입니다.(마1:18~25).
2) 율법에 복종하심입니다.(갈4:4).
3) 수난 당하심(히4:15)입니다.
4) 십자가에 죽으심(빌2:8)입니다.
5) 무덤에서 장사 지냄입니다.(행2:7).
6) 지옥까지 네려가심(소요리문답 27, 박형룡)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공동체 생활을 할 때 외지교회는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② “서로 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절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서로 도우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적극적으로 봉사의 자세를 취하라는 말입니다.
대부분 서로가 시기하는 문제가 있으면 서로가 소극적입니다.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것은 내 자신의 희생이 따릅니다.
저는 직장생활 할 때 하나의 철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동요가 나에게 부탁하는 일은 내가 아무리 바빠도 그것을 먼저 해 주자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을 했습니다.
여러분 특히 교회에서 형제자매로부터 부탁 받은 일이 있을 때 우선적으로 그 일을 해 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인기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남의 일을 내일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행복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공동체의 일을 내일 보다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행복한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교회 전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서로 도와 주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도와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멍에를 같이 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멍에를 같이 하는 사람은 한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이요,
같은 걸음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또 함께 힘쓰던 자이고, 동역자 이고,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기 때문에 서로 도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후에도 천국에서 영원히 만날 사람입니다.
몇 십 년만 지나면 서로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시기하고 싸운다면 우리가 천국에서 어떻게 서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돕고 사랑해야 합니다.
옛날에 마음에 상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간에 서운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마음에 갈등은 서로에게 피해가 됩니다.
나아가서 성도의 공동체를 망하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서로 나보다 남을 낳게 여기며 섬기는 마음으로 넘처야 합니다.
③ 기뻐하라
4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의 특징은 첫째는 옥중서신이고,
둘째는 주안에서의 편지이고,
셋째는 기쁨의 복음 입니다.
이 기쁨의 복음은 1장에서 4장까지 주의 기쁨, 바울의 기쁨, 성도의 기쁨, 곧 나의 기쁨으로 연결이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솟아나는 이 기쁨이 바울을 통하고, 성도를 통하고, 나 자신을 통하여 이 기쁨의 복음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바울서신 속에는
1장 4절은 기도의 기쁨을 말합니다.
‘기도하는 자는 기쁨을 얻는다.’ 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기쁨으로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장 18절은 전도의 기쁨을 말합니다.
전도하는 자는 기뻐합니다.
기쁨에 의하여 우리의 전도가 나옵니다.
2장 2-4절에는 사랑의 기쁨을 말합니다.
2장 17-18절은 순교자의 순교의 기쁨을 말합니다.
2장 28절은 교제의 기쁨을 말하고,
3장 1절, 4장 4절에서는 주안에서의 기쁨,
4:1~10절은 성도로 인한 기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외지교회 공동체의 자랑은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기쁨이 넘치고, 전도의 기쁨이 넘치고, 사랑의 기쁨, 교제의 기쁨, 믿음의 기쁨, 성도의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바울 한사람으로 인하여 빌립보 성도들만이 아니고 빌립보 교회들과 더불어서 오늘 온 세계 기독교인들이 기뻐하듯이 담임목사의 말씀을 통하여 외지교회 성도들은 물론이요 은포와 외지마을, 사량면에, 통영지역에, 경남지역, 온 세계에 퍼져 나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시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내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로다”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이나 반복하여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기뻐하는 것은 자연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기뻐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때든지 기뻐해야 합니다.
조건이 좋은 때든지 나쁜 때든지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 안에 쇠사슬에 메어 있습니다.
햇빛도 들지 않는 축축한 곳에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한결같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는 예수님을 만나고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목자들은 예수님이 오신 것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찬양 중에, 기도 중에, 말씀 읽는 중에, 말씀을 듣는 중에, 봉사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①구원 ②자녀된 것 ③사명감당할 수 있다는 것 등 큰 기쁨입니다. 우리는 기쁨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내면은 항상 기쁨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먼저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웃는 사람들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마음이 우울한 사람은 사람들과 바른 관계성을 맺지 못합니다.
외지교회 공동체는 항상 기뻐하는 공동체가 될 때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④ 관용하라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 우시니라”
우리는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해야 합니다.
관용은 관대하고 용납하는 마음입니다.
좀 더 멀리 좀 더 넓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렇지만 내일은 나아지겠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쁨이 있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용납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조금 잘 못해도 웃고 넘깁니다.
그러나 기분이 나뿐 일이 있으면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가운데 서로를 용납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관용을 알게 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관용해야 하는 이유는 주께서 오실 날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끝 날이 가깝습니다.
우리가 내일 죽는다면 우리가 서로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관용해야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관용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관용해야 합니다.
외지교회 성도들은 관용하시기 바랍니다.
관용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⑤ 기도하라
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염려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자신이 잘못한 것을 염려합니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염려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염려합니다.
자신의 명예가 떨어질 때 염려합니다.
사람을 믿지 못할 때 염려합니다. 죽음 등을 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염려한다고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염려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시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되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뜨겁게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염려하는 것을 반듯이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 받은 증거를 주십니다.
형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믿음으로 간구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하십니다.
결론의 말씀입니다. 7절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를 응답받은 확신은 마음에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하나님이 주신 평강입니다.
이는 세상이 주는 평강과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평강은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영원한 평강입니다.
세상에서 빼앗아 갈 수 없는 평강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이런 평강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지켜 주십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도 평화롭게 됩니다.
마음에 관용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자녀임을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한 형제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고, 사모하고, 기쁨의 관계를 맺고 형제의 자랑이 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안에 서게 하기위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같은 마음을 같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서로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서로 관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 되어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람들이 합심하여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일을 하십니다.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한 마음을 품고, 섬기며, 기뻐하며, 서로 관용하며,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므로 아름다운 공동체,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어 저와 여러분의 삶이 주안에서 행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외지교회가 행복한 공동체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맺어진 형제관계”임을 알게하시고, 서로 사랑하며, 사모하며, 기쁨으로 형제를 높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 같은 마음을 품게하시고, 서로 돕게하시고,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관용하며, 기도하므로 아름다운 공동체로 발전하여 하나님께 영광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