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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일 BMX(Bicycle Motor Cross) 여성선수 박민이. 그녀의 첫 출발은 편견을 깨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
소녀는 상처를 받았다. 경기에서 모든 걸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록스타 BMX 게임스 여자부 대회가 열린 ‘파크’에서 모든 것을 토해냈다. 경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소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점프했다. 2m도 넘게 날아 올랐다. 작은 여자아이가 남자 선수만큼 뛰어 오르자 냉랭했던 관중석에서 ‘아~’하는 탄식이 터졌다. 탄식은 이내 ‘와~와~’하는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사회자가 소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미니 파크~!”
경기를 마치고 세퍼드는 “아까는 미안했다”며 악수를 청해왔다. 박민이는 웃으며 세퍼드의 악수를 받았다. 대회 1등은 박민이였다. 박민이는 처음 나간 세계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렇게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자인, 정상을 향해!
한국에서 상대를 찾기 힘들었다. 여자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도 많지 않을뿐더러 실력에서 소녀를 따를 이가 없었다. 세계로 눈을 돌렸다. 시니어(성인)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 16세에 소녀는 세계대회에 나갔다. 2004년 국제 월드컵 대회가 첫 세계무대 도전이었다. 당시 외국 선수들은 그녀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꼬마가 얼마나 잘 하겠어?”라는 시선을 느꼈다. 다른 이들의 예상대로 소녀는 41위로 예선 탈락을 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역시 세계의 벽은 높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소녀는 다시 인공 암벽을 올랐다.
![]() 아시아 여자선수 최초로 리드와 볼더링 월드컵 동시석권한 김자인. 하지만, 그녀도 첫 출발은 순조롭지 않았다. |
2004년 소녀는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7위를 하면서 국제대회 결선에 처음으로 올랐다. 그리고 그해 아시아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권에서 1위를 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시니어 대회 출전 1년 만에 소녀는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그녀의 이름은 김자인이다.
BMX계의 ‘김연아’ 박민이와 스포츠 클라이밍계의 ‘김연아’ 김자인.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다. 이름과 키, 도전정신과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 그리고 꿈. 5월 햇볕 따스한 어느 날 두 사람을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만났다.
운명(運命), 그 피할 수 없는 이끌림
두 사람은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박민이와 김자인. 얼핏 보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 지어진 이름은 미래를 내다본 듯하다.
박민이는 1989년 아버지 박광수 씨와 어머니 서정숙 씨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민이’란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줬다. 박민이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작았다고 한다. 미니(mini)란 의미에서 ‘민이’라고 했다”며 웃었다. 할아버지는 한자어로 민첩한 아이라는 뜻도 달아줬다. 박민이는 “한자는 그냥 등록을 위해 달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BMX 자전거 대회는 크게 레이싱과 파크 종목으로 나뉜다. 레이싱은 흙으로 된 경기장에서 언덕을 넘어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하는 경기다. 박민이의 주 종목인 파크는 구조물이 있는 경기장에서 기술을 겨루는 방식이다. 그녀는 이름처럼 작지만 민첩하고 빠르다. 그리고 파크에서 경기를 펼친다.
박민이는 “내 성(Park)처럼 파크가 주 종목이다. 처음에 대회에 나갔을 때 다른 선수들이 정말 제 이름이 미니파크(Mini Park)가 맞는지 물었다. 내가 봐도 신기하긴 하다”며 꺄르르 웃었다.
![]() 영어로 쓰면 Mini Park이 되는 박민이 선수. 주종목 Park는 '내 운명'? |
김자인의 이름은 산에서 나왔다. 아버지 김학은 씨와 어머니 이승현 씨의 막내딸로 1988년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아버지가 직접 지어줬다. 아버지 김학은 씨와 친한 월간<산>의 박영래 기자가 첫 째 아들의 이름을 자하로 지었다. 이 중 등산용 밧줄인 자일을 뜻하는 ‘자’를 돌림자로 썼다. 자인의 ‘인’은 북한산 정상인 인수봉을 뜻한다. 김자인은 “제 이름이 들어 있어서 그런지 인수봉은 친근감 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암벽을 타고 인수봉을 올랐는데 느낌이 색달랐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공인 루트세터가 배치한 홀드를 잡거나 딛고 인공 암벽을 오르는 경기다. 크게 리드(난이도)와 볼더링, 스피드로 나뉜다. 리드는 15m 이내의 인공 암벽을 안전 장비 자일을 걸면서 올라가는 경기다. 공인 루트세터들은 완등하기 힘들게 홀드를 배치한다. 떨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자일이 필수다. 볼더링은 5m의 벽을 자일 없이 올라간다. 역시 공인 루트세터들이 완등을 어렵게 홀드를 배치한다. 리드보다 더 큰 동작을 요구하기 때문에 키가 작은 선수들에게 불리한 종목이다. 바닥에는 매트리스를 깔아 혹시 생길지 모르는 안전사고에 대비한다. 스피드는 올라가기 쉽게 홀드가 배치된다. 말 그대로 올라가는 속도를 겨루는 경기다. 김자인은 자신의 이름이 있는 자일을 사용하는 리드가 주 종목이다.
![]() 등산용 밧줄 자일에서 '자'를, 북한산 인수봉에서 '인'을 따온 김자인. 그녀의 미소가 5월의 산맥처럼 푸르다. |
도전(挑戰), 약점을 강점으로 만든 집념
두 사람은 프로필상 신장이 153cm로 똑같다. 이 사실을 알려주자 서로의 키를 재보더니 놀란다. 둘 다 굽이 없는 신발을 신고 와 키가 똑같다. 작은 키는 BMX와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에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박민이는 어렸을 때 발레와 리듬체조 등 여러 운동을 다 했다. 그러나 마음에 딱 드는 운동은 없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BMX 자전거를 접했다. 아버지가 즐기기 위해 사왔던 자전거다. 그리고 박민이는 운명처럼 BMX 자전거에 빠져들었다. 아버지 박광수 씨와 함께 매일 보라매공원에서 BMX 자전거를 탔다. 한국 여성 최초이자 최연소 BMX 라이더가 됐다. BMX 저변이 좁았던 데다 위험한 운동이라 여자 도전자는 전무했다. 박민이는 “1970년대 처음 미국과 독일에서 시작된 BMX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1세대 아저씨들은 대부분 은퇴했고 내가 2세대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서양에서 시작된 스포츠라 큰 키의 선수들에게 유리하다. 박민이는 “키가 크면 기술을 쓸 경우 더 멋있게 보인다. 점수를 겨루는 경기이기 때문에 ‘멋’도 중요하다. 키가 작은 내가 하면 파닥파닥 허우적거리는 느낌이라 멋이 안 난다”고 투덜거렸다.
박민이는 BMX 선수로는 치명적인 또 다른 약점이 있다. BMX 파크는 오른발잡이와 왼발잡이의 경기 방식이 다르다. 주로 쓰는 발에 따라 들어가는 힘이 다르기 때문에 회전 방향이 반대다. 박민이는 왼발잡이다. 그런데 처음 BMX를 배울 때 오른발잡이처럼 경기하는 것을 배웠다. 박민이처럼 반대발로 경기를 치르는 것을 ‘구피 스타일’이라고 한다. 박민이는 ‘구피 스타일’ 때문에 BMX를 처음 접할 때 아주 쉬운 기술도 5년에 걸쳐서 배워야 했다.
박민이는 자신의 단점들을 강점으로 바꿨다. 그는 2m 넘게 점프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었다. 국내에서 남자 선수들과 겨루며 키운 점프력이다. 키가 작아 점프를 높이하면 더 대단해 보인다.
또 ‘구피 스타일’은 무한한 연습으로 극복했다. 그는 “내가 시도하는 기술은 '구피 스타일'이 접목돼 나만의 기술이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 153cm로 키마저 똑같은 두 선수. '조금만 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을 노력과 열정으로 채우고 있다. |
김자인은 어렸을 때부터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오빠들을 따라 스포츠 클라이밍 경기장에 가서 처음으로 5m 벽을 올랐다. 올라갈 때는 쉬웠지만 내려올 길이 막막했다. 어린 그는 내려 달라고 눈물만 흘렸다. 눈물을 흘렸지만 이미 그는 스포츠 클라이밍의 매력에 푹 빠졌다.
“어린 마음에 해외에 자주 나가는 오빠들이 부러웠다. 클라이밍을 하는 모습도 왠지 멋있어 보였다”는 김자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오빠를 따라서 선수에 입문한다. 1년도 안 돼 국내 여자 주니어 무대를 평정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바로 성인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작은 키는 그녀의 약점으로 남았다. 첫 대회에서 41위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은 것도 그 때문이다. 꼭대기까지 오르는 완등조차 쉽지 않았다.
스포츠 클라이밍 역시 서양에서 시작된 종목이다. 그렇다고 꼭 장신 선수들에게 유리한 종목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163cm가 여성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에게 이상적인 키라고 한다. 이보다 크면 무게 중심을 잡기 힘들고, 작으면 홀드간 거리가 먼 루트를 공략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153cm인 김자인은 한계를 집중력과 유연성, 체력으로 넘어섰다. 김자인은 “내가 머리가 좋은 것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루트를 읽어내는 집중력은 좋다”고 자평했다. 리드 종목에서 어렵게 배치된 홀드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첫 번째다. 분석을 잘해도 몸이 따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김자인은 멀리 있는 홀드를 잡을 때 뛰어난 유연성으로 튀어 오른다. 웅크렸다가 쭉 뻗는 동작을 통해 아무리 멀리 있는 홀드도 척척 잡아낸다. 인공 암벽에서 6~8분 동안 사투를 벌여야 하는 만큼 체력적인 뒷받침도 중요하다. 김자인은 “내가 신체조건이 좋은 다른 선수와 경쟁할 수 있는 것은 체력이 더 좋기 때문인 것 같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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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 정상을 맛보다
20살을 넘었지만 두 선수는 아직 소녀 같다. ‘소녀’라는 말에 김자인은 “아주 좋은 말이다”며 웃는다. 박민이도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세계 최고자리에 올랐지만 둘은 대한민국의 소녀였다.
![]() 누구보다 거친 도전을 마주하는 그녀들이지만, 일상 속에서는 꾸미기를 좋아하는 영락없는 소녀가 된다. |
박민이는 2010년 토론토 잼 대회에서 두 번째로 세계대회 1위를 차지했다. 100명이 넘는 선수가 참가한 이 대회에서 박민이는 미국의 니나 뷔트라고를 꺾었다. 니나는 2009년 대회 우승자다. 박민이는 “지난 대회 우승자를 꺾어 의미가 있던 대회”라고 평가했다. 김자인은 2009년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탈리아 아르코에서 열린 록마스터 대회에서 그는 12명의 정상급 선수를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같은 해 벨기에에서 열린 월드컵 리드 부분에서도 최고 자리에 오른 그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가 됐다. 김자인은 올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볼더링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월드컵에서 리드와 볼더링을 석권한 여자 선수가 됐다.
화려한 경력 뒤에는 말 못할 고민이 숨어있다. 두 선수 모두 운동을 하면 할수록 두꺼워지는 팔뚝을 고민했다. 문장이 과거형인 것은 이제 둘 다 체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성스러워 보이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김자인은 이날 단아한 화장을 하고 왔다. 친구와 가볍게 점심을 먹고 왔다는 그의 귀에는 꽃모양의 귀고리가 빛나고 있었다. 김자인은 “별다른 취미는 없고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민이는 “나는 화장을 잘 하지 않는다”면서도 “대신 피어싱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귀에만 하고 있다. 다른 곳에도 하고 싶지만 부모님한테 혼난다”며 “언젠가는 내가 도안한 문신도 새겨 넣고 싶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 말에 김자인은 “나도 예전에 5mm짜리 피어싱을 했었다”고 맞장구쳤다.
박민이는 자신의 취미를 빵굽기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쿠키와 빵을 구우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는 “쿠키와 빵을 구워 훈련장에 가면 같이 운동하는 오빠들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놀린다. 그래도 무엇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해 계속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 모두 거친 익스트림 스포츠 무대의 정상에 올랐지만, 천생 여자였다.
그리고 꿈, 그녀들이 살아가는 이유
두 선수의 꿈은 닮았다. 공통된 바람은 어디 어디의 ‘김연아’라는 수식보다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알아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종목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세계를 접수한 두 소녀의 당찬 도전.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일 것이다. |
박민이의 구체적인 목표는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다. BMX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레이싱만 정식종목에 들었다. BMX계는 2016년이면 파크도 정식종목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박민이의 다른 소망은 자전거가 무시 받지 않는 것이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마다 까칠한 역무원은 한 소리 한다. 그래서 피해서 몰래 타고 다닌다”고 털어놨다. 이날 인터뷰를 한 화정체육관에서도 “자전거는 갖고 들어올 수 없다”고 핀잔을 들었다. 박민이는 “자전거의 위상이 이렇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어 “내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자전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이어 박민이는 “그 사이 한 대회 한 대회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올해 열리는 3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박민이는 6월 1일 프랑스 피세(FISE) 대회에 출전하고, 6월 말에는 LA에서 열리는 X-Game 대회에 초청받았다. 7월에는 독일에서 BMX마스터스가 열리는데, 26년 동안 진행된 대회로 가장 권위가 높은 대회다.
반면 김자인이 뛰는 스포츠 클라이밍은 올림픽 정식종목이 채택된다는 보장은 없다. 김자인도 올림픽보다는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 그의 꿈은 사람들이 스포츠 클라이밍을 스포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는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를 보고 산악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크게 보면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맞다. 그러나 산악인은 아니다.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도 어엿한 선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자인은 “스포츠 클라이밍은 스포츠의 3대 요소(놀이, 경쟁, 신체활동)를 다 갖고 있다. 반면 산악은 자기 자신과 싸움이 있을 뿐 다른 선수와 경쟁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 클라이밍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다. 인터뷰도 많이 하고, 은퇴 후 지도자 생활도 열심히 할 것이다”며 웃었다. 그가 체육교육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지도자 생활 때 교육학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김자인은 마지막에 조용히 목표 하나를 더 말했다. 남자 대회에 나가는 꿈. 그는 “무리일 수 있겠는데, 내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번외로 출전한 경험이 있는데 정식으로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에 박민이도 “나도 마찬가지다. 한국에는 여자 선수가 없어서 남자 선수들과 함께 대회를 치른다. 이번에는 3위 안에 입상하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작은 키의 한계를 뛰어 넘어 세계를 놀라게 한 소녀들은 당찼다. 박민이와 김자인, 이 두 소녀가 여성의 한계도 뛰어 넘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2010 클라이밍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김자인 선수(출처 :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