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 못하게 10년. 또는 30년 만에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모임의 장소로 조직 폭력계에 있었던 제자의 카페에서 만났는데 식사후 노래방에 가겟다고 했더니 제자가 Live cafe라는 곳으로 안내를 했다. 요즘 단란주점은 노래방과 무대를 겸하는 것 같다. 세상살이의 도사인 제자가 인맥과 돈을 써서 주일은 쉬는 주점에 문을 열게 해서 전세를 낸 것이다. 술도 노래도 못하는 나에게는 약간의 도전이기는 했으나 마음 껏 마시고 마이크 잡고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노래라고는 찬송가 외에는 운동권 가요 밖에 모르는 나도 부득이 한 곡조 했다. 다행히도 노래방 목록에 ‘직녀에게’가 있어서.
몇 시간 동안 집단 엑스타시 비슷한 경험을 한 것도 오랫만이었다.
사실은 사건과 풍파가 많은 나의 삶에 들어맞게 예배 보다는 룸살롱이나 노래방에 얽힌 사연이 훨씬 더 많다. 왜냐하면 예배는 신과 함께 하려는 시간이지만 술판 노래판은 인간들 끼리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후자 쪽에 더 꾸밈이 없었다. 문제는 예배에도 헌금이 들기는 하지만 룸살롱과 액수가 비교가 안된다.
송년회 주선자가 오늘의 모임이 주점 주인에게 아주 특별한 인상적인 경험이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목사가 주도하는 격조 있는 술자리는 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페북에 이런 글을 썼더니 어떤 이가 " 저희는 주로 1/n이라… 건축헌금,십일조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래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모든 것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몸에 베어서 헌금도 매우 절약했다. 사실은 평생 생존에 급급해서 한 번도 여유있게 헌금을 할만한 처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로 하다. 그런 내 눈에는 악사와 차려진 주안상 도우미들이 동원되는 룸살롱이나 라이브카페에는 돈이 많이 드는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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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 매달 1회씩 정규적으로 룸살롱에 출석해야 했다. 부천에 있는 17사단의 사단장이 고교 선배였고 참모장이 동창이었다. 참모장은 위수 지역을 벗어날 수가 없어서 집이 영등포라도 갈 수가 없어서 부천에만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를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부천에 있는 동창들이 한 달에 한 번은 룸살롱으로 집합을 했다. 돈은 부천에서 재산세를 5 번째로 내는 부동산을 많이 가진 동창생이 냈다. 돈이 안들어도 나에게 룸살롱 출석은 즐거움이 아니고 고역이었는데 주최자인 동창 녀석은 ‘목사가 빠지면 술맛이 안난다’ 혹은 ‘목사가 친구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지켜봐야 할거 아니냐?’ 등의 논리로 심술굳게 나를 괴롭혔다. 어떤 때는 운전사를 미리 우리 집 앞에 좁은 골목에 보내서 대기를 시켜서 내가 도망을 못가도록 고문을 하기도 했다. 녀석은 장난으로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이었지만 나에게도 제일의 후원자여서 불평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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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댓글을 단 이가 1/n로 돈을 냈다는데그쯤 되면 건전한 오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당연히 건축헌금, 십일조와 비교해 보면 헌금 액수가 더 많았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배 시간에는 배울 것이 없을 때도있었지만 룸살롱에서는 항상 배울 것이 있었다 .참모장 동창생이 물 찬 제비 같이 허슬을 잘 추는 것을 보고 “야! 너는 군인이 무슨 춤을 그렇게 잘 추냐?”고 했더니 친구는 “이런 걸 잘해야 출세를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그 친구는 장군이 되어 소장까지 지내고 예편을 했다. 아마 춤 실력이 그 정도 밖에 안됐는가 보다.
또 한 번은 한 아가씨가 아무리 돈을 벌기 위해서 룸살롱에 나왔다지만, 생판 모르는 40 대 중반의 아저씨들과 처음 만나서 춤을 추는 것이 즐거울 리가 없을 터인데도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분위기를 어찌나 잘 맞추는지 덕분에 분위기가 살았던 일이다.
악사의 직접 연주에 가요집을 보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아가씨는 술 취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비틀거리면 노래책을 들고서 따라다니면서 부르는 구절을 손으로 일일이 짚어주었다. 한 마디로 그 아가씨는 그 마당에서는 완전히 신선이었다.
끝나고 나오면서 모두 예의 그 아가씨에게 "수고했어. 고마워."하고 한 마디씩들 인사를 했다. 그 아가씨가 룸살롱 생활이 체질에 딱 맞는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열심히 노동을 하니까 그만한 대가가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경험한 라이브 카페라는 곳은 생계를 위한 신성(?)한 접대 노동의 일터에서도 열심히 하면 영부인도 될 수 있는 기회의 나라인 대한민국의 새로운 문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