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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순 시인이 시집 [하얀숲] 발간.
시집 [숲속의 새는 기쁘다] [완두콩] [9289], 수필집 [바람의 노래]에 이어 발간한 4시집이다.
문희순 시인은 {오늘의문학} 신인작품상에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현재 대전 동구문학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 시집에는 한사랑감리교회 최병선 목사의 서문, 시 60여 편, 문희봉 시인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오늘의문학사 발간, 128쪽, 정가 8,000원이다.
=====서문
주님 안에서 올리는 기도
최 병 선
한사랑감리교회 담임목사
네 번째 시집 ‘하얀 숲’의 발간을 축하합니다.「시는 사상을 장미의 향기처럼 직접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T.S. 엘리엇은 말했습니다. 시에 대하여 잘은 모르지만 문희순 집사의 시들에선 ‘장미의 향’이 스며 나옴을
느낍니다. 장미는 2만여 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오직 하나, 찔레라 하지 않습니까?
또한 시란 힘찬 감정의 발로이며 고요로움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에 그 바탕을 둔다고 워즈워스가 말했습니다. 문희순 집사의 시는 씨앗이 흙에 뿌려지고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일련의
과정처럼 시작詩作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 숙성된 것들이어서 더욱 좋습니다.
우리는 항상 말하고, 느끼고, 겪는 일상을 소재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정시는 자아와 세계와의
동일성을 추구한다고 하는 것인가 봅니다. 서정시는 자아와 세계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고도 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잘했다고 등을 두드려주고 싶습니다. 벌써 네 번째 시집이라니 힘든 여건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는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주님과 깊은 사랑에 빠져 있는 문희순 집사, 고된 인생길을 걸어가다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을 만나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순종하는 신앙의 여정을 보여줘 기쁩니다.
우리 한사랑 교회와의 인연은 하얀 겨울을 다섯 번 보내고 여섯 번째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사동에서 괴정동까지 한 주일도 거르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와 앞자리에 들꽃처럼 앉아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아픈 서정을 작품으로 빚어 현실을 반영할 정도로 외롭고 힘든 성장통成長痛을
앓으면서도 누구나 쉽게 쓸 수 없는 서정시를 감칠맛 나게 썼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합니다.
눈물로 삭이고 아픔으로 갈무리 지어 단단히 동여매 놓은 문희순 집사가 즐겨 사용하는 시어들에서는 사물에 대한 달관적인 자세가 형성되고 나아가 작은 것에까지 관심을 집중하기에 이르러 독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것 같습니다.
세상과 당당히 맞서며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굳건히 지켜가는 여전사, 착하고 효도하는 예쁜 딸들이 손자
손녀와 함께 일궈내는 행복한 가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십니다.
네 번째 시집 ‘하얀 숲’의 발간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항상 주님 안에서 평화로운 나날 이루시길 빌겠습니다.
=====해설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사랑의 노래
― 문희순 시집 ‘하얀 숲’을 읽고
文 熙 鳳
(시인․대전문인협회 회장)
1.
시는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하고 개성이 뚜렷할 때 살아남는다. 감동적인 시는 생의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린다. 그 감동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시란 삶 속에서 유효하게 가동되는 진실을, 별것일 수 없는 일상의 단면을 온 것으로 담아내는 것이어서 우리가 미처 돌보지 못한 것들이거나 사소해서 지나쳐버리는 것들을 온전하게 보듬어 간직해야 한다. 이때 ‘상상력’ 발휘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상상력은 인간만이 지닌 독특한 힘이다. 꿀벌이 아무리 정교하게 자신들의 집을 짓는다 해도 가장 서투른 목수에게조차 미치지 못한다. 꿀벌에게는 상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목수는 개집을 짓는다 해도
그 개집을 먼저 머릿속에 그려본다. 지붕은 어떤 모양으로, 문은 또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인지, 전체는 또 어떤 색으로 칠할 것인지를 미리 그려봄으로써 자신의 작업을 시작한다. 노동의 과정에서도 그 상상력은 끊임없이 작동한다. 끊임없이 목수는 자신의 머리 속에 그려진 집과 조응시켜 나가면서 실제의
개집을 만드는 것이다.
문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하얀 숲’은 시적 화자와 통일된 일체를 지향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적인 상상력
으로 축조한 견고한 집이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개별 의식을 통해 시인 자신의 존재 근거이자 궁극적
귀의처가 되는 일종의 상상력에 대한 근원을 완성한다. 이순의 나이에 접어들어 삶의 깊은 체험이 주제와 언어 속에 드러나고 작품을 쓰는 태도가 진지하며 표현도 힘차다. 세세한 일상의 순간적 현상들
속에 숨은 세상의 이치, 자신의 인식을 촌철살인으로 설계하여 만든 튼튼한 집이다.
2.
문희순 시인의 시에서는 삶의 풍경과 굴곡을 읽어내는 투명한 시선이 강하게 나타난다. 고귀한 단순성이라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많은 것을 거르고 자르고 일어서 어렵사리 얻은 귀한
품성이다. 뛰어난 사생능력은 많은 조탁과 훈련의 산물이다. 이 단순성은 호소력이 그만큼 복잡한
오늘의 삶을 두루 휘어잡을 수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도 개성적인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두 팔 벌리고
죽은 듯
누워있으면
방바닥이 껌처럼 달라붙는다
고요는
혼미한 듯
소름으로 덮고
오장육부
빠져나간 듯
빨래 조각처럼 가볍다
거짓말처럼
숨소리
어둠이 삼켜버렸다
―「침묵 그리고 고요」전문
문 시인은 그 단순성을 기본으로 고요의 사색을 즐긴다. 시인의 마음은 하얀 도화지다. 하얀 도화지는 마음이다. 깊은 깨달음이다. 서정의 극치다. 누구나 즐기는 사색이 아니다.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고요의 사색이다. 그러한 사색의 철탑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하여 문 시인은 오늘도 고된 훈련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가 하늘 문 여는 날
울퉁불퉁한 세월의 굴레
엄살도 없이
황혼의 미소 앞에
사랑을 걸어놓는다.
―「마침표를 위하여」일부
찬란한 마침표를 위해 사랑의 샘물이 마르지 않게 잘 관리하고 있다. 그러니 행복이 고이고, 또 고인다. 얼음장 밑을 기어 나온 침묵들의 외침을 듣는다. 자신만의 자유시간이 허여되기에 거기에서 아주 진한 행복을 느낀다. 그러한 행복을 느끼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좌절한다면 그 행복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여기저기
부서진 마음이
헝클어진 시간을
꾹꾹 눌러 접고 살았구나
밤새
외로움 안고
아픔 묻어 놓은 그리움은
소리 없이
비 내리는 새벽으로 가고 있구나
―「천둥 치고 비가 오는 날은」일부
천둥 치고 비가 온다. 그런 날도 있다는 것을 누군들 모르랴마는 그걸 일깨워 주는데 인색하지 않는다. 무지몽매한 인간을 위해 깨우침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다. 문 시인의 시 속에는 빨래도 헹구며 그 물에 빨간 단풍잎 하나 떨어뜨리는 여유가 살고 있다. 고드름을 보고도 그에 얽힌 추억들을 건져 올리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어찌 고드름 속에 머슴애들 웃음소리만 살고 있을까. 문 시인의 가슴은 그런 웃음 외의 다른 소리까지도 모두 살게 하는 포용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3.
시들이 자연과의 교제에 성공하고 있다. 문 시인의 시들은 서정으로 조각된 한 뭉치의 소포와 같다.
그 소포 속엔 사랑, 베풂, 존경이 싹트고 있다. 친구를, 고향을, 계절을 예찬하고 있다. 거기다가 또
포함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곧 나를 키우는 일이다.”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사랑이 저절로 찾아와 가슴에 안긴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하고 있다.
부끄러운 듯 스치는 는개
입 다문 자목련
큰 연못 지나 돌아서보면
천리포 앞바다의 우렁찬 포효
‘칼 밀러’ 그대는 이곳에 반하여
한국을 조국처럼 사랑했습니다
무궁화, 호랑가시나무 으뜸으로
식물사랑에 열정을 바친 한국인 ‘민병길’
나무마다 꽃마다 이름표 달고
단정한 모습으로 그대를 기립니다
―「천리포 수목원」일부
자연을 노래하는 것이 그냥 보통의 노래가 아니다.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한 감흥을 일으키게 하는 노래다. 지금 우리는 노래를 잃어가고 있다. 상소리와 독설과 재담의 시는 재미있고 실감나지만 노래는 아니다. 오늘의 도시적인 삶이 제기하는 여러 상황에 괴로워하고 속상해하고 그 아픔의 극복에 관해서 생각하는 시도 많고 그러한 시가 우리에게 호소하는 바도 크다. 그러나 그것은 노래라기보다 토막생각이나 사고의 비명인 경우가 많다. 외마디 아픔의 비명은 노래로 이어지지 않는 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렇게 노래를 잃어가고 또 고향을 잃어가는 시대이지만 문 시인의 시에서는 잃어버리기 이전의 우리의 고향이 아주 천연덕스럽게 되풀이 노래된다. 그래서 그의 시는 한 시대 우리 고향의 풍물시(風物詩)가 되어 준다.
눈뜨면
하늘높이 달리는 물가
우린 잡지도 못하고 손 놓고 있어
서럽게 우는 얼굴들이 밤을 지새우는데
이 어려움이 산이라면
봄이 오기 전에
따뜻한 마음들이 햇빛처럼 웃었으면 해
―「봄을 기다리는 편지」일부
어떤 것을 보아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스케치한다. 몸을 기다리는 편지는 그냥 편지가 아니라 서정으로 조각된 한 뭉치의 소포가 된다. 시를 창작하기 위해선 경험의 발효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눈물로 삭이고 아픔으로 갈무리 지어 단단히 동여매 둔 문 시인의 시어들이 발효과정을 거쳐 슬금슬금 기어나와 서정의 운해를 이룬다.
눈을 감아도
그려지는 검은 전쟁
불에 탄 흔적
여림 뒤에
알 수 없는 힘이 보인다
미술관 밖은
평화의 맑은 봄바람이 인다
부프카 걸친 아이가
표정 없이
내 뒤를 따라온다.
―「눈 먼 아프간 소녀」일부
전쟁으로 참혹한 삶을 살고 있는 아프간 소녀에게 쏟는 정이 남다르다. 사랑과 베풂을 반찬으로 내놓는다. 친구 간의 우정도 4~5년 숙성시킨 것이 아니다. 40여 년 지속돼 온 가슴으로 말하는 우정이다.
고향은 언제나 포근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싱싱한 푸성귀인 신토불이 나물들과 만나는 곳이다. 그곳에는 훈훈한 정이 있다. 그러한 쫀득쫀득한 정들이 문 시인의 시 속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 꼬까신 신고 색동옷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독자들은 그 예쁜 모습에 취해 넋을 잃는다.
우리의 콩
구수한 된장찌개
시래기와 두부 어우러져
바글바글 끓어오르고
싱싱한 푸성귀 신토불이 나물
입맛을 당기며
훈훈한 정(情) 넘치고 있다
폐교를 눈앞에 둔
초등학교 운동장
철봉대 그네 시소
꿈과 추억을 만들어준 플라타너스
안타까운 마음
아이들 웃음소리 주워 담고 있다
―「고향에서 머무는 바람」일부
지난날 우리의 고향을 한 마디로 말하면 지독한 가난이었다. 오늘에 있어서도 가난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값싼 입성의 보급은 바깥 추위를 견딜 수 없게 했다. 먹새는 창자를 곯고 맨살을 두둑히 감싸지 못하는 지극히 궁상맞은 가난이었다. 그렇지만 문 시인의 시는 이렇게 가난한 고향 사람들의 설움이 아니라 희망을 노래한다. 그가 아니었다면 간결하면서도 절절한 목소리를 찾지 못했을 많은 사람들의 설움과 노여움과 정한에 목청을 틔워 주었다는 점에서 문 시인의 개성이 있다.
문 시인은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그 마을의 특징이 한 편의 시로 탄생된다. 소박하고 정겨운 마을이다. 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곳이다. 그곳에서 사랑을 빼면 이웃과의 정도 소원해진다.
늠름한 모습의 연아(휘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를 보며 위대한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그게 바로 애국이 아닐까. 마을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국가로의 점층적 접근이 또한 문 시인 시의 특징이다.
4.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의 생활의 세목과 생활감정의 무늬를 진솔하고 경제적으로 처리하여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시들을 부분적으로 추문화시킨다. 언어가 맑고 신선하다. 사물을 접하는 감각도 날카롭다.
인정이 샘물 솟듯 한다. 이웃 노파도, 친구도, 손자손녀의 재롱도 예사로 보지 않는다. 볼 때마다 의미를 부여하여 표출한다. 친구 어머니는 바로 내 어머니다. 어머니에 대한 효를 생각하는 효심이 너른 호수에서 춤을 추고 있다.
문 시인의 마음은 여리다. 동화다운 시선으로 어린 생명의 재잘거림을 본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기쁨을 ‘파란마음 하늘을 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시인이다. 어린 생명을 보며 환희의 우물에 침잠하는 기쁨을 누린다. 어린 생명으로 하여 옛 추억까지 건져 올리는 행운을 누린다.
봉사, 존경, 베풂의 숨은 의미를 재조명한다. 거기에서 희열을 맛보는 여유를 누린다. 어느 곳을 가든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시인의 자상함은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
칼바람에 몸을 맡긴 여인들
두 번 다시 이별은 없을 거라
환희의 눈물
눈꽃처럼 하얀 마음
볼이 시리게 눈송이 날리면
둘은 하나가 되어
작은 행복의 꽃을
여자가 뛰어가면 남자도 따라 뛰어가고
모래밭에 넘어지며
달콤한 입맞춤
여인들은
두 팔 벌리고 누워 하늘을 본다.
영화는 END
―「안섬 포구」일부
겨울바다의 서정이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되살아난다. 독자는 그 장면을 통하여 사랑을 체득한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가을 속의 서정을 읽으면서 희열을 느낀다.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행복을 선사한다. 그러면서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말자고 제안한다. 인면수심의 더러운 세상을 고발하면서 아름다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5.
문 시인의 시에 나타난 또 하나의 특징은 진한 서정성이다. 서사적 충동도 이 진한 서정 속에 용해되어 있다. 한 편의 시를 서정적으로 끌고 가는 리듬 구사 능력과 분위기의 통일성에서 시적 역량이 훌륭하고, 대상과 공명하는 부드럽고 여린 감수성 또한 귀하게 다가온다.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서정성은 편안하다든가 기쁘다든가 하는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개체적인 삶에 대한 충실에서 나온 것이지만 울분과 노여움의 시에서마저 우리는 서정이 울분과 노여움을 감싸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우리 현대시에서 가장 진실되고 호소적인 목소리가 제 목소리임을 확인하고 자기발견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때 얻어진 맺힘성 있는 단순성은 일종의 고귀한 단순성이다. 이 고귀한 단순성이 문 시인 시의 요체라고 말할 수 있다.
얼굴 손 검버섯
레이저로 지우고
거울 앞에서 환한 미소
혼자 몸
움츠리는 겨울나무 되기 싫어
곱게 꽃 피우는데
비바람, 천둥을 만난 세상에서
독백으로 외로움 삼키며
당당하게
산수(傘壽)의 길
편안과 동행하며
망백(望百)의 강을 품으소서.
―「어머니」전문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이 시의 행간마다에 살아 숨쉰다. 나이 드신 어머니에 대한 측은지심을 생각해낸다. 생일날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천사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천사와 등식을 이룬다. 노구를 이끌고 사시는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향수, 늘 어제처럼만 사실 수 있다면 더없는 행복이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늘도 어머니를 위해 조용한 기도를 올린다. 문 시인의 창백하고도 가녀린 두 손이 지금 순간 떨림을 생성한다. 화장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지금처럼 오래도록 살아주시기를 소원한다. 어머니는 언제 보아도 문 시인에게는 하늘 같은 존재다. 그런 삶을 살아오고 있기에 어버이날 자식들에게서 발바닥 지압이라는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당신 오는 길
불 밝히던 날
당신은 어느 하늘에서
눈물 꽃으로
그리움의 별이 되었나요
기도하는
어깨 포근히 감싸며
다독이는 당신의 향기
이 밤
곱디고운 원앙이 되어
허약해진 마음 채워주어요
오늘은
당신이 떠나던 날입니다
―「그리움의 별」전문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그리움의 별’로 나타난다. 그리고 ‘순둥이들의 첫걸음’을 통하여 작은 딸아이의 결혼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아버지가 못다 만끽하신 젊음을 작은딸이 이루어주길 소망한다.
추부 가는 길, 차 안에서 문 시인과 손녀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백일 사진 찍는 모습에서 손자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아기가 잠을 잔다. 그 모습을 보며 정겨움을 느낀다. 34년 만에 태어난 문 시인 가정의 귀하고도 소중한 남자아이를 보면서 파란 하늘에 안개를 뿌린다. 그런 손자를 보며 오매불망 소원성취를 외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
헤어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립니다
꼭 잡은 손 놓고 싶지 않지만
소중한 사랑 안녕을 합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버린 내 사랑
대합실 찬바람이 가슴을 뚫고 지나갑니다
사랑
한그루 꽃나무 심으며
안개 같은 몸살을 앓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당진 터미널」전문
손녀와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 인간사 다 그렇거늘 헤어지는 연습을 오늘 또 해야 한다. 그래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내리사랑’에서 세상은 늘 평탄치만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 어린 것이, 그 어린 것에까지 그런 어려움을 심어주시는 분께 야속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하지만 곧 수용하고 만다. 그런 삶도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조용히 외친다.
6.
예수님은 수많은 낙담거리와 마주칠 그분의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고 했다. 구름과 어둠 속에서 믿음과 인내와 온유와 사랑이 움터서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라고 했다. 진정 당신 안에서가 아니면 나눔의 참뜻을 알지 못하는 우리, 당신이 세상에서 모범을 보이신 대로 아낌없이 모든 것 내어주고도 한끝의 후회가 없는 너그럽고 순수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나눔은 언제나 자신을 주는 행위이고, 나의 생각, 나의 말, 나의 미소, 나의 기쁨, 나의 재능, 나의 지식, 그리고 나의 물건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이 바로 내 생명의 일부를 주는 경건한 행위임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눈물보다 강렬한 소금 같은 빛
내게 머물러 꽃으로 피어난다
생명의 언덕에서
살아있음에 몸부림의 춤사위
내게 있기 때문이다
소경이 눈을 뜨고
눈이 부셔 볼 수 없는 은총의 빛
감사함에 겸허히 눈물 꽃 된다.
―「진리의 빛」전문
‘진리의 빛’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한 줄기 빛을 생각한다. 모든 것을 한 줄기 빛에 두고 있다. 그 빛은 문 시인 자신은 물론이고, 어머니, 가족 등 모두에 해당하는 빛이다. 그리고 문 시인이 다니고 있는 교회 목사님의 쾌유를 빌고 있는 신자들의 간절한 염원이 한 편의 시로 직조되어 의미를 더해준다. 남편을 잃은 후 절대자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두터이 하고 있다. 그것이 ‘진리의 빛’으로 대변되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순수를 위한 작은 걸음을 걷는다. 그 걸음이 행복을 만들어 준다. ‘기도와 내 인생’을 지루하지 않게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가는 착한 마음을 갖고 살라 이르고 있다.
하얀 겨울을 걸어가면
시나브로 따라오는
당신의 핏자국
무엇이 그리 안쓰러워 애가 타실까
죄를 용서하고 덮어주는 것도 모자라
가슴 조이며 바라만 보시네
그 사랑 안다고 입술만 움직일 뿐
햇빛 같은 기쁨 드린 적 있었는지
하얀 숲에
나를 널어놓고
온전한 고해성사
당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세속에 안주하지 않고
거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의 발걸음
당신에게 향하게 하시네.
―「하얀 숲」전문
흰색은 포용이다. 사랑이다. 희생이고 베풂이다. 하얀 숲에서 시인은 당신을 향해 모든 것을 다 바친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가는 착한 마음의 근본은 그 하얀 숲에서 나온다.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바탕은 하양이다. 흰색은 마음을 맑게 해준다. 그것이 절대자인 당신의 뜻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다. 견뎌낼 수 있다고 문 시인은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당신 만나러 가는 곳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나만 바라볼 수 있게
욕심 부리고 싶어요
얄밉게 나밖에 모르는 나를
투명한 기도로
사랑해 주어 감사해요
좀 더 일찍 당신 만났으면
변덕부리는 사랑은 없었을 걸
뒤늦은 후회라도
심지가 깊은 당신
포근한 가슴에 안기니
주님 행복해요.
―「나만의 사랑」전문
당신과의 사랑은 내 삶의 전부요 재산이다. 그러면서 욕심을 부린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곳,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실토한다. 당신이 나만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노라며 욕심 부리고 싶단다. 심지가 깊은 당신의 포근한 가슴에 안기니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송구영신, 묵은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한다. 당신의 사랑 앞에 무한정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 그래도 행복하다고 느낀다.
당신의 뜻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당신과의 사랑, 시인 자신의 삶의 전부요 인생의 전부다. 문 시인은 당신을 떠나서는 자신은 영원한 부족함이고 불구자라고 겸손을 떤다.
결론적으로 말하거니와 문 시인의 시는 생동하면서 겸손하고 자연스럽다. 어조와 언술 내용이 무척 생생하다. 자신의 내밀한 직접 체험과 욕망의 상처를 드러내는 상상적 경험을 결합하는 솜씨도 뛰어나다. 모든 시어들의 배열이 상투적이지 않고 발랄하다. 자연스럽게 툭툭 던지는 말 속에 생의 비의가 담겨 있다. 상상력의 전개, 형상성의 풍부, 언어가 맛깔스럽고 재기에 넘쳐 읽고 또 읽고 싶은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한 마디 첨언하자면 나날이 복잡해지고 점점 좁아져가는 세계에서 시의 단순성은 삶의 온 영역을 두루 거머쥘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그것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해 주길 바란다.
첫댓글 새삼 다시 들러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