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기부의 효력
복지와 법⑨
‘구두쇠’씨는 함경도 출신으로 6.25전쟁때 홀로 남하하여 어렵게 사업을 운영하였고 엄청난 재산을 가진 재산가이다. 그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나눔사회복지법인’의 ‘한나눔’이사장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사후에 기부하겠다는 말을 자주하였다. 폭우 속을 운전하던 ‘구두쇠’는 상대방의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로 그만 사망하고 말았다. 장례식이 끝나고‘구뒤쇠’의 자식인 ‘반구두’가 유산을 처리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한나눔’씨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구두쇠’의 전재산을 ‘나눔사회복지법인’에 기부하라는 의사 표시를 하였다. 그러자‘반구두’는 들은 바가 없으니 재산을 기부할 수 없으며, 아버지의 뜻이 정녕 그러하다면 자신이 상속받을 재산의 반을 출현하여 ‘구두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할 것이라고 한다. ‘나눔사회복지법인’은 ‘반구두’에게 ‘구두쇠’의 전재산을 기부할 것을 강제할 수 있는가?
한 개인이 사회생활을 영위함으로부터 부를 축적하는 것은 개인의 부단한 노력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나, 주위로부터의 직·간접적인 조력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므로 개인의 부는 완전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산출된 재화의 합계라고만 할 수 없다. 이러한 취지를 잘 인식하고 있는 서구 선진국들의 부호들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기 위한 방안을 꾸준히 실행하고 있다. 잘 알려진 예로 워렌버핏은 2006년 약 37조원의 재산을 빌게이츠재단에 기부하였는가하면 우리나라의 모그룹은 100억원을 기부하는 등 기부문화가 확산일로에 있다.
기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도울 목적으로 재물을 내어 놓는 것을 말한다. 사회복지학적 측면에서의 기부는 인간존재와 가치, 경험에 대한 깊은 확신, 긍정적 인식을 전제로 하여 재산을 주는 것으로 교환가치를 갖고 있는 재산을 일방적으로 대가 없이 전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듯하다.
기부를 법률적 개념으로 정리한다면 당사자 일방이 무상으로 재산을 상대방에게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의 개념이 된다(민법 제55조). 즉, 상대방이 있는 법률행위이며 수증자(재산을 주는 사람)와 증여자간(재산을 받는 사람)의 의사합치로써 효력이 발생하는 법률행위이다. 증여자의 사망 이전에 행위가 이루어지면 증여가 되며, 사망 후에 증여가 이루어지면 유증이 된다.
기부를 행하면서 ‘일정한 행위에 한하여, 또는 일정한 목적에 사용되어져’라는 조건을 붙여 기부를 행하게 되면 이는 법률상 부담부증여로서 일반적인 계약에 관한 조항을 적용받는다. 따라서 수증자는 그러한 조건들을 이행하여야 할 법률적 책임을 부담한다. 증여에 조건을 붙일 수 있다고 하여 증여자에게 일정한 대가를 지급하는 조건을 붙일 수는 없다.
사례를 나누어 설명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구두쇠’씨가 자신이 사망하고 나면 자신의 전재산을 ‘나눔사회복지법인’에 기부하도록 한다는 위의 약속은 일반적 의미의 유산기부에 해당된다. 법률상의 의미로는‘구두쇠’의 사망을 조건으로 ‘구두쇠’의 재산을 ‘나눔사회복지법인’에 급부하는 행위로 민법 제562조의 증여자의 사망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사인증여’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구두쇠’가 사망하기 전에 ‘구두쇠’의 의사로서 ‘나눔사회복지법인’이라는 상대방에 대하여 행한 법률행위이나 그 전제가 구두쇠의 사망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법원은 사인증여는 유증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고 그 실제적 기능도 유증과 달리 볼 필요성이 없음으로 사인증여를 유증과 같이 보고 있다(대법원 2001. 11. 30. 선고 2001다6947 판결). 유증은 유언으로써 타인에게 재산적 이익을 부상으로 지급하는 단독행위를 말한다. 앞에서 본 사인증여 일종의 계약이라는 측면에서 차이점을 가진다. 즉, 유언은 상속인의 동의 없이도 이루어지는 반면에 사인증여는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 성립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유언이라는 말은 유언자가 자신의 사망과 동시에 일정한 법률 효과를 발생시킬 목적으로 특정한 방식에 따라서 하는 특수한 의사표시로서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유언과 유증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왜냐하면 유언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행위의 내용이 어떤 이에게 일정한 재산을 지급하는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지 유언과 유증은 행위자의 사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생전에 재산적 급부가 행하여는 증여와 차이점을 가진다.
유언은 아무 사항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법률로써 정한 사항에 대하여 하는 행위로써 극히 제한적 성격을 가지며 그 내용적 측면으로는 재단법인의 설립, 친생부인, 인지, 후견인의 지정, 상속재산분할방법의 지정 또는 위탁, 상속재산분할금지, 유언집행자의 지정 또는 위탁, 유증, 신탁 등을 목적으로 한다.
유언은 행위능력과는 무관하게 할 수 있으나 단, 17세 이상의 연령에는 달해야 유언능력을 보유한다. 수증을 받을 수 있는 자에 대한 제한이 없어 누구라도 유언에 따른 법률효과를 누릴 수 있다.
유언은 일정한 방식을 갖추어 행위하여야 하는 요식행위이다. 현행 민법은 자필증서, 녹음, 공증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의 5종으로 제한하고 있어 다른 방식에 의한 유언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여기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의 단독행위로서 효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나머지는 반드시 증인의 참석을 요건으로 한다.
결론적으로 ‘구두쇠’가 ‘나눔사회복지법인’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사후에 기부하겠다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사인증여에 해당 한다. 사인증여는 증여에 의한 방법으로 행하도록 하고 있는데 사례에 다르면 ‘구두쇠’와 ‘한나눔’간의 행위는 단순한 구두상의 약속 내지는‘구두쇠’의 소망을 말한 정도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구두쇠’와 ‘한나눔’과의 사인증여를 입증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두쇠’와 ‘한나눔’과의 약속에 대하여‘반구두’는 구속받지 않기 때문에 ‘한나눔’의 주장을 수용하여야 할 법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반면에 ‘구두쇠’와 ‘한나눔’간의 사인증여가 자필증서에 의한 방식에 따라 가정법원의 검인을 받았거나, 공증증서에 의한 유언방식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 상황을 달리하게 된 다. 즉,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하여 사례에서와 같이 ‘구두쇠’의 전재산이‘나눔사회복지법인’으로 이전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민법은 제112조 이하에서 유류분제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유류분제도는 피상속인(구두쇠)이 자신의 재산을 전부 처분하여 버린다면 상속인(반구두)의 생계가 곤란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피상속인의 재산처분에 일정제한을 가하여 상속인의 생계를 보호하여 주는 제도이다. 유류분권을 가지는 자는 피상속인의 직계비속·배우자·직계존속·형제·자매로서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1/2을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1/3을 청구할 수 있다.
유언에 따른 증여의 방식에는 이러한 제한들이 많이 내포되어 있어 피상속인의 의지에 따른 결과가 완전하게 달성될 수 있다는 보장은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자신의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자라면 사후에 재산을 기부하는 것 보다는 사전에 증여를 통하여 기부를 행함으로써 자신의 재산에 대한 처분권을 완전하게 행사하여 의도한 대로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출처 복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