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제국을 망친 간신 조고
중국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왕조들이 환관(宦官)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 간신으로 역적질을 한 것이 나라를망치는 큰원인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秦나라와 漢나라, 明나라 등입니다.
이 秦나라는 희대의 간신 조고(趙高)란자가 망쳐 먹었습니다.
조고는 趙나라에서 삯바느질과 남의 집 일을 하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으나,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모친의 남편은 무슨 송사에 걸려
생식기를 거세 당했기 때문에 자식을 생산할 수 없었는데 모친이 남의 집 일을 다니다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조고를 낳았습니다.
어느날 관에서 나와 아비가 거세를 당한 죄인이니, 아들도 거세를 해야 한다며 데려가서 어린애의 생식기를 잘라버리니, 조고는 졸지에 고자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죽고난 뒤 조고 모친은 조고를 데리고 조나라 수도 한단으로 이사하여 또 남의 집 일을 했는데, 그곳에서 조희와 영정을 만났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처지가 비슷하여 금방 친해졌습니다.
조고하고 영정도 같은 또래라 그들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서 조희가 秦나라 왕비가 되고 영정이 태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고 모친이 함양궁을 찾아갔습니다.
궁문 앞에서 수일간 면회를 신청하여 왕비 조희를 만났고 조희는 옛날 한단 시절을 생각하여 궁중에 시녀로 취직을 시켜 먹고 살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조고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영정이 왕이 되었을 때는 측근에서 수발을 드는 환관으로 근무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인이 되어서는 진시황을 더 가까이에서 모시게 되었고 나중에는 승상 다음의 벼슬인 중거부령으로 까지 진급을 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고가 기고만장하여 권세를 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염 없는 고자인 주제에 마누라를 얻고 양자까지 세워 아들을 두었으며, 술집에서 일하는 여종업원을 죽여서 매장을 하고 자신의 비리를 안다는 이유로 밑에 있는 내시를 생매장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때 조사를 담당했던 검찰관 몽의가 진시황에게 사람을 두명이나 죽인 중죄인이니,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건의하여 진시황의 승인이 떨어졌는데 이튿날 진시황이 몽의를 불러 조고의 죄상은 죽어 마땅하나 한번만 반성의 기회를 주자고 하여 사면을 시켜주었는데 이것이 진나라를 망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진시황이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었습니다.
조고를 사면시켜 준 것은 태후 조희가 조고 모친의 부탁을 받고 아들 진시황에게 옛정을 생각하여 한번 용서를 해주라는 당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조고는 반성은 커녕 더 큰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첫째가 진시황의 태자인 부소(夫蘇)를 모함하여 만리장성을 쌓는 변방으로 쫓아낸 것
두번째는 진시황이 임종 직전에 다음 황위는 태자인 부소에게 양위 한다는 조서를 조고에게 쓰게 하여 파발마를 띄워 부소를 오도록 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진시황이 죽은 뒤에 사약을 내려 죽인 것
세번째는 자기를 사형에 처하려 했던 몽의를 죽이고 그의 형 몽염 장군을 죽인 것
네번째는 승상 이사와 그의 아들을 죽인 것
다섯번째는 진시황의 후손들을 몰살 시킨 것
여섯번째는 자기가 황제로 세운 2세 황제 호해를 죽인 것
그 외에도 많은 인재들을 학살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부에는 일할 사람이 없고 맨 무지랭이들만 들끌었으며 전국에서 진나라를 뒤엎자는 반란세력이 들고 일어나 함양을 향해 총진군을 하였습니다.
그들 중에 가장 큰 세력이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었습니다.
다급해진 조고는 2세 황제 호해의 후임으로 호해의 형 아들인 조카 자영(子瓔)을 앉혔습니다.
이것은 조고의 실수였습니다.
자영에게는 장성한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조고가 자영에게 목욕재계 하고 종묘에 인사를 해야 함으로 어서 목욕을 하라고 재촉하였으며 자영은 목욕탕이 있는 전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자영은 장성한 아들 둘에게 조고를 유인하여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들들은 측근인 경비병들과 짜고 대기를 하고 있는데, 조고가 또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며 달려왔습니다, 이때 두 아들은 전각 안으로 유인하여 복도에서 조고의 목을 졸라 죽이고 순식간에 목을 잘라버렸습니다.
그 악랄했던 천하의 악마 조고를 죽이고나니, 사람들이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항우와 유방이 이끄는 반란세력이 수도 함양의 발 밑까지 쳐들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기원전 206년 12월 자영은 옥새(玉璽)를 들고 나가 항우 앞에 엎드려 항복과 함께 옥새를 받치니, 秦나라는 통일된지 15년 만에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자영도 항우의 칼날에 목없는 귀신이 되고ᆢᆢ
아!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이런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