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오늘 큰 수확입니다. 이제 유족을 찾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와이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재미교포 유근미 교수님께서 지난 월요일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지난 4월 방문 후 2번째입니다.
“2차 대전 중 미군에 의해 하와이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던 조선인이 2,700여 명 정도 되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전라도 분들입니다. 수용소에서의 기억을 듣기 위해 후손들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시민모임에서 발간한 피해자 구술집에 실린 장삼봉 어르신이 하와이 포로수용소를 거쳐 귀환했는데, 몇 년 전부터 연락이 끊긴 상태입니다.
뭔가라도 실마리를 찾아드리고 싶어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원 명부를 이리저리 뒤졌더니, 하와이 포로수용소를 거친 것으로 추정되는 17명의 피해자를 찾았습니다. 대부분 남태평양에 동원된 분들인데, 그 중 7명은 강진 도암면 출신으로 남태평양 밀리환초에서 구출된 분입니다. 또 해남 산이면 출신 김중진 할아버지는 제가 2008년 펴낸 구술집 ‘빼앗긴 청춘 돌아오지 않는 원혼’에 실린 분이었습니다.
35~36년 전 자료여서, 지금 그 유족들이 얼마나 남아 계실지, 연락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유근미 교수님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6명을 만나 얘기 들었어요. 이 중에서 단 1명이라도 만나도 좋아요. 왠지 일이 잘될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이금주 회장 기록물에 감탄할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 동원됐고, 어디를 거쳐 귀환했는지 철저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35~36년 전 조목조목 기록해 둔 그날의 메모가 새 생명을 얻게 될 날이 가까워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