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초원,
호수가 있는 옥룡사호
-내몽고
기행 (2)-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한일신
*적봉의
옥룡사호사막
여행
4일째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헐벗은 산이 눈에 많이 띄었다.
더러는
인공으로 심은 나무라는데 그래도 잘 산다고 한다.
꽃은
별로 없고 키가 작은 노란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데, 이 나무는 그냥 노란 작은 나무라고 부른다니 이름이 좀 그렇다.
적봉에서
개발한 나무인데 환경오염,
미세먼지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적봉에 들어서자 눈이 개운한 것 같았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전용 차량에 몸을 싣고 '저 푸른 초원 위에'란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옥룡사호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넓게 펼쳐진 사막이 한 눈에 들어오며 낙타 특유의 냄새가 났다.
우리는
일제히 차에서 내려 찦차나 낙타체험,
작은
열차를 타고 옥룡사호 주변을 돌아오는 코스가 있었는데, 저마다 취향대로 즐겼다.
찦차는
80도
90도
각도로 꺾이는데 가슴이 철렁할 거라며 허리 안 좋은 사람은 타지 말라고 해서 나는 엄두도 못 냈다.
낙타는
모두 쌍봉낙타인데 낙타들끼리 줄을 달아 이어놓았는데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타고 내리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나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낙타를 탔는데 때마침 빗방울이 뚝뚝 떨어져서 작은 열차로 바꿔 타고 호수가 있는 옥룡사호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이곳엔
모래바람이 불면 입자가 고와서 눈과 귀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단단히 준비하고 갔는데 바람은 불지 않았다.
사막을
맨발로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모래를 한 움큼 쥐어보았다.
해변의
모래보다 부드러웠다.
하지만
뭉쳐지지 않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렸다.
각자
체험을 마치고 우리는 전용 버스를 타고 ‘안다목장’으로 달렸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곳 몽골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물로,
땅으로
보내는데 땅으로 보낼 때는 낙타에 시신을 싣고 걷다가 낙타가 쉬는 곳에 시신을 묻는데,
이때
낙타 새끼를 죽여 함께 묻는다고 한다.
그러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어미 낙타는 새끼가 묻힌 곳을 알아서 찾아간다니, 낙타는 참 신령한 동물인가 보다.
*안다목장
방문
목장에
도착하자 몽골전통의상을 입은 잘 생긴 유목민이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몽골
전통주택인 멍구바오(蒙古包)로
안내하여 차려준 우유와 식품을 먹고 우리도 모두 전통의상으로 갈아입었다.
그런
다음 목장의 트랙터를 타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이
넓은 초원에서 소나 말,
양을
키우며 사는 이들의 시력은 약 4.0
정도이고
평균적으로 3.0
이상의
시력을 가졌다니 부러웠다.
아마도
양들을 돌보느라 시력을 많이 사용해서일까?
이들
또한 몸도 건강해서 잘 아프지 않고 비록 아프더라도 약초로 해결한다고 한다.
하지만
교통,
교육,
문화
등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아이들
학교는 기숙사에 맡기고 집에는 가끔 온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손 쳐도 내 생각으로는 이들의 장래가 밝아 보이지 않는데도, 그들은 행복해 한단다.
*공거얼초원으로
이동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 모르는 도로를 달려 버스에서 내렸다.
리조트
직원들이 나와 전통적인 몽골식 인사로 60도짜리
술을 한 잔씩 권했다.
사전에
가이드에게 술을 못 한다고 했기에 가이드가 알려준 대로 그 술잔을 받아 엄지와 약지를 맞대어 술잔에 살짝 담근 다음 그 술방울을 하늘에 튀기고
땅에 튀긴 다음 이마에 살짝 발랐다.
받은
술잔은 반드시 비워야 한다기에 입술에 살짝 대는 척하다가 못 먹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랬더니
얼른 술잔을 받아가더니 환영의 의미를 지닌 파란색 천을 주어 목에 걸었다.
우리네의
‘고시레’ 풍습과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내심
걱정했던 숙제 한 가지가 끝난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했다.
곧바로
‘게르’ 배정을 받아 그곳에 짐을 풀고 중앙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은
몽골 전통음식과 노래와 춤으로 시끌벅적했다.
이윽고
2년생
양 바비큐가 통째로 나왔지만 나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저녁
식탁은 화려했지만,
음식을
조심하느라고 대충 먹고 밖으로 나오자 캠프파이어를 시작했다.
우리는
다 같이 동심으로 돌아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지붕삼아 음악에 맞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바탕 춤을 추다가 손에 손을 맞잡고 빙빙 돌며
즐겁게 지냈다.
한참
어울려 놀다가 모닥불이 사위어가는 것을 보고 숙소인 ‘게르’로 돌아왔다.
이곳은
겉모양과 달리 안에는 현대식으로 침대와 세면대가 갖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침대 안에 넣어둔 전기장판엔 온기가 별로 없고 눅눅한 이불은 오히려 사람 덕을 보려는 것 같았다.
무심한
게 잠이던가!
온몸을
오그리고 누웠는데도 눈을 떠보니 새벽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가 사진가들 틈에 끼어 일출을 찍으려고 했지만,
추위에
움츠러든 몸이 좀처럼 펴지지 않아 제대로 찍지 못한 채 해가 번쩍 올라와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추위가 좀 풀리긴 했지만,
지금부터는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남은
시간 그럭저럭 지내다가 승덕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잠을 설쳤다.
아침
5시까지
나오라고 해서 여느 때보다 일찍 나갔는데 다들 호텔 로비에 모여 있었다.
아침과
저녁은 거의 숙소에서 해결했지만,
하루에
한 번 이동하려면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4~5시간씩
차를 탔다.
도로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사막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었다.
다만
초원에서 기르는 소나 말,
양들이
빨간불이다.
이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가면 버스가 급정거했다가 다 지나가고 나서야 달렸으니 말이다.
여행
준비물을 챙기면서 몽골은 물이 귀할까 봐 옷이나 수건을 여러 장 준비해갔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만
‘게르’에서 잘 때 추워서 고생한 생각을 하면 파카 하나쯤은 준비해갔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중국에서
처음 식사를 하고 배탈이 나서 불안 불안했지만,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난 덕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삐걱거리며 달려온 거리가 2,000km란다.
수고해준
기사에게 박수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또한,
선착장까지
따라 나온 현지가이드는 ‘정들면 떠나야 하는 가이드란 직업이 가혹하다’고 하면서 일일이 악수를 하며 아쉬워하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더욱이
7박
8일의
일정으로 내몽고/적봉/공거얼을
여행하면서 처음 서류부터 시작하여 여행하는 내내 우리 곁을 지키며 함께했던 오 부장과 여행사 직원도 고맙다.
특히
채 정희 가이드의 ‘여행은 설렘이고,
고생이고,
추억’이라고
하면서 안녕히 가시라던 마지막 인사말이 마음에 긴 여운으로 남았다.
(2018.5.24.)
게르
(ger):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짐승의 털로 만든 천을 덮어 만드는 몽골의
전통 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