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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리 한반도 둘레길 황금 비 단 길...
여객선은 오전 10시경 요녕성 동강항에 도착되고 입국장에 들어선다.
많이 빨라진 입국 수속 절차 등이 중국의 성장을 새삼 느끼게 한다.
입국장을 빠져나오자 우리 팀을 태우고 갈 승합 버스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고 한족 기사가 반긴다.
4일간 백두산까지 함께할 기사다.
동강시는 단동시의 위성도시로 수산업. 원예업. 관광업 등 다양한 산업이 발전한 도시로 우리 한국 인천과 뱃길이 열려 있어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도시다.
버스는 시가지를 벗어나 북서쪽의 한산한 내륙 길에 접어들고 10여 분이 지나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 길에
접어들자 더 넓은 도로이나 차량은 보이지 없고 전방에 황금평이 펼쳐진다.
황금평
황금평은 신의주 최대의 곡창 제대로 면적은 11.45 km² 둘레 20km 길이 6,7km다.
황금평 남쪽 끝부분과 비단섬의 북쪽 끝부분이 마주하고 있고 이곳에서 상류 약 2km 지점에는 압록강 신대교가
자리하고 있다. 황금평의 본래 지명은 황초평인데 60년대 당시 김일성이 직접 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비단섬과 함께 신도 군에 속한다.
황금평은 압록강 상류 퇴적암이 밀려와 근대에 들어 한반도를 등지고
대륙에 붙어버린 한반도의 효자 땅이다. 두만강 녹둔도와 같은 현상이다.
현재 이곳에서 육로로 황금평 왕래가 가능하고 북한에서는 2km 이상 배를 타고 건너야 황금평을 만날 수 있다.
2012년 북한의 장성택이 중국 측과 황금평 공동개발을 논의한 후 자유시장 주의 원칙과 상호 이익을 바탕으로 황금평을
신흥 경제특구로 공동 개발해 육성한다며 양국이 합의하지만 지금까지 중국 측의 비협조적 태도와 장성택의 처형 여파로
중국 측이 투자를 유치하지 않아 2015년 현재 한보의 진척도 없다, 대륙으로 포효할 수 있는 기회의 땅 황금평,
국내 민간 자본과 우량 건설사 하나 정도만. 상륙시켜도 인천 상륙작전 이상의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땅이다.
좁은 시멘트 포장길 양 사이드에 양국이 각각 쳐놓은 철조망이 북. 중 국경 라인을 대신하고 있다.
철조망 너머 끝없이 펼쳐지는 황금평 들녘...
황금평
황금평에서 압록강변길이 시작된다.
강변길을 따라 약 2km 지점에 거대한 압록강 신대교가 자리하고 있는데 강 건너 북녘 쪽 다리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 단동시 낭두진 국문만에서 강 건너 평안북도 용천군과 연결된다. 왕복 4차선으로 다리 길이가 3030m다.
압록강 하류 폭이 3 km가 넘는다는 것을 이곳 다리 길이로 알 수가 있다.
현재 다리는 완공된 상태이나 북측의 도로망이 구축되지 않아 북측에서 다리 입구를 폐쇄시켜 놓은 상태라고 한다..
2009년 10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방북해 김정일과 면담한 후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우선순위 사업 하나가 이곳
압록강 신대교 건설이며 두만강 권하교 상류 약 1km 지점에 제2 권하교 건설과 강 건너에서부터 나진, 선봉 특구까지
비포장길 53km에 대한 포장 공사다. 하나같이 다 중국 측의 속내가 더러 나는 작은 사업들로. 나진 선봉 특구는 중국이 북측으로부터
50년간 임대받아 경제특구 명목으로 동해를 거쳐 태평양 진출 전초기지로 현재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기존 2개의 다리로는 대북 수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고 이곳 압록강 신대교와 두만강 제2 권하교 등을 건설해
교통량을 분산시켜 저급 생필품 등을 북한으로 대량 수출한다는 중국 측의 의도가 깔려 있다..
이 또한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보면 될 것이다. 다행히 북측은 중국 측 속내를 알아차리고 현재 다리를 폐쇄시켜 놓은 상태라고 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기본 다리에도 다닐 차량이나 소달구지도 없다. 석탄 등 지하자원은 다 열차로 수송되고 소중한
우리 문화재 등은 작은 나룻배를 타고 야밤에 밀무역으로 중국에 다 넘어가고 있다.
압록강 신대교
압록강 신대교를 중심으로 우측 하류 쪽이 황금평(11.45 ㎢)이며 그 아래 섬이 비단섬(64.368㎢)이다.
두 섬의 면적을 합치면
울릉도 면적보다 넓다. 우리 정부가 이곳에 대중 수출 전용 공단을 건설해 북. 중 양국의 저가 노동력과
지리적 여건 등을 활용하면 개성공단의 수백 배 이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나 지금 우리 정부는 발상 자체가 없다.
박근혜 정권은 통일을 원치 않을 것이다. 자신의 밥통을 깨면서까지 가당치가 않다
우리 민초들이 깨어 있어야 통일도 가능하다.
신대교에서 상류 강변길을 따라 잠시 이동하자 강변 좌측에 고층 아파트가 길게 들어선 신도시가 형성돼 있는데
아파트 내부는 텅 빈 상태다.. 단동시는 황금평 특구 개발의 특수를 노리고 신도시를 건설하는 등 많은 공을 들이지만
북한의 실세이던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 중앙정부의 비 협조적 태도로 황금평 개발은 현재 한보의 진척 없이 개발이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그 여파로 이곳 신도시 아파트 입주 희망자들까지 없다고 한다.
압록강 철교
아파트 단지를 지나 상류 강변길을 따라 10여 분 지나 한반도 근대사에 수많은 애환이 묻어있는 압록강 철교가 나온다.
다리 길이 944m로 다리 중앙이 북, 중 국경 라인이다. 1937년 착공해 1943년 4월에 완공된 복선형 철교로 현재 열차와
차량이 양방 통행하고 있다
이곳 철교는 1990년 북한과 중국의 합의에 따라 지금
조. 중 우의교라고 부르고 있다.
현재 북. 중 무역 물자 80% 이상이 이곳 다리로 들어간다.
생필품 등을 가득 실은 차량들이 통관 절차를 기다리며 수백 미터 줄을 서는 기이한 현상들이 지금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고. 두만강
권하교 또한 마찬가지다.
조, 중 우의교 우측 바로 옆에 반동강난 철교가 하나 더 있다
1908년 8월에 착공해 1911년 10월에 완공한 다리다.
다리 중앙에 철로를 깔고 좌우 양측에 2.6m의 인도를 가설했다. 1932년 당시
기록에 의하면 연간 도보 통행자가 260만 명으로 하루 평균 8천 명 넘는 많은 민초들이 북간도를 왕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한반도 인구가 2천만이다.
6.25 전쟁 당시 수일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9월에 유엔군이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서울을 탈환한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여세를 몰아 빠르게 북진하여.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한 국군은 환희와 기쁨의 순간 철모에 강물을
퍼 담고 감격의 통일을 노래한다. 이때 중공군이 이곳 철교를 타고 벌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남북통일의 순간 수적 열세로 달리 방법이 없던 국군은 곧이어 후퇴에 들어간다. 이
후 11월에 미 공군의 폭격으로 북한령 철교 절반이 파괴되고 중국령 절반이 그대로 남았다.
이때 반 동강 난 철교를 압록강 단교라 부르며 중국은 항미원조 전쟁 기념으로 지금 것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단교와 조중 우의교 사이에 모타보트 선착장이 한 곳 있다, 이곳 선창장이 자주 물의를 일으킨다.
중국이나 한국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소형 모타보트를 타고 북한 유역에 접근해
빨래나 밭일 등을 하는 북한 아낙들과 농부, 군인괴, 아이들에게 과자나 담배 등을 던져 주는데.
여행객들이 사라지면 이들이 나타나 주어 간다. 이 모습을 숨어 지켜보던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긴다.
일명 사파리 관광 상품으로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중국 측에 시정 조치를 취했으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1차 당시 어적도에서 한 번 체험한 후 다시 가지 않는다.
본래 압록강 중앙이 국경 수계로 북, 중 국경 라인이다. 최근 북, 중 고위급 회담에서 강의 수계를 허물었다.
강은 양국이 공동 소유하고. 양국이 서로 상대의 영토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배에서 내려 상대국 영토에 발을 딛지 않으면
월강 침범이 아니다는 새로운 북, 중 국경조약을 합의한 이후 사파리 관광이 성행하고 있다.
철교 앞 강변도로 건너편 한 곳에 북한 인공기가 선명하게 붙은 북한의 외화벌이 식당 송도원이 있다.
평양 아줌마 등 우리 대중가요가 쉬지 않고 흘러나오며 손님을 유혹한다.
이들은 이제 자본사회 순기능에 깊이 빠져들었다.
중식 자리다. 송도원 식당 평양냉면 맛이 아주 일품이다.
반주로 북한의 명품주 들쭉술을 주문한다. 백두산 들쭉나무와 열매를 주원료로 해 생산한다는 위스키로 북한이 자랑하는
명품 위스키다 술맛이 아주 좋다 들쭉술은 중국의 식당 등에서 지금 가짜가 많이 돌고 있어 명품세를 단디 치르고 있다
때로 북한의 외화벌이식당에서 조차 가짜가 판매되는 것을 몇 번 접하고는 이들에게 가짜라고 전하지만 이들은 구분 자체를 하지 못 했다
이후 현지 식당 등에서 평양 소주를 많이 찾는데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가짜가 거의 없다
중식이 끝나고 단동 시가지 거리 투어에 나선다. 자전거 택시로 2인 승차에 5원이다. 사면이 탁 트여 시가지 투어에
아주 좋은 이동수단이다.
차량 사이를 빠져 다니며 왼손 내리면 좌회전 오른손을 내리면 우회전으로 참 재미있는 수신호다.
단동 시가지는 차량과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들이 뒤엉켜 무질서 천국 같은데 그래도 별 탈 없이 잘 돌아가며 사람이 우선이다는
중국 기사들의 만만디 준법정신이 돋보인다.
단동시 본래 지명은 안동이다. 1965년 지금의 단동으로 개명한다
20세기 초 작은 어촌이던 단동은 작은 나룻배를 타고 강 건너 조선의 신의주 상인들과 물물교환 및 밀무역이 성행했다.
1907년 개항되고 1911년 신의주와 단동을 잇는 압록강 철교가 가설되고. 이후 일본은 한반도를 타고
이곳 철교를 건너 단동시를 북간도 침략 전진도시로 만들어 갔다.
철교에서 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약 1km 지점 좌측에 단동역이 나온다..
금년 초 단동 선양 간 고속철의 개통으로 운행 시간을 반 이상 단축시켰고. 중국은 현재 대륙 전체를 고속철 시대를 열어 놓았다.,
중국에서 첫날 숙소는 역 주변 시가지 중심에 자리한 5성급 호텔로 객실에는 2개의 싱글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다
침구류 및 욕실 등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고. 2명이 하룻밤 묵기에 여유 있는 공간으로 식당 및 커피숍과 레스토랑 등은
호텔에서 직영으로 운영되는 단동의 A급 호텔이다.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석식을 마치고 밤거리 투어에 나선다.
다시 압록강 철교로 간다.
강변길 밤거리에는 오색빛 가로등 아래 많은 사람들이 붐비며 역동감이 넘친다. 강 건너 신의주에는 암흑 속 백열등
몇 개 깜박인다.. 지금 우리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고 있다
북한의 전력 사정이 이 정도까지 열악할 줄이야 다들 탄식이 터진다.
남쪽의 50년대보다 떨어지는 신의주 밤거리는, 암흑 그 자체다.
철교에서 다시 역 광장 방향으로 걷는다. 잠시 후 우측 인도 한켠에 조선의 거리 또는 고려길이라고 표기된 안내 표지판이 하나 나오고
우측길로 접어들자 거리 간판 상호들이 대부분 한글이다.
이곳은 현재 조선의 민속 거리로 지정돼 있고 북한의 무역 일꾼들이 다양한 업종들로 영업하고 있다
재미있는 상호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 평양아주마 식당
간단히 한잔 나눌 겸 식당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어서 오시요 라며 반긴다.
억양이 평양 말투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고. 우리말의 반가움에 같이 인사를 건네자 목에 맨 카메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 보인다..
두 평 정도의 작은 홀 우측에 작은방이 하나 딸려 있다. 방으로 들어가 메뉴판을 요구하자 갖고 들어온다.
대동강 맥주를 주문하자
해바라기씨앗과 볶은 땅콩이 기본 안주로 먼저 들어온다.
아주마이 이야기 좀 나누자며 같이 자리를 청하자 아주 마이 둘이 함께 방으로 들어오는데 표정이 많이 경직돼 있다.
우리는 남쪽에서 온 여행가들이다. 이 친구는 백두산 호랑이 똥을 찾았다니는 kbs 대하드라마 작가 선생이다
광복 70주년 기념 백두산 신년 해맞이차 오늘 중국으로 들어
오는 길이다.
평양 아주마이
만나서 반갑다. 서로 부담을 털고 편하게 한잔 나누자..
왜 하필 호랑이 똥을 찾으시오 라며 환하게 웃는다.
남남북녀가 마주 앉았다.. 대동강 맥주 4 잔을 가득 채우고 건배 선창을 제의 하자
평양 아주 마이들. 경계심을 풀고 건배 선창으로 이어진다.
쭉 ~ 내자우
평양식 건배사다. 평양 사투리의 구수함이 묻어나 더 친근감이 가는 건배사다.
아주 마이들이 조국 평양에서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를 풀어놓자 우리는 남쪽의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서울 이야기에 다 신기하다는 듯 귀 기울이는 평양 아주 마이들...
북한 경제가 어렵고 경직된 사회라는 것이 대화 곳곳에서 감지된다.
조국에서 중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곳에서 무역 일꾼이 되려면 평양에서 실력자의 힘이 아니면 어렵지 않은가?라고 묻자
그렇다 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시누. 올케 사이로 평양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에서 별 근심 없이 살고 있었으나
아이들 교육 문제 등 더 나은 미래를 찾아 지금 중국에서 무역을 한다며 아이들도 지금 이곳에 있다고 한다..
남남북녀가 동포애로 손 잡고 광복 70주년 기념 백두산 새해맞이를 이번 기회에 함께 하자고 제의하자. 갑자기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다음 기회에 꼭 함께 하자며 그때를 기다리겠다 고 한다.
또 잔이 돌아간다
쭉 ~ 내자우
남남 북녀가 둘러앉아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평양 아주 마이들과 밤이 깊어 간다.
평양 아주마이 쭉 내자우
팔공산 자락에서.........................
이 정 우
백두산과 1만 리 한반도 둘레길 어느 구간이던 정보가 필요하신 단체 개인등 연락 주세요
현지정보 및 교통 숙박 숙식등 상세한 정보 나누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길 기대합니다.
E_mail : kdjj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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