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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 Don't Forget To Remember Me"
- 비지스 / Bee Gees
Oh my heart won't believe 나는 믿을 수가 없어요
that you have left me 그대가 내 곁을 떠났다는 것을
I keep telling myself that it's true 그 것이 아무리 사실이라고 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I can't get over anything 나는 모든 것을 이겨나갈 수가 있어요
You won't my love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But I can't get myself over you 하지만 내 스스로 그대를 잊게할 수는 없어요
Don't forget to remember me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And the love that used to be 우리의 뜨거웠던 사랑도 잊으면 안 됩니다
I still remember you I love you 지금도 변함없이 기억하고 있어요 그대를 사랑합니다
In my heart lies a memory 내 가슴 속에는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To tell the stars above 하늘의 별들을 이야기하던 그 추억이
Don't forget to remember me my love 내 사랑이여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On my wall lies photgraph of you girl 내 방 벽에는 그대 사진이 걸려 있지요
Though I try to forget you somehow 아무리 그대를 잊으려해도
You're the mirror of my soul 그대는 내 모든 것을 붙잡고 있는 내 영혼의 거울입니다
So take me out of my whole 그러니 제발 나를 구원해 주세요
Let me try to go on 이제 노력해 볼 겁니다
livin' right now 계속해서 살아가도록
Don't forget to remember me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And the love that used to be 우리의 뜨거웠던 사랑도 잊으면 안 됩니다
I still remember you I love you 지금도 변함없이 기억하고 있어요 그대를 사랑합니다
In my heart lies a memory 내 가슴 속에는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To tell the stars above 하늘의 별들을 이야기기하던 그 추억이
Don't forget to remember me my love 내 사랑이여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비지스(Bee Gees, 1958-2003, 2009-2012)' 그룹은 1958년 호주에 이민으로 떠났다가 1966년에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 맏형인 '배리 깁(Barry Gibb, 1946-)'과 쌍둥이 두 동생인 '로빈 깁(Robin Gibb, 1949-2012)', '모리스 깁(Maurice Gibb, 1949-2003)'의 3형제가 1958년에 결성한 영국 출신 호주 국적의 세계적인 남성 트리오 팝 그룹입니다.
이들 깁 3형제의 아버지 '휴 깁(Hugh Gibb, 1916-1992)'은 영국의 댄스클럽 메카(Mecca)의 드럼주자이자 밴드리더였고 어머니 '바바라 깁(Barbara Gibb, 1920-)'은 댄스클럽 가수로 활동하였습니다. 음악 가족의 환경에서 자란 깁 3형제는 1955년에 영국 맨체스터(Manchester)의 교외 '고몽 극장(Gaumont Theatre)'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록앤롤(Rock-And Roll) 그룹인 '래틀스내이크스(The Rattlesnakes)'를 결성하여 음악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후 소년 그룹 '블루 켓츠(Blue Cats)'를 통해서 데뷔하였습니다. 1958년 3월에 막내 동생 '앤디 깁(Andy Gibb, 1958-1988)'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들 깁 3형제는 1958년 8월에 호주정부의 이민정책에 따라 가족 모두와 함께 영국을 떠나 호주 퀸즈랜드 브리즈베인(Brisbane, Queensland)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이들 깁 3형제들은 호주정부의 인구부족에 따른 이민정책의 일환으로 호주 브리즈베인에 이주한 후 집 근처의 자동차 경기장에서 노래를 불렀고 클럽과 바(Bar) 등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깁 형제들은 호텔과 클럽 등에서 소년 그룹 '브라더스 깁(BG's / Brothers Gibb)'으로 공연활동을 하였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는 못하였습니다. 1960년에는 브리즈베인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코티스 해피 아워(Cotee's Happy Hour)'에 고정 출연하였습니다. 1962년에는 그룹 명칭을 '브라더스 깁(Brothers Gibb)'을 줄인 '비지스(Bee Gees)' 그룹으로 새롭게 바꿨습니다. 뒷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는 '비틀즈(Beatles)'의 인기가 최고조를 달렸고 지구촌 음악계가 온통 비틀즈 세상이었기에 의도적으로 '비(Bee)'를 앞에 두고 깁(Gibb) 형제들을 뜻하는 '지스(Gees)'를 뒤에 두어 '비지스(Bee Gees)'라고 정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당시 호주 팝계의 선두주자이자 록 뮤지션으로 유명한 '콜 조이(Col Joye, 1936-)'로부터 인정을 받은 비지스(Bee Gees) 그룹은 콜 조이의 도움을 받아 1962년에 브리즈베인에서 시드니(Sydney)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비지스 그룹은 시드니의 호텔과 클럽, 바 등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63년에는 페스티벌 레코드(Festival Records)사와 손을 잡았고 자신들이 작사, 작곡한 싱글 '세 번의 사랑의 키스(The Three Kisses Of Love)'의 곡을 출시하였으며 크게 히트하면서 호주 음악계에 그들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4년에 싱글 '폐소공포증(Claustrophobia)', '될 수 있어요(Could It Be)'의 곡에 이어 1965년에는 싱글 '와인 앤드 우먼(Wine And Woman)'의 곡 등이 크게 히트하면서 첫 앨범 'The Bee Gees Sing And Play 14 barry Gibb Songs'를 출시하였습니다. 수록된 '난 연인, 남자의 리더(I Was A Lover, A Leader Of Men)', '사생결단(To Be Or Not To Be)', '팀버(Timber)', '작별인사를 하지 마세요(Don't Say Goodbye)' 등의 곡도 히트하면서 호주 차트에 올려놓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66년에는 앨범 'Spicks And Specks'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싱글 '스픽스 앤드 스펙스(Spicks And Specks)'의 곡은 모리스 깁의 피아노 연주가 곡의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호주 차트 1위와 네덜란드 차트 2위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록된 '월요일의 비(Monday's Birds)', '플레이다운(Playdown)', '빅 찬스(Big Chance)', '내 삶의 전부(All Of My Life)', '징글 쟁글(Jingle Jangle)' 등의 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비지스 그룹은 1966년에 대망의 꿈을 안고 호주를 떠나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호주 출신 세계적인 제작자 '로버트 스틱우드(Robert Stigwood, 1934-)'의 도움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지스 그룹은 드러머 '콜린 피터슨(Colin Peterson)'과 리드 기타리스트 '빈스 멜러우니(Vince Melouney)'를 영입하여 5인조 밴드 그룹으로 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폴리돌 레코드(Polydor Records)사와 손을 잡고 새롭게 출범하였습니다.
비지스 그룹은 1967년 7월에 세 번째 앨범 'Bee Gees' 1st'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홀리데이 / 휴일(Holiday)'의 곡이 미국 빌보드 차트 16위, '1941년 뉴욕 광산 참사(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의 곡이 뉴질랜드 차트 3위, 네덜란드 차트 4위, 영국 차트 12위, 미국의 송 라이터이자 레코드 프로듀서인 '오티스 레딩(Otis Redding, 1941-1967)'을 위해 작곡했지만 그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게 되자 직접 부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To Love Somebody)'의 곡이 호주 차트 5위, 캐나다 차트 9위, 미국 빌보드 차트 17위를 기록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앨범이 미국 앨범 차트 7위에 오르게 되면서 미국에서 비지스 그룹의 명성을 널리 떨친 계기도 되었습니다.
1968년에는 앨범 'Horizontal'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월드(World)'의 곡이 영국 싱글 차트 7위,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의 곡이 영국, 독일, 네덜란드, 뉴질랜드, 캐나다 차트에서 각각 1위,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11위에 오르게 되면서 크게 히트하였고 '태양이 빛날 거예요(And The Sun Will Shine)'의 곡과 '정말 진심으로(Really And Sincerely)' 등의 곡도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앨범은 미국 앨범 차트 12위와 영국 앨범 차트 16위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기도 하였습니다. 같은 해인 1968년에는 앨범 'Idea-America'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난 방금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I've Gotta Got A Message To You)', '내가 농담을 시작하자(I Started A Joke)' 등의 곡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러나 1969년에 발표된 더블 앨범 'Odessa'는 밴드의 리더인 배리 깁이 이 앨범을 통해 다소 실험적인 비전을 표출하게 되었고 이에 못마땅하게 생각한 드러머 콜린 피터슨과 기타리스트 빈스 멜러우니가 그룹을 탈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평소부터 솔로활동에 뜻을 둔 로빈 깁마저 팀을 떠나게 되어 비지스 그룹은 사실상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70년에 발표된 앨범 'Cucumber Castle'은 배리 깁과 모리스 깁의 2인조 그룹으로 발표된 유일한 앨범이 되었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지금 흐르고 있는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Don't Forget To Remember Me)'의 곡을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실로 비지스의 음악은 빠른 템포의 록과 비트 음악뿐만 아니라 서정적인 감미롭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곡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도 발표했던 것입니다.
1970년에 로빈 깁이 다시 그룹에 복귀하였고 깁 3형제의 비지스 그룹은 다시 정상적인 음악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1971년에는 영국의 '와리스 후세인(Waris Hussein, 1938-)'이 감독을 맡았고 비지스 그룹이 음악을 맡은 청춘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영화 '멜로디 / 사랑의 키스로 봉한 편지(Melody / S.W.A.L.K / Sealed With A Loving Kiss, 1971)'의 O.S.T. 테마곡 '5월의 첫날 / 풋사랑(First Of May)', '멜로디 페어(Melody Fair)' 등의 곡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이 곡들은 비지스의 1969년 앨범 'Odessa'에 수록된 곡들입니다. 1971년에는 앨범 'Trafalgar'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상처받은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의 곡이 같은 해 8월 7일부터 8월 28일까지 4주간에 걸처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머무는 등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비지스 그룹 깁 3형제들의 혈연으로 연결된 이상적인 하모니와 매우 뛰어난 가창력은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맏형 베리 깁의 천재적인 작곡 실력은 비지스 그룹이 팝 역사상 가장 최장기간 동안 많은 인기를 누리면서 활동해온 팝, 록 그룹이 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비지스 그룹은 미국으로 활동무대를 넓혀갔고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자신들의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비지스 그룹은 폭발 직전에 놓여 있는 '디스코(Disco)'의 열기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비지스 그룹은 1975년에 앨범 'Main Course'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디스코풍의 '자이브 토킹 / 거짓말(Jive Talkin')'의 곡을 빌보드 차트 1위에 '브로드웨이의 밤(Nights On Broadway)'의 곡을 빌보드 차트 7위에 각각 올리는 등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이어서 1976년에는 앨범 'Children Of The World'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역시 디스코풍의 '춤을 추어요(You Should Be Dancing)'의 곡을 다시 한번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리는 등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지스 그룹은 지구촌 곳곳에서 디스코의 세계적인 선두주자로 부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힘입은 비지스 그룹은 '디스코의 황제'라고 불릴 정도로 디스코풍의 곡들을 많이 발표하였습니다. 1977년에 '존 바담(John Badham, 1939-)'이 감독을 맡았고 비지스 그룹과 '데이빗 샤이어(David Shire, 1937-)'가 음악을 맡았으며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 1954-)'가 극 중 '토니(Tony)' 역을 맡아 열연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1977)'의 O.S.T. 테마곡 '살아있잖아요(Stayin' Alive)'는 지구촌 만인들의 가슴을 그렇게 고동치게 했고 그토록 많은 전율을 일으키게 했으며 지구촌 곳곳의 극장가를 디스코 열풍의 도가니 속에 푹 빠뜨렸던 것입니다. 같은 해인 1977년에 성공적인 라이브 앨범 'Here At Last...Bee Gees...Live'의 발표에 이어 앨범 'Saturday Night Fever(Soundtrack)'를 발표하였습니다. 수록된 '그대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요(How Deep Is Your Love)', '밤의 열기(Night Fever)', '여성 이상이에요(More Than A Woman)', '그대를 가지지 못한다면(If I Can't Have You)' 등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1977)'의 O.S.T. 테마곡들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특히 비지스가 작사, 작곡한 '그대를 가지지 못한다면(If I Can't Have You)'의 곡은 1978년에 미국의 여성 키타리스트이자 가수인 '이본느 엘리먼(Yvonne Elliman, 1951-)'에게 부르게 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게 된 명곡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비지스 그룹은 1979년에 앨범 'Spririts Having Flown'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비극이에요(Tragedy)', '눈물겨운 천국(Too Much Heaven)', '그대를 모두 사랑해요(Love You Inside Out)', 1981년에는 앨범 'Living Eyes'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그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세요(Be Who You Are)', '파라다이스(Paradise)' 등의 곡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맏형인 배리 깁은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다른 가수들을 통해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1988년에는 비지스 그룹 멤버, 솔로 가수로 활동 중인 막내 동생 '앤디 깁(Andy Gibb, 1958-1988)'이 약물중독으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막내 동생 앤디 깁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헌정한 곡 '내 곁에 있으면 좋겠어요(Wish You Were Here)'의 곡은 1989년에 발표된 앨범 'One'에 수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앤디 깁의 1977년에 발표한 싱글 '난 그대의 전부가 되고 싶어요(I Just Want To Be Your Everything)', '사랑은-물보다 진해요(Love Is-Thicker Than Water)', 1978년에 발표한 싱글 '그림자 춤(Shadow Dancing)' 등의 곡은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고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한 그의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비지스 그룹은 1994년에 송라이터스 명예의 전당(Songwriters Hall Of Fame)에 올랐고 1997년에는 앨범 'Still Waters'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혼자(Alone)', '난 모든 걸 내려놓을 거예요(I Surrender)' 등의 곡을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인 1997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헌액되었고 2002년에는 비지스 그룹 멤버 전원이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 서훈 명단에 오르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습니다.
2003년 2월 비지스 그룹에게 슬픈 먹구름이 덮치고 있었습니다. 비지스의 밴드 멤버이며 깁 3형제인 모리스 깁이 심장수술 도중 53세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비지스의 맏형 베리 깁과 동생 로빈 깁은 세상을 떠난 모리스 깁을 추모하는 뜻에서 앞으로 비지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바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비지스 그룹의 활동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빈 깁(Robin Gibb, 1949-2012)'은 비지스 그룹으로 활동 중인 1969년에 싱글 '종소리에 구원되었어요(Saved By The Bell)'의 곡을 영국 싱글 차트 2위, 독일 차트 3위, 남아프리카와 뉴질랜드 차트에서 각각 1위에 올리는 등 크게 히트하였고 1970년에는 이 곡을 솔로 앨범 'Robin's Reign'에 수록하여 출시하였습니다. 1980년에는 미국 여성 소프라노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 송라이터인 '마셀라 디트로이트 / 마시 레비(Marcella Detroit / Marcy Levy, 1952-)'와 함께 부른 '날 도와주세요!(Help Me!)'의 듀엣곡을 통해 자신의 솔로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곡은 1980년에 '앨런 모일(Allan Moyle, 1947-)'이 감독을 맡았고 '블루 위버(Blue Weaver,1947-)'가 음악을 맡은 영화 '타임스퀘어(Times Square, 1980)'의 O.S.T. 테마곡으로 유명한 명곡이 되었습니다. 이 곡은 같은 해에 빌보드 싱글 차트 50위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인 1980년에는 배리 깁과 함께 미국의 배우, 가수이자 영화 제작자로 널리 활동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 1942-)'의 앨범 'Guilty'의 프로듀서을 맡았고 수록된 곡들을 작곡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수록된 '사랑에 빠진 여인(Woman In Love)'의 곡은 영국 싱글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 캐나다 톱 싱글 차트 1위, 독일 차트 1위, 노르웨이 차트 1위, 스위스 차트 1위 등에 각각 오르는 등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1983년에는 '줄리엣(Juliet)' 1984년에는 '비밀 요원(Secret Agent)', 1986년에는 '토이스(Toys)' 등의 곡을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기도 하였습니다.
로빈 깁은 2003년 2월 솔로 앨범 'Magnet'를 출시한 후 'GM TV' 에서 '모리스를 위해서 계속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건 그것은 두사람의 형제들이 한 것이지 비지스가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비지스라는 이름은 세 사람을 위해 역사 속에 남겨 두고 싶습니다. 모리스도 우리가 계속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창작욕을 불태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우리의 작곡 방식이 달라지거나 노래들이 어두워 질 것 같지는 않지만 모리스의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라고 밝힌 바 있었습니다.
로빈 깁은 2004년에 맏형 배리 깁과 함께 맨체스터 대학교(The University Of Manchester)에서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2004년에는 영국의 싱어 송라이터인 '알리스테어 그리핀(Alistair Griffin, 1977-)'과 함께 부른 '내 연인의 기도(My Lover's Prayer)', 2006년에는 '사랑의 어머니(Mother Of Love)', 2007년에는 '눈물겨운 천국(Too Much Heaven)', 2008년에는 '앨런 프리먼의 날(Alan Freeman Days)' 등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2009년에 비지스 그룹은 2003년 모리스 깁의 사망으로 잠정 중단되었던 그룹활동을 로빈 깁의 참여로 투어 공연활동을 함께하는 등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로빈 깁은 2012년에 '타이타닉 추모곡(The Titanic Requiem)'을 작곡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2012년 5월 20일 로빈 깁이 홀연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2010년에 간암(Liver Cancer) 진단을 받았고 장기간 투병생활을 해오다 그의 나이 63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비지스 그룹의 긴 역사는 로빈 깁의 사망으로 사실상 해체되고 만 것입니다.
비지스 그룹은 가성을 이용한 그들 형제들 특유의 독특한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1970년대 중반과 후반을 통해 지구촌 곳곳의 많은 음악 팬들을 깡그리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비틀즈 음악보다는 비지스 음악을 더 심취하게 만들었다고 평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지스 그룹의 음악은 강렬한 멜로디와 두터운 화음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만의 위치를 특별하고 확고하게 다진 록 그룹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세계 최초로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대동하여 투어 공연을 나서는 등 맹활약을 펼쳤던 그룹입니다. 분명 비지스는 한 때 가장 인기 있는 록 그룹으로 세계 음악계를 주름잡았던 추억의 트리오 팝 그룹임에 틀림없습니다.